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최근에는 재계 판도를 바꿀만한 메가딜(mega deal)이 연이어 성사되고 있다. 기업에 있어 M&A는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M&A가 기업 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3년 전만 해도 국내 굴지의 대기업조차 M&A 담당자를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기업에 M&A 전담 부서가 따로 있을 정도다. 국내 기업들의 M&A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임석정 JP모건 한국 대표는 “국가적으로도 M&A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며 “구조조정 시대를 마무리하고 정체 일로에 빠진 국내 산업의 신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M&A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국내 M&A 시장이 급성장한 것은 최근 2~3년 사이다. 외환위기 후 부실기업 매각으로 시작된 국내 M&A 시장이 한 단계 성숙해지면서부터다. 과거 국내 M&A는 정부가 나서 부실기업을 매각하거나 오너의 경영 실패로 반강제적으로 경영권을 넘기는 등 단순한 딜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 M&A라고 하면 주로 정부가 주도한 단순한 구조였다”며 “요즘은 기업이 기존 사업의 역량 강화나 신성장 사업 발굴을 위해 전략적으로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M&A 시장 성장 요인으로 시장을 주도한 외국계 사모투자펀드(PEF)를 빼놓을 수 없다. 외환위기 이후 부실화된 상당수의 굵직한 국내 기업과 금융회사를 해외 사모투자펀드가 차지했다.

한미은행(현 한국씨티은행), 제일은행(현 SC제일은행), 쌍용증권(현 굿모닝 신한증권), 외환은행 등 금융회사는 물론 극동건설, 하나로통신(현 하나로텔레콤), 만도기계, 하이마트 등 업종을 불문하고 외국 사모투자펀드들의 먹잇감이 됐다. 서울 도심의 랜드마크가 될 만한 대형 오피스빌딩들 역시 헐값에 외국 사모투자펀드로 넘어갔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외국 사모투자펀드는 이들 기업 매각을 통해 막대한 차익을 냈다.

임석정 대표는 “‘먹튀’ 논란처럼 사모투자펀드에 대한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지만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부수적으로 전문경영인 체제를 통해 효율성 위주의 경영 풍토를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 사모투자펀드들이 M&A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것을 본 국내 기업들이 ‘아! 저렇게 돈을 버는구나’라고 느꼈다”며 “지금의 국내 M&A 활성화는 이렇게 값비싼 수업료를 낸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창업과 M&A는 단지 선택의 문제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투자가 필수다. 또 기업의 성장이 성숙기에 접어들어 한계에 봉착했다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 기업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부에서 새로운 사업을 직접 구축해 창업(Green Field: 공장 설립형 투자) 하거나 기존 회사를 인수해야 한다.

그린필드식 진출은 삼성이나 현대자 동차 등 국내 대기업의 초기 성장 전략 이었다. 반도체, 철강 등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장치산업에서 선두 기업들은 과감한 투자로 대량 생산력을 확보해 해외 선발 기업과의 격차를 줄였다.

여기에는 국가적인 자본 동원과 더불어 막대한 투자 결정을 신속히 할 수 있는 한국 특유의 재벌 시스템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 그린필드식 투자와 관련해 서는 무엇보다 반도체 신화를 빼고는 얘기할 수 없다. 삼성전자는 1980년대 후반부터 D램 반도체에 공격적으로 투자해 북미와 아시아 시장을 적극 공략해 대성공을 거뒀다.

미국 시장의 D램 가격이 급등하자 삼성전자의 반도체 매출은 급증했고, 수익성도 크게 높아졌다. 반면 일본 반도체 업체들은 경기침체로 D램에 대한 설비투 자를 주저했고, 삼성전자가 시장에 안착할 수 있는 기회를 내주었다. 삼성전자는 이후에도 공격적인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디스플레이 장치의 총아로 떠오른 LCD 분야의 성공도 1990년대 초부터 미래를 대비한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삼성전자는 1991년부터 LCD 분야의 R&D에 착수해 1995년 생산라인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LG 역시 1995년에 양산을 개시했다.

