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가 지긋한 편한 옷차림의 한 노인이 넓은 사무실을 천천히 가로질러 간다. 걸음걸이도 편치 못하다. 낯선 불청객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어르신네는 오광현(49) 도미노피자코리아 회장의 부친이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오전 9시에 출근, 정오에 집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대기업 임원 출신으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단다. “막내가 불안한가 봐요.” 오 회장은 허허 웃었다. 어르신네는 텔레비전을 통해 친숙한 이홍렬씨의 깍듯한 인사에 환한 웃음을 짓는다. 찾아온 목적을 알고 있는 듯했다. “더운데 여기까지 오고 고생하네요.” 국전 초대작가였던 망모(亡母)도 늘 아들과 함께 하고 있다. 모친의 혼이 담긴 작품 2점이 집무실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효자가 아니다”고 고개를 저은 오 회장은 마음 씀씀이가 살갑다. 불우한 이웃과 함께 하는 나눔이 아름답다. 그는 ‘하프 앤 하프’ 회원이기도 하다. 모임의 취지가 그의 발걸음을 이끌었다고 한다. 근간이 봉사정신이라는 이유에서다. 절반은 친목을 도모하는 데, 나머지 절반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할애하자는 뜻에서 ‘하프 앤 하프’로 정했다. 이홍렬씨가 대표다. 이 대표는 “(오 회장은) 참으로 똑똑한 사람”이라며 “바쁜 와중에도 소소한 일상까지 잘 챙기고 배려심이 많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모임과 별개로 오 회장의 나눔은 오래 전부터 지속되고 있다. 그는 원래 대학 졸업 후 은행에 입행, 4년간 다녔다. 당시 사회공헌 관련 업무를 잠시 맡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방문한 곳이 선덕원. 고아나 미아, 결손가정 어린이 등 불우한 환경에 처한 여자 어린이들을 보호하는 사회복지시설이다.

업무로 시작된 인연이었지만 추후에는 자발적 행동으로 거듭났다. 피자를 좋아함에도 먹을 기회가 많지 않은 원생들을 위해 피자로 선행을 베푼 것이다. 선덕원에서 오 회장은 ‘피자 아저씨로’로 불린단다. 이는 그가 1990년 은행을 그만둔 뒤에 서울 잠실에 피자가게를 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은행을 그만둔 계기는 간단했다. “적성에 맞지 않았고, 답답했어요.” 이후 세계적 피자배달 전문업체 도미노피자의 잠실 체인점 사장이 된 것. 처음에는 피자 체인점 사장 중 한 명이었던 오 회장이 1993년 도미노피자코리아(이하 도미노피자)를 인수했다. 1993년 12월말 기준 매장이 19개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296개로 증가했다. 올 10월1일 300호점 오픈을 눈앞에 두고 있다. 총 매출은 60배 이상 치솟았다. 선덕원뿐 아니라 도미노피자의 사회환원 프로그램 역시 늘어났다.

 

도미노피자의 성장세가 눈부신데요. 남다른 마케팅과 전략이 있다면요. 

 두 자릿수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통찰력 있는 통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성공 요인으로 분석됩니다. 우선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전략으로 업계 최초의 ‘요리피자’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이는 기존의 정크푸드로 오인되었던 피자의 부정적 인식을 전환시키고 고급화, 차별화된 브랜드로 포지셔닝될 수 있었던 계기가 됐죠. 제품 전략에 있어서도 세계의 요리를 피자와 접목시키는 크리에이티브한 제품 개발과 고급 식자재를 도입한 고급화, 차별화된 전략을 전개해왔습니다. 타이타레, 리꼬쏠레에 이어 올 7월 출시된 게살프랑쉐피자는 프랑스풍 파마산치즈크림소스에 업계 최초로 진짜 게살을 토핑해 소비자들의 관심과 놀라움을 한 몸에 받고 있죠.

지난 3월에는 고객의 니즈와 트렌드에 한발 앞서 업계 최초 씬피자를 전 품목으로 확대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유통채널인 온라인 주문 채널의 비중 확대를 위한 온라인 마케팅 활동성과를 들 수 있습니다.

도미노피자의 경쟁력은 무엇인가요.

 ‘크리에이티브 도미노’라는 슬로건처럼 보다 새롭고 독창적인 제품과 서비스로 고객이 원하는 것을 한 발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도미노피자의 의지이고 바로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업계 최초로 피자 박스에 원산지를 표시하였습니다.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믿을 수 있는 식자재를 사용하고 이를 지켜나가는 것이 기업의 의무이며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업계를 선도하고자 최초로 피자 박스에 원산지를 표시하게 됐습니다. 피자 업계뿐 아니라 배달 업계에서도 최초로 시행하는 것인 만큼 철저하고 정확한 표시로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을 해소시키고 소비자와의 신뢰를 구축해 나아가서 안전한 식문화 정착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더불어 도미노피자는 박스의 원산지 표시에 앞서 지난 7월부터 전 매장에서 메뉴판, 포스터, POP, 전단지, 홈페이지 등을 통해 원산지 표기를 시행하고 있으며 5개 매장과 홈페이지에서는 양심적으로 영양성분 표기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항상 함박웃음을 터뜨릴 수만은 없다고 봅니다. 힘든 시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요.

