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연성 증폭된 생생한 현실감

 제작비 1억5000만달러 이상을 투입해 스크린으로 옮긴 미래 배경의 SF 액션 스릴러물 <나는 전설이다>의 원작자 리처드 매디슨은 SF 마니아들 사이에서 신과 같은 존재로 불린다. 동명 소설이 1954년에 출간됐음에도 세련된 언어와 창조적인 구성으로 현대적인 SF 장르를 개척했다는 호평을 받으며 전설로 추앙받고 있다. 

세 번째 리메이크 원작과 정반대 결말

 리처드 매디슨 원작의 영화화는 이미 세 번째다. 앞선 두 영화는 이탈리아에서 촬영되었던 빈센트 프라이스 주연의 1964년 작 <지상 최후의 남자>, 찰튼 해스톤이 주인공 네빌 역을 맡았던 1971년 작 <오메가 맨>이다. 하지만 성적표는 혹독했다. 두 편 모두 원작의 매력을 살리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은 것. 전설이 된 원작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 번째 리메이크 된 2007년 작 <나는 전설이다>는 다르다. 결론부터 말하면 영화가 그럴싸하게 만들어져 시간과 돈의 투자가 아깝지 않다.

 메가폰은 데뷔작 <콘스탄틴>으로 주목을 받은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이 잡았다. 이미 <콘스탄틴>에서 낯선 세계를 장대하고 긴박감 있게 끌어내 호평 받은 바 있는 그가 결말을 원작과는 정반대로 이끌어 영화는 단순히 공상 미래가 아닌 개연성이 증폭된 생생한 현실감을 가져다준다.

 <나는 전설이다>는 텔레비전 뉴스에 출연한 한 과학자가 암이 정복됐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카메라는 갑자기 ‘3년 후’란 자막과 함께 뉴욕 도심을 천천히 훑는다. 거대한 도시 뉴욕의 활기찬 모습은 없고, 황량하게 버려진 뉴욕이 비쳐진다. 을씨년스러운 도심에는 인적이 끊어졌음을 짐작하게 하는 잡초가 우거져있고, 사슴 떼가 도로를 활보한다.

 과학자 로버트 네빌(윌 스미스) 박사를 제외한 전 인류가 괴 바이러스에 감염돼 멸망했다. 주인공의 사랑하는 아내와 딸조차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살아남은 인간들은 햇볕을 싫어하고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 변종 흡혈귀로 변해버렸다. 네빌은 대낮에는 애견 샘과 거리를 누비며 점점 줄어드는 생필품을 구하고, 잠들어 있는 흡혈귀들을 없앤다. 하지만 어둠이 짙게 깔린 밤중에는 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다. 네빌이 ‘어둠의 수색자(Dark Seeker)’라고 이름 붙인 이른바 ‘좀비’들이 밤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혹여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이의 피를 맛볼 수 있을까 해서 필사적으로 ‘인간’의 자취를 좇는다. 어둠 속의 좀비들은 무척 조직적이고 악마같이 무서운 존재로 네빌을 집요하게 괴롭힌다.

 네빌은 전염병 치유를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어디선가 살아남아 숨 쉬고 있을지 모를 또 다른 생존자를 찾기 위해 절박한 심정으로 매일 낮, 라디오 방송을 송신한다. 특히 유일한 동료인 애견 샘을 찾아 변종이 있을지도 모르는 지하세계로 향하는 장면은 영화의 중반부를 각인시키는 하이라이트다. 할리우드 스타인 윌 스미스 역시 이를 최고의 장면으로 꼽았다.

 지구에 살아남은 것은 자신만이 아니라는 믿음을 지켜갈 수 없을 정도로 점점 지쳐가는 네빌. 그가 그토록 애타게 찾아다니는 생존자들은 이상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변종 인류’로 변해 버린 다른 존재일 뿐이다. 인류 최후의 생존자 대 변종 인류. 인류의 운명을 짊어진 네빌. 그는 면역체를 가진 자신의 피를 이용해 백신을 만들어낼 방법을 알아내야만 한다. 그는 이제, 인류 최후의 전쟁을 시작한다.

텅 빈 거대 도시, 홀로 남은 외로움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스케일이 큰 영화임에도 단순히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지 않았다는 것. 네빌의 목숨을 위협하는 변종 흡혈귀는 직접적이고 육체적인 그의 목숨을 위협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세상에 오로지 자신만 숨쉬고 있다는 지독한 외로움이다. 영화에서 윌 스미스는 숨을 들이 쉴 때마다 심장을 엄습하는 고독함과 공허한 두려움을 절절히 표현하고 있다.

 출시된 <나는 전설이다> DVD의 첫 번째 디스크에는 본편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구성된 ‘Animated Comics’가 수록되어 있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본편 영화와 전 세계적으로 번지는 변종 바이러스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영상, 생생한 촬영 현장과 제작스텝들을 통해 들어보는 영화 이야기 등 다양한 스페셜 피쳐가 수록돼 있다. 두 디스크에 모두 본편 영화가 수록된 이유는 엔딩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첫 번째 디스크에는 일반에게 공개된 극장판 엔딩이 실려있으며, 두 번째 디스크는 극장 개봉 버전과는 또 다른 Alternate 버전의 엔딩을 담고 있다.

<나는 전설이다>

감독 프란시스 로렌스

주연 윌 스미스, 알리스 브라가,

찰리 타핸, 샐리 리처드슨

장르 SF, 공포, 스릴러, 액션

출시 2008년 4월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