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고장’이
어느새 ‘세계적 산악휴양도시’

태백산 준령 남쪽자락에 위치한 봉화는 예로부터 선비의 고장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경북 최북단에 위치한 이곳은 산세가 깊지만 험하지 않고 그윽하다. 전국에서 제일 많은 정자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명당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발길 닿는 곳마다 선인들의 멋이 담겨진 유서 깊은 문화유산이 즐비하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수려한 자연경관이 은은한 문화유산을 감싸 안은 모양새다.
봉화군의 랜드마크를 꼽으라면 우선 도립공원 청량산이 떠오른다. 명호면 북곡리에 있는 이곳은 ‘소금강’으로 불렸을 만큼 자연경관이 뛰어나다. 태백산 12 봉우리에서부터 이어지는 낙동강 줄기가 웅장한 기암절벽을 끼고 유유히 흐른다.
원효대사가 창건한 유리보전, 퇴계 이황이 수도하며 성리학을 집대성한 청량정사, 최치원의 유적지인 고운대와 독서당 김생이 공부하던 김생굴, 공민왕이 은신한 공민왕당 등 유서 깊고 다양한 역사 유적이 담겨 있다.
해발 800m 지점, 자란봉과 선학봉을 잇는 길이 90m, 높이 70m 규모의 국내 최대 최고 현수교량인 ‘하늘다리’는 청량산의 명물이다. 등산길이 험하지 않아 가족단위 등산으로 즐길 수 있다.
봉화군 동북쪽 석포면 청옥산 자연휴양림도 봉화의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 봉화-태백 간 국도변에 위치한 전국 최고의 자연휴양림인 이곳엔 산막, 학생야영장, 수련장, 숙박시절 등 편의시설이 완비돼 있어 여름철 삼림욕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쭉쭉 뻗은 소나무는 여느 지역 소나무보다 유달리 굵고 곧아 웅장한 느낌마저 든다. 청옥산의 백천계곡은 물이 맑고 풍부하며 수온이 낮아 청정수에만 자라는 빙하기 어족인 열목어가 산다. 이곳은 세계 최남단 열목어 서식지이며 천연기념물 74호로 지정되어 있다.
원효대사의 정성이 머문 곳
봉화 지역은 문화적 가치가 높은 고(故)사찰이 많다. 특히 원효대사와 인연이 깊다.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는 청량산 한복판에 청량사를 세웠다. 인근엔 27개의 크고 작은 절이 밀집돼 있다. 봉화는 그야말로 신라시대 불교의 요람이었다. 청량사에는 지방유형문화재 47호인 유리보전이 있는데, 고려 31대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머물렀던 사연이 있는 곳이다. 청량사를 둘러싼 산세는 높고 당당해서 압도적이다. 청량사를 산 중턱에서 내려다보면 ‘이래서 명당이라고 하는구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춘양면 석화리에는 각화사가 있다. 이 사찰도 원효대사가 세웠다. 신라 문무왕 16년 때였으니 청량사와 13년 터울이다. 부도, 석탑 등 유적이 잘 보존돼 있다.

사찰 2km 위에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5대 사고 중의 하나인 태백산 사고지(사적 제348호)가 있다. 조선 5대 사고 중 유일하게 미복원된 곳으로 조선 선조 39년(1605년)에 건립되어 1913년까지 300여 년간의 조선왕조실록이 보관됐다. 해방 전후 방화로 건물이 소실됐고 왕조실록은 건물 소실 전에 이관된 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돼 있다.
봉화군 서쪽 물야면 개단리에는 축서사가 있다. 신라문무왕 13년 의상대사가 부석사보다 3년 앞서 창건한 사찰이다. 의상대사가 인근 지림사에서 숙박하던 중 창문으로 빛이 비쳐 나가보니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서광이 비치고 있었고, 바로 그 자리에 사찰을 창건, 축서사라고 이름 지었다 한다. 이곳의 주변 경관 역시 ‘일품’ 그 자체다.
이몽룡 실존인물 생가 있는 ‘계서당’
봉화군은 약수로도 유명하다. 물야면 오전리에 위치한 오전약수탕은 조선 성종 때 어떤 보부상이 발견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물맛 좋은 초정대회에서 전국 최고의 약수로 판정받은 바 있다. 위장병과 피부병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연중 30만 명이 이곳 약수탕을 찾는다. 약수로 고은 닭백숙도 약수 관광의 명물이다. 오전약수탕과 4km 거리인 춘양면 서벽리엔 두내약수탕이 있다. 이곳은 오전약수탕, 봉성면 우곡리에 있는 다덕약수탕과 함께 봉화 3대 청정 탄산약수로 손꼽힌다.
봉화군 곳곳엔 크고 작은 문화유적이 즐비하다. 신라시대의 거대한 마애불좌상인 북지리마애여래 좌상(北枝里磨崖如來坐像; 국보 제201호), 조선조 황파 김종걸이 건립한 도암정(민속자료 제54호), 조선 중기 성리학자 김언구가 살던 쌍벽당(중요민속자료 제170호) 그리고 사적 및 명성 제3호로 지정된 계곡 일대에는 조선 중종 때 문신 권벌이 지은 청암정과 선생의 장자 청암 권동보의 석천정 등이 있다.

