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2일 열린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두 가지 점에서 이채로웠다. 하나는 사상 최초로 러시아에서 결승전이 열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첼시 축구구단이 창단 이래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랐다는 것이다. 유럽 축구의 중심지가 아닌 모스크바에서 첼시가 결승전을 치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첼시의 구단주가 러시의 갑부 로만 아브라모비치라는 생각을 하면 그리 어려운 질문이 아닐 수 있다. 아브라모비치가 유럽 축구계의 거물 에이전트인 자하비의 소개로 자금난에 허덕이던 첼시를 인수한 때는 2003년이었다. 인수 금액은 1억5000만파운드였다. 그의 측근에 따르면 첼시 인수는 즉흥적인 결정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광적인 축구 팬으로서 이미 러시아 축구클럽의 스폰서로 활동하고 있었고, 첼시를 비롯해 상당수 유럽 축구 클럽의 인수 가치를 저울질해왔다고 한다. 그런 고민 끝에 첼시가 인수 대상이 됐다는 것이다.

Roman Abramovich

프리미어리그 축구를 뒤흔든 거부

아브라모비치는 첼시를 우수한 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으며, 실제로 아브라모비치가 첼시를 인수한 후 16개월 동안 쓴 돈은 4억파운드(8000억원)를 넘는다. 영국의 축구 월간지 <월드사커>는 축구 사상 이런 돈 잔치는 없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막대한 물량 공세는 구단의 성적 향상으로 이어졌다. 첼시는 2004~2005, 2005~2006시즌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제치고 프리미어리그 2연속 우승을 거머쥐었다. 첼시의 리그 우승은 50년 만에 있는 일이다. 빈사상태에 빠진 잉글랜드와 유럽 축구 이적 시장이 살아난 것도 아브라모비치 덕분이라는 데 상당수가 공감하고 있다. 아브라모비치는 부르주아의 물질적 실리와 보헤미안의 정신적 풍요를 동시에 추구하는 새로운 상류계급을 뜻하는 보보스(Bobos)의 한 유형을 연상시킨다. 물론 보보스라는 신조어를 만든 미국의 저널리스트 브룩스(David Brooks)가 보보스의 특징 중 하나로 꼽은 “돈이 많더라도 낭비하지 않는다”에 그가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터다.  

 

세계 15위 갑부, 아브라모비치

아브라모비치는 235억달러 재산가로 <포브스>가 선정하는 세계의 갑부 순위에서 15위에 올라 있다. 2005~2007년 3년 연속 러시아 최고 갑부의 자리도 지켰다. 영국의  갑부 1000명을 선정하는 <선데이타임즈>의 ‘부자 리스트(Rich List) 2008’에서는 아르셀로 미탈의 대주주인 락시미 미탈에 이어 2위에 올랐다. 3위인 웨스트민스터 공작 가문보다는 1.7배 재산이 많다. 

아브라모비치는 1966년 10월 러시아 볼가 강 중류 연안의 사라토프 지역의 아주 가난한 유태계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지 18개월 되던 해에 그의 어머니는 둘째를 키울 능력이 없어 무면허 의사에게 낙태수술을 받다가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아버지마저 그가 네 살 되던 해에 건설현장에서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이후 삼촌과 코미공화국에 있는 외할아버지 집에서 자란 그는 1990년에 첫째 부인과 이혼하고, 1991년에 러시아 국영 항공사 아에로플로트의 여승무원이었던 이라나와 결혼해 자녀 다섯을 두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테니스 선수인 마라트 사핀프닌의 전 애인이었으며, 런던에 거주하는 러시아 올리가르히의 딸이기도 한 26세의 미녀 모델인 다리야 쥬코바(Daria Zhukova)와 사귀면서 부부관계가 틀어져 2007년 3월 3억달러의 위자료를 지불하고 또 다시 이혼했다.

아브라모비치의 세 가지 성공 공식

불운한 유년기를 거쳐 플라스틱으로 만든 오리 판매로 사업을 시작한 그가 어떻게 러시아 최대 갑부로 등극할 수 있었을까? 세 가지 요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파워 네트워크 활용하기.

