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30대 이상 남성 중 금강제화와 에스콰이아 구두를 신어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지금처럼 구두 브랜드가 즐비하지 않았던 20년 전만 하더라도 금강과 에스콰이아는 ‘고급 정장구두의 대명사’였다. 대학입학·졸업, 첫 입사, 결혼, 진급 등 의미 깊은 일이 있는 이들에게 이 두 브랜드 매장은 유독 인기가 높았다. 두 브랜드는 반세기 전부터 국내 고급구두 시장을 양분하다시피해온 전형적인 라이벌이다. 금강제화 1954년, 에스콰이어 1961년 등 라이벌은 7년 터울로 탄생했다. 제화·패션업계가 전반적으로 불황이지만 2009년 제화업계 라이벌전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울 것으로 보인다.

구두명가 라이벌전 2009년 뜨거운 혈전 예고

금강제화는 제화·패션업계 맏형답게 앞서가고 있다. 금강은 리갈, 르느와르, 비제바노, 에스쁘렌도, 랜드로바, 버팔로 등 20여 개의 인기 브랜드를 갖고 있다. 총 130여 개 도시에 300여 개 유통망을 통해 지금까지 총 2억 켤레가량의 구두를 팔았다.

에스콰이아는 금강과 선두를 다툰다. 시장 장악력에선 금강 못지않은 성적을 올렸다. 2007년과 2008년 국가고객만족지수와 소비자만족도에서 금강에 1위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언제든 추월 가능한 격차다. 에스콰이아는 2009년에 거는 기대가 크다. 에스콰이아는 최근 유동성 위기 때문에 다소 위축된 모습을 보였지만 이랜드에 지분 30%가량을 넘기는 등 양사간 제휴로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될 것으로 보고 있다.

‘리갈스러운’ 금강 전략   

에스콰이아가 최근 주춤하는 사이 금강은 제화업계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잡았다. 매출, 소비자만족도 등 각 종목에서 명실 공히 1위다. 금강은 다양한 브랜드로 상품 다각화에도 성공했다. 지난 2003~2004년까지만 하더라도 에스콰이아와 1위를 놓고 각축을 벌였다. 당시 두 브랜드는 소비자만족도에서 공동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던 중 금강은 승부수를 던졌고 이것이 주효했다.

금강은 2004년 발 크기와 모양에 맞게 구두를 맞춤 제작해 주는 서비스로 소비자 만족도를 한껏 끌어올렸다. 서울과 부산 등 13개 주요 도시에 매장을 설치해 소비자들이 쉽게 맞춤형 제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동시에 디자인도 30여 가지로 늘려 소비자의 선택 폭을 넓혔다. 이 같은 맞춤 구두 등의 프리미엄 전략으로 금강은 에스콰이아와의 격차를 조금씩 벌이기 시작했다.

금강은 맞춤형 서비스 전략 등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동시에 ‘올드 브랜드’를 잘 보존했다. 대표적인 브랜드가 ‘리갈’이다. 1969년(상표등록 1973년) 처음 선보인 이래 현재까지 사랑받고 있다. 금강의 대표 브랜드이자 최장수 브랜드인 리갈은 어느새 정장구두의 대명사가 됐다. 현재까지 판매된 것만 해도 약 730만 켤레. 우리나라 남성 기준 3명 중 1명 이상이 리갈을 신었다는 계산이다. 리갈은 현재 금강제화에서 운영하고 있는 남성제품의 40%에 해당하는 매출을 기록하고 있으며, 2007년 단일 브랜드로 32만5000켤레나 팔렸다.

리갈의 베스트 디자인을 모은 ‘시그너처 라인(signature line)’은 1969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하게 사랑받은 리갈의 베스트 디자인을 모아 출시한 그룹이다.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까지 다양한 출생년도를 갖고 있는 리갈의 베스트 디자인은 리갈을 대표하는 윙팁(Wing tip: 날개 모양의 절개선)과 펀칭 장식의 클래식한 정장화를 비롯, 스트레이트 팁(Straight-tip: 일자 모양의 팁)과 몽크 스타일(Monk: 버클이 달린 구두) 등 총 13가지다. 

그 중 ‘MMT0001’은 리갈에서 출시된 최초 제품으로 장인의 손길로 탄생돼 반세기 동안 꾸준히 사랑받은 ‘디자인 넘버1’ 제품이다. 이 제품은 1969년 처음 선보인 이후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 리갈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다. 지난 2005년 현대적인 디자인을 가미해 재출시한 이후 ‘MMT1000’이라는 상징적인 번호로 지금까지 판매되고 있다. ‘MMT1000’도 현재까지 약 5만 족가량 판매되는 등 꾸준한 인기를 자랑한다.

