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장녀 이부진 신라호텔 경영전략담당 상무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일처리 깐깐하기로 소문난 이 상무는 지난 2000년 ‘e삼성’ 사업에 실패한 오빠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와 달리 맡은 사업을 기대 이상으로 잘 소화하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손대는 족족 대박”이란 말까지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다. 꼼꼼하면서도 저돌적인 그녀의 업무 스타일은 신라호텔 ‘리모델링’ 작업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주도한 리모델링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신라호텔은 불황 속에서 괄목할 매출 실적을 쌓고 있다. 또 올해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의 성공적 시작은 신라호텔의 신용등급까지 올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손대는 사업마다 대박행진…

황태자 자리까지 위협하는 경영능력 과시

신라호텔은 올 상반기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 개시에 따른 외형과 수익성 개선에 힘입어 신용등급이 한 단계 올랐다. 지난 9월 초 한국신용평가가 신라호텔에 대한 신규 평가를 통해 ‘AA-(안정적)’ 신용등급을 부여한 것이다.

신라호텔에게는 큰 경사다. 지난 2001년 1차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했던 쓰라린 과거가 있었던 터라 이번 신용등급 상향 조정은 뜻 깊다.

한국신용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신라호텔 공항 면세점은 상반기 전체 매출과 수익성이 전년 대비 각각 50%와 163% 성장했다. 또 면세점 영업개시로 인해 운전자본 부담과 보증금 증가로 차입금이 2426억원으로 늘어났음에도 현금 창출력 개선과 그룹의 대외신용도 등을 감안하면 신라호텔의 재무 탄력성은 양호하다.

신라호텔은 한껏 고무돼 있다. 이번 신용등급 평가도 신라호텔이 자진 의뢰해 진행된 것이었다. 롯데가 지난 수년간 면세점 분야에서 독주하고 있을 때 절치부심했던 신라호텔이 지난 5월 공항 면세점 그랜드오픈 이후 상승세를 타고 있다. 

롯데 콧대를 꺾다

신라호텔 면세점 사업의 성공적 출발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지난 8월 말 푸르덴셜투자증권은 신라호텔이 예상보다 빠른 ‘깜짝 실적’을 달성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시 목표주가도 3만1000원에서 3만5000원으로 상향조정했다.

푸르덴셜은 “인천공항 면세점이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두면서 2분기 예상실적은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93.2%, 147.6% 오른 2359억원, 203억원을 나타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증권업계는 지난 5월 말 공항 2청사의 개관으로 매출 규모의 확장 속도는 하반기에 보다 가속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2008년 신라호텔은 성장 정체의 사업구조에서 벗어나 성장 동력을 확보해 나가는 전환점을 맞을 것이라는 진단이 대세를 이룬다.

10월 말 신라호텔은 3분기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 5월 공항 면세점 두 군데를 모두 오픈한 이후의 실적이라 귀추가 주목된다. 푸르덴셜 등 증권업계의 예상이 크게 빗나가지 않는다면 최고의 실적을 기대할만하다.

이렇듯 최근 신라호텔의 ‘파죽지세’는 공항 면세점의 성공적 출발 덕으로 볼 수 있다. 신라호텔은 라이벌 롯데를 비롯해 애경, 한국관광공사 등 세 곳과 공항 면세점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예전 사업자 네 곳 중 하나였던 DFS의 자리를 신라호텔이 비집고 들어간 형국이지만, 얼핏 보면 신라호텔이 터줏대감 같다. 롯데가 운영했던 공항 내 중앙 및 서편, 신규 탑승동 등 소위 금싸라기 매장을 신라호텔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7개 매장을 갖추고 향수와 화장품을 주력으로 판매하면서 인천공항 면세점 전체 매출액의 35%를 차지할 정도로 알짜배기 구역이다. 공항 면세점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넘버1’이었던 롯데가 면세품 품목 중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향수와 화장품 사업권을 신라호텔에게 내주고 만 것이다.

