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상황 파악보다 향후 예측이 더 중요”

과학적 마케팅을 하기 위해서는 현상을 조사하고 주(主)수요 계층을 파악하며 경쟁 상황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마케팅을 직감이 아닌 ‘과학’으로 만들어주는 대표 주자가 세계적인 마케팅 조사 전문 기업인 AC닐슨이다. 신은희 AC닐슨 코리아 대표는 “마케팅은 현(現) 상황을 파악해 미래까지 예측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과학적 마케팅의 비법을 풀어놨다.
세계적인 마케팅 조사 회사의 여성 CEO
신 대표는 지난해 AC닐슨 코리아의 첫 여성 CEO에 올랐다. AC닐슨 아시아·태평양지역으로 따져도 홍콩과 태국에 이어 세 번째 여성 CEO다. 회색 정장을 깔끔하게 입고 들어선 신 대표는 온화한 눈매에 서글서글한 표정을 지으며 웃어 보였다. 하지만 일단 말을 시작하니 숨 쉴 겨를조차 없이 설명이 시작됐다. 그의 추진력 때문에 붙은 ‘불도저’, ‘덤프트럭’이란 별명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신 대표는 “AC닐슨은 닐슨 컴퍼니(The Nielson Company)에 속한 세계 최대 마케팅 조사 전문 그룹이다. AC닐슨은 1923년 창립자인 아서 C 닐슨(Arthur C. Nielson, Sr.)의 이름을 따서 설립된 회사다. 지금은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글로벌 리더”라며 회사 소개를 했다. 지금은 마케팅 업무에 가장 기초가 되는 ‘시장 점유율(market share)’이란 개념도 창립자인 아서 C 닐슨이 처음 도입했다.
“마케팅은 사실 전쟁이잖아요. 우리 것을 더 팔기 위한 전쟁에서 우리의 위치가 어딘지, 경쟁사 대비 얼마나 잘하는지를 파악하는 도구가 AC닐슨에 의해 처음 도입됐습니다.”
최근에는 ‘전쟁 도구’들이 더욱 정교해졌다. AC닐슨은 전 세계에서 소매유통 조사, 소비자 조사, 관찰 조사와 같이 다양하고 정교한 모델을 통해 마케팅 조사 업무를 수행한다. AC닐슨의 한국 지사인 AC닐슨 코리아도 한국 내 최대 조사 기업이다. 1980년 설립된 한국 지사는 지금까지 삼성, LG, P&G 등 국내외 대기업들의 마케팅 조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 그렇다면 왜 국내외 기업들은 스스로 할 수도 있는 마케팅 조사를 AC닐슨에 맡기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변으로 신 대표는 “내부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하면 선입견이 작용할 여지가 있다”며 “그래서 소비자들은 제3자의 시각으로 객관적이고 믿을만한 데이터를 찾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AC닐슨의 목적은 고객사가 마케팅에서 최대한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며 “우리는 소비자가 어떤 것을 보고, 듣고, 읽어서 상품을 어떻게 구매하는지 현상을 파악한다. 또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기업들은 정보가 ‘없어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아서’ 고민한다. 믿을만한 정보를 찾아내는 것은 마케팅을 수행하기 위한 필수조건인 것이다. 신 대표는 “우리는 고객들이 우리 정보를 통해 ‘이게 답이다’라고 느낄 수 있도록 명쾌함(clarity)을 주는 게 목표다”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전국모의고사 성적표처럼
AC닐슨은 매달 한 번씩 ‘소매유통 조사’를 벌여 계약된 소비재 업체들에게 자료를 제공한다. 소매유통 조사는 대형할인마트에서 동네 구멍가게까지 전국 소매유통 과정에서 일어나는 판매와 진열 및 취급 상황을 정기적으로 파악하는 대규모 조사다. 이는 AC닐슨의 대표적인 마케팅 조사로 국내 기업들이 가장 신뢰하는 지표 자료중 하나다.
소매유통 조사는 품목별·브랜드별로는 물론이고 개별 제품 수준으로도 경쟁 상황을 분석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해당 제품의 성과를 모니터링(monitoring)하는데 효과적이다. 마치 학생들이 전국모의고사를 보고 자신의 성적을 확인해 보는 척도로 성적표를 보는 것과 같다.
