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치열, 실적 정체,
미래 성장 동력도 한계…석화(石化)작용 중
지금은 화석으로 남은 공룡의 갑작스러운 멸종은 엄청난 자연재앙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공룡 멸망에 대한 여러 가설 중 하나가 빙하기의 도래로 공룡들이 갑자기 얼어 죽었다는 것이다. 커다란 운석이 느닷없이 우주 저편에서 날아와 핵폭발의 2만 배나 되는 어마어마한 충돌을 일으켰고, 이 때문에 생긴 미세먼지가 대기를 온통 뒤덮어 태양빛을 차단하면서 지구의 평균 온도가 뚝 떨어지는 빙하기가 닥쳤다. 이로 인해 백악기의 포식자 공룡은 갑작스러운 추위에 적응하지 못해 멸종하게 됐다. 공룡은 덩치는 컸지만 행동은 느렸고, 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잇따른 악재에 시달리고 있는 통신공룡 KT의 모습이 빙하기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멸망한 공룡과 별반 다르지 않다. ‘통신업계 맏형’, ‘통신공룡’ 등의 별칭에서 KT가 통신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조만간 이런 수식어 꼬리표도 떼어 내야 할 처지다.
6년째 12조 벽 넘지 못해
실적 정체는 KT가 짊어진 가장 무거운 짐이다. KT의 매출액은 2002년 민영화 이후 6년째 12조원대의 벽을 넘지 못하고 11조원 중후반을 맴돌고 있다. 올 초 남중수 당시 사장은 12조원 벽을 기필코 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7월 11조9000억원으로 매출 목표를 하향 조정했고, 이 매출 목표 달성도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이동통신 시장을 등에 업고 매년 4000억~5000억원씩 급성장하는 SK텔레콤이 KT를 추월할 분위기다.
KT는 3분기 동안에 매출액 2조9135억원, 영업이익 3294억, 분기 순이익 1614억원을 기록한 반면 SKT는 매출 2조8995억원, 영업이익 5041억원, 분기 순이익 3336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양사의 3분기 영업이익을 비교해 보면 SKT가 2000억원 앞섰고, 순이익은 SKT가 두 배 이상 앞질렀다.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도 KT 1조300억원, SKT 1조5910억원으로 격차는 더 벌어진다.
KT의 이 같은 부진은 유선통화량 감소 및 치열해진 결합상품 시장 등 여러 대내외 환경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지만 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결과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덩치 큰 통신공룡의 느린 행보가 발목을 잡은 것이다.
통신 시장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동안 ‘통신 시장 따로’, ‘방송 시장 따로’에서 이제는 방송·통신·인터넷·신문 등 미디어 환경이 융합되면서 컨버전스 경쟁이 본격화된 것이다. 컨버전스에 따라 경쟁은 더욱 다원화됐고, 통신 시장에 국한됐던 일차원적 경쟁은 방송과 통신 산업간, 대기업간의 복합적인 경쟁으로 확대, 전환됐다. 전국적인 네트워크 등을 바탕으로 통신 시장에서 리더 역할을 했던 KT가 완전경쟁체제에 접어들었다는 얘기다. KT가 중심이 됐던 경쟁구도가 재편된 것이다.
업계 전문가는 “통신 시장은 통신과 방송, 콘텐츠 등 이종 서비스간의 컨버전스가 가속화되고, 경쟁이 확대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고 있다”며 “통신 위주의 선순환 성장구조가 흔들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다 방송통신 융합으로 인해 유선전화 시장은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있으며, 그동안 급성장했던 초고속인터넷, 무선음성 시장은 시장 포화에 따른 뚜렷한 성장 정체를 겪고 있다. 유선통화량의 감소 추세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현상은 이미 꾸준히 제기됐던 부분이다. 최근에는 인터넷전화(VoIP) 번호이동까지 시행되면서 KT의 주력상품인 유선전화의 가입자 이탈이 더욱 본격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른 매출 감소추세도 더 뚜렷해질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KT 매출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유선전화 시장은 2001년에 약 8조3000억원에 달하는 최고 성적을 기록한 이후, 2002년부터 2008년까지 줄곧 줄어들고 있다. 연평균 -3.1%의 성장률을 보여, 매년 2000억원씩 줄어든 셈이다. 유무선 대체현상이 절정에 달했던 2003년에는 매출 감소가 5600억원에 달했다.
이러한 현상은 지속되고 있다. 6년에 걸친 매출 7조원 시대를 마무리하고 6조9000억원의 초라한 시장으로 전락할 운명이다. 이는 유선전화 시장의 가입자 수는 정체되는 가운데 유선전화의 이동전화 대체현상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인터넷전화에 의한 유선전화 대체현상도 이에 한몫을 하고 있다.
