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약이 판치는 세상이다. 비아그라에서부터 항암제에 이르기까지 인기 높은 약이라면 언제든 등장하는 짝퉁 약품 때문에 하루에도 수천 명이 목숨을 잃는다. 중국과 인도의 가짜 약 제조업자는 분필가루, 먼지, 구정물을 섞어서 생산한 약을 세계 시장에 유통시킨다. 인터넷을 통한 약 구매가 보편화한 세상에서 이 독약은 언제든 당신을 찾아갈 수 있다.

The Deadly World of  Fake Drugs

듬직한 체구의 수레쉬 사티(Suresh Sati)는 쾌활한 사내다. 인도 북동부의 작은 도시 출신인 그는 지금까지 살아온 50평생 중 절반 이상을 가짜 상품 적발에 바쳐 왔다. 델리의 한 호텔에서 사티를 만났을 때 나는 그가 자기 일을 무척 즐기고 있음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사티의 일과는 짝퉁 상품이 거래되는 델리의 도매시장 곳곳에 신분을 위장한 채 잠복해 있는 요원들을 둘러보는 일로 시작된다. 그들은 새로 등장한 공급책이나 부패한 경찰에 대한 정보를 서로 주고받는다. 사티와 함께 최근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는 델리의 한 시장을 찾아 나섰다. 그는 자신이 처음으로 짝퉁 적발에 나섰던 일을 이야기하며 추억에 잠긴 듯 미소를 지었다. 1981년 가짜 TV 안테나를 제조하는 공장이 그 대상이었다. 그때에 비하면 사티의 업무는 크게 달라졌다. 오늘날의 모조품 제조산업은 재정도 든든하고 치밀하게 조직화되어 있으며 위협적이다. 현재 사티는 ‘수호자(The Protector)’라는 이름의 기업을 운영한다. 이 회사는 다국적기업의 의뢰를 받아 짝퉁 제조범들을 추적, 검거한다. 그가 주력하는 분야는 가짜 약품이다.

다음 날 델리 주택가의 수수한 빌딩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다시 사티를 만났다. 그가 추적하고 있는 적이 누구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는 최근에 신분을 속이고 구입한 가짜 약과 지난주의 단속에서 적발한 가짜 약을 보여 주었다. 이윽고 그는 약병 두 개를 꺼내 놓았다. 박테리아 감염을 치료하는 항생제인 액체 에리스로마이신 병이었다. 병 하나는 진품이지만 다른 하나는 그가 압수한 것으로 델리의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수돗물이 들어 있었다. “어떤 게 가짜 같소?” 하고 사티가 물었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 둘은 완벽하게 똑같아 보였다.

가짜 약 밀매업은 지난 10년 사이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불법 사업 중 하나로 떠올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현재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일부 지역에서 팔리는 약의 30% 이상이 가짜일 것으로 추정한다. 2010년께면 전 세계에서 거래되는 가짜 약품은 750억달러어치에 이를 전망이다. 이는 2005년보다 95%나 늘어난 수치다. 가짜 약품 유통의 심각성은 최근 단속 건수가 크게 늘고 있는 데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2006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유럽 각국의 세관 당국이 270만 개의 가짜 약품을 압수했다고 보고했다. 이는 그 전해보다 무려 384%나 늘어난 단속 실적이다.