포스코도 그린필드식 투자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포스코는 지난 20년간 집중 적인 투자로 포항과 광양에 세계적 수준의 일관제철소를 건설해 원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한국 기업들이 이렇게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할 수 있었던 데는 재벌 시스템의 기업가 정신이 크게 작용했다. 오너 경영이 미 ·일 기업의 투자 결정 시스템보다 내부 자금 조달이나 위험 분산, 은행 차입금 조달 등에서 유리했다. 의사결정이 빨랐기 때문이다.

정부의 재벌 중심 경제정책도 이러한 대기업들의 과감한 투자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촉매제가 됐다. 정부는 중화학공업과 수출 드라이브 정책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기업의 성장을 이끄는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기업들에게 각종 금융 혜택은 물론 사업 독점권까지 부여함으로써 그린필드식 투자를 부추겼다. 정부의 보호 아래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사업에 나서지 않을 기업이 없었던 것이다. 이에 오너들은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하고,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이끌어 내기 위해 더욱 신경을 썼다.

그러나 오너가 존재한다는 것은 M&A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너들은 M&A로 인해 자신의 지분이 희석되거나 줄어드는 것을 두려워했다. 주식 스왑이나 신주 발행을 꺼렸기 때문에 기업이 인수 자금을 조달하기는 더욱 어려웠다. 때문에 체계적이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 하는 M&A를 추진할 필요성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게 사실이다. 또 자본시장의 미성숙으로 인해 효율적인 자금 조달이 어려웠던 것도 M&A가 활발하지 못했던 요인이다.

박장호 시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 대표는 “삼성이 반도체에 뛰어들 때만 해도 국내외에서 마땅히 인수할 대상 기업도 없었지만, 고도 성장기에는 생산만 하면 팔렸기 때문에 그린필드식 진출이 오히려 효율적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M&A가 그다지 환영을 받지 못한 것은 과거 M&A의 ‘실패’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 1990년 중후반 M&A를 통해 급속히 성장한 신흥 재벌들 은 차입에 의한 외형 확장을 통해 단기간 내에 급성장했지만, 한순간에 몰락의 길을 걸었다.

부실기업을 인수해 제지왕국을 이뤘던 신호그룹은 창립 20년 만에 25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며 30대 기업에 진입했지만 결국 워크아웃되고 말았다. 신호그룹의 이순국 회장은 1977년 부실기업인 동양펄프를, 1982년에는 부도 업체인 삼성특수제지를 인수했다. 이후 동신, 대화, 신강, 일성 등 부도 제지 업체를 연달아 인수해 1995년 말 모든 종이를 생산하는 제지왕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제지 업계의 불황과 자금난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무너지고 만다.

거평그룹도 M&A를 통해 그룹을 급성장시켰지만 과도하고 무분별하게 빚을 끌어다 쓰면서 단기간에 쇠락하고 말았다. 거평그룹의 창업자인 나승렬 회장은 첫 사업에 실패하기도 했지만 1979년 금성주택(현 거평건설)을 설립, 재차 사업에 도전한다. 이후 잇단 부동산 투자의 성공으로 재원을 확보한 뒤 1991년 거평식품과 대동화학을 인수하며 본격적인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1995년 한국시그네틱스, 1996년 대한중석 등을 인수하며 1997년 말에는 30대 그룹에 진입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은행권의 자금 회수라는 직격탄에 손을 들고 말았다.

M&A 업계 관계자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한 핵심 역량 강화가 아니라면 M&A가 오히려 부채 경영의 확산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예”라며 “당시에는 은행 차입을 통해 자금을 확보했지만 최근에는 파이낸싱 기법이 다양해져 리스크를 상당히 없앴다”고 설명했다. 

