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회장 ‘경영 DNA’
“모두가 똑같이 물려받는 건 아니다”

대기업 자녀들이 기업을 물려받을 만한 충분한 자질이 있는가를 놓고 항상 논란이 분분하다. 재벌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경영권을 세습한다는 편견 때문이다. 경영진에 합류하려면 세심한 경영수업과 별개로 능력과 성과를 입증해야 한다. 자질이 부족한 자식에게 경영권을 넘기는 것은 회사는 물론 그릇이 되지 않는 당사자에게도 불행을 초래할 뿐이다. 물론 경영권이 승계된다 하더라도 세금만 정당하게 낸다면 문제 삼을 근거는 줄어든다. 이와 관련 삼성그룹과 신세계그룹은 아직까지 지분 승계가 끝나지 않은 반면 한솔그룹과 CJ그룹은 3세 경영체제를 갖췄다.
삼성그룹 황태자 이재용 전무 확실한 실적 목마름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부인과의 사이에서 1남3녀를 낳았다. 그의 외아들 이재용(40) 삼성전자 전무가 시험대에 올랐다. 부친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그를 둘러싼 후계구도는 관심의 초점이다. 이 전무의 무거운 족쇄였던 경영권 불법 승계 논란은 1심, 2심 법원의 무죄판결로 정당성을 확보했다.
그는 그룹 지주회사 격인 삼성에버랜드의 대주주다. 이제 할아버지가 설립한 ‘대한민국 최고기업’, 아버지가 키운 ‘글로벌 기업’에 이어 삼성그룹을 발전시킬 CEO의 능력을 입증하기만 하면 된다. 그것도 실질적이고 확실한 실적 말이다. 이 전 회장도 퇴진을 선언하는 자리에서 “이재용 전무는 어려운 해외 사업장에서 스스로 자질을 키워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전무는 2008년 10월 해외 순환근무를 위해 중국 상하이로 떠났다. 상하이를 베이스캠프 삼아 현안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경영수업을 쌓고 있다. 그러나 아직 삼성 안팎에서 뚜렷한 성과나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 것이 꼬리표다. 오히려 2000년 e삼성 등 인터넷 사업을 주도하다 1년이 채 안 돼 막대한 투자 실패로 계열사에 부담을 안긴 뼈아픈 전력이 회자된다. 특히 권한과 달리 책임지지 않는 모습은 비난 화살이 퍼부어지는 빌미를 제공했다. 이 멍에를 벗어던지려면 여건이 열악한 해외 사업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적을 내며 홀로서기에 성공해야 한다. 이때 추후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자질 논란을 피할 수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다.
이 전무는 1991년 삼성전자 평사원으로 입사, 1994년 과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7년간 유학, 2001년 상무보로 돌아왔다. 2003년 상무로 진급했고 2007년 전무가 됐다. 이는 검증된 다음 단계의 정규코스보다는 ‘삼성그룹 황태자’의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누이동생들이 계열사 임원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만 이들을 이 전무의 경쟁상대로 보는 삼성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오직 후계자는 이 전무가 유일무이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때문에 이 전무는 삼성이라는 거대한 울타리 속에서 ‘온실의 화초’로 경영수업을 받아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재계에선 삼성그룹 후계구도와 관련해 이 전무가 그룹의 주력 분야인 전자·제조업과 금융 계열그룹을 제외하곤 단계적으로 그룹에서 분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전무의 첫째 동생인 이부진(38) 신라호텔 상무가 호텔과 화학 부문을, 둘째 동생인 이서현(35) 제일모직 상무보가 패션·의류·디자인 부문을 담당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 이부진 상무와 이서현 상무보의 남편들도 경영수업을 받고 있기 때문에 단지 시기가 문제일 뿐 계열분리를 통한 독립 가능성은 농후하다.
이부진 상무는 1995년 삼성복지재단 기획지원팀에 입사한 이후 삼성전자 전략기획팀 과장, 해외인력관리팀 차장을 거쳐 2001년 8월부터 신라호텔에 둥지를 틀었다. 현재 그가 맡고 있는 업무는 경영전략담당. 신라호텔의 면세점 사업을 대폭 확장한 이 상무는 최대 현안이었던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권을 따내는 등 경영수완이 뛰어나다며 후한 점수를 받고 있다. 이서현 상무보도 경영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자신의 전공인 디자인(파슨스디자인학교) 부문에서 홀로서기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막내 윤형씨는 2005년 11월 뉴욕 맨해튼의 아파트에서 자살한 채 발견됐다.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 대권 접수 준비 중국 시장 열성
고 이병철 회장의 딸로 삼성에서 분가해 신세계그룹을 일으킨 이명희 회장이나 한솔그룹을 키운 이인희 고문도 처음엔 각각 계열사 한 개를 배분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룹의 규모를 키우며 경영능력을 뽐냈다.