가짜 약품은 짝퉁 고급 핸드백이나 할리우드에서 막 출시된 DVD의 불법 복제품과 똑같은 방식으로 제조, 유통된다. 겉보기에는 진짜와 전혀 구별할 수 없는 모양으로 대량생산해 시장에 풀어놓음으로써 이익을 취하는 방식이다. 가짜 약을 거래하는 중간상들은 다른 짝퉁 상품도 함께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똑같은 가짜라도 가짜 약이 다른 위조품과 다른 점이 있다.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동안 가짜 약품으로 널리 제조된 것은 발기부전 치료제, 진통제, 발륨과 같은 신경안정제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약들이었다. 이들은 주로 부유한 나라에서 유통되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사이에 가짜 약 제조범들은 생명에 직결되는 약품으로 시장을 확대했다. 암, 에이즈/HIV, 중증 심장병 등의 치료약에 가짜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진통제나 안정제와는 달리 이런 약품은 주로 개발도상국에서 유통된다. 중병에 대한 가짜 치료약 때문에 한 해 100만 명 정도가 목숨을 잃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그 대부분은 개발도상국 국민이다. 이 위험한 약품은 부유한 나라로 점차 영역을 넓히고 있다. 작년에 미국인 95명 이상이 중국에서 생산된 헤파린(혈액 응고 방지제)을 먹고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 숨졌다. 미국 식품의약국 관계자는 문제의 헤파린 제제가 가짜 약이나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가짜 약 중에는 유명 제약회사의 약품을 제대로 복제한 약품도 있다. 복제약으로 불리는 이 약품은 정확한 원료를 정확한 비율로 배합해 위생적으로 만드는 가짜 약이다. 물론 이 약은 지적재산권을 침해한 제품이지만, 제대로 복제되었기 때문에 적어도 그 자체로 위험하지는 않다. 불행히도 가짜 약을 제조하는 이들의 목표는 신뢰할 만한 제품 생산이 아니라 돈벌이다. 따라서 그들은 내용물보다는 포장을 완벽하게 복제하는 데 주력하며, 이렇게 겉으로만 진짜를 닮은 위험한 약품을 시장에 내놓는다.

가난한 나라는 효과적인 감시 단속 체제를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모조약 제조범들은 가난한 나라를 최고의 시장으로 삼는다. 과거에는 미국과 같은 선진국 시장은 뚫기가 어려웠지만 지금은 인터넷 때문에 사정이 달라졌다. 인터넷의 익명성과 광범위성을 활용하면 단속을 피하는 우회로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현재 캐나다제 복제약이라며 팔리는 약품 중 상당수는 중국이나 인도에서 생산된 가짜 약이다. 이 모조품들은 두바이, 이집트, 러시아를 거쳐 유럽과 북미 지역으로 반입되어 팔린다. 2007년 가을에 영국 세관 당국은 수백만달러어치의 가짜 비아그라를 유통시키려던 조직을 적발했다. 이 약품은 인도, 파키스탄, 중국 등에서 생산된 것으로 영국에서 재포장된 뒤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한 35개 나라 고객에게 온라인으로 판매될 예정이었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현재 인터넷으로 살 수 있는 약품의 절반가량은 유효 성분에 대한 간단한 테스트조차 거치지 않은 것들이다.

그러나 가장 우려스러운 일은 이러한 가짜 약에 대한 단속이 미미하기 짝이 없다는 점이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그렇다. 단속할 여력이 없는 이 나라들은 가짜 약의 제조와 유통에 속수무책이다. 내가 인도의 모조 약품 단속원 사티와 하루를 보낸 날, 그는 아침 7시에 나서서 밤 12시 직전까지 거리를 돌았다. 그가 매일 이렇게 열심히 일하지는 않는다 해도 그의 일이 멈추지 않으리라는 점은 틀림없다. 가짜 약과의 전쟁은 결코 이기는 싸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한 사람을 잡으면 두세 명이 새로 나타나는 판이다”고 말한다.

정식 약국에서도 버젓이 판매

의약품을 대상으로 해 가짜 제품이 대량 유통된다는 점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진품의 값이 비싸기 때문에 가짜 약 사업은 수지맞는 장사가 될 수밖에 없으며, 전 세계에 걸쳐 소비자도 무궁무진하다. 게다가 가짜라는 점을 알아차리기도 어렵다.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으면 환자는 병이 심해서 그렇다고 이해할 뿐 약의 품질을 의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국내 복제약 생산을 권장하는 정책 때문에 해외에서 수입되는 약품에 대한 관리가 부실해지는 상황도 가짜 약품이 시장으로 밀반입되어 유통되는 데 유리한 기회가 된다.

가짜 약품은 그 유통 구조가 복잡하고 관련자들이 약의 출처를 은닉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므로 국제적으로 유통되는 가짜 약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정확히 짚어내기란 매우 어렵다. 그러나 가짜 약품을 감시하고 단속하는 관계자 거의 모두가 지적하는 진원지 두 곳이 있다. 바로 중국과 인도다. 내가 말라리아 약을 대상으로 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 분야의 가짜 약품 60~80%가 이 두 나라에서 흘러나왔다. ‘공공을 위한 의약센터’ 의장인 피터 피츠(Peter Pitts)는 “가짜 약의 압도적 다수가 아시아에서 나온다. 적게 잡아도 50% 이상이다”고 말한다.

