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는 올리가르히라 불리는 신흥거부들이 크렘린 장벽처럼 군림하고 있다. 러시아에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억만장자들이 산다. 최근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의 최고 부자 1062명 가운데 러시아인이 87명이고, 이들 중 74명이 모스크바에 거주한다. 뉴욕에 거주하는 부자는 71명, 런던은 36명으로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부자보다 적다. 불과 2년 전인 2006년 <포브스>가 선정한 부자 명단에 든 러시아 인물이 33명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러시아 부유층의 급팽창 속도가 실감난다. 더욱이 그들의 평균 연령이 46세에 불과하다니 러시아에서는 가히 부의 이동과 세대교체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오일머니 유입으로 촉발된 경제 호황으로 러시아의 2007년 1인당 GDP는 8678달러, 구매력(PPP) 기준으로 1100만달러를 넘어섰다. 그렇지만 아직도 러시아 세납자의 10%가 2000루블 이하의 수입으로 궁핍한 생활을 한다. 러시아의 경제 현실에서 올리가르히의 세계는 러시아 왕정 시절 귀족의 부활을 떠올릴 정도로 별천지다.  한때 러시아 정신세계를 지배하던 레닌의 사회주의 이상향은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고, 그를 대신해 자본주의의 기회 균등이라는 마술이 모스크바의 겉모습을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다.

세계의 갑부를 만나려면 뉴욕이 아니라 모스크바로 가라

‘올리가르히(oligarch)’의 사전적 의미는 과두(寡頭)지배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이데올로기의 종말을 가져온 1991년 소련 해체와 러시아 연방 등장과 함께 시작된 국영기업의 사유화 과정에서 생긴 러시아 특유의 과두재벌을 일컫는다. 이들은 정치권력과 결탁해 국영기업의 민영화에 개입해 경영권을 확보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올리가르히는 실로비키(과거 KGB 출신들로 형성된 정치 엘리트들로 러시아 고위관료의 1/4를 차지함)와 함께 러시아를 움직이는 쌍두마차다.

<포브스>가 집계한 러시아 올리가르히들의 총 재산은 4710억4000만달러로 2007년 러시아 GDP의 24%에 해당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러시아의 대표적인 올리가르히 23명이 러시아 전체 취업자의 16%를 고용하고, 금융자산의 17%를 소유하고 있다. 아나톨리 추바이스 전 러시아 총리의 ‘올리가르히가 러시아 성장을 견인한 경제 엔진’이라는 말은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부의 독점은 병폐를 낳는 법. 올리가르히의 병폐가 부각되면서 러시아 사회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많아지고, 이러한 시대적 요구는 새로운 정치권력과 경제체제를 낳았다. 바로 푸틴과 러시아식 관리자본주의다. 푸틴은 2000년 3월 올리가르히 계급의 해체를 공약으로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 후 사유화된 기업을 다시 국유화하고, 자신의 측근들을 CEO 또는 이사회 의장으로 임명했다. 그 결과 국가 올리가르히와 민간 올리가르히가 공존하는 러시아식 자본주의가 나타났다. 국가 올리가르히의 대표적 인물이 이번에 러시아 대통령으로 당선된 메드베데프다. 그는 제1부총리로 재직하던 시절에 러시아 최대 국영 가스 회사인 가스프롬의 이사장직을 겸했다. 이고르 세친 대통령 행정실 부실장도 러시아 2위 석유회사 ‘로스네프트’의 회장직을 겸한다.

근래 두 사건으로 러시아의 올리가르히들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나는 <포브스>가 2003년 러시아 석유 회사 유코스의 회장인 호도르코프스키를 러시아 인물로는 처음으로 세계 40대 갑부로 선정하던 즈음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 때문이었다. 지난 2003년 총선을 앞두고 올리가르히의 수장(首長)격인 호도르코프스키가 야당에 정치자금을 지원하면서, 푸틴 대통령의 대항마로 거론되었다. 크렘린의 힘을 과소평가한 호도르코프스키는 결국 푸틴의 심기를 건드린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푸틴은 탈세 혐의 등으로 그를 구속했고, 유코스그룹은 결국 공중분해 되었다. 반면 크렘린의 지원을 받은 아브라모비치는 영국 축구팀 첼시를 인수하면서 국제무대에 혜성같이 등장했다.

