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교수는 얼마 전 미국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의 주요 정책결정기구에 최고의 경제학자들이나 금융인들이 모여 있음에도 최근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나 금융위기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이유를 분석한 일이 있다. 이 글에서 크루그먼 교수는 집단동조화를 중요한 정책 실패의 이유로 꼽았다.

집단동조화(pressure for conformity)는 어떤 집단에서 다수의 의견에 반하는 의견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지칭하는 심리학 용어다. 소수의 자기 의견을 주장하고 관철시키려 하기보다는 본인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다수의 집단의견에 동조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크루그먼 교수는 특정 집단에서 저명한 사람일수록 튀기를 싫어하고 집단 전체의 의견에 따라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했다.

집단동조화에 대한 유명한 실험으로 1951년 에쉬(Asch)라는 사회심리학자가 행한 선분 길이 맞추기 실험이 있다. 실험실에는 총 5명의 사람들이 있는데 이 중 4명은 미리 실험 내용을 알고 실험 진행자와 입을 맞춘 가짜 실험 참가자고 나머지 한 명만 아무것도 모르고 참가한 진짜 실험 참가자였다. 진행자는 한 선분을 보여주고 명백히 다른 세 개의 선분을 보여준 후 처음 보여준 선분의 길이와 같은 선분을 맞추라는 실험을 했다. 미리 짠 가짜 실험자들이 누가 봐도 틀린 선분을 정답이라고 계속 ‘우기는’ 상황을 연출했을 때 한 명의 진짜 실험자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결과는 놀랍게도 진짜 참가자의 3분의 1 이상이 명백히 틀린 답임에도 가짜 참가자들이 말한 틀린 답을 따라 했다. 이렇게 틀린 다수의 답을 따라간 실험 참가자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내가 잘못 본 것 같아서”, “다른 사람들이 비웃을 것 같아서”라는 답변이 제일 많이 나왔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정보가 옳은 정보라고 생각한다든지 집단에서 이탈되지 않기 위해 다수의 의견에 동조하는 경향을 들 수 있다.

남 하는 대로 따라하는 주식투자

우리가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행동도 이러한 집단동조화의 현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주식의 경우를 보자. 매일 동일한 종목에 대해 매도·매수가 이루어지는데 그 종목에 대한 리포트는 매수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식이라는 것이 오름이 있으면 내림이 있는 것이 당연한 사실인데 늘 나오는 리포트는 매수 일색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제 성장률이나 환율, 유가 전망 등도 마찬가지다. 세계 유수의 연구소나 국내 연구소 등에서 나오는 전망치는 한 군데 숫자만 보면 다른 연구소의 숫자는 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비슷비슷한 숫자를 내 놓곤 한다. 얼마 전 국내 모 경제연구소에서 용감하게 유가를 대세의 의견과 다르게 전망해 히트를 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개인 투자자들도 이런 투자의 집단동조화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2007년 하반기에 단 며칠 만에 특정 펀드에 몇 조원의 돈이 몰린 경우는 분명 집단동조화의 한 현상이었다고 생각된다. 하지 않으면 나만 투자 세계에서 바보 되는 느낌이었으니까. 최근 몇 년간의 펀드·주식 열풍이나 부동산 투자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겠다는 동조심리로 본인의 자산상태나 리스크 감수 정도 등 반드시 체크해 보아야 할 기본사항은 까맣게 잊어버리고-애써 무시한 경우도 있었다― 무분별한 투자에 나선 후유증을 전 국민이 함께 앓고 있는 셈이다. 남들도 돈 잃었으니까 내가 돈 잃은 것에 조금 위안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남의 돈이 아니고 내 돈이 중요한 것이다. 남이 얼마를 벌든 잃든 내 손 안에 있는 돈이 중요한 것이다.

이번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경기 침체를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위기에서 기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을 것이다. 좋을 때는 기본을 좀 건너뛰어도 큰 문제가 없지만 나쁠 때는 기본을 지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투자 결과는 엄청나게 크게 벌어진다. 투자 목적, 기간, 리스크 감수 정도 등 교과서에 나오는 투자의 기본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새해의 자산관리에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