팬택 인수 실패한 삼성, 타이밍 놓쳐

최근 M&A에 대한 시각이 바뀌고 있다. 과거 M&A는 남이 애써 일궈놓은 기업의 경영권을 부도덕하게 가로채려 한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적대적 M&A에 나서는 기업을 정글의 하이에나에 비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M&A는 기업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경영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예전에 입양을 꺼렸던 가정이 이제는 스스럼없이 입양하듯이 기업들도 외부에서 새로운 성장원을 찾고 있다.

경영 환경도 급변했다. 초기 단계에서는 기업 내부 성장을 위해 과감한 투자에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성숙 단계에서는 신규 사업 진출을 위해 공장을 짓고, 신기술과 첨단설비를 도입하려면 상당한 투자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예전처럼 독점권을 부여받는 혜택도 없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부에서 새로운 사업을 직접 구축해 창업(Green Field: 공장 설립형 투자)하거나 기존 회사를 인수해야 한다고 금융상의 특혜 지원도 없다 . 비용도 문제지만 사업을 본궤도까지 올리는 데도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는 의미다 . 제품이 생산될 쯤 기술이 이미 낙후된 것일 수 있다 . 실패로 끝나면서 묻혀버린 삼성전자의 팬택 인수 시도와 그 이후의 일련의 과정에서 이러한 대목을 읽을 수 있다 .

2004 년 휴대전화 시장에서 프리미엄 전략을 고수하던 삼성전자의 고민은 깊었다 . 고가 프리미엄 중심의 성장은 한계에 이르렀다 . 3 위 모토롤라와의 격차를 벌리고 , 1 위 노키아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저가 폰 시장 진입이 필수였다 . 하지만 자체적인 신규 사업 진출을 위해 생산설비를 도입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 막상 제품을 생산할 때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

이러한 절박한 상황에서 삼성은 한창 잘 나가던 팬택계열을 인수해 중저가 폰 중심 브랜드로 키우려는 그림을 그렸다 . 팬택이 자체적으로 글로벌 휴대전화 메이커로 성장하기가 만만하지 않았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팬택계열을 인수하면 양사가 ‘ 윈 -윈 ’ 할 수 있는 시너지효과가 날 것이라는 것이었다 . 삼성은 곧 팬택 경영진에 매입 의사를 타진했다 . 하지만 되돌아온 대답은 ‘ 노 (No)’ 였다 . 국내외에서 중저가 폰 업체로서 입지를 굳히고 있던 팬택의 박병엽 부회장은 자식처럼 키워온 회사를 팔 수 없다며 매각에 반대했다 .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 삼성은 최근 들어서야 중저가 모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 하지만 시장 진입 타이밍을 놓쳐 삼성전자와 노키아와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 팬택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

만약 당시 M&A 가 성사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 이미 나온 결과를 두고 가정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삼성전자는 단기간에 저가 폰 시장에서 입지를 다졌을 것이다 . 물론 팬택의 워크아웃도 없었을지 모른다 . 

당시 삼성의 팬택 M&A 를 자문한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

“ 박 부회장은 팬택이 자신의 회사라는 생각 ,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생각에 M&A 에 반대했을 것입니다 . 창업 기업에 대한 넘친 애정이 오히려 부메랑이 된 것입니다 . 그때 멋지게 경영권을 넘겼더라면 기업을 위해서나 , 자신을 위해서나 훨씬 좋았을 텐데 . ”

M&A 통해 수익성 한계 극복

M&A 를 통한 신사업 진출의 리스크는 한층 줄어들었다 . 어느 정도 검증된 기업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M&A 에 성공하면 희망하는 시장에 단번에 진출할 수 있고 , 사업의 다각화와 업계 선도라는 상반된 목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

이러한 트렌드를 대변하듯 새로운 사업부를 만들거나 , 공장을 짓는 식의 투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 M&A 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 SK, 금호 , 한화그룹을 비롯해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금호아시아나 , 두산 , STX, 유진의 공통분모는 M&A다 . 이들은 M&A 를 통해 기존 사업의 수익성 한계를 극복하고 시장을 넓혔다 .