중국과 인도의 가짜 약 제조업자들은 매우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다. 어떤 제조책은 합법적인 제약회사에서 일하는 정식 직원이다. 이들은 업무 이외의 시간을 활용해 조악한 재료를 써서 가짜 약을 만든 뒤 이를 범죄 조직에 팔아넘긴다. 또 어떤 제조업자들은 빈민가에 둥지를 틀고, 재료를 삽으로 떠서 건설용 콘크리트 믹서기에 넣고 돌려 약품을 만든 뒤 거리에 내다 판다. 어떤 업자는 분필가루로 아스피린을 만들고 락토오스(유당)로 비아그라를 만든다. 이들은 가짜 약의 외형을 진짜처럼 보이도록 만들기 위해 치밀한 작업을 하는데 그래야 정식으로 약국에서 팔리거나 외국으로 수출하는 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좀 더 치밀한 제조업자들은 가짜 약에 진짜 성분을 조금 섞어 넣기도 한다. 의약품에 대한 화학 검사를 통해 가짜 약의 유통을 차단하려는 당국의 단속망을 통과하기 위해서다. 인도 델리의 전 경찰청장 비자이 카란(Vijai Karan)은 “인도인은 무엇이든 가짜로 만들 수 있다. 인도에서는 검정색 상표가 붙은 고급 위스키가 스코틀랜드에서보다 더 많이 팔리는 지경이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도 정부는 가짜 약품이 광범위하게 유통되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점을 강력히 부인한다. 인도 정부의 주장에 따르면 시중에 유통되는 약품 중 가짜 약은 0.4%에 불과하다. 이것은 터무니없는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세계보건기구가 내놓는 수치는 20%에 근접하며, 일부 전문가는 30%대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인도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이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외국의 약품 검사 당국이 인도에서 제조된 가짜 약을 적발하고 수입 금지 조처까지 내려도 인도 정부는 해당 기업이 그대로 활동하도록 그냥 내버려 둘 정도다.

지난 1월, 사티와 나는 우타르 프라데쉬 주의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한 시간 이상 달려서 가짜 약을 만드는 한 ‘약 공장’을 찾아갔다. 델리 남쪽으로 90마일 떨어진 인구 100만 명의 도시 알리가르 외곽에 있는 이 공장은 말이 좋아 공장이지 실상은 그저 허름한 작은 주택에 지나지 않았다. 집 안에서는 공사 현장에서 쓰이는 시멘트 혼합기가 분필의 원료인 석회암 가루와 먼지를 뒤섞고 있었다. 이 반죽은 알약으로 찍혀 나와 진통제가 되어 팔려나갈 것이다. 공장에는 직원 열 명가량이 바삐 일하고 있었다. 이들은 평생 자기 마을 밖을 나가본 적이 없을 정도로 가난한 주민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불법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도, 자기네가 만든 가짜 약이 근처 도시의 약국 판매대에서 팔린다는 것도 모르는 듯했다.

인도에서 가짜 약품의 본산으로 유명한 도시는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다. 아그라는 최근 몇 년 동안 눈부신 실적을 보이며 불법 약품 생산과 유통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아그라에서 가짜 약이 거래되는 주요 도매시장은 세 곳인데, 그 중 무바라크 마할 시장이 가장 크다. 3층 규모인 이 시장에는 작은 약국 500여 곳이 입점해 있다. 아그라시립병원의 약사인 우다이 샹카르(Uday Shankar)에 따르면 이 약국들에서 팔리는 약품의 20% 정도는 가짜이며 이 거래액은 하루 500만달러를 넘는다. 또 다른 시장인 파운틴 시장에서도 50개 이상의 약국이 정식 복제약뿐만 아니라 불법 가짜 약을 함께 취급한다. 그러나 샹카르는 가짜 약이 가장 많이 거래되는 시장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 바로 S.N. 의대(S.N. Medical College) 주변에서 활동하는 180여 개의 약국이 그것들이다. 샹카르는 “의대 병원의 의사 대부분은 환자가 이 시장 안의 특정 약국에서 약을 사도록 처방한다. 이것은 환자가 제대로 된 약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배려인 경우도 있지만 가짜 약을 사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인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의사들이 이렇게 환자를 특정 약국에 몰아주고 그 대가를 받는다고 믿고 있다.

