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案) 뿐인 MB 경제 정책…
한 게 없으니 평가할 것도 없다”

“당분간 물가는 오르겠지만 우려할 수준은 아닙니다. 내수 부진의 골은 깊어지지만 수출은 호조세를 보일 것입니다.”
권 상무는 최근의 극심한 내수 부진은 유가 급등에 따른 충격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상승이 국내 소비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해 쉽게 지갑을 열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는 유가 하락과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물가 상승 압력은 어느 정도 차단됐다고 평가하고 지난 8월초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은 ‘대단한 결정’이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서는 따끔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정부는 깊어지는 침체의 수렁에서 헤어나기 위해 경기 부양이 필요한지, 아니면 심각한 물가 문제를 경제 정책의 우선순위에 둬야 할지를 놓고 고민에 빠지기보다는 변동성이 큰 세계 경제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가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물가는 불안하고, 소비심리도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경제 정책은 세계 경제의 변동성에 맞춰 더 빨리, 더 유연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7월 한국 경제 성장률을 4.8%에서 4.6%로 하향 조정했다. 그는 “성장률 전망치를 다소 낮추기는 했지만 여전히 올해 한국 경제에 대한 전망은 낙관적”이라며 “다만 국제 원자재 가격에 대한 부담이 작년 말에 예상했던 것보다 커졌기 때문에 성장률을 다소 조정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경제 전망을 다소 밝게 보는 이코노미스트 중 한 명인 권 상무는 1993년 4월 IMF 입사,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을 담당하다 지난해 12월 골드만삭스에 합류했다. 그는 2001~2004년 IMF 모스크바사무소 상주대표를 역임했으며, 이후 IMF에서 카리브 국가 관련 연구팀을 이끌었다. 1998~2001년에는 ABN암로 런던지점에서 선임이코노미스트 겸 투자전략가로 일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 상황을 총체적인 난국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현재 상황을 진단해주신다면.
현 경제 상황을 난국이라고 보는 것은 지난해부터 급증하고 있는 외채와 여신의 빠른 증가, 급등한 유가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경기 침체는 미국 경제의 불황에서 기인한 것이라기보다는 유가 급등에 따른 충격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유가 변수에 가장 취약한 지역입니다. 내수 부진의 골은 더욱 깊어지지만, 수출은 호조를 보일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우리 경제가 적응해 가는 과정으로 봐야 합니다. 물가는 당분간 오르겠지만 우려할 수준은 아닙니다.
유가는 언제 안정될까요. 다른 원자재 가격에 대한 전망은 어떻습니까.
상반기 경기 침체의 주요 요인인 유가 급등은 오는 11월, 12월이면 꺾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다고 낙관적인 것은 아닙니다. 변수도 많습니다. 내년에도 유가가 배럴당 140달러 선에서 고공행진하면서 민간소비 부문이 급격히 위축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에너지와 곡물 부문의 원자재 가격은 구조적으로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전 세계의 과잉 유동성 자금이 석유 및 곡물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투기를 부추겨 유가와 곡물가가 급등했다는 지적이 많은데요.
유가가 급등한 것은 수급 불균형에 따른 겁니다. 기본적으로 공급 차질에 따른 것입니다. 원유를 증산해서 해결할 문제가 아닙니다. 정유소나 파이프라인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없으면 고유가 문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소비를 줄여서 해결하기는 더욱 힘듭니다. 새로운 수요를 공급이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투기자금은 어느 시장에나 존재하는 것입니다. 투기가 펀드멘털을 반영한 것이지, 가격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닙니다. 투기 자본이 없어진다고 해서 유가가 100달러 이하로 떨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8월 초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상하고, 유가도 안정세를 찾으면서 기대 인플레이션이 꺾였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상한 것은 대단한 결정이었습니다. 원래 물가 상승은 내수를 조절하면 잡히는데, 지금은 내수가 부진하면서 물가가 상승하는 이상한 형태입니다. 수입 물가 상승이 고스란히 전체 물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이러한 수입 물가의 영향력은 갈수록 줄어들 것입니다. 물가 상승으로 인한 노동 시장과 부동산 시장 등 다른 부문에서의 과열 양상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수입 물가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지속되기 힘들 것으로 보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당분간 물가는 상승하겠지만, 지속적인 물가 상승 악순환은 되풀이되지 않을 겁니다. 유가 하락과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물가 상승 압력은 어느 정도 차단됐다고 봅니다.
