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료값이 24%나 오른 지 5개월 만에 또 다시 60%나 올랐다. 농협은 비료 원재료값이 곡물 가격 폭등과 유류 가격 상승으로 지난해보다 100% 이상 인상됨에 따라 화학비료값을 6월19일부터 약 60% 인상했다.
5월초부터 주요 비료 업체들은 원자재가 폭등으로 비료 납품을 일부 중단하면서 비료값 70~90% 인상을 요구했으나 농협은 비료 성수기 종료(6월10일) 전에는 인상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로 인해 일부 지역은 비료 부족 현상이 발생했다. 농협 관계자는 “비료 성수기에 농민 부담 경감을 위해 가격 인상을 보류해 왔으나 일부 지역에서 수급 차질에 따른 농민들의 불만이 팽배함에 따라 비료값을 인상했다”고 설명했다.
비료값 인상에 따라 농민들의 부담은 대폭 증가했지만 정부가 내놓은 지원책은 한시적인 미봉책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추가 부담액의 약 30%를 추경예산으로 편성해 긴급 지원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국내 화학비료 생산량은 2007년 총 338만9000톤. 이중 162만1000톤을 국내에서 사용한다. 162만1000톤 중 130톤6000톤은 수도작용으로, 31만5000톤은 원예용으로 공급된다. 11개 업체가 비료를 생산하며, 남해화학·동부하이텍·풍농·KG케미칼 등 4개 업체가 국내 소요량의 81%를 공급하고 있다. 화학비료는 농협중앙회에서 전체 소요량을 일괄 구매해 지역농협을 통해 농가에 공급한다.
원재료값 폭등이 인상 요인
비료값 인상은 화학비료의 국제 원재료값 폭등 때문이다. 화학비료 원재료값이 수요 증가로 인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비료의 원재료는 요소, 암모니아, 인광석, 염화가리, DAP(인이안), 유황 등이다. 이들 원재료는 중국, 모로코, 중동 등에서 대부분 수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수입 원료가 비료 생산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63%나 된다. 국제 원재료값 인상이 국내 화학비료 원가 상승에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에다 최근 상승한 환율도 원재료 수입 가격 상승에 한몫을 하고 있다. 또 최근 발생한 중국 쓰촨성 지진으로 인해 중국 3대 비료공장 중 2곳과 인광석 광산이 큰 피해를 입어 비료 원료 구입 전망은 더욱 어려워지게 됐다.

또 염화가리는 235달러에서 740달러로, 인광석은 90달러에서 220달러로 급등했다. 특히 유황은 70달러이던 1년 전보다 885%나 폭등한 90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실제로 남해화학의 DAP 복합비료 수출 가격은 2007년 5월 1톤당 350달러에서 2008년 5월 1380달러로 294% 상승했다.
복합비료값은 1997년 1포 5800원에서 1만2950원으로 2배 이상 올랐다. 비료값은 1997년 IMF의 영향으로 1998년 큰 폭으로 올랐으나 1999~2003년 5년 동안은 정부 보조에 힘입어 동결됐다. 이후 2004년 정부 보조가 절반으로 줄면서 13.3%가 인상됐고, 2005년에는 보조가 완전히 폐지되면서 17.7%가 인상됐다. 이 후부터는 원재료값 상승으로 2006년 9.8%, 2007년 6.5%가 각각 인상됐다.
그러나 최근 국제 원자재 시장이 흔들리면서 24% 인상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아 60%나 비료값이 급등한 것이다. 농산물 가격은 오르지 않는데 비료값만 올라, 농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인상률은 이보다 훨씬 더하다. 복합비료값은 향후 4~5만원 선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점에서 ‘금비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는 불안감도 팽배해지고 있다.