가짜 약의 일부는 라제쉬 샤르마(Rajesh Sharma) 같은 거대 공급책으로부터 나온다. 델리 외곽의 하리아나 주에 위치한 이 공급자는 가짜 약 생산 분야에서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그는 주문자의 요구에 따라 약품의 성분을 조작해 생산하는 고객 만족 시스템으로 특히 유명하다. 그가 생산하는 약품의 일부는 유명 제약회사의 항생제나 진통제와 거의 유사한 화학 성분을 유지한다. 그러나 어떤 약품은 화려한 포장 안에 들어 있긴 하지만 플라시보(위약)에 지나지 않는 것들도 있다. 무엇을 만들지는 주문자가 무엇을 원하고 얼마를 지불하려는가에 달려 있다.

샤르마가 다루는 약은 한 해 수백만달러어치인 것으로 추정된다. 델리 외곽에 생산시설 서너 곳을 갖추고 있는 그의 사업은 성장일로에 있다. 그러나 악명 높은 가짜 약 제조업자인 파벨 가르그(Pavel Garg)에는 미치지 못한다. 가르그는 하루에 수백만 알의 가짜 약을 생산해 유통시킨다. 가르그는 신분을 위장한 BBC 기자에게 가짜 약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하리아나 주 주지사에게 고급 자동차 벤틀리를 뇌물로 제공한 적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게 엄청난 뇌물을 바쳐야 하지만 그 덕분에 가짜 약 사업은 매우 순조롭게 굴러간다.

소규모로 생산되는 제품과는 달리 샤르마나 가르그가 생산하는 가짜 약품은 해외로 팔려나간다. 내 동료가 아프리카 남부의 한 나라에서 찾아온 고객인 것처럼 위장하고 샤르마의 생산 조직에 접근했을 때 그는 강력한 결핵 치료제인 리팜핀을 그 약효를 줄여서 제공하겠다고 제의했다. 진품의 15% 효과만 나게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그는 “15%면 진짜보다 훨씬 싸게 먹히면서도 색소 검사 따위는 가뿐히 통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돈벌이로만 따지면 이런 전략은 무척 매력적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약효라면 환자에게 아무런 치료효과를 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병원균의 내성을 키워서 다른 처치까지 곤란하도록 만들게 된다.

정부도 제약회사도 속수무책

국제 사회가 라제쉬 샤르마나 파벨 가르그 같은 대형 공급자를 추적하면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닌가. 그러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말처럼 쉽지가 않다. 세계보건기구는 그 동안 가짜 약품과의 싸움을 소리 높여 외쳐 왔지만 막상 가짜 약의 유통을 허용하는 회원국을 자극하는 일은 하려 하지 않는다. 불행히도 대규모 희생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실질적인 행동이 취해지지 않으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지난 4월 내가 만난 영국의 의약품 안전 전문가는 “알카에다에 대해 실질적인 대응이 시작된 것은 9·11테러가 터진 이후였다”고 말했다.

사정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는 또 있다. 중국, 인도, 북한, 태국, 베트남 등 가짜 상품 제조가 성업 중인 나라는 종종 오히려 규제를 풀기 위해서 애쓴다. 인도의 가짜 약 문제가 정부의 의도적 무시와 활발한 불법유통 구조 때문이라고 한다면 중국 정부는 좀 더 공식적인 채널로 개입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 중국 군부가 그것이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상하이와 홍콩의 취재원들은 놀라운 사실을 내게 전해 주었다. 소규모 가짜 약 제조 공장이 중국 북부의 군사기지 안에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의료 전문가들은 가짜 약에 대해 중국 정부에 항의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들은 부패한 중국 정치인들이 뇌물을 받고 그 대가로 가짜 약 생산 공장들을 비호한다고 믿는다. 작년 중국 정부는 의약품 관련 부서의 책임자를 뇌물수수 혐의로 처형했다. 그러나 문제의 또 다른 당사자인 가짜 약 제조업자들은 강력히 처벌하지 않았다. 인접국인 태국에서는 정부 기관인 의약품기구가 지난 몇 년 동안 품질이 의심스러운 약품을 직접 생산해 왔으며, 각 병원이 양질의 수입 약 대신 값싼 이 약품을 강압적으로 쓰도록 했다. 영국 보안 담당자의 말에 따르면 외국 돈이 필요하면 위폐를 찍어 쓰는 북한에서는 가짜 약 제조업이 중요한 국가 재정 사업이기도 하다.