최근 유가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물가는 불안하고, 소비심리도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내수는 부진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입 물가 압력으로 인해 가계 부문의 지출 여력이 계속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분기와 2분기 가계 여신과 신용카드 사용액, 중소기업 대출은 계속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겁니다. 금융기관도 여신 건전성을 챙겨야 하기 때문에 자구책을 찾을 겁니다. 현 상황이 고용과 소비 부진을 동반하고 있는데다 고유가로 인해 물가 상승이 겹쳐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정부가 경기 부양책을 준비 중인데요.
재정 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시키겠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바람직한 방향입니다. 지난해보다 70% 이상 급등한 유가로 인해 조세 부담률은 4% 증가한 셈입니다. 지난 5년간 조세 부담이 계속 커졌습니다. 세금을 줄이고 지출을 늘리는 것은 물가 상승으로 인한 가계와 기업의 부담을 덜어 주는 것입니다. 경기 부양책으로는 지출을 늘리는 것보다 감세가 더욱 적절하다고 봅니다. 아시겠지만 정부의 지출을 늘리는 것은 정치 문제로 비화될 수 있고, 낭비를 초래하는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미국 경제의 침체는 계속되고 있지만 최근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요인은 무엇이고, 달러화 강세가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달러화 강세는 유로화와 엔화의 약세가 요인입니다. 여기에다 미국의 무역수지가 빠르게 회복되면서 과도하게 약세였던 달러화가 이제 제자리를 찾아 가는 모양새입니다. 원화가 약세이기 때문에 달러화 강세가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보입니다.
단기적으로는 한국 경제에 대한 미국 경제의 영향력은 계속 감소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미국 경제의 불황보다 오히려 유가가 더 큰 문제입니다. 장기적으로 미국 경기 침체가 지속된다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내년 초까지는 실업률이 증가하고, 주택 시장의 악화도 계속 되겠지만 미국 경기 침체는 내년 말까지 계속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가 아직도 상존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의 직격탄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그렇다고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닙니다.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인한 후폭풍 때문입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시작된 불황이 신용카드, 할부금융, 기업용 부동산 시장에 몰아치고 있습니다.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을 평가한다면 어떻습니까.
한 게 없으니, 평가할 것도 없습니다. 정부가 하겠다고 밝힌 것 중에서 실제로 실행한 게 있습니까? 그냥 ‘안(案)’만 나왔고, 안(案)으로 끝난 게 대부분입니다. 기다려 봐야 알겠지만 정책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집행력과 당정간, 정책 입안자간의 조정 역할에 문제가 있었다고 봅니다.
경제 정책 방향은 어떻습니까.
정부가 제시한 규제 완화, 감세를 통한 경기 부양, 투자 활성화 등의 경제 정책 방향은 모두 필수적인 것들입니다. 우리가 꼭 가야 할 방향이죠. 다만 늦어지고 있다는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아직도 물가냐, 성장이냐에 대한 선택의 문제가 남아 있습니까.
상반기에도 정부가 물가 안정이나 경제 성장 중 하나를 달성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죠. 이제는 성장이냐, 물가 안정이냐 하는 양분법보다 급변하는 세계 경제에 맞는 유연한 경제 정책이 필요합니다. 유가와 원자재 가격의 급등으로 세계 경제는 둔화되고 있지만, 단순한 듯 보이는 그 속내는 매우 복잡합니다. 세계 경제는 한 달 간격으로 달라지고 있습니다. 매월 데이터를 집계해 정책을 판단해야 할 정도로 세계 경제의 변동성은 큽니다. 지난해 연말과 지금 상황은 완전히 다릅니다. 정책을 입안해 부처간 조율을 거쳐 결정하고, 이를 집행하는 식으로는 효율적인 정책을 수립할 수 없습니다. 정부 부처간의 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한 박자가 늦어지는 겁니다. 더 순발력이 있어야 합니다. 더 빨리, 더 유연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작년 12월 말에 만든 정책의 배경은 이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조건이 달라졌으니, 정책의 목표와 이를 실행할 수단도 바뀌어야 합니다.
최근 경제 성장률을 4.8%에서 4.6%로 하향 조정했습니다. 어떤 의미가 내포돼 있습니까.
수출은 호조세를 보이지만 내수 부진으로 인해 성장률을 하향 조정했습니다. 투자가 늘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으며 소비는 향후 더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호조세를 보이는 수출 부문이 부진한 내수를 메울 것으로 보여 비관적인 수준은 아닙니다. 정부 개혁 작업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임기 내 6% 성장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향후 정부의 경제 정책 운용 측면에서 요구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무엇보다 금융 부문의 안정성이 중요합니다. 금융 부문이 안정돼야 물가도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금융 부문에 대한 위협 요소를 일축하는 것을 가장 조심해야 합니다. 취약한 중소기업의 금융 구조, 가계 부채의 증가로 인해 2000년대 초 카드 사태와 같은 금융 불안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