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개발도 하나의 벤처”(?)

“비트컴퓨터의 자금을 이용해 수익 목적으로 투자했습니다.”
조현정 회장은 왕십리민자역사 참여 이유에 대해 이렇게 답변했다. 비트컴퓨터가 2007년 증권거래소에 신고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계열사 비트플렉스의 업종이 민자역사 운영 및 창업보육으로 되어 있다.
비트컴퓨터는 1999년 12월 지지부진하던 왕십리민자역사 개발권을 인수했다. 34억원을 투자하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당시 비트컴퓨터는 여론의 질책을 받았다. 본래 사업 목적과 무관하게 벤처기업이 그토록 비판했던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을 답습한다는 것이었다.
기업이 새로운 수익원 창출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부동산 투자는 벤처기업과 너무 동떨어진 분야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의료정보솔루션 기업인 비트컴퓨터와 왕십리민자역사는 도무지 연결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조 회장은 “부동산 개발도 하나의 벤처”라고 반박했다.
국어사전에 나오는 벤처기업의 뜻풀이는 다음과 같다.
‘고도의 전문지식과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창조적·모험적 경영을 전개하는 중소기업. 컴퓨터의 소프트웨어 부문, 생물공학 부문에 많다.’
떠들썩했던 기대효과 종국엔 부동산 임대수익만
비트컴퓨터가 4년 전, 왕십리민자역사 착공과 함께 공시한 기대효과 여섯 가지는 부동산 개발에 손을 대지만 벤처기업 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조 회장은 1999년 12월 작성한 기대효과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라고 했다. 당시 명시한 기대효과는 다음과 같다.
“△비트컴퓨터(26.45%), 비트컨소시엄(23.49%)으로 비트플렉스 최대주주 △완공 시 당사는 자산규모 1600억원 이상의 회사를 자회사로 두게 됨 △매년 안정적인 배당수익 창출, 투자유가증권의 미래가치 대폭 향상 기대 △비트플렉스 내 각종 정보통신 시스템의 공급과 운영 △강북 지역 공간 확보를 이용한 교육 사업 확대 △향후 벤처인큐베이팅 사업 전개를 위한 인프라 확보로 연구개발 아웃소싱 및 사업 다각화 기대.”
하지만 부분 개장을 앞둔 2008년 5월 현재, 조 회장의 트레이드마크인 벤처정신은 엿보기 어렵다. 비트컴퓨터가 공시했던 기대효과 가운데 자산가치의 대폭 증가와 부동산 임대수익만 남아 있다. 벤처정신에 입각한 기대효과가 없어진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당초 비트컴퓨터와 직접적으로 연결될 기대효과가 떠들썩했지만 끝내 남은 것은 매년 배당수익밖에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왕십리민자역사의 최대주주인 비트컴퓨터의 역할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아무 것도 없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왕십리민자역사 시행사 비트플렉스 대표인 조준래씨는 자신을 비트컴퓨터 2대 주주라고 소개하며 왕십리민자역사가 개장되면 자산가치가 2조원 규모가 된다고 어깨를 으쓱했다. 비트컴퓨터 1대 주주는 조 회장이다. 조 대표와 조 회장은 동향(경남 함안)이다. 조 대표는 “비트컴퓨터는 향후 왕십리민자역사를 통해 1년에 최소 30억원을 가지고 갈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조 회장도 부동산 임대수익만 남는다는 지적에 고개를 끄덕였다. 비트컴퓨터의 노하우 투입이 예상된 비트플렉스 내 각종 정보통신 시스템의 공급과 운영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이와 관련 조 회장은 “돈(전체 2억원 규모)이 되지 않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벤처인큐베이팅 사업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시엔 전 세계적으로 벤처 붐이 일어 뜨는 아이템이었지만 2년이 지나서는 아닌 것으로 일단락 났죠. 그때는 그 아이디어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매년 발생을 기대하는 30억원 전액을 R&D로 쓸 계획이기 때문에 단순히 부동산 투자만은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의도(기대효과)는 맞습니다. 하지만 애초 수백억원이 들어갔으면 안 했을 겁니다. 초기에 34억원, 조금 넣었습니다. 그때는 감당할 수 있는 범위였죠. 그러나 착공은 계속 지연되고 의료정보 시장이 좋지 않아 회사는 적자에 시달렸습니다. 건축비를 댔지만 공간 확보를 위해선 대납을 해야 하는데 자산이 소갈이 되고 총 공사비는 1300억원, 1600억원, 2100억원으로 갈수록 늘어났죠. 우리가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생각을 바꾸었죠. 배당 받아 수입을 챙기는 것으로 했습니다.”