‘MMT0001’의 특징은 정장화 고유의 윙팁과 펀칭 장식. 한때 ‘리갈풍’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굿이어(Goodyear)웰트라는 제법을 이용해 신발 속에 있는 코르크가 발 모형에 맞게 변형돼 신을수록 편안하고, 오래 신어도 처음 샀을 때의 구두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다. 소가죽과 버팔로 가죽을 사용해 견고하고 질긴 장점을 갖고 있다.

금강의 브랜드 전략은 간혹 ‘리갈스럽다’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유형에 접목하며 성장해온 ‘리갈’이 금강의 브랜드 전략을 가장 잘 대변하기 때문이다.  

금강은 최근 워킹슈즈, 컴포트슈즈 등 기능성 슈즈에 신경을 쏟고 있다. 시장 규모는 약 4000억원 정도다. 기성화 브랜드 중 로렐은 한 해 매출 550억원을 자랑하며, 금강의 기능성 브랜드 바이오소프(Biosof)도 200억원을 넘는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캐주얼의 대명사인 랜드로바에서는 국내 최대의 제화 브랜드답게 편안함을 강조한 워킹슈 라인을 지속적으로 출시해왔다. 특히 최근 고유가의 경향과 걷기를 통한 웰빙 생활 습관 확산, 캐주얼과 정장을 오가는 복장형태의 변화로 인해 워킹슈 라인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1위 탈환 꿈꾸는 에스콰이아

‘에스콰이아(Esquire)’를 외국 브랜드로 오해하는 이들이 간혹 있지만 순수 국산 브랜드다. 1961년 에스콰이아 창업주, 고 이인표 전 회장이 9명의 직원과 함께 현재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영플라자 건너편 33㎡의 판매장과 50㎡의 공장으로 시작한 에스콰이아제화가 오늘에 이르고 있다.

‘Esquire’는 씨, 님, 귀하 등의 뜻이다. 타인을 높여 부를 때 쓰인다. 편지에 수취인 성명 뒤에 붙이는 경칭으로 ‘Esq., Esqr.’ 등으로 줄여 쓴다. ‘Esquire’는 남성잡지 이름으로도 유명한데, 그만큼 ‘에스콰이아’란 단어는 서구적인 느낌이 강한 편이다.  

1960년대 초 에스콰이아 구두가 처음 등장했을 때 제품은 남성구두 일색이었다. 당시 고객들은 서구적인 것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 때문에 에스콰이아 브랜드 네임은 기업 성장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처음엔 ‘고급구두’ 주문 생산으로 시작했다. 100% 주문 제작이었다. 품질을 최상화함으로써 국내 최고급 구두 이미지를 만든다는 전략이었다. 좋은 가죽은 물론이고 재생원자재가 아닌 새 재료를 이용한 순고무 밑창을 사용하는 등 원재료에서부터 품격을 달리하는 전략을 썼다.

고급구두에 대한 수요가 계속 커졌다. 급기야 주문생산이 밀릴 지경에 이르렀고, 에스콰이아는 이탈리아와 독일 등지에서 고급구두 생산기계를 도입, 대량생산체제로 들어섰다.

설립 초기에는 디자인 차별화가 먹혔다. 초기에는 남성 군화가 시장을 주도했다. 에스콰이아는 군화 중에서도 흰색의 미국 해군단화를 주로 취급했다. 그러면서 디자인 분야에서 남모르게 힘을 키워나갔다. 미국의 유명한 구두 회사 카탈로그 등을 보면서 디자인을 구상하고, 무늬를 넣는 등으로 서양식 구두를 만들어 팔았다.

디자인 중심의 고급 남성화에 대한 인기는 여성화에 대한 주문으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업계 최초로 여성 전문매장을 오픈하기도 했다. 에스콰이아는 에스콰이아핸드백(현 에스콰이아콜렉션)을 설립해 여성 고객층을 끌어들이는 데에도 성공했다.  

에스콰이아는 21세기 아시아 지역 톱 브랜드의 패션 마케팅 회사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세워두고 있다. ‘브랜드 선호도 1위, 반복구매율 1위 달성’을 경영목표로 삼고 있다. 에스콰이아는 새로운 도약을 기대하고 있다. 금강과의 라이벌전에서 앞지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기 때문이다. 

에스콰이아는 이랜드그룹과의 제휴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할 처지다. 이랜드그룹은 에스콰이아 지분 30%가량을 인수하고, 에스콰이아와의 제휴를 통해 구두·잡화 사업을 강화할 계획이다. 에스콰이아와 이랜드 합작의 시너지효과가 어떻게 발휘될지에 따라 제화업계 라이벌전의 열기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치열하게 진행될 수도 있지만 싱겁게 끝날 수도 있다.

