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다

국내 M&A 업계의 강력한 포식자로 급부상하면서 유진이 이미 뛰어들었거나 준비 중인 M&A도 여러 개라는 소문이 재계 일각에서는조심스레 흘러나온다. 유 회장의 동생 유창수 서울증권 부회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증권사 외에도 보험사와 상호저축은행 등을 추가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고 서슴없이 밝혔다.
1986년 58억원에 불과했던 유진그룹의 매출은 2005년에는 8500억원,지난해 1조2900억원으로 급증했다. 전년 대비 58%의 매출 성장세를 기록했다. 설립 초기와 비교하면 200배 이상 성장한 셈이다. 2005년 8600억원이었던 자산은 지난해 3조2600억원으로 불었다. 불과 3~4년 사이에 4배 가까이 커졌다. 올해는 4조500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재계 일각에서 유진그룹의 연속적인 대규모 M&A에 걱정 어린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하이마트 인수 대금이 유진그룹의 자본 규모와 유동성에 비해 과다하다는 지적도 대두되고 있다. 유진기업, 기초소재, 고려시멘트 등 주력 계열사들의 이익률이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유진이 과감한 M&A에 나선 것은 레미콘 업계가 한계 상황에 이른 데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무리한 M&A로 인한 몸집 키우기는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
유진그룹은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기업이다. 하지만 1970~1980년대 군복무를 했다면 반가운 이름일 수 있다. 유진은 유 회장의 부친인 유재필 명예회장이 1969년 설립한 영양제과공업이 모태다. 주요 아이템은 건빵이었다. 영양제과는 군부대에 이를 납품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유 명예회장은 이를 기반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1979년 유진종합개발과 1984년 유진기업을 창립하며 레미콘 사업에 진출한 것. 유경선 회장이 경영에 뛰어든 것은 1985년부터다.
유 회장은 본사 역할을 하던 부천 레미콘 공장에서 여러 임직원들과 숙식을 함께 하면서 레미콘 사업을 일으켰다. 당시 유 회장은 임직원 회의를 새벽 6시에 했다고 한다. 6시는 미주와 유럽 그리고 아시아가 깨어있는 시각이다. 그는 보잘 것 없는 레미콘 공장에서 유진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 유진그룹 물류 부문 대표를 맡고 있는 최종성 전무는 “유 회장은 유진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주름잡을 규모는 되지 못하지만 항상 멀리 내다보는 세계화의 시각을 강조했다”고 그 당시를 기억했다.
유 회장은 이순, 이순산업 같은 또 다른 레미콘 회사를 세워 유진기업과 ‘경쟁’시켰다. 시장 우위를 차지한 레미콘 사업에 긴장감을 불어넣으려는 의도였다. 이러한 무한경쟁은 회사를 레미콘 업계 1위에 올리는 원동력이 됐다. 사내에서 개별적으로 성장한 이들 4개 회사는 2006년 하나로 합쳐졌다. 유진은 단일 레미콘 회사로는 세계 1위다. 레미콘 사업은 2006년까지 그룹 매출의 70%에 달했다.

유진은 2006년 대우건설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5년 8월 유 회장은 그룹 수뇌부를 서울시내 모처로 불러 “두산이 M&A를 통해 중공업으로 전환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레미콘 사업의 미래가 불투명한 만큼 대우건설을 인수해 유진을 종합 건설그룹으로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대우건설 인수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유 회장은 최근까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대우건설 인수 실패를 가장 아쉬워한다고 그룹 관계자는 전했다. 대우건설 인수 실패는 그에게 종합건설그룹으로 성장하겠다는 꿈을 좌절시켰지만 또 다른 길을 모색하게 한 계기가 됐다. 그는 종합건설그룹에서 방향을 틀어 금융·물류·유통 등 사업 분야에 뛰어들었다. 그는 대우건설 인수가 무산된 이후 서울증권, 로젠택배, 하이마트를 인수했다.
유진그룹이 하이마트를 1조9500억원에 인수하자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말이 또 다시 터져 나왔다. 지난해 매출이 7700억원에 불과했던 유진이 자신보다 덩치가 3배가량 큰 하이마트를 인수했기 때문이다.