AC닐슨은 소매유통 조사를 위해 필연적으로 여러 종류의 매장을 정기적 조사가 가능한 유통채널로 확보했다. 특히 대형마트로부터는 판매 자료를 받고 그 대가로 해당 대형마트의 강·약점을 분석해 줘 서로
윈-윈하는 전략을 쓴다. 이러한 소매유통 조사 자료는 한 나라에 1~2개 지표 자료만 있는 것이 보통이다. 기업들 입장에서 여러 가지 지표 자료가 있으면 오히려 상황 분석에 혼동을 겪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제품 판매 성적표만 보여준다고 해서 마케팅 조사 업체의 임무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신 대표는 “마케팅 조사에서는 현 상황을 파악하는 것보다 오히려 향후 예측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단순히 학생들에게 성적표를 주는 것으로 임무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적표를 분석해 앞으로 시험 출제 경향과 성적 상승 비법을 알려주는 ‘선생님’의 역할이 진짜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물론 마케팅 조사에는 ‘소매유통 조사’만 있는 게 아니다. 일반적으로 ‘마케팅 조사’나 ‘리서치’하면 떠올리는 ‘소비자 조사’도 여전히 중요한 조사 방법이다. 하지만 최근 소비자 조사 방법은 변하고 있다. 예전 소비자 조사는 개별면접이나 전화 조사 위주로 이뤄졌으나 최근에는 온라인 조사 비중이 늘고 있다. AC닐슨 코리아의 지난해 온라인 조사 비중은 2005년 대비 115% 성장했다. 온라인 조사가 불특정 소비자들이 건성으로 대답해 ‘신뢰성’이 낮다는 인식도 개선되고 있다. AC닐슨 코리아는 ‘조사에 성실히 응답하겠다’고 동의한 온라인 패널을 구축해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의 경우는 온라인 조사 비율이 60%에 가깝다”며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빠른 결과 도출이 가능한 온라인 조사가 더욱 늘어날 전망”이라고 전했다.
소비자 조사 중 미리 선정된 가구들로 이뤄진 패널을 통해 조사하는 방식도 있다. 소비자 패널을 구성하는 이유는 소비자의 기억에 의존하는 설문이 잘못될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다. 보통 일반적인 소비자 조사의 경우에는 “무엇을 얼마나 사셨습니까, 어디서 사셨습니까”라고 질문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물건을 산 후 시간이 지나면 무엇을 얼마나 샀는지 정확히 기억하기 어렵다. 그래서 AC닐슨은 2500여 가구를 패널로 선정해 집집마다 스캐너를 줬다. 그리고 쇼핑을 하고 나서 이 스캐너로 쇼핑 품목을 한 번씩 찍도록 한 것이다. 그러면 스캐너를 통해 조사된 정보로 그 가정이 구입한 제품 브랜드명과 수량을 실수 없이 조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 실시하는 소비자 조사 비중도 늘고 있는 추세다. 신 대표는 “한국 경제가 수출 의존적이므로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 식품·음료 회사들까지도 해외 조사를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학적 조사를 바탕으로 해외 진출을 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AC닐슨 코리아의 지난해 소비자 조사 전체 물량 중 48%가 해외 조사”라며 “앞으로 그 비중은 점차 커질 전망이다”라고 말했다.
사례를 통해 본 마케팅 조사 활용법
신 대표는 마케팅 조사를 실제 활용한 구체적 예로 ‘샴푸 시장’을 들었다. 소비재 마케팅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을 보이는 시장 중 하나가 바로 샴푸 시장이기 때문이다. 그는 “샴푸는 남녀노소 모두 쓰는 소비재이고, 미용과 머릿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시장이 커졌다. 그래서 모든 소비재 회사들이 대부분 샴푸를 생산해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AC닐슨은 샴푸 수요 조사도 특정 업체와 연간 계약을 맺고 매달 실시한다. 신 대표는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분기별로 분석해 소비 추세를 읽어내고 다음해 전략을 도출한다” 고 설명했다.
지난 몇 년간 마케팅 조사 자료에 따르면 샴푸 시장은 기존 경쟁 시장에 새로운 브랜드가 진입해 더욱 치열한 경쟁상태가 됐다. 일반 매장에서 파는 샴푸 브랜드 시장에 홈쇼핑을 통해 판매된 신규 브랜드가 진입에 성공했던 것이다. 이런 신규 브랜드의 성장 추세 및 기존 경쟁 제품의 시장 점유율 자료를 근거로 AC닐슨은 기존 샴푸 제품 브랜드에 ‘광고 선호도를 높이고 서브 브랜드 출시를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용기 디자인을 개선하라’는 구체적인 개선안을 제안 했다.