신라호텔은 롯데를 꺾을 기대로 사기충천하다. 롯데가 주류와 담배, 가방, 전자제품 등만으로 알짜배기를 차지한 신라호텔과 제대로 경쟁할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돌았다. 환율 상승과 경기 불황 때문에 공항 면세점의 미래가 밝지 않은 상황이라 신라호텔 측도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그럼에도 공항 면세점에서는 신라호텔이 롯데보다는 유리한 고지에 섰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렇듯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 빼낸’ 형국이다 보니 한때 뒷말이 무성했다. 신라호텔을 시기·질투하는 탓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라호텔이 그랜드오픈한 지 한 달 만인 지난 6월 검찰이 면세점을 겨냥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면세점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감사원 조사와 별도로 특혜의혹이 있다는 제보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검찰의 수사는 인천공항 여객터미널과 탑승동에 입주한 면세점들에 대한 특혜에 초점이 맞춰졌다. 검찰은 정보 취합 차원에서 자료를 입수했다며 수사 강도에 대해 입을 다물었지만 수사 초점에 ‘공항공사와 신라호텔 간 커넥션’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주목을 끌었다.

의혹은 신라호텔이 공항 면세점 사업권을 따낸 지난 2007년 7월 이후부터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입점 업체 선정과 업체들이 어떤 면세 품목을 취급하느냐는 결정은 경쟁입찰 방식을 통한다. 모든 업체들이 탐을 내는 향수·화장품 취급 매장과 주류·담배 취급 매장 등에 대한 사업권이 사전에 입찰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다. 입찰가를 써내고 공항공사가 결정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공항공사가 신라호텔을 봐줬다는 게 의혹의 요지다.

의혹은 결국 검찰 수사까지 이어졌고 당시 공항 면세점 안팎에서는 “공항 면세점에 처음 진출하는 신라호텔이 알짜 두 곳을 따낸 것은 특혜가 아니고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뒷말이 무성했다. 신라호텔의 ‘알짜배기 선점’을 시기하는 경쟁사가 의혹을 증폭시킨 측면도 분명히 있었다.

이와 관련 업계 한 관계자는 “롯데가 배가 아프니까 가까운 언론사 사람들을 통해서 별별 이야기를 퍼뜨리긴 했는데, 아마 약이 올라서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여전히 계속되는 특혜 의혹

공항공사가 신라호텔과 터무니없는 조건으로 계약하는 바람에 수백억원의 손해를 입었다는 지적까지 제기되면서 ‘공기업 개혁’ 대상에 올라 있던 인천공항공사가 더욱 압박받는 결과로 이어졌다. 예상대로 감사원 조사가 진행됐고, 이 조사 자료는 검찰로 고스란히 넘어간 것이다. 

신라호텔 측은 특혜 의혹과 검찰 수사에 대해 “경쟁사들이 사실이 아닌 엉뚱한 이야기를 퍼뜨리는 바람에 벌어진 일로 알고 있다”면서 “지난 8월말 혐의 없음으로 결정 났다”고 말했다. 또 “온갖 루머가 하도 많아서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이제 루머는 안 나오겠다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검찰이 수사를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나도록 별다른 발표가 나오지 않고 있지만 신라호텔이 마음을 편히 가질 상황은 아닌 듯 보인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공기업 문제’에 대한 조사 강도는 그 어느 때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천공항의 거취 문제 역시 주요 쟁점이 될 공산이 매우 크기 때문에 인천공항에 대한 검찰 수사 관련 내용이 이번 국감을 계기로 새롭게 재조명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업계 관계자는 “신라(호텔)가 로비팀을 만들어 공항공사를 상대로 치밀하게 로비한 정황이 제보 형식으로 검찰에 넘어갔고, 검찰이 계속 이 부분을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신라호텔 관계자는 “면세점 입찰 성공을 위해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성실하게 준비한 것을 두고 로비팀이라고 하는 것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무슨 특혜의혹뿐 아니라 어디선가 엉뚱한 이야기를 자꾸 만들어내는데 유치하기 짝이 없다”고도 했다.