프롤레타리아에서 올리가르히로

러시아 올리가르히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가 러시아 철강 기업 노볼리페츠크(NLMK)의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블라디미르 리신(Vladimir Lisin)이다. 그는 러시아 5대 거부이자, 세계 21위의 자산가다. 2003년 38억달러이던 재산은 2006년 107억달러로 늘어나 세계 41위에 올랐고, 2007년에는 143억달러로 세계 36위, 2008년에는 203억달러로 세계 21위로 뛰어 올랐다. 1년에 50억달러씩 재산이 늘어난 셈이다. 올해 그의 나이는 51세로 젊은 편이지만, 올리가르히들이 대부분 40대인것과 비교하면 연장자에 속한다.

리신은 프롤레타리아에서 출발해 입지전적인 성공 스토리를 보여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1956년 러시아의 이바노프에서 출생한 블라디미르 리신은 시베리아 금속공대(Siberian Metallurgical Institute)를 졸업하고 러시아경제아카데미(Russian Academy of Economics)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5년 석탄 광산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용접공으로 일하면서 대학교육을 받았다. 1985년부터 1991년까지 카자흐스탄의 카라칸다 제철소의 차석 엔지니어와 임원으로 재직하다 1992년에는 트랜스 월드에서 알루미늄과 철강 수출 담당 임원이 된다. 1992년과 1997년 사이에는 사반 알루미늄 공장의 이사회 성원으로 활동하면서 1997년 러시아 최대 철강사의 하나인 마그니토고르스크 이사회 성원이 되기도 했다. 그가 NLMK의 이사회 성원으로 경영진에 합류한 것은 1996년이다. 그 후 1998년부터 이사회 의장직을 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2년에는 세계적 니켈 업체인 노릴스크 니켈의 대주주인 블라디미르 포타닌의 NLMK 지분을 모두 인수하며 대주주로 등극해 독주체제를 열었다. 현재 그는 NLMK 지분의 77.1%를 보유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2005년에는 NLMK의 지분 7%를 런던 증시에 상장하여 기업을 공개 했고, 현재는 런던 증시의 상장 지분을 8.45%까지 높였다.

리신을 포함한 러시아 올리가르히들은 어떻게 부를 축적할까? 올리가르히들의 공통된 성공법칙은 국영기업의 민영화 과정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잡은 것이다. 그들은 체제전환기의 사유화라는 정치적 변화가 야기한 비즈니스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핵심은 국영기업의 민영화 지분을 인수해 대주주로 등극하는 것이다. 이들의 탁월한 M&A 기술은 두 산업에서 중점적으로 나타났다. 바로 러시아 경제를 지탱하는 원동력인 원자재 산업과 에너지 산업이다. 200억달러 이상의 자산을 가진 러시아의 5대 거부 중 3명이 금속 산업계 종사자들이다. 그들은 대체로 금속제품 중개상으로 시작하여, 관련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부를 쌓았다. 리신 역시 그중 하나다. 그 외에 지난 2월 러시아 경제지 <피난스>에서 러시아 1위 억만장자로 선정된 세계 최대 알루미늄 재벌 루살의 올레그 데리파스카(40). 1998년부터 체레포베츠 제철소에서 이코노미스트로 근무한 바 있고, 구 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이 제철소가 민영화되자 31세에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오른 알렉세이 모르다쇼프도 금속 업계 출신이다.

석유 ·가스 등 에너지 산업계에서 성공한 대표적 인물은 영국의 명문 축구팀 첼시 구단주가 되어 유명해진 로만 아브라모비치(41)다. 그는 러시아 정부의 에너지 산업 국유화 조치에 따라 대주주로 있던 석유 회사 시브네프트의 지분 76%를 국영 가스 회사 가즈프롬에 넘기면서 막대한 수익을 남겼다. 개인 투자회사인 밀하우스캐피탈의 최대 소유주인 아브라모비치는 석유 기업 유코스 전 회장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구속을 계기로 러시아 최고 갑부로 군림했으며, 2006년에는 러시아 철강그룹인 에브라즈의 최대주주로 변신하기도 했다. 자신의 석유 회사 TNK를 BP와 합병한 이후 지금은 통신 산업에 주력하는 미하일 프리드만도 에너지 산업계 출신이다.