구소련의 붕괴에 뒤이어 찾아온 비즈니스 기회의 특징은 권력에 가까울수록 부자가 될 기회가 많다는 점이다. 아브라모비치 인생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 1992년을 보자. 그 이전까지 서시베리아의 옴스크에 있는 석유 정제소에서 관련 제품 중개업을 하던 그는 당시 러시아의 거물이자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의 이너서클에 속해 있던 베레조프스키와 손을 잡았다. 그와 공동으로 국영 석유회사 시브네프트(Sibneft)를 인수하고, 권력의 핵심에도 발을 들여 놓았다. 그로부터 9년 후 러시아의 새로운 대통령 푸틴이 올리가르히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평소 푸틴의 반대세력이면서도 동시에 올리가르히의 리더 격인 베레조프스키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결국 베레조프스키는 영국으로 추방되었고, 소유하고 있던 시브네프트와 TV 회사인 ORT 지분 등을 아브라모비치에게 헐값에 처분해야 했다. 최근 베레조프스키는 당시 지분 매각이 강압에 의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며 아브라모비치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하고 있다.

어찌되었든 아브라모비치의 권력 유대관계는 옐친에서 푸틴으로 이어졌다. 푸틴 전 대통령의 전기를 쓴 크리스 허친스는 ‘푸틴과 아브라모비치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 같은 사이’라 말한다. 아브라모비치가 푸틴과 정치적 연결고리를 맺는 데는 미국 알래스카와 머리를 맞대고 있는 러시아 극동의 추코트카 지방이 중요한 매개 역할을 했다.

추코트카 주의 면적은 프랑스보다 넓지만 인구는 8만 명이 채 못 되는 러시아에서 가장 낙후된 변방 중 하나다. 아브라모비치는 1999년 주지사 선거에 출마해 90% 이상의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된 바 있다. 주지사 선거제도가 폐지된 2005년에도 푸틴의 지지를 받아 재임명되었다. 푸틴은 러시아 변방의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아브라모비치로부터 끌어 오고자 했다. 아브라모비치는 추코트카 개발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대기가 부담스러워 주지사 재선임을 내심 원치 않았으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실제로 그가 추코트카 주지사로 재직하는 동안 13억달러가 넘는 돈이 호텔, 극장, 인프라, 대학 등 지역경제개발에 투자되었다. 물론 투자 자금은 그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하지만 아브라모비치는 추코트카 주지사가 제공하는 비즈니스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가 설립한 투자지주회사인 밀하우스 캐피탈(Millhouse Capital)을 통해 그는 추코트카를 비롯해 하바로프스크 등 극동 3개 지역에 금광을 소유한 영국의 광산 회사인 하이랜드 골드(Highland Gold)의 지분 40%를 확보하는 발 빠른 비즈니스 감각을 보여 주었다.

둘째, 자유로운 사고로 경계를 뛰어넘어 변화하기.

아브라모비치는 2005년 시브네프트의 지분 73%를 국영 에너지 회사 가스프롬에 130억달러라는 거액을 받고 매각한다. 대신에 그 이듬해인 2006년에는 밀하우스 캐피탈을 통해 러시아 최대 철강 기업인 에브라즈그룹의 대주주로 등극한다. 그는 석유 사업에서 시작해 산업의 경계를 초월한 빠른 변신을 통해 부를 불려 나갔다.