유선전화·초고속인터넷 실적 계속 하락
2007년까지 소폭 증가했던 유선전화 가입자 수도 감소하고 있다. 2008년 말 현재 유선전화가입자 수는 2007년 2313만 명보다 19만여 명이 줄었다. 올해 말에는 2286만 명으로 축소되고, 내년에는 인터넷전화로의 가입 대체 영향으로 인해 2250만 명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유선에서 무선으로 전환하면서 발생하는 LM수익과 이동통신을 팔아서 벌어들이는 무선재판매도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휴대전화 망내 할인요금 출시 등 이동통신과의 상대적 경쟁력도 약해지고 있어 타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SKT의 하나로텔레콤 인수를 계기로 음성전화 결합상품이 더욱 다양화되고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며, 이로 인해 유선전화 서비스의 매출액은 더욱 하락할 전망이다.
특히 일반전화 시장의 매출은 인터넷전화의 번호이동성정책으로 인해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전화는 1998년 서비스가 시작돼 근 10년 동안 기업을 중심으로 제한적 시장이 형성돼 왔다. 하지만 번호이동성제도로 인해 2009년 인터넷전화 가입자 시장 규모는 기업고객의 경우 2008년 추정치인 50만에 비해 약 20만 증가한 70만, 가정고객의 경우 2008년 추정치인 350만에 비해 약 400만 증가한 750만 가입자 시장이 형성될 전망이다.
내년 인터넷전화 서비스 매출액은 올해 전망치인 2100억원보다 약 600억원 증가한 2700억원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로 인한 기존 일반전화 시장의 매출 감소액은 약 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반면 이동전화 서비스 시장은 2007년 20조원 돌파 이후 그 성장세가 다소 둔화됐지만 내년에도 21조5000억원대의 시장 매출액을 기록하는 등 2011년에는 인구 대비 보급률 100%를 넘어설 전망이다.
KT의 주력사업 중 하나인 초고속인터넷 시장도 유선전화 시장과 마찬가지다. 초고속인터넷은 10여 년 동안 연평균 21%라는 고성장을 통해 유선전화 시장을 지탱하며 한국을 IT강국으로 끌어 올린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시장 포화로 성장 정체에 빠졌다. KT의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수는 매년 소폭 증가하고 있지만 시장 점유율은 2005년 이후 줄어드는 데서 이를 감지할 수 있다.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수의 지속적인 증가에도 100여개 이상의 사업자가 등장하면서 사업자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 심화로 인해 매출액 확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SK브로드밴드, LG파워콤, SO 등 후발 사업자들의 요금 할인 등을 앞세운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ARPU는 계속 감소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적 정체에 대해 KT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KT는 시내전화 사업과 초고속인터넷 사업 부문에서 시장 점유율이 50% 이하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행동반경에 제약이 있다. 하지만 단기에 설비를 구축하기 어려워 진입에 장애요인이 있을 뿐만 아니라 결합상품을 통한 KT로의 쏠림현상이 우려되는 만큼 KT의 시장지배적 사엄자 지위를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와 업계의 전반적인 판단이다. KT 측은 자율경쟁에 제동이 걸려 요금 인하 등과 새로운 서비스 시장 개척 등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KT 관계자는 “초고속인터넷 시장의 경우 플레이어가 많아져 경쟁도 치열해졌지만 KT는 여전히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발목이 묶여 있다”며 “요금 인하 하나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경쟁하겠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이 관계자는 “SK브로드밴드, LG파워콤, 케이블TV 사업자들의 가입자 확대 등 시장 상황이 급변하는데 KT만 손발 다 묶어놓는 꼴”이라고 불평했다.
3대 전략 사업 성장성 의문
실적뿐만 아니라 향후 성장성도 문제다. 신성장 동력으로 삼았던 사업들은 자리를 잡지 못해 KT의 애를 태우고 있다. 수년간 공들여 왔던 IPTV 사업과 와이브로(WiBro) 등은 좀처럼 어깨를 펴지 못하고 있다.
2006년 7월 SK브로드밴드(구 하나로텔레콤)에 의해 IPTV 상용서비스가 처음 시작된 이후 2007년에 KT, LG데이콤의 상용서비스가 연이어 출시됐다. 2008년 9월 현재 IPTV 서비스 가입자는 약 160만 명이 이르고 있다. 내년에는 약 350만 명의 가입자 시장으로 성장이 기대된다.
KT의 경우 그동안 문제가 돼 왔던 지상파 방송사간 실시간 TV 프로그램 재전송료 계약이 타결되면서 한 시름을 놓았다. 하지만 요즘같이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IPTV 커버리지 확대를 위한 대규모 투자비용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여기에다 치열한 방송 시장을 뚫고 안착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차별화된 콘텐츠를 확보하지 못한 점도 가입자 유치를 가로막는다. IPTV의 최대 장점이 양방향 서비스지만 현재는 케이블방송처럼 프로그램 프로바이더(PP)업체들이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나 지상파 방송을 시청하는 게 고작일 정도로 서비스 차별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06년 6월 서울 및 경기도 분당 등 수도권에서 세계 최초로 시작된 와이브로(WiBro) 서비스도 서비스 상용화가 시작도 되기 전 시장 위축이 우려되고 있다. 2008년 상반기에 20만 가입자를 달성하는 등 큰 폭은 아니지만 그동안 꾸준한 증가를 보였던 가입자 수는 2008년 9월 현재 오히려 17만 수준으로 감소했다. 와이브로는 이동하면서도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즐길 수 있는 서비스다. KT는 지난해까지 이 사업에 6700억원을 투자했고, 올해도 1200억원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여전히 대규모 망 투자비용, 킬러 서비스의 부재, 3세대 이동통신과의 경쟁 등 서비스 조기 활성화를 위해 많은 난제가 산적해 있다.
