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땐 누구나 다 어렵다”는 말이 한국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벌어진 소득 격차만큼 희망도 엇갈리고 있다. ‘있는 사람’들의 즐거운 비명 뒤로 ‘없는 사람’들의 힘겨운 신음과 화병이 이어진다. 그 모습은 전당포에서도 역력히 드러난다. ‘영세 전당포’의 퇴출 위기는 이미 오래전 얘기인 반면, ‘명품 전당포’엔 문지방이 닳도록 손님들이 드나든다. 사상 최악이라는 경제 위기를 비웃는 듯하다. 한때는 절박한 삶의 ‘구원처’로 통하던 전당포마저 급이 나뉘는 현장을 서울시내 60여 곳을 통해 취재했다.

명품만 대우하는 전당포…

서민 급전대출은 어디에서?

중년의 한 남성이 손목에 차고 있던 700만원(원가)짜리 롤렉스 시계를 내보였다. 유심히 시계를 살펴보던 종업원이 감정가를 내놓았다.  

“팔면 200만원 정도, 위탁으론 300만원 중간 정도를 받을 수 있겠네요.” 종업원은 이어 “시계를 담보로 대출을 받을 경우 170만원 정도를 월 4부 이자로 융통해줄 수 있다”며 중년 남성의 답변을 재촉했다. 5분여 머뭇거리던 중년 남성은 결국 10일 후에 찾으러 오겠다며 대출을 받아갔다.

매장 한쪽에서는 루이뷔통 가방 3개를 놓고 20대 여성 손님과 점주 사이에 흥정이 한창이었다. 20대 여성은 갖고 있던 명품 가방 3개를 맡기고 돈을 대출받을지, 아니면 그냥 팔아버릴지 망설이고 있었다.

“손님은 120만원 주고 샀지만 살 때 가격만 생각하면 안 되죠. 이걸로 대출받아 쓰고 나중에 갚아도 됩니다. 급하지 않으면 우리한테 팔아달라고 의뢰하든지 아예 저희한테 팔든지….”

“그래도 그 가격에 팔기는 너무 아까운데….”

“62만원에 3만원 더 쳐드리겠습니다. 어때요?”

결국 루이뷔통 가방은 65만원에 낙찰됐다.

1월6일, 압구정동에 위치한 한 전당포의 모습이다. 이곳에서는 명품을 담보로 급전을 대출해 주거나 중고 명품을 위탁 판매한다. 옛날 전당포와는 확실히 그 모습이 다르다. 쇠창살도 없고 매서운 눈빛의 점주도 없다. 오히려 매장은 백화점의 명품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루이뷔통, 구찌, 페라가모 등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에 이르는 명품 가방에서 수천만원짜리 롤렉스 시계까지 죄다 내로라하는 명품만 즐비하다.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의 양쪽 골목엔 명품 전당포 20여 곳이 밀집돼 있다. ‘중고 명품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는 입소문을 타고 몰려든 사람들 덕분에 이 거리는 늘 북적거린다. 하지만 최근에는 물건을 사는 사람보다 팔려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는 게 전당포 관계자들의 말이다.

“아무래도 업종이 경기에 민감하다 보니까…. 기존에 사러 오는 손님보다 물건을 팔거나 대출 받으러 오는 손님들이 20%에서 40% 정도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다음날, 청담동 ‘캐시캐시’ 본점도 문전성시다. 정승관 캐시캐시 대리는 경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이곳 매출은 “괜찮은 편”이라며 “불황 때문인지 명품을 맡기고 대출을 받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고 말한다. 장사가 잘 되는 날에는 70~100여 명이 찾는다고 한다. 대출을 받은 뒤 찾지 않은 물건은 현장이나 인터넷을 통해 판매한다. 인터넷으로도 하루 수백 건씩 문의가 쇄도한다는 정 대리는 “급전이 필요한 젊은이들이 인터넷으로 대출 안내나 감정 상담을 받는 경우가 실제 사무실을 찾는 경우보다 더 많다”고 말한다.

점포에는 명품 4000여 점이 보관돼 있다. 버림받은 저당품도 포함된 수치다. 에르메스 가방이나 루이뷔통 핸드백, 브라이트닝 시계, 다이아몬드 등이 주된 취급품목이다. 이곳 역시 웬만한 명품이 아니고는 명함도 못 내민다. 과거의 전당포가 물건의 ‘쓰임새’를 금전가치로 환산해 돈을 내줬다면, 요즘 명품 전당포에서는 물건의 ‘명품 지명도’를 놓고 대출해주기 때문이다.

