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5일, 강원도 양양 낙산 주변에 산불이 발생했다. 산림 250ha, 건물 246개 동이 소실됐고 낙산사가 전소되면서 동종, 원통보전 등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천 년 역사에 남을 일이었다. 동종마저 녹아내린 그 거센 불속에서, 그러나 꿋꿋하게 제 모습을 지킨 물건이 하나 있었다. 다름 아닌 ‘선일금고’란 신통방통한 녀석이었다.

선일금고 사장·상무·차장…

남편·선친 사업 업그레이드에 열정

선일금고제작(이하 선일금고)은 4년 전 고인이 된 창업주 김용호 회장에 의해 1974년 설립됐다. 34년째 오로지 금고만을 만들어 온 금고 명장 기업이다. 특히 창업주이자 기술 개발 주역인 김 회장의 열정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김 회장은 경영에는 도통 문외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도운 사람은 아내인 현 선일금고 사장인 김영숙씨(54)다. 섬세하고 도전적인 성격의 김 사장은 재무, 마케팅 등 회사의 모든 업무를 관리했다. 그러하기에 김 회장은 금고 기술 개발에만 절대적으로 매진할 수 있었던 것. 두 사람의 시너지는 실로 대단했다. 선일금고를 국내 금고 업계의 선두주자로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4년, 김 회장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자 금고 업계에서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선일금고가 문 닫는 건 시간문제’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선일금고는 승승장구했다. 전 세계 100여 개 국가에 선일금고 제품을 수출해 글로벌 중소기업이 무엇인지를 지금까지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6년 ‘1000만불 수출탑’을 수상했으며, 산업자원부로부터 ‘세계일류상품’ 제조업체로 선정됐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의 경우에도 고유의 독수리 상표는 꼭 부착해 내보낼 정도로 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이런 선일금고의 변화는 김 사장이 취임하면서 시작됐다. 몸집 불리기보다는 믿을 수 있는 제품과 과학적인 시스템으로 내실 있는 기업으로 새 단장시킨 것이다. 김 사장은 “남편이 선일의 금고를 견고함의 대명사로 만들었다면 나는 친숙한 살림살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세련된 도구라는 이미지로 만드는 데 주력한다”고 했다.

맞춤식 자녀교육 시스템, ‘우물 안 개구리(?)’

연 15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중소기업이지만 ‘금고’ 하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결같이 ‘선일’을 외치니 기업으로 태어나 이보다 더 좋은 일이 뭐가 있을까.

후계자 문제에 있어서도 ‘남의 자식 데려와 어차피 도둑 될 놈 키우기보다는 내 새끼 제대로 가르쳐 사업을 물려줘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김 회장의 철두철미한 계획이 지금은 빛을 발하고 있다. 김 회장에게는 여느 아들 부럽지 않은 든든한 두 딸이 있다. 이들 자매는 어려서부터 선일금고를 위해 맞춤교육을 받았다. 그들의 미래를 김 회장이 설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맏딸 김은영(32) 상무는 아버지의 기술을 전수받았다. 어릴 적부터 김 회장이 공장에 데리고 다니며 업무를 파악하게 했다. 결국 아버지의 권유로 고려대 제어계측 공학과에 입학했고, 졸업 후 곧바로 선일금고에 입사했다. 밑바닥 업무부터 배워나간 것을 시작으로 이제는 공장업무를 총괄하는 어엿한 상무에 이르렀다.

“원래부터 이 길 이외에 다른 길은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꿈이 뭐냐고 물으면 사업가라고 대답했거든요. 어릴 때 동생 데리고 공장에도 자주 가보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 길을 걷게 된 것이죠. 지금도 후회나 다른 것에 대한 미련은 전혀 없어요.”

그는 벌써 애가 둘인 ‘아줌마’다. 아직도 앳된 얼굴이 그 사실을 의심하게 했다.