하지만 IPTV나 와이브로를 통해 기존 매출 감소분을 상쇄하고 성장으로 이끌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IPTV나 와이브로의 가입자 확보를 위한 마케팅 비용이 크게 증가하면 매출은 늘겠지만 비용도 함께 증가해 수익성이 악화된다는 우려에서다.
침체의 터널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최근 KT가 던진 승부수 중 또 하나는 해외 시장 공략이었다. KT는 1990년대 중반부터 국내 통신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 수익원을 창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해 왔다. 몽골, 베트남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CIS), 아시아 등 신흥국가에 대한 공략에 중점을 뒀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 와이브로 사업 등에 제동이 걸리면서 해외 사업 확대마저도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KT의 전체 매출에서 해외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 내외로 매우 낮다. KT 관계자는 “통신 산업은 대표적인 규제 산업이어서 시장 개척 등에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이 사실”이라며 “아직 해외 시장에서의 수익성은 미미하지만 차츰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납품비리로 인한 현직 사장의 구속과 사임에서 드러난 시스템 운영의 후진성이 더 큰 문제다. KT는 그동안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 5단체가 주관한 투명경영대상 대상을 수상하는 등 그동안 국내 투명경영 및 기업지배구조분야 상을 휩쓸어왔다. 하지만 현직 사장의 구속으로 내부 시스템은 외부에 비쳐지는 모습과는 완전 딴판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겉으로는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가 주요 경영현안에 대한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최고경영자와 이사회의장을 분리, 사외이사가 의장을 맡았고, 사외이사의 비중도 70%에 달한다. 또 사장추천위원회를 통해 사장을 선임하고 사장은 이사회와 경영계약을 맺고 성과연봉을 받았다. 이렇게 글로벌스탠더드에 맞는 시스템은 구축했지만 사외이사가 KT의 내부를 통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셈이다.
업계 전문가는 “KT가 민영화된 이후에도 예전 공기업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 것이 이번 사태로 드러난 것”이라며 “이러한 지배구조에 대한 자성과 함께 개선 없이는 혹독한 빙하기를 이겨낼 수 없다”며 환골탈태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내년 상반기로 예정돼 있던 KTF와의 합병도 미궁에 빠졌다. 현직 사장의 구속과 사임으로 인해 KTF와의 합병이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T는 KTF와의 합병을 통해 유무선통신 기업으로의 도약을 꿈꿨다. 두 회사가 합쳐진다면 2009년 통합KT의 예상 매출액(21조1460억원)은 합병이 성사되지 않았을 때의 두 회사 예상 매출액 합계보다 2670억원이나 많은 것이다. 또 2010년과 2011년에는 각각 4630억원과 5110억원의 매출액 순증효과를 누릴 것으로 예측됐다. 영업이익도 2009년 2340억원, 2010년 3370억원, 2011년 373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합병이 미궁으로 빠지면서 이러한 KT의 장밋빛 전망은 다시 멀어지게 됐다.
유무선 결합 서비스로 돌파구 찾아야
돌파구는 없을까. KT의 최근 위기는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위기는 곧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잘못된 관행으로 답습해 온 ‘공기업 KT’로서의 구태와 비대하기만 했던 조직이 효율화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KT의 3대 전략 사업인 IPTV, 와이브로, 인터넷전화 등은 미래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향후 방통 융합의 성숙기에는 부가가치를 제고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열어두었기 때문이다.
KT는 전국화된 네트워크, 마케팅 능력, 가입자 확보, 결합 서비스 강점 등 미래 성장을 위한 조건을 이미 갖추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KT의 전국적인 통신 네트워크는 어떤 사업자도 따라 잡을 수 없는 경쟁력”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전략적 차별화와 효율성 제고에 나선 다면 업계 우위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유무선 결합 서비스는 KT에겐 기회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유무선통신, 초고속인터넷과 IPTV, 와이브로 등을 완벽하게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결합 서비스에 경쟁력이 있으며, 이는 다가오는 광범위한 결합 서비스 시대에 방통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핵심요인이다. 정승교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 상황으로는 성장 정체가 고민스럽지만 미래 성장 동력의 힘으로 KT의 향후 성장성과 수익 안정성은 지속적으로 개선될 여지가 많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