캐시캐시의 명품담보대출 금리는 연 18∼48%. 카드빚을 감당하지 못해 아끼던 물건을 내놓은 젊은 여성이 주 고객이다. 최근에는 골프채 세트를 맡기고 사업자금을 대출하려는 자영업자도 늘어나고 있다. 고객들의 100%가 물건을 맡기면서 다시 찾아간다고 약속하지만, 이자가 밀리면서 맡긴 물건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요즘 중소기업들 많이 힘들지 않습니까. 그런 분들이나 자영업자들이 주로 찾고 있습니다. 보통 금융권에서 담보대출 한도를 넘겨 돈 구하기가 힘들어지니까 이곳을 많이 찾는 것 같습니다.”

그 사이 매장에 들어온 30대 남자가 붉은 헝겊주머니를 내민다. 순금 10돈이다. 남자가 푹신한 소파에 앉아 커피 한잔 하면서 기다릴 동안 점원은 물건을 찬찬히 살핀다. 잠시 뒤 대출 장부를 꺼내 남자의 인적사항 등 몇 가지를 적은 점원은 40만원을 내어준다. 대출 가능 한도는 대출 희망자가 가져온 물품에 따라 보관 상태, 브랜드 인지도, 정상가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한다. 보통 매장 가격의 40~50% 정도 수준에서 대출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대출 가능 한도는 ‘내주는 사람 마음’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대출 상환기간은 일반적으로 1~3개월로 정해져있지만 이 역시 상황에 따라 연장해주는 곳이 많다. 그렇다고 대출금의 이자까지 마음대로 늘어나는 고무줄은 아니다. 대부업법이 정한 이자 상한선(연 49%)에 따라 이자는 월 4%를 넘을 수 없다. 또 만 20세 이상이면 개인 신용도에 상관없이 누구나 이용 가능하다. 간단한 신분조회 절차만 거치면 된다. ‘사금융 신용대출을 받자니 부담스럽고, 명품을 팔자니 아까운 사람들’에게 좋은 수단이 돼 주는 것이다. 반면 아무리 둘러봐도 이들 전당포에 ‘맡길 것’ 하나 없는 서민들의 입맛은 씁쓸하기만 하다.

귀금속과 명품만 취급

쭈뼛거리며 들어서는 손님과 그런 손님을 의심의 눈초리로 쏘아보던 주인, 낡은 금고…. 이제는 기억조차 아련해진 예전의 전당포 풍경이다. 그곳에는 고객이 가져온 물건을 샅샅이 훑는 전주(錢主)의 차가운 시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철창사이로 내민 물건이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설명하며 ‘조금만 더 달라’고 애원하는 고객에게 값을 더 쳐주기도 하고, 학생증이나 주민증 한 장에도 버스비 정도를 내어주는 따스함을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일 뿐이다.

지난해 12월29일, 녹슨 쇠창살 안에서 주인 홀로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신림동의 한 전당포를 찾았다. 손때에 전 초인종과 손바닥만 한 철창문은 명품 전당포와 극단적 대조를 이뤘다. 오후 늦어서야 첫 손님이 찾아왔다. 최근 일자리를 잃었다는 안모씨(31·무직)가 내놓은 물건은 300만원 상당의 카메라. 점주는 슬쩍 보더니 단칼에 잘라 말했다.

“금이나 귀금속 외에는 절대 사절입니다.”

전자제품 같은 값어치 없는 물건을 받아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무엇이든 받아준다’는 전당포의 옛말이 무색함을 느끼게 했다. 해당 점주는 “전자제품은 워낙 새것이 빨리 나오니 받으면 손해만 본다”며 “금이나 귀금속 외에는 보관하는 비용만 더 들 뿐 물건을 맡기고 찾아가는 사람은 30~40%도 되지 않아 처치 곤란일 뿐”이라고 했다.

강동구 천호동의 한 전당포를 찾은 이모씨(33·회사원)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자신 소유의 신형 세라토 자동차를 맡기고, 현금 500만원 정도를 대출받으려 했지만 여간해서 해결 될 것 같지가 않다. 당장 이달까지 카드빚을 청산해야 하는데 중고차 시장에 내놓아도 팔리지 않아 이씨의 고민은 커져만 간다.