이어 신 대표는 홈쇼핑 시장을 마케팅 조사를 통한 시장분석의 예로 들었다. 1995년 국내 최초로 TV홈쇼핑 방송이 시작된 후 성장을 지속하던 홈쇼핑 시장은 최근에는 인터넷 쇼핑몰에 밀려 시장 성장이 거의 답보 상태였다. AC닐슨은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들과 인터뷰 형식의 ‘정성 조사(qualitative research)’를 실시하고 홈쇼핑의 장점과 단점을 도출해냈다. 또 홈쇼핑 경쟁사들 사이의 장단점도 조사해 분석했다.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AC닐슨은 ‘홈쇼핑의 특징을 살려 상품 구매 시 적립금이나 사은품과 같은 혜택을 제공하고, 쇼호스트가 쇼핑 친구가 될 수 있도록 표현력과 표현 양식에 개선이 있어야 한다’는 등의 개선안을 내놓을 수 있었다.
마케팅 조사 업체의 역할은 개선안을 내놓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고객의 만족도를 조사하고 수요를 예측하는 일도 동시에 한다. 신 대표는 “고객사들은 흔히 지금까지 이용했던 고객 만족도 설문지 자료를 계속 써달라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제대로 된 결과를 도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단순하게 보이는 고객 만족도 조사도 시기만 바꿔서 똑같은 문항을 물어서는 제대로 된 측정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고객들의 만족을 좌우하는 만족 요소 자체가 변하기 때문에 그에 맞는 설문과 방법으로 조사 문항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미다. 마케팅 조사 업체는 수요를 예측 하기도 한다. ‘베이시스(BASES)’라는 AC닐슨의 수요 예측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광고’나 ‘유통’에 예산을 얼마나 배분하느냐에 따라 판매량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 이러한 조사 도구들은 마케팅이란 ‘전 장(戰場)’에서 적을 알고 나를 알아 백전백승하게 만드는 도구가 된다.
전(全) 사원이 마케팅으로 무장하라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기업이 성공 하는 시대다. 하지만 기업이 생산해낸 제품이 환경에 따라 ‘적절히’ 변화했는지 여부도 확인이 필요하다. 이 확인 작업을 하는 장소로 다국적기업들은 한국을 선택하고 있다. 신 대표는 “다국적기업 관계자를 만나면 한국 소비자들이 새로운 변화를 인지하고 트렌드를 따라가는 데 탁월하다고 입을 모은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생리대의 아주 일부분만 바꿔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면 우리나라 소비자는 정확히 변화를 알아내거든요. 바뀐 제품은 이래서 좋다, 얼마나 좋다를 정확히 표현해요. 다국적기업들이 중국이나 베트남에 출시할 제품까지도 한국에서 먼저 출시해 반응을 알아봐요. 한국 소비자가 ‘좋다’고 말하면 다른 나라에서도 실패하지 않거든요.”
다국적기업이 한국에 관심을 기울이는 만큼 국내 기업들도 해외 조사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신 대표는 “한국 경제가 수출 의존적이므로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 식품·음료 회사들까지도 해외 조사를 많이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학적 조사를 바탕으로 해외 진출을 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휴대전화와 같이 한국이 세계 시장을 선도해 나가는 제품의 경우는 같은 유럽 내 국가들이라 해도 철저히 시장조사를 한 후 시장 진입에 나서고 있다. 그래서 각국별로 전략 휴대전화 모델이 달라지는 것이다. 신 대표는 “AC닐슨 코리아의 지난해 소비자 조사 전체 물량 중 48%가 해외 조사”라며 “앞으로 그 비중은 점차 커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세계적인 변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적응해야 기업 생존이 가능하게 됐다. 신 대표는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마케팅 정보는 마케팅 담당자만 알고 활용해서는 안 된다.
전(全) 사원이 마케팅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 구성원 모두가 시장 지향적으로 업무에 임해야 성공할수 있다는 조언이었다. 그는 “최신 정보를 입수하면 정보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마케팅 조사를 통한 과학적 마케팅은 단순히 시장조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정보를 분석하고 원인에서 결과 및 대안까지 아우르는 ‘전장(戰場)’의 필수 무기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