논리적으로 보자면 가짜 약과의 전쟁에서 최전선에 서야 할 측은 서구의 제약회사다. 그들 자신의 브랜드를 지키는 싸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비아그라를 생산하는 화이자는 이 약품의 가짜 복제품을 퇴치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양날을 가진 칼이기도 하다. 가짜 약 제조업자를 지나치게 공공연히 몰아대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유통되는 약의 상당수가 가짜라는 인식이 퍼지면 진품의 매출조차 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대형 제약회사는 가짜 약,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유통되는 가짜 약을 추적하는 데 소극적이다. 2005년에 옥스퍼드대 교수이자 세계 최고의 말라리아 전문가 중 한 명인 니콜라스 화이트(Nicholas White)는 영국 거대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을 맹비난한 적이 있다. 이 회사가 생산하는 소아용 말라리아 치료제 할판의 유사품이 가나에 떠돌아다니고 있었는데도 환자들에게 제대로 경고하지 않아서였다. 어린이 수천 명이 이 가짜 약을 복용하고 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은 아무 정보도 숨긴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내가 나이지리아와 가나의 의료 전문가를 만나 조사한 결과, 이 회사가 침묵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정부가 수준 이하의 제품 생산을 보호하는 것처럼 거대 제약회사도 이를 묵인할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다.

개발도상국에 의약품을 원조하는 비정부기구도 가짜 약 유통 구조의 사슬에 얽혀 있다. 이 기구들은 예산을 절약하고 더 많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종종 중국과 인도에서 생산된 복제약을 구입한다. 여기에는 충분한 검사를 거치지 않은 약도 포함된다. 이 약품 중 상당수가 적정한 정도의 약효를 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두 나라는 전반적으로 품질 관리가 미흡하기 때문에 기준에 못 미치는 가짜 약이 진짜와 섞여 공급망에 끼어들 가능성이 매우 많다. 가난한 나라의 인명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인도주의 기구 앞에는 어려운 선택이 기다리고 있다. 값 비싸고 질 좋은 약으로 적은 수의 사람을 치료할 것인가, 아니면 약효가 없을지도 모르는 값싼 약을 대량 공급할 것인가.

이처럼 관련 당사자들이 대부분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 지켜보는 가운데 가짜 약 산업은 더욱 성장하고 진화하는 중이다. 자유무역지대가 확대되고 인터넷을 통해 가짜 약을 팔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는 세상에서 가짜 약품 산업과 맞서 싸우려면 국제적인 협력을 바탕으로 한 공동 대처가 필수적이다. 다행스럽게도 상황이 달라지기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이 전쟁에 뛰어드는 용감한 개인들이 있다. 문제는 이들이 힘들게 성과를 이루어 놓아도 너무나 쉽게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나이지리아 짝퉁 약과의 전쟁

54세의 약학 교수인 도라 아쿠닐리(Dora Akunyili)가 나이지리아의 의약품 감시 기구 책임자로 임명된 때는 7년 전인 2001년이었다. 그는 이 책임자 자리가 결코 쉽지 않은 자리임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나이지리아에서 유통되는 약품의 70%가 가짜거나 저질품이라고 평가되는 상태였다. 그런 상황인데도 아무런 조처도 취해지지 않았다. 정부 관리들은 부패에 찌들어 있었다. 아쿠닐리는 국가 자금을 재원으로 하는 의료 사업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이 사업이 끝나자 남은 돈을 국가에 반납했다. 당시 대통령은 그의 정직성에 감동해서 그를 의약품 감시 기구의 책임자로 임명했다. 아쿠닐리에게는 가짜 약과 맞서 싸워야 할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다. 그의 여동생이 1988년에 가짜 당뇨 약을 먹고 사망한 것이다. 감시 기구를 맡은 아쿠닐리는 가짜 약품의 해악과 이를 둘러싼 정부의 공모를 폭로하는 충격적인 사례를 수집했다. 그는 “나이지리아 국민은 1970년대 초반부터 가짜 약을 먹고 죽어온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한다.