여러 유적들 가운데 가평리 계서당(중요민속자료 제171호)이 특히 흥미를 끈다. 조선 중기 문신 계서 성이성이 살던 곳이다. 근검과 청빈으로 이름이 높았던 성이성은 부제학으로 추서 받고 청백리로 녹선 받았다. 성이성이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소설 ‘춘양전’ 이몽룡의 실존인물이라는 논문이 발표되면서다.
봉화군 관계자는 “소설 이몽룡의 실제 모델이 성이성 선생이었는데, 이야기를 만들 당시 기녀와의 사랑 이야기가 윤리적으로 좋지 않게 비칠 것을 우려해 실제 성 대신 다른 성을 써서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의 원래 성씨는 ‘성’이었는데 ‘이’씨가 됐고, 여자 주인공의 성은 ‘이’씨였는데 ‘성’씨가 됐다”고 설명했다.
봉화의 매력은 사계절 축제에서도 찾을 수 있다. 매년 9월말에는 봉화송이축제가 열린다. 전국 최대 송이 주산지인 이곳 송이는 세계 최고 품질로 인정받는다. 지난 1997년부터 관광축제가 열리기 시작했다. 송이 채취 체험, 송이 판매장, 각종 문화공연과 전시행사 등이 운영된다.
7월말에서 8월초에는 은어축제가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은어잡기대회, 먹거리 장터, 물고기 전시관 등의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있다. 또 이 시기 운곡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강변을 무대로 명호이나리강변축제가 열린다. 민물고기잡기, 낚시, 래프팅 등을 즐길 수 있다. ‘이나리’란 순 우리말로 두 개의 물길이라는 뜻이다. 8월 중순에는 재산청량산수박축제가 열린다. 봉화의 명물인 복수박과 꿀수박 품평회 자리다. 봉화의 토속음식인 봉성돼지 숯불요리를 만끽할 수 있는 봉성돼지숯불구이축제가 또 이 시기에 열린다. 봉화는 푸짐한 특산물로도 유명하다. 봉화송이, 청량사과, 봉화고추, 청정 고랭지 딸기, 봉화청량쌀, 봉화화훼, 토종대추, 봉화잡곡, 봉화 복수박, 봉화한약우, 닭실한과 등, 이 지역 생산물 대부분이 전국적으로 유명한 특산물이다.
여행 이틀째 점심, 엄태항(60) 봉화군수는 봉성돼지숯불요리단지로 유명한 봉성면 봉성리의 한 식당에서 “이렇게 맛있는 돼지숯불고기를 먹어본 적이 있느냐”며 봉화의 자랑거리인 숯불돼지고기를 자신 있게 권했다. 암퇘지고기를 도톰하게 썰어서 소나무 숯불에 구워낸 솔향기 베인 고기가 맛있지 않을 리 없었다. 한약재로 쓰이는 당귀잎에 싸먹으니 뒷맛까지 향기롭고 개운하다.
“국내 최고의 청정지역인 봉화에서 나는 모든 것이 청정식품이고 또 약입니다. 도심에 사는 분들이 이곳 청정 봉화에서 좋은 기운을 듬뿍 얻어가길 바랍니다. 봉화군은 빼어난 청정 산악지형을 바탕으로 21세기의 세계적인 산간휴양도시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애정 부탁드립니다.”
친절한 봉화군 인심도 구수한 자연의 맛 그대로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