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볼 때 기술은 기업의 탄생, 성장 및 소멸에 결정적인 역할을 제공해 왔다. 새로운 기술지식으로 기업이 탄생되고, 또 다른 기술에 의해 그 기업이 사라져가기도 한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기술역량이 부족해 기업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니다. 당대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이라 해도 새로운 기술의 출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많은 신기술 중에서 어떤 기술이 그 같은 파괴적 영향력을 발휘할 것인지를 사전에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신기술은 초기에는 완성도가 부족한 미숙한 형태로 시장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런 초기 신기술은 시장에서 요구되는 성능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그로 인해 그 기술의 미래 가치까지 과소평가되곤 한다. 하지만 이런 신기술도 개량, 개선을 위한 꾸준한 투자가 이루어지면 그 성능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머지않아 시장의 요구조건도 충족시킬 수 있게 되고 그로 인해 기존 시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업을 위협한다. 신기술은 처음부터 기존 기술이 제공해주지 못하는 새로운 가치를-예를 들면 보다 우수한 디자인, 콤팩트한 사이즈 등-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기본 성능과 가격면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면 기존 기술보다 비교우위가 있기 때문이다. 기존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도 뒤늦게 신기술을 이용한 제품 개발에 뛰어들지만 신기술로 무장한 신생기업의 축적된 기술력을 단기간에 따라잡지 못하고 고전하거나 시장에서 퇴출된다. 기술 경쟁력은 누적적 특성을 갖고 있어 단기간에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 얼음 채굴 판매사인 튜더의 대응
미국 MIT대학의 어터백(Utterback) 교수는 19세기 미국 얼음 산업의 예를 통해 신기술에 대한 잘못된 대응으로 선도기업이 시장에서 영원히 사라져간 사례를 분석한 바 있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구체적 사례로서의 설득력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19세기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에서는 북쪽 지역의 자연 얼음을 채굴, 가공, 저장해 판매하는 튜더(Tudor)라는 회사가 있었다. 튜더는 자연 얼음을 채굴해 미국 전역과 카리브 해 지역, 브라질, 인도, 홍콩 등에 공급하는 소위 다국적 기업이었다. 튜더의 성공으로 1870년대 후반 미국 보스턴 지역에만 14개의 얼음 업체들이 생겼고, 얼음 생산량도 연간 약 70만 톤의 규모로 성장했다. 이 중에서도 튜더는 자연 얼음을 채굴, 가공하는 기술 및 장비 면에서 독보적 우위를 보유한 당대 최고의 기업이었다. 하지만 자연 얼음 채굴산업은 1880년대를 절정으로 점진적 하락세를 경험하게 된다. 전기를 이용해 얼음을 만드는 것보다 비교우위가 있는 냉동기술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기의 전기냉동 얼음의 생산원가는 자연 얼음보다 비쌌고, 그러다보니 전기냉동 얼음의 시장 점유율은 미미했다. 따라서 전기냉동 얼음 시장은 뉴올리언스와 같은 얼음 판매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싼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조금씩 성장했다. 당시 얼음 가격은 지역별 편차가 심했는데, 참고로 1860년대에 여름철 얼음 판매가격은 북부지방은 톤당 6~8달러에 불과했지만 남부지방은 125달러까지 올라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전기냉장 기술의 핵심인 진공압축 기술과 냉매 기술의 성능이 꾸준히 개선되었다. 그로 인해 1868년에는 톤당 35달러에 팔수 있는 전기냉동 얼음공장이 설립되었고, 약 20년 후인 1889년에는 약 200여 개의 전기냉동 얼음 공장이 미국 남부지역에서 얼음을 생산, 판매하는 시장 지배기업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 같은 기술의 변혁기에 자연 얼음을 채굴 판매하던 튜더의 대응은 어떠했는가? 결론적으로 요약하면 튜더는 당시 혁신적 신기술이었던 전기냉동 얼음제조 신기술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아니 못한 것이 아니라 안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냉동기술이 출현한 이후 약 20년 동안 시장에서 얼음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튜더의 매출이 줄지 않았던 것이다. 