특혜의혹이 불거졌던 때와 비슷한 시점에 이부진 상무를 겨냥한 괴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이 상무가 면세점 현장에 나타나 장부를 일일이 체크하면서 실적을 놓고 직원들을 지독하게 압박한다는 이야기였다. 이는 신라호텔로서는 이번 공항 면세점 진출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에 실질적 경영권자인 이 상무가 닦달했을 수도 있겠다는 관측과 맞물리면서 제법 설득력 있게 회자됐다.

‘바쁜 일 있더라도 일주일에 두 번 이상 꼭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체크한다더라’, ‘이부진 떴다는 말이 현장에선 제일 겁나는 소리다’, ‘이 상무 등쌀에 일부 면세점 관계자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말들이 나돌았다.

신라호텔 측은 이런 구설수의 진위를 묻는 물음에 정색을 하며 발끈했다. “절대 그런 일 없다”는 것이었다.

한 관계자는 “이 상무가 나서서 면세점 현장을 다니는 일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당연히 (이 상무는 공항 면세점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체크를 하고 있지만 본사에서 공항 면세점에 대한 현황을 보고 받았다”면서 “이 상무가 면세점 쪽으로 온 것은 지난번 (5월) 그랜드오픈 때뿐이었다”고 말했다. 현장에 수시로 나타났다는 말은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신라호텔 측에 따르면 이 상무는 임원으로 본사에서 전반적인 경영총괄을 하고 있고 면세점 현장에서는 관할 사업부가 알아서 모든 일을 진행하고 있다.

한편, 신라호텔 공항 면세점이 완전한 제 모습을 갖추려면 오는 11월말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탑승동 쪽 현재 영업 중인 ‘버거킹’ 자리가 추후 신라호텔 면세점 자리의 일부가 될 예정인데, 버거킹의 영업 계약 만료 기한은 11월말이다. 이 자리까지 면세점으로 채워져야 상황이 모두 종료되는 셈이다. 

이재용과는 다르다

각종 뒷말이 무성한 가운데서도 신라호텔은 일단 탄탄대로를 달리는 듯 보인다. 신라호텔이 여기까지 오기에는 이 상무의 역할이 컸다.

지난해부터 이어온 삼성특검으로 인해 결국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 등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구조조정본부가 해체되는 등 삼성그룹의 지휘구조가 송두리째 뒤흔들렸다. 전반적인 그룹 분위기가 어두운 상황이라 그런지 신라호텔의 승승장구하는 모습은 더 돋보인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재용과는 다르게 손대는 사업마다 잘 되는 이부진이 삼성그룹을 맡는 게 훨씬 나은 것 아니겠느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부진은 이건희 회장을 빼다 박았다’는 이야기가 곧잘 회자된다. 모 그룹 홍보실 관계자는 사석에서 “외모상으로도 이재용 전무보다 이부진 상무가 아버지를 더 많이 닮았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며 “이 상무가 아버지를 더 닮았다는 말뜻이 좀 묘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후계구도 이야기까지 심심찮게 나온다는 것이었다.
    


외모도 그렇지만, 주어진 혹은 자신이 추진하는 일에 예리하게 파고드는 꼼꼼함도 아버지를 꼭 빼닮았다는 평이다. 신라호텔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상무의 업무 스타일은 치밀하면서도 정열적이다. 호텔 경영의 핵심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그녀의 핵심 경영 모토는 ‘미래 성장 동력’에 맞춰져 있다. 임원들과의 회의를 한 달에 한 번꼴로 가지는 주된 이유도 이를 위해서라고 한다. 성장 동력을 체크하고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할지, 무심코 안주하고 있는 분야는 없는지 임원들과 ‘크로스 체크’ 한다. 

이런 이 상무의 모습을 두고 “앞으로 신라호텔이 어떤 성장 동력으로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인지를 고민하는 지극히 ‘이건희스러운’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하는 삼성 관계자도 있다.

그녀에게는 악착같은 면이 있다. 호텔 객실에 직접 투숙해 온도와 습도·공기청정도 세 가지 수치를 꼼꼼히 기록, 객실의 최적화 수치를 자동 시스템으로 구축할 정도다. 지시하는 데 그치는 법이 없다. 지시한 바를 꼼꼼히 확인하는 스타일 때문에 계획한 바가 비교적 차질 없이 진행되는 편이라고 한다. 