변화의 시점을 읽는 영민함도 주목할 만하다. 아브라모비치는 러시아 최대 알루미늄 회사인 루살의 지분 25%를 갖고 있었고, 그의 비즈니스 동료인 베레조프스키는 12.5%를 갖고 있었다. 2003년 아브라모비치는 갑자기 대주주인 데리파스카에게 자신의 지분 전부를 17억5000만달러에 매각했다. 이후 루살의 주가는 계속 하락했고, 베레조프스키는 이듬해인 2004년에 2억3000만달러에 자신이 보유한 지분을 처분했다. 주당 매각 단가로 치면 아브라모비치가 베레조프스키보다 약 3.9배 높은 프리미엄을 받은 셈이다. 하나 아이러니한 것은 올해 러시아 최고의 갑부는 아브라모비치가 아니라 그로부터 루살 지분을 인수해 확고한 대주주가 된 데리파스카라는 점이다. 부자의 세계에서도 돈은 돌고 도는 모양이다. 아브라모비치의 M&A 과정과 특징을 종합해 보면 그의 관심은 돈이지, 비즈니스 그 자체는 아니다. 다시 말해 그는 인수한 기업의 경영에 직접 참여해 경영 개선이나 사업 확장을 추구하는 전략적 투자가가 아니다. 단지 기업 인수를 통해 지분의 프리미엄을 높여 재산을 불려나가는 데 관심을 두는 재무적 투자가에 가깝다.

셋째, 2등을 용납하지 않는 고집스런 1등주의.

두 번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비롯해 3년 동안 여섯 번 우승과 홈경기 무패 기록을 달성한 첼시의 무리뉴 감독은 2007~2008 시즌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우승컵을 내준 뒤 가차 없이 해고됐다. 무리뉴에 이어 등용된 그랜트 감독은 사상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해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첼시 감독에 부임한 지 1년을 못 채우고 지난 5월 경질됐다. 아브라모비치의 1등주의 욕구와 준우승은 결코 공존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브라모비치의 우월적 과시욕은 개인적 취미와 결부되어 축구를 통해 표출되는 듯하다. 지난 6월12일 아브라모비치는 현재 포르투갈 대표팀을 이끄는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를 새로운 감독으로 영입했다. 7월1일부터 첼시 감독을 맡은 그는 3년 계약에 한 시즌 128억원이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는다.

그러나 1등주의의 폐단도 적지 않은 듯하다. 조세 무리뉴 전 첼시 감독이 인터 밀란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디디에 드록바, 마이클 에시엔, 프랑크 람파드, 히카르두 카르발류 등 이른바 ‘애제자’들의 인터 밀란행 설이 종종 튀어 나온다. 지나친 성과중심주의가 조직의 불안을 높여 구성원의 커미트먼트를 해치는 역작용 때문일 것이다.

 마치 내일은 없다는 듯이 광적으로 사치를 즐기는 그를 두고 러시아 언론은 ‘무지끄’라고 부르기도 한다. 벼락부자를 촌놈으로 비하하는 러시아 말이다. 러시아 언론에서 밝힌 그의 재산 목록은 사치의 정점을 보여준다. 주 활동무대인 영국에는 여러 채의 저택이 있다. 그가 런던에 처음 와서 두 번째 부인과 살던 아파트가 있고, 1990년 1200만파운드에 구매한 웨스트 서섹스(West Sussex)의 대저택은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이 소유하던 것으로 서울상암월드컵경기장의 8배 이상인 1.8㎢에 승마장, 폴로경기장 두 곳, 사격장, 수영장 등을 갖추고 있다. 2007년 두 번째 부인 이리나와 이혼한 후 이사한 런던의 나이트브리지에 위치한 저택은 영화관, 실내수영장, 사우나, 연회장 등을 갖춘 지하 3층, 지상 5층의 호화 저택으로 개조될 계획이라고 한다. 이 저택의 향후 시가는 1억5000만파운드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그 외에 주소가 밝혀지지 않은 모스크바의 모처, 프랑스, 미국 콜로라도 등에도 대저택을 갖고 있다.

‘로만의 제국’을 즐기는 벼락부자의 사치

러시아의 올리가르히들이 필수적으로 보유한다는 전용기와 호화 요트에서도 아브라모비치의 사치는 이들을 능가한다. 호화 요트 5척에 잠수함 2척은 ‘아브라모비치의 해군’이라 일컬어질 만하다. 그 중에 헬기 이착륙장까지 갖춘 길이 115m의 요트 펠로루스(Pelorus)는 승무원만 40명, 길이 112m짜리 요트 르 그랑 블루(Le Grand Bleu)는 1억달러를 호가한다. 곧 그에게 인도될 예정인 147m짜리 초대형 요트 이클립스(Eclipse)는 아쿠아리움과 미사일 방어 시스템, 2~4인승 잠수함까지 탑재한 세계 최대 요트 중 하나로, 가격이 3억달러에 달해 호화의 극치를 보여준다.