또 그 기간 동안 자연 얼음의 생산원가가 냉동 얼음보다 저렴했기에 자연 얼음 채굴 기업인 튜더는 냉동 얼음이라는 신기술의 잠재 위협을 초기에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결과 냉동 얼음 제조기술을 이용한 후발 신생기업들은 큰 저항 없이 얼음 시장에서 기술 경쟁력을 축적할 수 있었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것은 한참 후였다. 하지만 이후에도 튜더는 냉동기술 확보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튜더는 지금까지 80여 년간 사업을 하면서 익숙해진 자연 얼음 채굴 장비의 생산성 제고를 위한 기술의 개량과 혁신에 매진했다. 하지만 튜더의 자연 얼음 채굴 기술은 새로운 전기 냉동 얼음 제조기술의 비교우위를 극복할 수 없었고, 그 결과 튜더를 포함한 모든 얼음채굴 회사는 시장에서 영원히 퇴출되는 운명을 맞게 된다. 신기술에 대한 잘못된 대응으로 선도기업이 영원이 퇴출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8인치 하드디스크의 등장
좀 더 최근의 사례를 살펴보자. 초기의 대형 컴퓨터(Mainframe이라고도 한다)용 하드디스크는 그 크기가 14인치였다. 그러나 1978~1980년 기간 중 Shugart Associate, Quantom 등과 같은 신생업체들이 보다 작은 사이즈인 8인치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신제품을 개발했다. 초기의 8인치 하드디스크 제품의 저장용량은 10~40MB에 불과했고, 따라서 300~400MB 저장용량을 필요로 하는 대형 컴퓨터 제조업체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따라서 기존 14인치 하드디스크 제조사는 신생 8인치 드라이브 제조사를 자사의 경쟁사로 대응하지 않았다. 다행히 당시 Wang, DEC, HP 등 마이크로컴퓨터 제조사의 출현으로 8인치 신생제조업체들은 그들에게 제품을 공급하면서 생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8인치 하드디스크 기술의 지속적 혁신으로 8인치 제품의 저장용량은 매년 40%씩 신장했고 1980년대 중반부터 저가의 대형 컴퓨터 제조사에게 8인치 제품을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8인치 제품이 대형 컴퓨터 시장에 진입한 후 기존 14인치 제품 공급업체가 타격을 받기 시작했고, 그들도 뒤늦게 8인치 하드디스크 제품 개발에 착수하게 된다. 그러나 기존 14인치 하드디스크 제조업체 중 3분의 2는 8인치 제품을 만들어보지도 못했고, 결국 14인치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제조업체는 모두 시장에서 사라지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하드디스크 산업에서 이 같은 패턴은 계속 반복된다. 1980년 Seagate가 5.25인치 하드디스크를 최초로 개발하게 된다. 그러나 초기의 저장용량 5~10MB로는 40~60MB 용량을 필요로 하는 마이크로컴퓨터 제조업체의 관심을 끌 수 없었다.
다행히도 Seagate, Miniscribe 등과 같은 5.25인치 하드디스크 신규기업들은 그들의 제품을 새롭게 형성된 데스크톱 개인용 컴퓨터(PC) 시장에 공급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지속적 기술혁신으로 1980~1990년 기간 동안 5.25인치 제품의 저장용량은 매년 50%씩 성장했고, 나중에는 마이크로컴퓨터 제조사에게도 5.25인치 제품을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기존 8인치 제조사도 뒤늦게 5.25인치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제품 생산을 시도했으나 8인치 4대 제조업체 중 오직 Micropolis만이 5.25인치 제조사로 변신할 수 있었다.
미국 하버드경영대학의 클레이튼 교수의 ‘파괴적 기술혁신(Disruptive Technology)’ 사례에 나오는 내용이다. 하드디스크의 지배적 제품 규격이 14인치에서 8인치로 바뀌는 과정에 기존 14인치 제조사들이 시장에서 모두 사라지는 비운을 맞이하게 됐고, 또 8인치에서 5.25인치로 바뀌면서 기존 8인치 제조사 대부분이 시장에서 퇴출되는 위기를 맞는 사례다. 신기술 개발로 성공한 기업도 또 다른 차세대 신기술로 인해 시장에서 사라지거나 1등 자리를 내주는 비운을 맞이한다는 사례다.
재미있는 것은 기업 내부에서 개발한 신기술의 가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 다시 하드디스크 사례로 돌아가 보자. 5.25인치 하드디스크 제품에서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던 Seagate는 1985년 내부 연구원들에 의해 보다 콤팩트한 3.5인치 하드디스크 신제품을 자체 개발했다. 당시 Seagate의 주력제품은 5.25인치 하드디스크였고, 대부분 IBM과 같은 데스크톱 PC 업체들이 주된 고객이었다. 따라서 Seagate의 기술마케팅본부에서는 주요 고객의 하나인 IBM사를 대상으로 3.5인치 제품에 대한 시장조사를 실시했다.