특히 전 세계적인 비료 부족 사태로 인해 가격 상승 압박은 갈수록 심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비료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원유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바이오연료를 생산하기 위해 옥수수·사탕수수 등 농장이 크게 늘었고, 이로 인해 화학비료 사용량도 급증했다. 또 중국·인도 등 거대 인구를 보유한 개발도상국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하면서 육류 소비가 증가하자 사료용 곡물이 부족, 국제 곡물값이 급등한 것도 이후 재배 면적 증가와 그에 따른 비료 수요 증가로 이어졌다.
비료 부족 사태는 전 세계적이다. 미국에서는 비료값이 전년에 비해 무려 세 배나 뛴 데 이어 빠듯한 수급 사정으로 인해 판매마저 제한하고 있다. 중국은 자국 내 비료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지난 4월 대부분의 비료 원자재에 100~135%의 특별 수출관세를 부과하면서 수출을 통제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비료에 대한 정부 보조금이 급증하면서 비료값 인상이 정치 문제로까지 비화하고 있다.
그동안 전 세계적으로 곡물 재배면적은 확대됐으나, 비료를 사양사업으로 보고 비료공장을 많이 폐쇄한 것도 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이 때문에 국제 비료 공급은 더욱 위축돼 화학비료를 둘러싼 국제 상황은 악화일로다. 이러한 비료 부족 현상은 세계적으로 착공중인 50여개의 비료공장이 완성되는 3~4년 후까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농가들은 자재비는 느는데 수입은 줄어드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쌀 수매값은 2004년 정점을 그린 후 3년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농협중앙회 자료에 따르면 농업경영비 중 비료비 비중은 5.8%이며 쌀 생산비 중 비료대 구성비는 4.7%다. 쌀 80kg(2등품)으로 살 수 있는 요소가 1996년 37포였으나, 2007년 15포, 현재는 12포로 양비 교환율이 크게 악화됐다.
농민들의 부담이 가중되자 정부와 농협은 부담 완화를 위해 하반기 물량에 대해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와 농협은 추가예산을 편성해 올해 말까지 비료값 인상 이후 하반기 판매 물량에 대한 인상 차액의 70%-농협 30 및 비료 업체 10%, 정부 30%-를 지원해 농가 부담을 경감키로 한 것. 오병석 농림수산식품부 친환경농업팀 과장은 “농가는 비료값 인상률 60% 중 18%만 부담하게 돼 실제 부담액은 대폭 줄어든다”고 말했다.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토지 개량을 통한 화학비료 사용 절감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퇴비 등 유기질 비료 사용을 유도해 농가의 부담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비료값이 안정돼 우리나라 비료 사용량이 OECD 국가 중 5위로 높고, 표준 시비량보다 30% 과다 시비하고 있어 토양 검정에 의한 적정 시비로 사용량을 30% 감축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정부 측 설명이다.

가격차손보전제 부활해야
오병석 과장은 “농민들도 퇴비에 대한 보조가 크게 증가한 만큼 퇴비와 화학비료를 병행시비하는 방법으로 시비를 개선하고, 화학비료 사용량을 줄려 비료값을 절감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농민들은 비료값 인상에 대한 정부의 대책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시적인 대책인데다 이미 오를 대로 올라 버린 비료값을 농민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차기 때문이다. 비료값 인상으로 인해 농민들이 올 하반기에만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 1005억원에 이른다. 내년에는 4000~5000억원을 농가에서 부담해야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전남 나주에서 대규모 벼농사를 하고 있는 임모씨(65)는 “유기질비료와 화학비료를 함께 사용하지만 유기질비료가 화학비료를 대체할 수 없다”면서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모내기 이후 논에 유기질비료를 사용하는 것은 제한적이어서 화학비료 사용이 불가피하다”며 “올해도 문제지만 정부 지원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내년에는 어떻게 농사를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따라 정부가 2005년 폐지한 화학비료 보조금(가격차손보전제)을 재도입하는 등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농업 생산기반이 더 이상 어려워지면 농사를 포기하는 농민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모든 작물에 필수자재인 화학비료에 대해서는 정부가 재정지원을 해 농업기반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격차손보전제는 정부에서 정한 화학비료값을 초과해 발생하는 부담에 대해 정부가 이를 전액 보조하는 제도다. 정부는 이 제도를 1962~1987년, 1991~2005년 6월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했으며, 토양환경 보존과 친환경농업기반 구축을 위해 2005년 7월 가격차손보전제를 폐지했다. 오병석 과장은 “화학비료 사용을 계속 줄이려는 것이 정부의 의지”라며 가격차손보전제 부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한 농민단체 관계자는 “비료값이 금값이 되면서 농심 (#農心)이 타들고 있다”며 “외국과 달리 국내는 농산물 가격은 안 오르고 비료 가격만 오르는 점과 비료 부족으로 인한 일시적 가격 폭등 시장 상황임을 감안해 가격차손보전제를 부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