“제 결혼은 아버지 사업수단 일환 중 하나였어요. 철판 수급이 힘들었던 몇 해 전 선일금고는 제 결혼 덕택에 전혀 문제 될 게 없었죠.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하하하”

둘째 김태은(30) 차장은 인사총무를 비롯해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화여대 경영학과를 졸업해 김 회장을 흡족하게 하기 충분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꿈이란 것이 있는 법. 김 회장이 자녀들을 그저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든 것은 아닐까.

어릴 적 김 차장의 꿈은 의상디자이너였다. 그러나 독불장군 김 회장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조건 안 된다고 하시는 부모님이 원망스럽기도 했어요. 몰래 미술학원에 다니면서 나름 소심한 반항이었죠(웃음). 하지만 포기한건 아니에요. 언제든 꼭 이뤄낼 겁니다.”

하지만 김 차장에게 지금은 의상디자이너보다 더 중요하고 명확한 꿈이 있다.

“훌륭한 한 조직원으로서 회사에 기여하고 싶어요. 모든 사람들이 보람을 느끼며 기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드는 것이 의상디자이너보다 훨씬 더 매력 있는 일이란 걸 깨달았거든요.”

선일금고 세 모녀도 여느 집처럼 시끌시끌하기는 매 한가지다. 모였다 하면 접시가 깨지는 통에 바람 잘 날 없다는데….

“특히 회사 일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의견 충돌이 꽤 생기는 편이에요. 서로 성격도 생각도 제각각이라 큰소리로 언쟁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어우러집니다. 다들 그렇게 지내잖아요. 그래도 이런 대화 중에 서로의 생각도 알고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더 자주 싸워야 되나?(웃음)”

선일금고는 지난 6월, 신제품 ‘루셀’을 론칭했다. 기존의 금고와는 달리 국내 최초로 다양한 디자인과 색을 입혀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한층 강화된 보안 시스템과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접목한 스타일리쉬한 내화금고 ‘루셀’은 김 사장이 고안해 낸 아이템이다. 그는 ‘여자들이 만들면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거저 줘도 싫다는 금고를 어떻게 하면 갖고 싶게 만들까 고민하던 찰나에 떠오른 것이 바로 ‘루셀’이다.

‘최초’ 라는 이름표 연이어 달아

“해외에서는 금고가 부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그만큼 금고 사용이 보편화 돼 있단 말입니다. 보통 가정이나 구멍가게들도 모두 하나씩은 갖고 있어요. 반면에 한국은 어둡고 부정적인 이미지로 금고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깨끗하지 못한 막대한 양의 현금이나 귀중품을 보관하는 은밀한 장소로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루셀’은 소중한 것을 보관하는 ‘나만의 보석상자’라는 컨셉트로 인식을 전환시키기에 충분합니다.”

덩치는 작아도 막강한 파워로 세계를 무대 삼아 뛰는 선일금고. 140여 명에 불과한 직원들의 손끝이 세계 시장을 10%나 점유할 수 있었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금고 사랑’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금고 업계 우위에 설 수 있게 된 것은 ‘최초’ 라는 이름표를 단 새로운 개념의 금고를 다수 탄생시킨 것도 하나의 이유라 할 수 있다.

다이얼 방식이 아닌 디지털 잠금장치를 접목한 곳도 선일금고다. 하지만 보안성이 생명인 금고에 장착하는 것은 기술상 여러 난제가 따랐다. 선일금고는 이를 위해 3년간 5억원의 개발비를 쏟아 부었다.

디지털 금고는 외문형 금고와 함께 선일금고가 세계표준으로 정착 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이밖에 지문인식 금고, 다이얼로 열고 닫는 금고, 경보기 부착 금고 등 신 개념 제품 대부분도 선일금고가 국내 최초로 만들어 보급한 제품들이다.

김 사장은 “처음엔 우려와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던 전자식 버튼도 선일이 한국 최초로 도전해서 성공시킨 아이템”이라며 “앞으로도 차별화된 제품을 가지고 생활 속에 자리 잡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한 열정을 보였다.

김보람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