봉이 김선달 선견지명 못지않은 탁월한 베팅
때문에 기대효과를 접었다는 것이다. 2004년 4월 공사 착공 즈음에 공시에 올라온 기대효과 문구에 대해 조 회장은 시니컬한 말투였다.
“오래 전(1999년 12월)에 작성된 문구를 카피한 것을 가지고…”라며 10년 전 자료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렇다면 왜 2004년 4월에 똑같은 내용이 올라갔을까. 그는 “아마 그때까지는 기대효과가 바뀌지 않았을 수 있다”고 했다.
왕십리민자역사에 대해 조 회장은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의 선견지명 못지않은 탁월한 선택을 했다는 자부심이 역력했다. 초기에 베팅을 잘해 적은 돈(34억원)을 들여 큰 재산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비트컴퓨터를 부자로 만들었다”는 그는 “CEO이자 오너로 큰일을 했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본업을 벗어난 외도라는 지적에선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게 왜 외도입니까. 전적으로 거기에 몰입해 있던 것도 아니고, 우리(비트컴퓨터) 사업부 일부를 해체시키고 그것을 총괄한 것도 아니에요. 비트플렉스의 대주주로서 이익 나면 가지고 오면 됩니다.”

그는 다시 한번 “왕십리민자역사를 통해 얻게 될 1년 배당수익은 비트컴퓨터의 R&D로 사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왕십리민자역사가 결과적으로 부동산 임대수익만 얻는 모양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얘기다.
한편 대선이든, 총선이든 선거에서 이긴 승자치고 모든 공약(公約)을 지키는 후보는 없다. 대부분이 공약(公約)에 그치기 십상이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며 막상 해보려니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말하면 넘어가는 식이다. 표심을 사로잡은 공약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크게 문제되지 않는 것이 현 풍토이기도 하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기억하고 있다. ‘공약(公約)이 공약(公約)으로 그쳤군.’
비트컴퓨터는 1983년, 소프트웨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 소프트웨어 전문기업 1호로 설립된 회사다. 의료정보화 사업으로 두각을 나타내며 벤처 붐이 일던 때는 스타 기업으로 우뚝 서며 유명세와 위상이 상당했다.
tip
왕십리민자역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4개 노선(국철, 2호선, 5호선, 분당선 건설 중)이 교차하는 교통 요충지다. 2004년 4월 첫 삽을 뜬 왕십리민자역사는 지하 3층, 지상 8층, 연면적 8만6612㎡에서 세 차례 설계변경을 통해 지하 3층, 지하 17층, 연면적 9만8956㎡ 규모로 커졌다. 특히 골프연습장이 두 배 가까이 길어졌다. 비트플렉스 홈페이지에 따르면 비거리 150야드(약240m 체감)로 시중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상당한 길이다. 6월말 골프연습장 등을 제외하고 부분 개장을 한다는 것이 시행사 비트플렉스 측의 설명이다. 2004년 4월 착공한 왕십리 민자역사는 유명 벤처기업 비트컴퓨터의 투자로 큰 관심을 모았다. 비트플렉스의 모기업이 조현정 회장의 비트컴퓨터인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