아쿠닐리에 따르면 부패한 정부 관리들은 정상적인 약품 공급자를 쥐어짜내 돈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가짜 약을 공급하는 측으로부터도 뇌물을 받고 유통을 허용했다. 1995년 나이지리아는 인접국인 니제르가 벌이던 뇌막염 퇴치 노력에 원조를 제공한 적이 있다. 이때 공급된 백신이 가짜임이 밝혀진 것은 무려 6만 개가 배포되고 난 뒤였다. 이 가짜 백신 때문에 2500명 정도가 숨졌다. 가장 큰 문제는 광범위하게 퍼진 가짜 말라리아 치료제였다. 나이지리아에서는 해마다 260만 명이 말라리아에 시달리며, 그 중 5000명 정도가 사망한다.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말라리아 약 신제품의 3분의 1은 가짜다. 돈이 없어서 값싼 가짜 약을 산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죽어가는 것을 하릴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쿠닐리는 가짜 약을 유통시키는 검은 조직을 상대로 하여 치열한 싸움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불법 약품 관련자 60명 이상을 기소했으며, 현재도 비슷한 수의 업자를 조사하고 있다. 그가 지휘하는 감시 기구는 2006년에 오니차 동남부의 시장을 급습해 정품과 똑같은 딱지가 붙은 가짜 약 80트럭분을 압수했다. 대중을 상대로 한 캠페인도 성공적이었다. 2005년 한 해에만 가짜 약 1600만달러어치가 압수나 자발적 신고를 통해 회수되었다. 아쿠닐리의 노력에 힘입어 나이지리아의 가짜 약 비율은 2002년의 70%에서 작년에는 16%로 떨어졌다. 그는 올해 이 수치를 10% 가까이로 낮추겠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만족할 정도는 아니지만 과거보다는 훨씬 나아졌다”고 평가한다.

가짜 약 조직과의 전쟁을 시작한 아쿠닐리는 개인적으로 매우 값비싼 대가를 치러왔다. 2003년 그가 탄 자동차는 습격을 받았다. 총알은 가까스로 그의 머리를 비켜지나갔지만 함께 있던 직원은 현장에서 즉사했다. 2004년에는 그의 사무실이 방화로 전소되었다. 현재 그는 24시간 경호원을 대동하고 있다. 아쿠닐리가 특히 가짜 약 업자들의 눈엣가시인 것은 이들이 무거운 처벌을 받도록 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가 감시 기구에 부임하기 전에는 가짜 약 업자가 적발되더라도 기껏해야 80달러 정도의 벌금을 내고 3년 징역을 살면 끝이었다. 대부분의 업자는 감옥에는 물론 재판정에조차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다. 경찰에게 미리 손을 써놨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가짜 약 사범은 마약범보다 가벼운 처벌을 받지만 벌금이 대폭 늘어 1000달러 이상인 경우도 흔하게 됐다. 철창 안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도 몇 시간에서 몇 년으로 대폭 늘어났다. 이렇게 가짜 약과의 싸움은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쿠닐리는 파렴치하고 부패한 사업가와 정치인들이 자신을 자리에서 쫓아내고 과거의 호시절을 되찾고 싶어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또 매일 인도와 중국의 관료들과 씨름하는 일도 쉽지 않다. 나이지리아에 들어오는 가짜 약은 대부분 이 두 나라로부터 수입된다. 그는 “두 나라 모두 가짜 약 생산과 수출을 막으려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도의 경우 가짜 약 업자들을 처벌하는 법이 유명무실하다는 점도 한 원인이다.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작년까지만 해도 모조품 제조로 적발된 사람은 제대로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현재도 그저 처벌하는 시늉만 내고 있는 정도다. 그러나 약간의 희망도 있다. 인도 정부는 지난 7월 불법 복제품 제조사범에 대한 벌금을 250달러에서 최대 2만5000달러로, 징역도 5년에서 최대 10년으로 대폭 늘리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더 많은 조처가 뒤따라야 한다. 여전히 적발된 업자가 재판에까지 이르는 경우는 드물다. 뇌물을 받은 경찰이 초기단계에서 이들을 눈감아 주기 때문이다. 내가 인도의 가짜 약품 단속요원 사티의 사무실에 있을 때 본 일이다. 지역 경찰들이 찾아와서 현재 기소 중인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그들은 사티더러 기소를 포기하라고 10여 분을 설득했다.

