꿈의 애마 ‘할리’로 전국을 누벼요

출발 전, 영하의 날씨에 검은색 가죽점퍼로 중무장한 동호회 회원들은 각자 자신들의 애마 ‘할리(할리데이비슨)’를 일렬로 세운다. 웅장한 엔진소리와 화려한 금속 프레임을 일제히 뽐내고 있었지만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드러낸다.
로드 운영을 담당한 홍근호 운영위원은 이날의 코스와 대열 순서, 주의사항 등을 꼼꼼히 챙기고, 출발 직전 바이크 뒤에 깃대를 꽂았다. ‘HD KOREA’란 글씨와 함께 ‘사랑을 나른다’는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로고가 새겨진 깃발이 걸렸다.
드디어 출발을 알리는 선두 주자의 굉음이 귀청을 울린다. 선두 주자를 따라 이열종대로 그림을 그리듯 꿈의 바이크, 할리데이비슨 한 무리가 도로를 점령했다.
“할리를 사랑하는 우리 동호인들은 직업도, 연령대도 천차만별이지만 개성도 강합니다. 바이크를 좋아한다는 공통점만 있을 뿐이죠. 다양한 개성을 존중해주고, 할리의 에너지를 깊이 느낀다는 공감대로 회원들이 똘똘 뭉쳐 투어를 하고 있습니다.”
김경호 HD 코리아 회장의 간단한 소개가 동호회의 성격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인터넷 카페 회원은 190명이고, 실제로 주말마다 라이딩을 즐기는 회원은 40명 정도다. 지난해 11월 창단식을 가진 이 동호회는 각종 바이크 동호회 회원들 중 할리데이비슨을 애마로 가진 서울·경기 지역 회원들이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결성했다.
모인 사람들은 다양하다. 부인 우경미씨를 탠덤(tandem:바이크 뒤에 동승자를 태우는 것을 지칭)으로 라이딩을 즐기는 박영호 SBS PD. 그는 할리데이비슨의 매력을 이렇게 말한다.
“말을 타는 기분입니다. 기름만 넣어주면 가는 말이지요. 이걸 타고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게 매력입니다. 초여름 아침 10시에 숲이 우거진 길을 말을 몰듯 타고 가면 그 기분은 이루 형언할 수가 없습니다.”

동호회 고문으로 최고령자인 김춘길씨(69)는 사위의 강력 추천으로 3년 전부터 바이크를 타게 됐다.
“원래는 등산을 좋아해서 킬리만자로, 히말라야 등을 등정하곤 했지만 지금은 할리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심장으로 엔진의 진동을 느끼면 삶이 재충전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이날 모임의 홍일점 여성 라이더인 박성이씨는 남편을 따라 탠덤으로 라이딩을 즐기다 직접 오너로 나섰다. 할리데이비슨을 몬 지 불과 8개월인 그녀는 팔당터널을 지나 정차를 하기 위해 속도를 줄이다 400킬로그램이 넘는 자신의 애마를 넘어뜨려 동지들을 잠시 긴장시키기도 했다.
“여자 몸으로 혼자 라이딩을 하기엔 위험한 게 사실이지요. 하지만 그룹 투어를 할 땐 회원들이 적절히 컨트롤 해주면서 보호해주기 때문에 더없이 안전합니다. 바이크 운행 실력을 더 키워나갈 거예요.”

각양각색의 회원들이 한 무리를 지어 도로를 질주하지만 속력은 그다지 높지 않다. 시속 80킬로미터에서 100킬로미터 사이다. 회원들은 한결같이 할리데이비슨의 매력이 여기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땅을 울리는 묵직한 진동이 심장으로까지 전해져 거대한 엔진의 힘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굳이 무리하게 속력을 낼 필요가 없다고 했다. 차선을 바꾸거나 램프 진입 시 일제히 수신호를 보내며 대열을 정비하는 모습은 기마부대를 연상하게 했다. 박영호 PD는 할리데이비슨의 또 다른 매력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할리를 타면 나이를 잊고 사는 느낌입니다. 20대든 60대든 가죽바지와 점퍼를 차려입고 자유를 만끽하는 방식은 같거든요. 오히려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 활동을 하다보니 서로 다른 세대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게 됩니다.”
서른다섯 살 때부터 할리데이비슨을 몰고 싶었다는 김영배 부회장은 49세 되던 해 그 꿈을 이뤘다. 그는 “바이크를 몰기 시작하면서 더 젊어지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매출 5000억원대의 중견기업 대표이기도 한 그는 가끔 회사에도 바이크 복장으로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출근한다.
“양복차림의 모습만 보던 직원들이 새로운 시선으로 나를 볼 땐, 또 다른 내 모습을 표현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무엇보다 바이크를 운행하면서 갖는 긴장감이 최고의 매력이지요.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워 몰기 때문에 정말 나이를 거꾸로 먹는 느낌까지 듭니다.”
회원 중에는 보기 드물게 부자(父子) 라이더도 있었다. 장승길씨와 그의 아들인 장종윤씨는 나란히 각자의 할리데이비슨을 몰고 왔다. 할리데이비슨을 몬 지 3년 정도 됐다는 장씨는 아들 종윤씨가 다른 레이싱 바이크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위험한 운행을 하는 게 걱정스러워 1년 전 아들에게 할리데이비슨으로 교체하도록 하고 동호회 활동도 권유했다고 한다. 장씨는 “어차피 바이크로 레저생활을 즐긴다면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합류하자고 권했다”면서 “가끔 아내도 함께 즐기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족간 대화가 많아지는 것 같다”며 만족 스러워했다.
아들 종윤씨는 “할리 문화는 속도를 즐기는 다른 바이크 동호회와는 다른 것 같다”면서 “함께 운행하면서 수신호를 보내고 질서를 잘 지키면서 지나치게 속도를 내지 않는데도 라이딩의 쾌감은 더 좋다는 게 매력”이라고 설명 한다.
전 세계적으로 할리데이비슨 동호회는 그들 만의 특별한 문화가 있다. 미국의 경우 사회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어서 단순한 취미생활을 위한 동호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김춘길 고문은 “앞으로 이런 문화를 만들고 라이온스클럽이나 로터리클럽과 같이 멤버십을 정착시켜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회원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투어다. 장거리나 큰 행사 때는 소풍 전날 아이처럼 잠을 설칠 만큼 설렌다고들 했다. 매주 번개 투어를 하고 매달 정기 투어를 하는 데도 늘 마찬가지란다. 1년 치 큰 행사도 기대되는 일정들이다. 3월1일 독립기념관에 집결해 투어를 떠날 예정이다. 5월 속초에서 있을 내셔널 랠리는 국제적인 행사로 5월 첫째 주 토요일에 출발해 마지막 그랜드 투어 때는 금강산으로 떠날 계획이다. 6월 부산, 7월 제주를 비롯해 10월에는 HOG 코리아 챕터에서 여는 행사에도 참여한다. 회원 들은 ‘행복한 질주’를 함께 즐기는 게 의미 깊다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