지난 2003년 이라크전쟁과 사스(SARS)로 호텔 업계가 최악의 불황을 맞았을 때 신라호텔의 레스토랑과 연회 부문은 사상 최대의 매출 실적을 올렸다. 공은 이 상무에게 돌아갔다. 이 상무는 2004년 1월 상무보에 올랐고 그 이듬해인 2005년 1월 상무로 진급했다. 상무보로 승진했을 당시 그녀는 해외 출장 중이었다. 자신의 승진 소식에 “뛰어난 경영진과 신라호텔의 일류 멤버들이 주위에서 많은 도움을 줘서 일에 매진할 수 있었다.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 앞으로도 배우는 자세로 최선을 다해 업무에 임하겠다”고 겸손한 소감을 전했다.

이 상무가 연세대 아동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1995년 삼성복지재단에 입사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경영일선에서 맹활약하리라는 기대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교육·복지·문화 쪽 관련 사업에서 품위 있는(?) 역할을 맡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오히려 설득력을 얻었다. 하지만 그녀는 선 굵은 경영인으로 성장하고 있다.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과장을 거쳐 지난 2001년 8월 신라호텔 기획팀 부장으로 옮기면서 서서히 진면목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재용 전무가 2000년 e삼성 사업을 말아먹었던 것과 자칫 비교될까봐 삼성에서는 이 상무의 활약상을 크게 소개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까지 있었을 정도다.

성공적 첫 단추…리모델링

이 상무는 기존의 것에 안주하는 것을 과감히 버리고 새롭게 바꾸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마누라 빼곤 다 바꾸라는 아버지 이 전 회장의 가르침을 고스란히 실천하는 듯한 모습이다. 이 때문인지 이 상무는 리모델링 작업에 남다른 심혈을 기울였다.        

이 상무는 지난 2006년 신라호텔을 크게 손봤다.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 레스토랑 ‘파크 뷰’뿐 아니라 로비와 연회장을 새로운 분위기로 단장했다. 이 상무는 리모델링 준비를 매우 철저히 했다. 리모델링에 들어가기 전 공사를 세 번이나 연기시킬 정도로 완벽을 기했다. 저녁 7시쯤 시작한 리모델링 회의는 새벽 2~3시까지 이어지기 일쑤였다고 한다. 이 상무가 주도한 리모델링 작업을 곁에서 지켜본 삼성그룹 관계자는 “공사 계획을 따져 보는 눈초리나 공사 현황을 살피는 빈틈없는 성격이 아버지를 빼다 박았더라”고 귀띔했다.

인천공항 면세점 리모델링 작업에도 특유의 집중력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신라호텔 측은 인천공항에 입점할 경우 연 수천억원대의 매출을 발생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뛰어들었다. 물론 진두지휘는 이 상무가 맡았다. 면세점 입점 티켓을 따내기 위해 이 상무는 특유의 깐깐함을 발휘했다.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실패율 0%’를 지향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던져진 승부수…구조조정 능력 시험대   

이 상무는 삼성특검으로 인한 그룹의 일대 변화 이후, 예의주시되는 핵심적인 삼성가 인물이다. 향후 후계구도와도 연관이 있어 보여 더욱 그렇다. 지난해 이 상무가 삼성석유화학의 최대주주에 오르면서 재계에서는 삼성의 후계에 대한 말들이 많았다. 삼성석유화학을 중심으로 화학 계열사들에 대한 구조조정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이 상무와 삼성물산의 삼성석유화학 지분 취득 이후 삼성석유화학은 제일모직, 삼성물산, 삼성전자가 분점하던 형태에서 삼성물산과 이 상무 쪽으로 급격히 무게중심이 쏠렸다. 삼성물산이 삼성전자를 포함, 그룹의 여러 계열사에 출자한 중립지대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상무의 위상 강화로도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삼성 안팎에서 화학 계열사가 이 전 회장의 둘째딸인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보에게 갈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는 점에서 이 상무가 삼성석유화학의 최대주주가 된 것은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삼성석유화학의 삼성물산과 이 상무 지분은 60.45% 규모. 이서현 상무보가 몸담고 있는, 삼성 계열사 중 가장 많은 삼성석유화학 지분을 보유했던 제일모직(21.4%)은 3대 주주가 됐다.