SK 그룹이 인수했던 기업들은 기존 사업의 역량을 강화하면서 그룹 성장을 주도했다 . 선경직물을 모체로 탄생한 SK 그룹이 직물 회사에서 탈피 , 사업 다각화를 모색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쉐라톤 워커힐호텔 인수였다 . 대한석유공사 인  수는 SK 그룹을 재계 순위 5 위로 끌어올렸고 , 한국이동통신 인수는 SK 그룹을 이동통신 공룡으로 성장시켰다 . 유무선통신 결합 서비스 시대를 대비해 오던  SK 텔레콤은 신규 투자 대신 유선통신 업체인 하나로텔레콤 인수를 택했다 .

기존의 사업 포트폴리오와 다른 분야 위주로 M&A 를 할 경우 이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 그러나 이는 기존 주력 사업들이 이미 수익성 창출 한계에 다다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큰 그림의 전략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기존 사업의 수익성 한계를 고민해오던 유진그룹은 서울증권과 하이마트를 인수하면서 금융업과 유통업이란 신성장 엔진을 달았다 .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이라는 대어를 연달아 낚으면서 재계 순위를 11 위에서 7위로 끌어 올렸다 .

맥주를 만들어 팔던 중견그룹 두산이 연이은 중공업 기업의 M&A 를 통해 자산규모 14 조원이 넘는 그룹으로 탈바꿈했다 . 퇴출 기로에 놓인 회사를 인수해 10 년도 되기 전에 5 조원 매출에 빛나는 어엿한 그룹으로 성장시킨 STX 스토리는 평범한 샐러리맨들에게는 성공 신화다. 한화그룹은 2002년 대한생명을 인수하면서 기존 화약 중심에서 금융 부문을 주력으로 하는 그룹으로 환골탈태했다. 새로운 주력 사업을 중심으로 전문화를 도모하기 위해 적극적인 M&A를 활용한 것이다것이다.

이러한 트렌드는 이제 수정하기 힘든 궤도에 들어섰다. 최근 몇 년간 국내 M&A 시장 규모는 매년 사상 최대치를 경신할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톰슨파이낸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기업 사이에 이뤄진 M&A 거래 대금 규모는 총444억8940만달러에 달한다. 무려 40조원이 넘는 돈이 M&A에 투자됐다. 지난 2003년 말 기준 M&A 거래 규모가 채 10조원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을 감안할 때 국내 M&A 시장은 불과 4년 만에 4배 이상이 급성장한 셈이다.

특히 2005년 이후 M&A 거래량이 증가한 것은 향후 추세를 나타내는 조기 신호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수년간 비용 절감 및 구조조정에 매진하던 기업들이 자체적인 성장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깨닫고 M&A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임석정 대표는 “M&A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이해와 성숙도가 상당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며 “M&A가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 전략으로써 확고히 자리매김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트렌드는 세계적이다. 세계적인 은행인 HSBC은행은 M&A를 통해 약 10년간 10배의 기업가치 상승을 기록했다. HSBC는 1995년 이후 560억달러 규모의 M&A를 수행해 이 기간 동안 주식의 시장가치는 200억달러에서 2070억달러로 상승했다.