신세계는 1991년 삼성그룹에서 계열분리해 독립했다. 정용진(40) 신세계 부회장의 모친은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며 삼성그룹 창업주의 막내딸이다. 이재용 전무와 동갑내기로 경복고 동창인 정 부회장은 2006년 9월 부친 정재은 신세계그룹 명예회장의 지분 등을 넘겨받아 2대 주주로 올라섰다.
막대한 지분 증여세도 냈다. 남매지간인 정 부회장과 그의 동생인 정유경(36) 조선호텔 상무는 이듬해 3월 시가 총액 3500억원에 해당하는 주식 66만2956주를 국세청에 현물로 납부했다. 이전까지 재벌들이 낸 상속·증여세 중 최대 규모였다. 정 상무는 조선호텔을 명품 호텔 반열에 올려놨을 뿐 아니라 신세계 명품 사업에도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이 회장의 아들인 정 부회장은 1995년 상무 입사, 2000년 부사장에 이어 2006년 부회장으로 점프했다. 당시 이 회장이 믿고 맡긴 전문경영인 구학서 부회장과 같은 반열에 올랐다는 점에서 ‘정용진 시대’가 열린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그는 중국 시장에 열성적이다. 예정된 후계자의 실적 쌓기와 무관치 않다. 화려한 성공은 순조로운 회장 등극의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회사 안팎에선 중국이 그 무대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중국에 이은 글로벌화의 제2전진기지 후보지로 정 부회장은 베트남을 공략할 계획이다.
그는 1995년 미스코리아 출신 스타연예인 고현정씨와 결혼했다가 2004년 결별했다. 글로벌 유통기업의 리더가 꿈인 정 부회장은 그룹의 주력사업인 유통(신세계)을 총괄하고, 여동생인 정 상무는 조선호텔을 맡을 공산이 크다는 게 재계의 추시각이다. 신세계그룹의 주력기업인 신세계 지분은 이명희 회장이 16.48%, 정용진 부회장 7.32%, 정유경 상무 2.52% 등이다.
한솔그룹 조동길 회장, 형들과 경쟁 통해 총수 등극
한솔그룹은 1991년 삼성그룹에서 분리됐다. 맏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의 몫이었다. 고 이 회장은 1968년 새한제지를 인수해 전주제지로 상호를 바꿨다. 전주제지가 삼성그룹에서 분리될 때 장녀 이인희 한솔 고문이 전주제지를 물려받았다.
이 고문은 3남2녀를 두었는데 막내아들이 두 형을 제치고 그룹 대권을 차지했다. 삼형제간의 신경전이 상당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한솔은 삼형제가 1997년부터 모두 부회장을 맡아 공동으로 그룹을 이끌었다. 장남은 금융을, 차남은 정보통신을, 삼남은 제지 부문을 맡았다.
결과적으로 삼남 조동길(53)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거머쥐었다. 그룹이 한창 어려운 상황에 처한 2002년 회장으로 취임, 성장동력을 재편했다. 이 고문이 능력 위주로 후계자를 점찍은 부친의 선택을 그대로 따랐다는 분석이다.
차남 조동만씨(55)는 한솔아이글로브 회장이다. 정보기술 관련 기업인 한솔아이글로브는 한솔그룹의 자회사는 아니지만 한솔가 기업이다. 장남 조동혁씨(58)는 한솔그룹 명예회장직을 맡고 있다. 조 명예회장은 한솔그룹 계열사 한솔케미칼의 최대주주(지분율 13.61%)다. 조동길 회장은 0.31%다. 다른 계열사들은 몰라도 한솔케미칼은 그룹 회장보다는 조 명예회장의 입김이 강할 수밖에 없다. 이동통신 사업 관련 비리 혐의로 조동만 회장은 법의 단죄를 받기도 했다.
한솔은 한때 계열사가 16개에 이르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수습 방안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한 내실 다지기였다. 계열사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한솔은 2005년 제지를 기반으로 소재와 솔루션 등 2개 핵심 사업군으로 그룹을 재편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을 듣는다. 그러나 한솔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너무 낮아 안심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 고문과 조 회장의 한솔제지 보유 지분율은 각각 3.51%와 3.23%에 불과하다. 한솔그룹은 삼성 위성그룹 가운데 규모가 가장 작다.

CJ그룹 이재현 회장 차명계좌 최대 위기 직면
삼성가 3세 중 가장 먼저 경영 전면에 나선 이는 이재현(49) CJ그룹 회장이다. 2002년 취임했다. 이 회장은 작은아버지 이건희 전 회장의 큰형 맹희씨의 장남이다. 한마디로 집안의 장손이다. 2001년 1월 할머니 박두을씨가 별세할 때까지 서울 장충동 집에서 모셨다. 이 회장 위아래로 누나, 동생이 각각 한 명씩 있다.