개발 초기의 3.5인치 하드디스크 제품은 크기가 작다는 장점 외에 단위 면적당 저장용량 및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기존 5.25 제품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당연히 IBM은 3.5인치 제품에 대해 좋은 평가를 주지 않았고, 그로 인해 Seagate는 동 제품의 상용화를 보류했다. 고객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3.5인치 신제품을 기존 고객에게 팔면 그만큼 5.25인치 제품의 매출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개발의 주역이었던 연구원들이 3.5인치 하드디스크 제품을 전문적으로 생산, 판매하는 Corner를 만들어 창업하게 된다. Corner의 3.5인치 하드디스크 제품은 당시 소형 랩탑 PC를 만들고자 했던 컴팩사가 전량 구매했고, 그로 인해 Coner사는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확보하게 된다. 뒤늦게 Seagate도 3.5인치 제품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Seagate는 3.5인치 제품을 기존 데스크톱 PC업체에게 공급하려 했고, 그 성과는 미미했다. 당시 데스크톱 PC 업체들은 여전히 3.5인치 제품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Seagate는 망하지 않았다. 하지만 Seagate는 시장 점유율 1위의 자리를 신생기업인 Corner에게로 내주게 되었다.
새로운 기술 변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사례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마이크로프로세서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인 인텔이다. 원래 인텔의 주력제품은 반도체 메모리 제품이었다. 그러다 1980년대 저가의 안정적인 품질에 비교우위를 가진 일본 기업의 진입으로 인텔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고전을 겪게 된다. 그러는 중에 일본 기업으로부터 휴대용 계산기에 필요한 4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 개발용역을 의뢰받게 된다. 물론 성공적으로 개발을 완료했다. 그러나 개발에 참여한 엔지니어들은 개발기술의 소유권을 일본에 그대로 주지 말고 별도의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공동소유로 하자는 건의를 사장에게 하게 된다.
시장성 조사 하지 않았던 인텔의 성공
인텔의 사장은 그 의견을 수용했고, 그 같은 사건으로 인해 세계 최고의 마이크로프로세서 기업인 인텔이 탄생하게 된다. 인텔 사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만약 우리가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시장조사를 하고 투자 여부를 결정했다면 인텔이 지금과 같은 세계 최고의 마이크로프로세서 선도기업이 되지 못했을 겁니다’라고 이야기한다.
당시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장성 조사를 했더라면 긍정적 점수를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엔지니어들은 나중에 유사한 용역개발 요청이 올 때 또 참여할 수 있으려면 기술의 소유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경영진도 단순히 그 요구를 들어준 것에 불과했다. 당시 인텔의 기술개발 노력은 수익성이 계속 하락하고 있는 메모리사업부의 회생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회사의 전략적 기술개발 투자에도 메모리사업부의 영업성과는 계속 악화되었다. 반면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마이크로프로세서 사업이 IBM-PC의 본격적 출범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신기술 사업화는 회사의 전략적 의지도 중요하지만 지속적으로 시장의 니즈를 확인하고 그에 대응해 나가는 시장 순응형 전략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예다.
기업이 신기술의 전략적 가치 및 잠재 영향력을 처음부터 정확히 이해하고 대응한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전략적 기술경영 역량을 확보해야 하고, 또 확률적 투자 포트폴리오 원칙에 입각한 기술 전략 대안 검토가 필요하다. 기업들은 새로운 먹거리, 성장 동력을 찾는다고 하지만 아직도 과거와 같은 구태에 젖어 있는 경우가 많다. 중견, 중소기업 사장님들은 늘 신제품과 신사업 후보를 찾는다고 하면서 막상 후보를 알려주면 ‘이거 확실한 겁니까?’라고 되묻는 경우가 많다. 확실한 것을 누가 남에게 주겠는가? 설사 준다 해도 큰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실패의 위험도 감수해나가는 적극적인 투자를 해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또 천문학적 수치로 상승하고 있는 기술개발 투자에서 실패라는 것은 회사의 흥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료에 의하면 일회용 면도기 회사인 질레트가 마하3 제품 개발에 투입한 총 비용이 7억5000만달러라고 한다.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짙게 덮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비교우위가 있는 차별화된 기술 경쟁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수년 전 모 대기업의 총수께서 ‘그동안 우리의 성공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앞으로 5년 후 무엇으로 비즈니스 수익성을 만들어 내야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호되게 질책하기도 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 동안 우리 기업의 성과는 선진기업들의 성공사례를 후발주자로서 효율적으로 쫓아갈 수 있는 역량이 있었고 또 남보다 열심히 일하는 헌신적 노력을 통해서 만들어냈다. 보고 따라갈 수 있는 소위 ‘벤치마킹’ 대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제는 선진국과 대등한 기술 포트폴리오 게임을 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더 이상 보고 베낄 곳이 없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