유 회장이 이처럼 공격적으로 기업 인수에 나선 이유는 주력인 레미콘 사업의 수익성 저하를 극복하고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특히 서울증권인수는 유진그룹이 금융업으로 영역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유진그룹 관계자는 “그동안 레미콘 등 건설소재 부문이 회사의 성장을 이끌어왔지만, 이제는 한계에 도달했다”면서 “새 성장 동력을 만들기 위해 금융, 물류, 유통 사업 부문 진출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알짜배기로 키워서 팔아 M&A 자금 마련
유 회장의 M&A 행보를 두고 시중에서는 말이 많다. 누군가 뒤에서 밀어주지 않았으면 힘들었을 것이라는 소곤거림도 들린다. 하지만 유진그룹이나 유회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추측은 억측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동안의 M&A 종자돈은 드림씨티방송에서 나왔다. 미디어 분야는 한때 유진그룹이 주력 사업인 레미콘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발굴한 분야다. 콘크리트 및 건설 사업 부문과 방송미디어 사업 부문의 양대 축을 중심으로 사업을 펼쳐나가겠다는 것이 유 회장의 비전이었다.
유진은 1997년 부천·김포 일대에서 케이블TV(SO) 사업에 진출하면서 드림씨티방송·브로드밴드솔루션즈를 세우고, 700억원대 자금을 투입해 광통신망을 구축했다. 주위에서는 어려운 시기에 수백억원을 투자하는 유 회장을 미쳤다고 했다. 하지만 드림씨티방송은 아시아 최고 수익을 내는 케이블TV 회사로 성장했다.
회사 관계자는 “영업이익률이 30%대에 이르는 알짜배기였다”고 말했다. 유진은 2006년 이 회사를 CJ홈쇼핑에 넘기면서 3981억원을 챙겼다. 대우건설 인수를 위해 필요한 자금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 자금이 이후 M&A의 실탄 역할을 한 것이다. ‘키워서 팔고 다시 사는’ M&A 전략이 유 회장의 비전을 이루는 기반이 된 셈이다.
지금까지 유진의 M&A 행보는 비교적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직까지 인수한 기업의 직원들과 큰 갈등이 없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일반적으로 기업을 인수하게 되면 ‘점령군’과 ‘피인수자’ 간의 기세싸움이 벌어진다. 이러한 기세싸움은 종종 M&A 실패라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유진그룹은 이 같은 후유증을 겪지 않고 있다.
실제로 유진은 합병한 기업의 경영진을 대부분 유임시켰고, 종업원에 대한 구조조정도 거의 진행하지 않았다. 유진이 2004년 고려시멘트를 인수할 때도 유진의 고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유 회장은 고려시멘트 인수 후 기존 경영체제를 모두 인정했고, 2명의 본사 실무자만 파견해 의사소통창구 역할을 맡게 했다.
유진이 ‘유통 공룡’ 롯데와 1500억원이나 ‘웃돈’을 얹은 GS그룹을 제치고 하이마트를 인수할 수 있었던 것도 합병 후 통합 작업에 대한 계획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이마트 현 경영진의 안정적인 경영구도와 직원들의 고용 승계 보장이 성공요인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유진은 인수 후 하이마트 경영에 일절 참여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회사 관계자는 “유진이 인수한 기업들은 지금도 로고만 빼고는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런 결정에는 ‘같은 식구는 믿고 지원하라’는 유 회장의 경영철학이 작용한 결과다.
유진의 급성장에는 유 회장의 인재 경영도 한몫을 했다. 유 회장은 1등 기업이 되려면 무조건 업계 1등 인재를 영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회장은 “기업이 생존하려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업구조를 바꿔야 하고 이를 위해선 변화를 이끌어갈 인재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의 인재 경영론은 일명 ‘사금 경영론’으로 불린다. 중소기업 시절 유회장은 대기업에서 퇴직한 인재를 한명씩 찾아다니며 영입했다. 모래에서 조금씩 금을 모으듯 인재를 찾은 것이다. 그는 또한 “100억원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인재에게 100억원의 연봉을 주고 싶다”며 100억원짜리 인재론을 펼친다. 그만큼 인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다.
인재 확보에 직접 나서
이러한 인재 경영은 그가 레미콘 사업을 확장하던 1990년대 초부터 이어져 온 것이다. 타 업종에서는 레미콘 업계를 하나의 사업군으로 보지 않았던 시기였다. 시멘트 회사의 하청업자가 대부분이었고,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사업장이 허다했다.