이서현 상무보가 제일모직 패션 쪽, 그리고 이 상무보의 남편 김재열 상무가 제일모직 케미칼 사업부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화학 계열사들은 이 상무보 부부에게 갈 것이란 관측이 대세였던 터라 이부진 상무의 삼성석유화학 대주주 등극은 의미심장했다.

삼성은 이 상무의 삼성석유화학 지분 인수에 대해 ‘창업주 가족이 책임을 진다’는 차원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이 ‘책임’ 이면에는 크게 얻을 수도 있고 크게 잃을 수도 있는 경우의 수가 있다.  

물론 이재용 전무와 이서현 상무보가 각각 몸담고 있는 삼성전자와 제일모직이 삼성석유화학 지분 인수에 참여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재용, 이서현 두 사람이 지분을 살 수는 없는 측면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원재료 가격 폭등과 중국의 저가공세 등으로 인해 삼성석유화학의 상황이 가장 어려울 때 이 상무가 최대주주로 나선 점을 두고 이런저런 해석들이 난무했다.

힘든 기업의 최대주주가 됐기 때문에 ‘독박’을 쓸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의외의 ‘대박’을 터뜨릴 수도 있다. TPA(폴리에스터 원료)를 생산하고 있는 삼성석유화학은 원재료 가격 상승과 중국의 저가공세 등으로 지난해 1200억원의 적자를 냈다. 누적적자도 많다.

이 상무는 이 기업에 사재 450억원을 쏟아 부었다. 삼성 일가에서 총대를 멘 모양새다. 업계는 삼성석유화학의 구조조정을 점치고 있다. 시원찮은 실적을 보이는 삼성토탈, 삼성정밀화학, 삼성석유화학, 삼성BP화학 등 석유화학 계열사들을 그냥 두고 볼 삼성이 아니라는 관측 때문에 구조조정설이 끊이질 않는다. 시점이 언제인지가 문제일 뿐 구조조정은 기정사실로 통한다. 이미 삼성석유화학은 사업 다각화를 구체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합작사인 삼성BP화학 측과의 의견대립 때문에 신사업 진출이 난항을 겪고 있다. 삼성 특유의 ‘경영 기동력’을 위해서는 지분 정리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삼성석유화학이 삼성BP화학의 지분을 사들여 독자경영의 틀을 마련한 다음 화학 계열사들의 경쟁력을 도모하는 절차를 밟을 공산이 커 보인다. 돈 안 될 것 같은 사업 분야를 정리한 후 가능성 있는, 그리고 꼭 필요한 곳으로 ‘선택과 집중’을 할 것이라는 얘기다.  

석유화학계열에 대한 구조조정이 진행될 경우 삼성석유화학 최대주주인 이 상무는 다시 한번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룹 경영의 핵심 중 핵심으로 통하는 구조조정 기량을 어떻게 펼칠지 삼성은 물론 재계 전체의 시선이 쏠릴 것이고, 이 상무에게는 자신의 새로운 면모를 알릴 수 있는 결정적 기회가 될 수 있다. 석유화학 계열사들에 대한 체질개선 작업이 성공적일 경우 이 상무는 경영 실력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녀에게는 ‘대박’인 경우의 수다.

이 상무는 하는 일마다 잘 풀려나가고 있다. 최소한 현재까지는 그렇다. 이 상무가 일하는 스타일을 가까이에서 본 사람들은 “칭찬 받을 만하다”고들 한다. 

신라호텔 관계자는 “신라호텔의 공항 면세점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있는 점은 정말 좋은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고 실제로 이 상무의 공이 절대적이라고 보지만 아버지(이건희 전 회장) 재판이 계속 진행 중인 상황에서 자식이 일 잘했다고 자랑하는 게 부담스러운 것이고, 그래서 우리로선 크게 내세우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 상무의 성장이 어디까지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녀에게 삼성그룹 회장 자리가 결코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