인맥을 활용하여 민영화 기회를 잡아라

이들이 이처럼 국영기업의 민영화 과정에서 기회를 잡은 배경에는 정치권력과의 유대관계가 있었다. 올리가르히들은 1990년대 초부터 주식담보 대출 방식으로 국영 기업을 헐값에 불하 받으면서 급성장했다. 크렘린의 정부 관료들은 소규모 유전을 소유하고 있거나 철강 업계에 종사하는 사업가들에게 국영 석유 회사 또는 금속 회사들을 저가에 매수하도록 유도했고, 올리가르히는 정부 로비를 통해 각종 이권을 보장받았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정경유착 관계가 형성되었다.

리신도 정치적 유대관계를 적절히 활용한 경우다. 리신의 인생 전환점은 소련이 붕괴하면서 러시아가 출범하던 체제전환기였다. 리신의 직장 상사인 올레그 소스코베츠가 1991년에 러시아 금속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리신의 기회도 시작된다. 리신은 이 인물을 따라 모스크바로 옮겨 가면서 사업가로 변신할 수 있었다. 마치 푸틴과 상트 페체르부르크에서 인연을 맺은 메드베데프가 1999년 연방 총리가 된 푸틴을 따라 모스크바로 입성한 것과 비슷한 경로다.

본업의 경쟁력을 높여라

올리가르히들은 축적한 부를 어떻게 유지하고 늘려나가는가? 상당수의 올리가르히들은 축적한 재산을 활용하여 사업을 다각화함으로써 복합기업으로 변신하는 경우가 많다. <포브스>는 러시아 5대 재벌 중 데리파스카, 아브라모비치, 프리드만의 사업 영역을 다각화한 복합기업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리신과 모드라쇼프는 제조업 특히 철강업에 집중하고 있다. 경영학의 표현을 빌리자면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철강 제조에만 매달리는 것은 아니다. 수직계열화를 통해 철강 사업의 안정적 수익기반과 판매기반을 확보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을 실행하는 수단으로써 M&A가 주종을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 비즈니스 세계의 판도는 언제 어떻게 바뀔지 쉽사리 예측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리신의 철강 사업 수직계열화 전략은 후방 수직계열화, 즉 철광산과 유연탄 광산 인수에서 두드러졌다. NLMK의 광산 사업부는 러시아 3대 철광산에 해당하는 스토일렌스키 광산, 러시아 최대 규모의 코크스 생산업체인 알타이-코크스, 2009년부터 채굴에 들어가는 매장량 2억4000만 톤 규모의 유연탄 광산인 제르노브스코에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후방 수직계열화는 세계적인 원자재 가격의 급등을 등에

업고 리신을 세계적 거부로 재탄생시켰다. 원자재 가격이 오를수록 철강재 가격도 덩달아 오르게 되는데 자체 광산에서 원자재를 값싸게 조달하여 비싼 가격에 철강재를 판매할 수 있는 NLMK는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받게 되었다. 수익성 향상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질수록 자본시장에서 기업가치는 오른다. 이제 리신의 재산은 부가 부를 부르는 선순환 사이클에 들어섰다.

부자가 될 기회는 항상 있다

리신은 다른 올리가르히에 비해 비교적 조용한 생활을 즐긴다. 한 우물을 성실히, 그러나 다른 사람들보다 더 효율적으로 파내려 가는 성향으로, 실용적 마인드가 몸에 배어 있다.