유 회장은 레미콘 공장이 1~2개 있던 그때부터 업계 최초로 대졸신입사원 공채를 실시해 왔다. 직원들에 대한 교육과 연수도 시행했다. 업계에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유 회장은 그 때부터 지금까지 외부 우수 인재를 확보하는 데 직접 나설 정도로 적극적이다.
유 회장이 지난해 연거푸 M&A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우수 인재를확보한 덕분이다. 유 회장을 바로 옆에서 보좌하고 있는 김재식 부회장은 삼성물산과 삼성SDI를 거쳐 지난해 5월 유진에 합류했다. 동양시멘트에서 해외 프로젝트 업무 등을 담당하다 유진에 합류한 주영민 기획전략실장은 오랜 M&A 경험으로 기업인수전략의 밑그림을 짜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그룹기조실장과 드림씨티방송 대표 등을 역임했다. 현대증권 기업금융본부장 출신인 김종욱 재무관리실장 역시 손꼽히는 금융 전문가다. 그래서 실제 M&A 과정에서 유 회장의 역할은 크지 않았다고 한다. M&A 추진 이전에 신중하게 고민했지만 이후에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관련 직군끼리 1~3년마다 자리를 옮기는 전환배치도 유진의 독특한 인사 시스템이다. 낮은 직책일수록 주기가 짧고 직책이 높아지면 자신의 전문 분야를 선택해 위치가 고정된다. 언제 어떤 일을 맡더라도 전문가다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내부 인재 키우기에도 적극적이다. 유진은 지난 3월 연세대 상남경영원과 ‘유진 MBA’를 개설하고 차세대 리더 양성에 나섰다. 과장급 이상 상무급 이하 총 26명이 참가하는 ‘유진 MBA’는 작년에 계열 편입된 하이마트의 임직원 등을 포함, 전 계열사를 대상으로 고르게 선발됐다.
유 회장은 입학식에 참석해 “그룹 대표선수임을 잊지 말고, 그룹 성장의 중심에 서라”며 “지금까지 (그룹이) 성장해 온 것도 사람 덕분이며, 사람에 투자하고 키워내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룹 관계자는 “유 회장의 참석은 예정에 없던 것으로 지속적인 성장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인재 양성에 높은 관심을 나타낸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인재 경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일찍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해 유지하고 있다. 자신의 역할은 그룹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는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고 믿는다. 유 회장은 기업이 효율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시스템이 필요하며 이러한 시스템을 전문경영인 체제로 구축했다고 말한다.
유진의 다양한 사회공헌활동도 눈에 띈다. 장애아 및 저소득 맞벌이 계층을 위해 사회복지법인 유진소사복지재단을 설립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각 지역 계열사를 통해 각종 후원, 기부, 기금 전달 등에 후한 인심을 보여 주고 있다.
M&A 강자이기도 한 유 회장의 또 다른 별칭은 ‘철인 경영인’이다. 외환위기 때 트라이애슬론 중계방송을 우연히 보다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보고 싶어’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유진그룹도 여느 회사와 마찬가지로 매출 감소와 직원 사기 감소라는 이중고를 겪었다. 여기서 오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 트라이애슬론에 입문했다는 것이다.
철인 3종 경기 통해 불사조 정신 배워
트라이애슬론은 수영 1.5㎞, 사이클 40㎞, 마라톤 10㎞를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극기 스포츠다. 그는 지난 2002년부터 공식시합에도 출전했다. 그가 세운 기록은 2시간28분으로 웬만한 선수 못지않다. 그는 트라이애슬론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꼭 이길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하는 운동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철인경기를 통해 ‘하면 된다’는 불사조 정신을 배웠다고 한다. 유 회장은 현재 대한철인3종경기연맹 회장, 아시아트라이애슬론연맹 회장을 맡고 있다.
유진그룹은 설립 이후 지금까지 창립기념일 행사를 한 번도 개최하지 않았다. ‘아직 해야 할 일은 많고, 샴페인을 터뜨릴 때는 아니다’는 게 유 회장의 신념이다. 최근에서야 창립기념일로 삼을 만한 의미 있는 날을 찾기 위해 내부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유경선 회장은 건빵으로 시작해 하이마트까지 품안에 안으며 그룹 몸집 키우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의 M&A를 통한 공격 경영은 올해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984년 설립된 유진기업이 첫 창립기념식을 할 때는 언제일까. 첫 창립기념일이 바로 유 회장이 비로소 공격 경영을 멈추고, 자신의 비전을 마무리하는 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