에스콰이아와 이랜드의 합작을 보는 업계 시선은 양 갈래다. 이랜드는 2007년 11월 에스콰이아가 운영하던 여성 예복 브랜드 ‘비아트’를 인수한 바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이랜드는 이번 에스콰이아 지분 인수를 통해 제화뿐 아니라 핸드백, 패션, 액세서리 등 잡화류 라인을 모두 챙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랜드는 그룹 아래 ‘데코’, ‘로엠’, ‘티니위니’, ‘후아유’ 등 60여 개의 패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에스콰이아 매장을 그대로 운영하면서 기존 패션 사업과 접목시켜 구두·잡화 상품 포트폴리오를 확장할 계획이다.

특히 아울렛 유통을 위한 제화 자체 브랜드(PB) ‘비욘드’를 갖고 있지만 에스콰이아와 같은 고급구두 브랜드는 없다. 이에 에스콰이아 구두를 업계 정상에 올려놓고 명실상부 구두·패션 분야 1인자가 되겠다는 각오다.

이랜드의 ‘현금 실탄’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할지도 관건이다. 이랜드는 대형마트 홈에버를 홈플러스에 매각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은 상태라 보유현금 규모가 패션업계 최강이다. 업계는 이랜드가 구두·패션·잡화 부문에 ‘올인’하겠다는 경영방향이 세워질 경우 금강을 추월할 여지는 충분하다고 본다.  

반면 에스콰이아와 이랜드의 합작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제화업계가 전반적으로 부진한 데다 수입 브랜드의 강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단의 ‘브랜드 업’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고전을 면치 못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에스콰이아가 이랜드에 지분을 내주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유동성 위기 때문이다. 업계는 에스콰이아의 유동성 위기를 원자재 가격 급등과 환율 폭등 등 외부적 요소와 방만한 브랜드 관리로 인한 고객 이탈 현상으로 빚어진 내부 요인이 맞물리면서 벌어진 일로 본다. 에스콰이아가 이랜드와의 합작으로 어느 정도의 시너지효과를 낼지,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tip   구두매장에 남성 직원이 많은 이유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자극하라?


구두매장에는 유난히 남성 직원이 많다. 왜일까.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그중 ‘신데렐라 콤플렉스’ 이야기가 꽤 유명하다. 구두매장의 남성 직원이 여성 고객들에게 구두를 신겨주는 것이 잃어버린 유리구두를 찾는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이 흥미로운 ‘가설’은 제화업계에서 정설로 통한다. 실제 매장 직원들은 이를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한다고 한다.

매장 직원이 손님에게 구두를 신겨주기 위해서는 일단 꿇어앉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이때 자신의 자세를 더 낮춘 상태에서 손님의 발을 잡은 채 위로 올려다 보다 눈이 마주치면-대개의 경우 이때 매장 직원은 ‘편하십니까’ 혹은 ‘불편하지는 않으십니까’라고 물어본다 - 여성은 순간적으로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특히 손님이 중년여성일 경우 젊은 남성 직원으로부터 이 같은 ‘왕비 대접’을 받게 되면 어떻게든 그 가게에서 뭔가를 구입해서 나온다고 한다.

스킨십의 중요성도 강조된다. 여성의 경우 대개 스타킹 차림이나 맨발로 구두를 신어보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발을 정성껏 감싸 잡는 ‘센스와 기술’이 고객을 감동시킨다는 것이다. 스킨십이 감동으로 이어지려면 각각의 손님에 따른 스킨십의 강도가 중요한데, 고난이도 기술이라고 한다.

손님으로 하여금 불쾌감을 느끼게 했다가는 판매는커녕 변태 취급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친절하면서도 감동적인 스킨십 때문에 단골이 유지되는 경우가 많아 매장 직원들은 스킨십의 기술을 중요하게 여긴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전미진씨(여·36·서울 신대방동)는 “누군가가 아주 소중하게 내 발을 다룬다면 무척 고맙고, 또 내색은 하지 않더라도 여자라면 설레지 않겠느냐”며 “어차피 서비스 차원이니까 남성 직원에게 발을 내주는 것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기왕이면 남성 직원이 더 좋다”고도 했다.

하지만 남성에게 자신의 발을 맡기기 싫어하는 여성들도 많다. 주로 젊은 여성들이 그렇다고 한다. 회사원 김아람씨(여·24·서울 망원동)는 “다른 사람이 내 발에 손대는 게 싫어서 남성 직원이 있는 구둣가게에 가기 꺼려 진다”며 “친구들도 나랑 거의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남성 직원이 부담스러운 여성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에 특별히 여성 직원들로 구성된 구두매장이 따로 운영되기도 한다.

김동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