아브라모비치는 남부 프랑스에 있는 저택에 머물든 런던의 저택에 있든 첼시 경기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자신의 전용기와 헬기를 이용해 경기장으로 날아간다고 한다.

전용기인 4000만파운드짜리 보잉 767기는 전용 침실과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갖추고 영국의 스탠스테드 공항에 항상 대기해 있고, 지난해부터는 오스트리아에 등록되어 있는 좀 더 작은 비행기 다솔 팰콘 900(Dassault Falcon 900)도 이용한다고 한다. 얼마 전 프랑스 일가지 <르 피가로>는 아브라모비치가 에어버스(Airbus) A380 슈퍼점보기를 주문했다는 소문을 기사화한 적이 있으나, 사실은 킹덤 홀딩스(Kingdom Holdings)의 CEO인 중동의 알 왈리드 왕자가 주문한 것으로 밝혀진 적도 있다. 여기에 헬리콥터 3대와 방폭 장치를 갖춘 마이바흐 62 리무진 2대는 덤이다. 물론 자신의 딸 안나의 16번째 생일선물로 준 30대 한정 생산된 20만파운드의 페라리 FXX도 유럽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야깃거리다.

애인만을 위한 예술 애호가

 아브라모비치는 지난 5월 중순 모스크바에 현대미술 화랑을 열고 싶어 하는 애인 다리야 주코바를 위해 총 1억2000만달러를 들여 유명 화가의 그림을 구매했다. 하나는 5월13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3360만달러에 구매한 영국 현대작가 루시안 프로이드의 1995년 작 누드화인 <Benefits Supervisor Sleeping>이다. 이 작품은 생존 작가의 작품으로는 사상 최고의 경매가를 기록했다. 다음날인 14일에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프랜시스 베이컨의 1976년 작 <Triptych>를 낙찰 받았다. 낙찰가는 8628만달러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미술 작품으로는 사상 최고가여서 다시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에브라즈그룹은 구소련의 붕괴와 체제 전환기 경제의 과도기적 상황에서 M&A를 통한 사업 확장 기회를 가장 성공적으로 활용한 기업이다. 2005년 6월 런던 증시에 주식 8.3%를 GDRs로 상장한 에브라즈그룹의 최대 주주는 72.9%의 지분을 보유한 래인브록(Lanebrook Limited)이며, 이 회사의 지분 50%는 아브라모비치가 소유한 투자지주회사인 밀하우스 캐피탈이 갖고 있다. 결국 아브라모비치가 에브라즈그룹의 실질적인 대주주이지만 경영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고 있으며, 이사회 의장은 알렉산드로 프롤로프가 맡고 있다.

M&A 통한 사업 확장 기회 가장 성공적으로 활용

에브라즈그룹의 사업구조는 철강, 철광석, 석탄, 바나듐, 유통과 물류 등 5개 부문이다. 이 사업 영역은 수직계열화 관계로 통합되어 시너지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에 고수익 경영이 가능하다. 특히 석탄과 철광석을 생산하는 광산도 대량 보유하고 있어 필요한 원료와 연료의 80% 이상을 자체 광산에서 조달한다.

철강 생산량은 1630만 톤이며, 그중 94%가 러시아에서 생산된다. 그 밖에 미국과 남아공에도 제철소를 갖고 있다. 주력 생산 품목은 건설용 형강과 철근, 봉강, 후판, 철도용 궤조 등이다. 최근에는 해외 M&A에 적극적이다. 2008년 1월에는 미국 동부 연안에 있는 연산 50만 톤 규모의 후판 생산업체인 칼리몬트 스틸(Calymont Steel)을 5억6500만달러에 인수했고, 2007년 12월에는 우크라이나의 연산 130만 톤급 일관제철소와 철광석 광산 업체인 수크하야(Sukhaya)를 인수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