인도 타타그룹의 계열사이자 제철 업계 59위에 그쳤던 타타스틸은 영국과 네덜란드의 합작 철강 회사 코러스그룹을 122억달러에 인수해 세계 5위 철강 업체로 올라섰다. 인도의 미탈스틸도 유럽의 아르셀로를 320억달러에 사들이면서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달기 위해서는 가업까지도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이런 면에서 M&A 전문가들은 M&A 성공 사례로 ‘두산그룹’을 주저하지 않고 꼽는다. 두산그룹은 맥주, 콜라 등 식음료업을 위주로 하던 소비재 그룹이었다. 하지만 연이은 M&A 성공을 통해 단기간에 명실상부한 중공업 그룹으로 거듭났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기 2년여 전쯤 두산그룹은 유동성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그룹 구조조정에 나섰다. 두산그룹은 한국3M, 한국코닥, OB맥주 공장부지 매각을 단행했다. 1997년과 1998년에는 그룹 사옥은 물론, 음료 사업 부문, 두산씨그램까지 팔아치웠다. 2001년에는 그룹의 가업인 OB맥주 마저 매각해 마련한 실탄으로 본격적인 중공업 기업 사냥에 나섰다.

첫 신호탄은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인수였다. 당시 노조조합원이 분신자살하는 등 노동조합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지만, 결국 성공하게 된다. 오히려 이때 경험한 사후통합 전략은 향후 전개되는 두산그룹의 M&A 행보에 큰 밑거름이 됐다. 뒤이어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에 성공함으로써 두산그룹은 중공업 그룹으로 우뚝 섰다.

PMI 잘해야 M&A 성공

M&A에 자신감을 가진 두산그룹은 해외 기업으로 눈을 돌리기에 이르렀다. 두산은 지난해에는 세계 1위의 콤팩트 건설 중장비 브랜드인 밥캣을 포함한 잉거솔랜드 그룹의 3개 사업부문을 49억달러에 인수, 국내 M&A 사상 최대 규모의 글로벌 M&A의 주인공이 됐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주력 사업을 매각하고 M&A를 통해 새로운 성장엔진을 발굴해 지난 7년 동안 매출액은 31% 증가했으며, 시가총액은 22배나 증가하는 성과를 달성했다”고 말했다.

신속 과감한 의사결정이라는 기준에서 본다면 STX그룹도 두산그룹에 뒤지지 않는다. STX 그룹은 지난해 세계 2위의 크루즈선 조선 업체 ‘아커야즈’의 최대주주 자리를 차지했다. 크루즈선 사업은 차세대 고부가가치 조선업으로 각광 받고 있다. 하지만 세계 1, 2위 조선 업체인 현대 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M&A에서 ‘합병 후 통합(Post Merger Integration: PMI)’ 단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M&A에서 PMI 단계가 전체 실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는 AOL과 타임워너의 통합 실패 사례에서 여실히 증명된다.

2000년 1월 미국 인터넷 업체인 AOL은 73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디어제국 타임워너를 1630억달러라는 천문학적 금액에 인수했다. 이들의 결합은 방송통신 융합의 이상적인 결합으로 비쳐졌고, 두 기업의 가치는 2500억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합병이 이뤄진 지 불과 3년도 안 돼 AOL타임워너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AOL과 타임워너의 합병은 PMI에서 실패했다. AOL의 기업문화는 중앙집권적인 반면 타임워너는 전통적으로 개별 사업부의 자율권을 강화하는 문화였다. 합병 후 AOL에서 파견된 피트먼 최고운영책임자(COO)는 AOL의 중앙집권적 경영 방침을 고수했으며, 이는 타임워너 측 인사들의 강한 반감으로 이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합병 후 업무 통합으로 조직 내 암투가 고개를 들고, 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면 통합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 했다.

글로벌 M&A로 눈 돌려야

올해 국내 기업의 M&A에 대한 관심은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재계 지도를 바꿀 수 있는 3개의 메가톤급 매물 때문이다. 현대건설, 하이닉스, 대우조선해양 이 그 주인공.

현대건설은 시공 능력이나 수익 창출 면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건설회사다. 어느 기업이라도 현대건설을 인수하기만 하면 단번에 국내 건설 업계의 강자가 될 수 있다. 수주 규모 세계 3위의 조선 업체인 대우조선해양 M&A에 대한 관심도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조선 경기가 최근 몇 년간 초호황을 누려온 때문이다.