그는 삼성그룹 모태인 제일제당을 상속받아 경영수업을 받고 식품, 유통, 엔터테인먼트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며 현재의 CJ그룹을 성장시켰다. 삼성으로부터의 완전 독립은 1997년. 10년 후인 2007년 9월에는 지주회사로 전환했다. 이 회장은 지주회사 CJ(주) 지분 43.36%를 갖고 있어 경영권은 가장 안정적이다. 누나와 동생은 한 발 물러서 이 회장의 경영을 지원하는 형국이다.
삼성가 3세 가운데 유일하게 외국 유학 경험이 없는 국내파(고려대 법대)인 이 회장은 삼성과 무관한 씨티은행에 1983년 공채를 통해 입사했다. 그러나 선대회장이 제일제당 경리부로 자리를 옮기도록 했다. 그는 이후 1993년 잠깐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이사로 일한 것을 제외하고는 CJ(옛 제일제당)와 함께 했다.
제일제당은 1993년 삼성에서 계열 분리됐다. 한솔그룹, 신세계, 새한미디어에 이어 가장 늦게 삼성에서 떨어져 나왔다. 당시 이 회장은 제일제당 지분 21.91%를 소유하며 대주주에 올랐다. 하지만 경영은 외삼촌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지도를 받았다. 그러다가 2002년 CJ로 사명을 바꾸면서 손 회장과 함께 공동회장직에 올랐다.
‘은둔의 경영자’로 외부에 근황이 알려지지 않던 이 회장이 최근 최대 위기에 몰렸다. 차명계좌에 대한 관계당국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어서다. 경찰은 그룹 전·현직 임직원 명의의 차명계좌로 상속재산 등 수백억원의 개인재산을 관리해 온 이 회장의 소환조사를 검토 중이다. 이 회장은 차명으로 주식을 거래하면서 양도세를 내지 않은 혐의와 주식보유 변동사항을 공시하지 않은 증권거래법상 의무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CJ의 비자금 수사는 2007년 이미 있었다. 수원지검은 CJ개발(CJ건설)의 비자금 조성 혐의를 잡고 수사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물증을 잡지 못해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비록 무혐의로 판명됐지만 이미지 추락은 불가피했다.
이미경(51) 부회장은 창업주의 장손녀이자 이재현 회장의 누나로 2006년 CJ엔터테인먼트가 CJ그룹으로 흡수되면서 CJ그룹의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상당히 공을 들였고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며 분리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룹 안팎에서 분리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 상황. 이 회장의 남동생 재환씨(47)는 CJ 상무를 맡고 있다.
새한그룹 경영 실패 오너 일가 경영권 빼앗겨
새한그룹은 삼성가 3세의 불명예로 남아있다. 이재관씨는 1991년 사망한 부친(창업주 차남)의 뒤를 이어 서른 살도 되지 않은 어린나이에 새한미디어 대표이사사장에 선임됐다. 1995년에는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주)새한의 전신인 제일합섬의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1997년 새한그룹이 출범하면서 그룹의 부회장이 됐다. 모친이 회장이었지만 경영에 관여하지 않아 최고사령관 역할을 이재관 부회장이 맡았다.
문제는 경영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그룹의 실질적 총수에 올랐다는 것이다. 제일합섬의 그룹 편입 등을 계기로 대규모 투자에 착수한 것이 화근이 됐다. 사업전환과 구조조정에서 타이밍을 놓쳤다. 외환위기 이후 경영환경이 악화된 것도 고스란히 타격을 줬다. 그룹은 해체됐고 채권단 위주의 경영이 이어졌다. 실패한 오너 일가가 경영권을 빼앗겼음은 당연지사.
2002년에는 분식회계를 통해 1000억여원을 불법대출 받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구속 수감되는 아픔도 겪었다. 또 수사 무마 청탁 등을 위해 김홍업 전 국회의원(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 등에게 수억원대의 돈을 건넨 사실도 드러났다. 보석으로 풀려나긴 했지만 결국 집행유예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가장 뼈아픈 점은 부실기업인이라는 낙인이 찍혔다는 것이다. 재계에선 그를 통해 경영수업의 중요성을 거론한다. 삼성그룹은 고 이병철 회장의 뒤를 이어 이건희 전 회장이 대권을 물려받았고 한솔그룹, 신세계그룹, 새한그룹, CJ그룹 등이 계열독립 독자생존에 나섰다. 결과적으로 새한그룹을 제외하곤 그룹 규모를 엄청나게 확장시키며 역시 삼성가의 자존심을 드높였다.
삼성가 3세들이 본격적으로 경영 정점에 섰을 때는 삼성가의 깃발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점쳐진다. 문제는 최고경영자의 안목과 판단이 기업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는 글로벌 경쟁시대에서 경영 DNA에 대한 검증 없이 총수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자동 승계하는 관행은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의 이유이기도 하다. 외환위기 당시 대한민국을 대표하던 30대 재벌 중 부도로 쓰러진 16개 그룹 최고경영자의 상당수가 재벌 총수 자제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