가짜 약은 없느니만 못하다

도라 아쿠닐리나 수레쉬 사티 같은 사람들이 가짜 약을 막기 위해 개인적으로 큰 노력을 기울이며 공헌하고 있지만 주요 공급처가 차단되지 않으면 이들의 노력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것은 현재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강도 높은 국제 감시 체제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더 중요한 것은 가짜 약과 맞서 싸울 결연한 의지와 재정적 뒷받침이다. 이 싸움이 용감한 몇몇 개인에게 맡겨져 있어서는 안 된다. 만일 아쿠닐리에 대한 다음번의 공격이 제대로 성사되었을 경우 나이지리아가 지금까지 이루어온 가짜 약 퇴치 성과는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게 뻔하지 않은가.

가짜 약 산업은 급속히 성장, 진화하고 있다. 상황은 개선되기보다는 악화될 가능성이 더 크다. 현재는 중국과 인도가 주요 공급처지만 다른 몇몇 나라가 언제든 그 뒤를 따를 태세다. 러시아의 가짜 약 산업은 이미 한 해 3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소규모 업체도 급속히 성장하는 중이다. 이집트는 중국산 가짜 약이 유럽과 미국으로 유입되는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한다. 심지어 테러조직까지 얽혀 있다. 2006년 3월, 미국 연방수사국(FBI)는 브라질, 캐나다, 중국, 레바논이 연결된 모조품 유통 조직을 적발했다. 이 조직의 자금은 헤즈볼라로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희소식도 있다.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약품에 대한 무작위 추출 검사가 더욱 쉽고 빨라졌다는 점이다. 휴대용 분광계는 약품의 성분을 불과 몇 초 만에 판독해 낸다. 이런 장비를 세관 당국에 확대 지급한다면 정식 경로로 수입되는 가짜 약을 신속히 적발해 폐기시킬 수 있다. 그러나 기술이 할 수 있는 일은 어디까지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가짜 약 산업을 보호하는 국가는 명시적으로 공개되어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아야 한다. 또 국제 원조 단체들은 엄밀한 검사를 거친 약품만 구매해 배포해야 한다. 이 말은 만일 검사되지 않은 약과 차라리 약이 없는 상황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경우 후자를 선택해야 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도라 아쿠닐리의 접근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가짜나 품질이 조악한 약품은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라고 잘라 말한다. 바로 이것이 가짜 약에 대한 유일한 처방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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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P 이 기사는 미국 워싱턴의 카네기국제평화단(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이 격월로 발행하는 <Foreign Policy> 2008년 9·10월호에 게재된 것으로 <Foreign Policy> 한국어판을 발행하고 있는 폴린폴리시코리아와 <이코노미플러스>의 기사 제휴에 의거, 게재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참고문헌들

가짜 약품이 국제 사회에 미치는 해악에 대한 분석은 로저 베이트(Roger Bate)의 <죽음의 제조자들: 가짜 약 사업의 위험한 그림자(Making a Killing: The Deadly Implications of the Counterfeit Drug)>(Washington: AEI Press, 2008)를 참고하면 된다.

세계보건기구의 웹사이트에는 가짜 약 현황, 여행자 안전수칙, 가짜 약을 가려내는 요령 등이 실려 있다. 가짜 약과의 싸움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제약회사, 비정부 기구, 각국 약품 당국 등의 연합체인 IMPACT의 웹사이트가 제공한다. 가짜 약 때문에 말라리아 퇴치가 얼마나 왜곡되는가는 의료 관련 비영리 기구인 ‘말라리아와 싸우는 아프리카’의 웹사이트에 나와 있다.

캐더린 이반(Katherine Eban)이 쓴 <위험한 약: 가짜 약은 어떻게 미국 약품 시장을 오염시키는가(Dangerous Doses: How Counterfeiters Are Contaminating America's Drug Supply)>(Orlando: Harcourt, 2005)는 플로리다 남부의 가짜 약 유통 조직을 파헤치는 일류 단속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았다. 나이지리아의 약품 감시 기구 책임자인 도라 아쿠닐리(Dora Akunyili)는 가짜 약을 다룬 BBC의 다큐멘터리 <나쁜 약(Bad Medicine)>에 등장한다. Foreign Policy의 편집장인 모이세스 나임(Mois?s Na?m)은 <불법: 밀수, 밀거래, 불법 복제는 어떻게 국제 경제를 좀먹는가(Illicit: How Smugglers, Traffickers, and Copycats Are Hijacking the Global Economy)>(New York: Doubleday, 2005)에서 가짜 상품들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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