국내 기업의 해외 기업 인수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성숙 단계에 접어든 국내 시장을 벗어나 해외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지속적인 성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됨에 따라 M&A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 것이다. 해외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자니 위험 부담이 크고, 국내에서 인수할 만한 기업은 몇 개 되지 않는 것도 요인이다.

박장호 대표는 “내수시장이 포화인 상태에서 기업을 키우려면 해외 M&A가 지름길”이라며 “세계 경제 침체는 오히려 한국 기업에게는 외국 기업을 사들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지적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국제 금융시장의 위기는 오히려 국내 기업에게 해외 기업 M&A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란 얘기다. 신용경색으로 글로벌 M&A 시장은 위축되지만 투기자본이 이탈해, 장기적인 측면에서 시장 성장의 잠재력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은 “국내 기업이 보유한 현금이 충분하니 후진국 기업에 집중하기 보다는 선진국 기업을 M&A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임석정 대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미국 기업들의 값이 많이 싸졌다”며 “한국 기업의 현금 동원력과 기술력, 브랜드 파워라면 해외 M&A 시장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M&A는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이스라엘 반도체설계 회사를 인수하며 13년 만에 글로벌 M&A를 재개한 삼성은 더욱 적극적인 M&A에 나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지난해 미국 자동차 부품업체인 아즈델을 인수한 한화도 각 계열사별로 글로벌 프로젝트 추진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GS그룹은 GS건설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석유화학 플랜트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해외 엔지니어링 기업 인수를 추진 중이다. 허창수 회장은 작년 말 정유공장 건설을 비롯한 플랜트 사업은 GS건설이 최고 경쟁력을 갖고 있다며 글로벌 M&A를 통해 선두자리를 확고히 하겠다고 밝히 바 있다.

M&A는 산업 포트폴리오를 수시로 조정하기 때문에 경쟁사간의 전선도 수시로 바뀐다. 따라서 기업 전략의 유연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됐다. 국내 기업들은 투자와 신사업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갖고 있지만 투자 실적은 부진한 편이다. 내부 성장 역시 저조해 최근 한국 기업의 설비투자 규모는 영업 이익보다 작은 실정이다. 특히 중국의 미국 기업 인수는 국내 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 기업은 저가 전략으로 시장에서 미국 기업을 축출한 뒤 이들 기업을 인수하면서 고부가가치를 높이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성장 전략 수단으로써 내부 성장과 더불어 M&A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시기다.

전문가 인터뷰

임석정 JP 모건 한국대표 & 박장호 씨티증권 대표

“ 이제는 해외로 눈을 돌려라 ”

국내 M&A 시장은 외국계 투자은행이 독차지하고 있다 . 2003 년 이후 국내에서 기업 M&A 자문 업무를 담당했던 투자은행 중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곳은 JP 모건 . 2 위는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이다 . 양사를 이끄는 임석정 JP 모건 한국 대표와 박장호 씨티글로벌마켓증권 대표는 M&A 업계에서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

2003 년 이후 국내 주요 M&A 딜 10 개 중 6 개는 임 대표의 손을 거쳤다 . 사상 최대 규모였던 LG 카드 매각뿐만 아니라 대우건설 , 제일은행 , 조흥은행 , 한미은행 , S-오일 매각도 그의 작품이다 .

박장호 대표는 지난해 두산그룹을 도와 미국 건설장비 업체 밥캣 인수와 유진그룹의 하이마트 인수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 또 대형 물건이었던 C&M 지분 매각과 외환은행 인수 자문을 맡았다 .

두 대표는 M&A 가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기업 경영의 패러다임으로 굳어지고 있다는 데 공감했다 . 특히 이제는 해외로 눈을 돌려 글로벌 M&A 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세계 금융시장의 경색이 한국 기업의 글로벌 M&A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는 얘기다 . ( 양사 대표와의 인터뷰는 따로 이뤄졌지만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한 곳에 묶었다 .)