그에게 돈은 무엇일까? 러시아의 대표 일간지인 <코메르산트>에 실린 리신 인터뷰 기사에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나에게 돈은 자유의 정도를 의미한다. 경제적 능력 없이는 충분한 자유를 얻기가 어렵다. 서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

그에게 자유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는 “나와 내 주변의 발전을 위한 비즈니스 기회를 선택하는 데 필요한 자유다. 큰 돈은 큰 가능성을 낳는다. 그러나 돈을 아무리 가지고 있더라도 태양, 공기, 하늘, 바다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고 말한다.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의 자유를 제공할 뿐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는 부자 되는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다른 사람들은 비결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 생각은 매우 단순하다. 열심히 일하면 결실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냥 열심히 잘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나아야 한다. 이것이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이 갖고 있는 규칙이다. 학력은 문제 되지 않는다. 노력이 결과를 미리 결정하기 때문이다. ”

러시아의 다른 올리가르히처럼 체제전환기에 큰 돈을 번 리신에게 현재 러시아는 여전히 기회의 땅일까? 그는 돈을 벌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를 주저없이 전한다.

“자본주의가 이미 정착된 안정적 사회인 서방에서도 새로운 부자들은 계속 생겨 난다. 러시아에서의 성공이 예전보다 더 어려워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

제철 공정에 관한 특허를 획득하고 금속학과 경제학에 걸친 다양한 연구논문을 발표한 학구파인 그는 국가경제아카데미(Academy of National Economy)의 교수이기도 하다. 리신은 다른 러시아 부자들이 선호하는 요트나 큰 집에는 별 관심이 없을 정도로 소박한 편이다. 그의 취미는 사격, 러시아 전통 조각품 수집, 독서, 여행 이다. 그중 그가 가장 즐기는 것은 사격으로 러시아 사격연맹 회장도 맡고 있다. 기자들과의 인터뷰 등 외부 인사들과 만날 때도 사격장이 있는 리스야 노라 스포츠센터를 선호한다. 그는 12세에 처음 작은 칼리버 총으로 학교에서 50m 사격을 했고, 점수도 좋아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그가 사격을 좋아는 이유는 나름대로 분명하다.

“사격은 머리를 맑게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 집중해야 하고 잡념을 없애 준다. ”

사격과 독서를 즐기는 검소한 생활

그가 수집하기를 즐기는 것은 카슬리주철상(Kasli cast iron figures)이다. 250년 전 우랄 산맥 지역의 카실 공장에서 장인들이 손으로 만든 표면이 미려한 철주조 조각품으로 목탄을 사용해 철을 녹이고 모래를 섞어 만든 것이다. 값비싼 고미술품이 아니니 호화로운 취미라 할 수 없다. 보석 등에도 별 관심이 없다. 그는 “비즈니스를 개발하고 생산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것이 내게는 쇼핑보다 더 관심 있는 주제다. 개인적 소비를 하는 데에는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고 단언한다.

리신은 때로 스스로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전 세계를 자유롭게 돌아다닌다고 말한다. 술은 좋은 와인과 코냑을 즐기며, 보로딘스키 검은 빵을 좋아한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돈이 음식 맛에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

리신은 재즈, 클래식. 바흐와 차이코프스키, 비틀즈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음악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가 처음으로 돈을 벌어 산 제품이 레코드플레이어와 비틀즈 음반라고 하니 젊은 시절에는 음악을 즐긴 듯하다. 레코드플레이어를 산 것은 그가 1975년 대학을 다니면서 바이칼-아무르 철도 공사현장에서 벌목 노동자로 일할 때였다. 제야 수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부지 조성 공사장에서 일하고 800루블을 벌었는데, 그 당시 자동차 가격이 4000~5000루블이었으니, 적다고 할 수 없는 돈 이었다. 그렇게 번 돈을 옷과 레코드플레이어를 구입하는 데 사용한 것이다.

늘 독서는 하지만, 최근에는 독서 취향이 바뀌어 전문서적 대신 영혼을 위한 책을 집어 드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프로페셔널리즘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리신의 이력을 보면 그가 철강 산업을 주무대로 착실히 성장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처음 철강업에 발을 딛게 된 것은 매우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내가 자란 서시베리아의 노보쿠즈네츠크는 금속 도시였다. 내가 직장을 찾을 때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금속공대(Metallurgy Institute)에 들어 가게 되었다. ”

‘별수없이’ 들어선 철강 업계이지만, 대규모철강기업의 회장이 된 지금그의생각은 예전처럼 단순하지 않다. 그가 제시하는 NLMK의 미션은 핵심 사업인 판재류 시장에서 고부가가치 제품 경쟁력을 높여 시장을 확대하고, 최고의 수익성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의 인생관에 나타난 것처럼 ‘남들보다 더 잘하기’가 그대로 반영되었다. 이러한 성향으로 인해 NLMK는 러시아 내의 경쟁 철강 기업인 세베르스탈과 에브라즈에 비해 덜 공격적이고, 좀더 내실 지향적이다. 이것이 리신의 경영 마인드다.