 모든 삶이 그러하듯, 사업에도 굴곡은 있는 법이죠. 국내 피자 시장 최초로 프리미엄 제품을 선보였다는 더블크러스트피자(2003년)의 성공 이후,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야심 차게 출시해 수십억원의 마케팅 비용을 쏟아 부은 제품을 한 순간에 매장에서 철수해야 했던 아픔을 겪었죠.

하지만 고배를 마시면 마실수록 의욕이 새롭게 솟아오른다고 할까요. 끊임없이 더욱 치밀한 연구와 조사를 거듭하였습니다. 기술이나 자격은 누구나 쉽게 모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욕, 창의력은 누구도 쉽게 모방할 수 없는 법이죠. 이는 도미노피자가 지난해 여름, 다시 넘버원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힘이기도 합니다. 2007년 피자 업계 전체를 아우르는 베스트셀러 타이타레요리피자를 선보이면서 피자 업계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위기는 기회의 두 번째 이름입니다. 실패가 있기에 성공이 있고 미래가 있는 것이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실패를 창피하게 여기고 숨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실패를 인정하고 용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6가지 경영원칙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6 BEST입니다. 첫 번째는 BEST BRAND. 고객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최상의 브랜드 이미지 구축이죠. 두 번째는 BEST QUALITY. 최상의 품질과 서비스 제공을 원칙으로 합니다. 세 번째는 BEST OPERATION. 엄격한 OER(Operation Evaluation Report) 평가를 통해 피자 메이킹부터 위생적인 매장, 시설 관리까지 완벽한 오퍼레이션 관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는 BEST SERVICE. 히트웨이브(Heat Wave) 시스템과 제품만족 시스템, 30분 배달 보증 시스템 등을 도입, 시행하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는 BEST SAFETY. 고객의 건강과 안정을 지켜주고자 정기적인 감사와 교육을 실시합니다. 여섯 번째는 BEST PEOPLE. 도미노 사람들은 항상 고객을 가장 먼저 생각하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죠. 또한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아름다운 기업이 되고자 합니다.

현재 적합한 리더십은 무엇이라고 생각되는지요.

 요즘 세상을 보면 마치 칭기즈칸이 몽골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사막과 초원을 횡단했을 때처럼 유비쿼스라고 하는 디지털의 사막과 인터넷의 초원을 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앨핀 도플러가 경고한 ‘미래쇼크’의 위험 속에서 서로의 방향성과 정체성을 찾기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이러한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은 직원들의 에너지를 모아서 다양함과 변화를 조화시킬 수 있도록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획일화된 원칙보다는 다양함을 인정하는 자유 속에서 조화를 이끌어내는 게 요즘 리더에게 필요한 덕목이라고 할까요. 저는 직원들이 항상 상상력과 열정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주고 비전을 제시해나갈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부터 끊임없이 도전해야겠죠. 그게 바로 리더의 숙명이 아닐까 싶네요.

앞으로 계획이나 포부가 있다면요.

 한국 최대, 최고의 배달피자 회사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는 철저한 장사꾼이 될 겁니다. 원칙과 소신, 자부심을 가지고 회사를 꾸려가며 반드시 이익을 내고 그 이익을 사회와 함께 나눌 수 있는 책임감 있는 장사꾼이요. 그리고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가 넘치는 재미있고, 다니고 싶은 회사로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기업 문화에서 직원들의 성실성이 아니라 즐거움이 중시되면서 기업 스스로가 직원의 창조성과 예술성을 불어넣기 위한 조직 재구축 작업이 절실한 과제로 부상되고 있습니다. 저희 회사 역시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가 넘칠 수 있는 회사 분위기, 회사에 빨리 출근하고 싶을 정도로 너무 재미있는 회사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그는 시종일관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를 뿜어냈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는  이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특히 희끗희끗 흰머리가 섞여있는 멋스러운 반백의 헤어스타일이 인상적이었다. 

오 회장은 ‘도미노피자는 종합건강식품’이라고 자부했다. 5대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가 있어 몸에 이롭다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피자를 먹는단다. 그의 아들은 주 3~4회를 먹을 만큼 피자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피자를 먹으면 충성고객으로 여기는 업계의 기준보다 높은 수치다.

본사 건물에는 도미노피자의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 공간이 따로 있다. 그곳에서는 독창성과 고객 건강을 우선시하며 신 메뉴를 만들어낸다. 카망베르치즈와 바질, 가리비, 새우 등 최고급 재료를 사용한 더블크러스트피자는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어 도미노피자 본사에 역수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선두 업체를 따라하면 2등밖에 못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특별한 좌우명은 없지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사람의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이라는 말을 좋아한다고 했다. 오 회장의 손목시계는 정확히 10분이 빨랐다. 그 이유는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그에게 지나가듯 ‘효자 아니냐’고 다시 한번 물었다. 답변은 같았다. “효자, 정말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