최근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는 국내 M&A 의 트렌드를 짚어 준다면 .

임석정 대표 ( 이하 임 ) M&A 가 기업의 성장 전략으로서 역할을 확실히 하고 있다 . 국내 M&A 시장은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에 들어간 기업이 대상이었다 . 하지만 이제는 한계에 이른 사업을 2~3 단계 도약시키기 위해 M&A 를 추진하고 있다 . 내부 성장이냐 , M&A 냐 하는 것은 전략상 선택의 문제다 . 우열을 가리기 힘들지만 투자 대비 효율을 따진다면 M&A 가 더 낫다 .

박장호 대표 ( 이하 박 ) M&A 로 성장한 기업도 있지만 대부분의 한국 기업은 그린필드식 투자를 통해 성장해 왔다 . 하지만 최근 M&A 를 기업 성장의 도구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 기존 사업이 성숙 단계에 이르면서 그린필드식 투자로는 성장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 내부 성장을 통해 20~30 년 걸리는 것을 M&A 를 통하면 2~3 년으로 줄일 수 있다 .

M&A 에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기존의 핵심 역량과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는 분야를 택하는 게 좋다 . 기존 핵심 비즈니스를 확대할 수 있는 신기술이 있는 기업 , 새로운 시장 개척에 도움이 되는 기업 ,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기업을 인수하는 게 좋다 . 스스로 잘아는 핵심 비즈니스 위주로 M&A 를 해야 성공할 수 있다 .

특히 최고경영진의 신속하고 정확한 결단이 M&A 성공의 열쇠다 .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한통운을 인수할 때 박삼구 회장은 주요 회의에 모두 참석했다 . 그는 회의에 참석한 그룹 임원진과 자문사 , 파트너사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대부분의 결정을 그 자리에서 내렸다 .

의사결정의 신속성이다 . 두산의 밥캣 인수는 본 계약까지 두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 최고 경영진이 프로세스를 효율적으로 추진하면서 빠른 판단과 과감한 결단력을 보인 게 성공 요인이었다 . 최고경영진이 직접 나서 밥캣의 경영진을 만나 두산이 어떤 기업인지 , 왜 인수해야 하는지 설득한 것도 주효했다 .

글로벌 M&A 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 지금이 적기인가 .

아직 글로벌 M&A 는 걸음마 단계지만 한국의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관심도 커지고 있다 .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기업간의 M&A 가 주류를 이뤘다면 지금은 우리 기업이 외국 기업을 살 수 있는 여건이 무르익었다 .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면서 M&A 돈줄 이던 사모투자펀드들이 타격을 입자 매물로 나온 기업들의 가격 거품이 걷히고 있다 . 국내 알짜배기 기업들이 공격적인 투자를 하지 않은 탓에 내부 유보금이 많다 . 충분히 대형 물건을 살 수 있는 여력이 있다 .

어떤 기업이나 지역을 대상으로 글로벌 M&A 를 추진해야 하는가 .

지역에 따른 전략이 중요하다 . 미국 시장을 공략할지 , 유럽 시장을 대상으로 할지 먼저 결정해야 한다 . 신성장 사업을 추진한다면 대체에너지나 환경 분야의 기업을 물색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

성공적인 글로벌 M&A 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M&A 에 대한 준비는 아직 부족하다 . 각종 법률 , 경영 환경 , 지배구조 등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별도의 접근이 필요하다 . 따라서 현지의 경영 현황을 자문해주고 , 자금 조달에 유리한 현지 파트너를 두는 것이 중요하다 .

문화와 경영 기법에서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하다 . 핵심 인력이 나가버린다면 실패다 . 점령군이 돼서는 성공할 수 없다 . 동료나 파트너로서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 . 작은 M&A 부터 시작해 경험을 쌓아 더 큰 물건을 노리면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