NLMK가 고부가가치 제품에 집중한다고는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제품별 매출 비중에서 보듯이 반제품인 슬래브 매출 비중이 37%에 달하는 반면, 전략 제품으로 생각하는 전기강판의 매출 비중은 7%에 그친다.

리신도 최근 세계 철강 산업에 부는 글로벌 통합화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글로벌화는 러시아 거부들이 선호하는 사업 확장 방식이기도 하다. 러시아 최대 부호 올레그 데리 파스카는 캐나다 자동차부품 업체 마그나의 지분을 15억4000만달러에 인수하고 궁극적으로 미국의 자동차 업체 크라이슬러 인수를 도모하고 있다. 리신은 2006년 덴마크 철강사를 인수한 데이어 지난해에는 연간 120만 톤의 압연 강재 생산 능력을 갖춘 미국의 위너스틸 (Winner Steel)의 지분 50%를 스위스 두페르코(Duferco)사와 합작하여 1억달러에 인수했다. 이는 NLMK의 첫 미국 사업이자, 본격적인 글로벌 제휴 사업의 시작을 의미한다. 러시아 5대 항만으로 연간 화물 처리량이 2천만 톤인 흑해의 투아프세(Tuapse)를 인수하는 등 철강 사업을 지원할 수 있는 물류 사업으로의 확장도 꾀하고 있다.

“프로페셔널리즘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

리신의 경영관을 한 마디로 표현한 말이다. 리신은 철강 사업과 연관성이 낮은 비관련 다각화를 원하지 않는다. 그는 “나는 삶의 원칙을 바꾸고 싶지 않다. 우리 시대는 더 많은 전문 지식을 필요로 한다. 일반 지식으로는 안 된다. 하나에 몰두하는 것이 확장보다 더 생산적이다. 물론 어떤 이에게는 반대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나는 모든 일을 잘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며 무분별한 다각화에 분명한 선을 긋는다. 모든 비즈니스는 충분한 이해와 전문적 접근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자금과 커넥션이 사업 목표를 달성하는 데 유용하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결실은 전문성을 보유할 때 얻어진다고 리신은 믿고 있다.

리신의 가족

리신은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흔히 올리가르히의 가족과 자녀들은 사치의 대명사처럼 치부되기도 한다. 리신의 자녀들은 크게 언론에 오르내린 적이 없다는 점에서 비교적 검소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의 자녀 교육관에는 그의 인생관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그는 “무엇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쓰레기를 줍든, 축구를 하든, 하이테크 산업에 종사하든 아니면 사람을 치료하든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 요즘 시대 젊은이들이 자신의 젊은 시절보다 더 많은 선택의 기회를 갖고 있으며, 결국은 얼마나 더 열심히 잘 하느냐가 인생의 성공을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노볼리페츠크 제철소

노볼리페츠크 제철소(NLMK)는 유로피언 러시아의 중심 지역에 해당하는 모스크바 남서쪽의 리페츠크 시에 위치해 있다.

EBITDA 마진율이 44%로 가장 수익성이 높은 철강사다. 종업원 3만7천명, 연간 조강생산능력 930만 톤으로 러시아 4위 규모이며, 최신예 제철소로서 판재류 분야에 강점을 지니고 있다.

냉연제품의 생산 능력은 러시아 최대이며, 특히 전기강판은 유럽 최대 규모로서 러시아 시장의 75%, 세계 시장의 9%를 점유한다.

자체 철광산에서 철광석을 100% 조달하여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2006년에는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에 있는 러시아 제2의 전기강판 업체인 VIZ-Stal과 덴마크의 댄스틸(DanSteel)을 인수한 바 있다. 내수용 판매는 29%에 불과하고 유럽 26%, 터키와 중동 18%, 아시아 16%, 북미 6% 등, 수출 비중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