서민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급전이 필요한 시민들이 전당포를 찾고 있지만 정작 전당포는 ‘돈이 될 만한 물건’조차 받아주지 않는 기이한 현상을 빚고 있다. 맡긴 물건을 찾아가지 않는 이들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1월2일, 동대문구에 위치한 한 전당포를 막 들어가려던 찰나였다. 손님으로 보이는 한 남성과 우연히 마주치게 돼 몇 가지를 물었다. 

“아버님 병원비로 50만원 정도가 필요해 전당포를 찾게 됐습니다.”  

그는 중소기업에 다니며, 큰돈은 벌지 못하고 한 달 한 달 근근이 살아가는 가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카드도 늘 서비스  한도를 넘어 사용하고 있고, 은행 대출도 집을 살 때 빌린 돈과 아이들 학원비 등으로 이미 한도초과다. 옛날처럼 회사에서 가불이란 것도 할 수 없어 고민 고민하다 결국 전당포를 찾았다는 것이다.

“집에 돈이 될 만한 물건을 찾아보니 아이들 돌 반지 6개(4돈), 아내의 금목걸이(5돈) 그리고 저희 부부 결혼반지(6돈)…. 그 이상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습니다. 물건을 내 놓으니 주인이 혹시 장물이 아닌가 하고 저를 위 아래로 훑어보더라고요. 기분이 무척 나빴지만 어쩌겠습니까. 참아야지 별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물건을 맡기고 받은 돈은 55만원. 부친 병원비로 쓰고 나면 또 생활비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다.

“상환기간은 3개월이라는데…. 3개월 후에 맡긴 패물들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 아니면 더 맡길 물건을 찾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열심히 일하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지금으로서는 그런 희망의 빛조차 보이지 않으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이런 저런 걱정 속에 이 시대 가장의 하루는 무겁게 흘러가고 있었다.

동네 전당포, 근근이 명맥 유지도 힘들어

학원비를 마련하려는 주부들의 발길도 늘었다. 은평구 녹번동의 한 전당포를 찾은 주부 오모씨(43)는 반지와 시계를 맡겼다. 오씨는 “남편의 사업이 예전 같지 않아서 아이들 학원비에 보태려고 한다”며 속상해 했다.

40년 넘게 화곡동에서 전당포를 운영하고 있는 최모씨(65)는 “통상 이자율을 연 48% 이하로 받고 있지만,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은 이자에 웃돈을 줘서라도 대출을 받으려고 한다”며 “서민경제가 바닥이라더니 그 말을 요즘 절실하게 실감하고 있다”고 했다.

“요즘은 남들 쓰던 것 사려는 사람도 없고, 돈 빌려줬다 물건 안 찾아가서 골치만 아픕니다. 가끔 직원들 월급 준다고 집안 패물을 들고 찾아오는 사장도 있지만 손님 뚝 끊겼습니다. 명품이요? 그런 거 안 받아요. 우리가 뭐 알기나 합니까.”

최씨는 “1970~1980년대가 전당포의 전성기였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곳곳에 전당포가 꽤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전당포 운영만으로는 생계는커녕 용돈벌이도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중구 명동에서 전당포를 하는 박모씨(60)는 “한창 시절 명동에만 18곳이나 되던 전당포가 이제는 3개도 안 남았다”고 씁쓸해했다. 신림동 일대도 예전엔 스무 곳이 넘었지만 대부분 문을 닫고 지금은 네댓 곳만 남았다.

남대문 근처에서 2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방모씨(52)는 “요즘 들어 가장 큰 거래를 한 게 고작 금반지 3돈”이라며 “워낙 손님이 없어 14K, 18K도 받는다”고 했다. 이곳 역시 “이틀에 한 명 찾은 게 고작”이라며 한숨 섞인 목소리를 전했다.

일부 전당포는 인터넷 전당포로 방향을 돌려봤지만 이마저도 실패했다. 전모씨(37)는 “인터넷 전당포도 운영해봤지만 젊은 층도 찾지 않아 폐쇄했다”며 “요즘은 업종 전환을 위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서민이 잘 살아야 전당포도 활기를 찾을 것”이라며 “경기 활성화에 마지막 희망을 걸어볼 수밖에 없다”고 힘없이 한 마디를 보탰다.

“서민들의 딱하고 애절한 사연들이 줄을 잇던 전당포가 급변하고 쇠락해 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하루빨리 경기가 살아나 예전처럼 손님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전당포는 불황의 산물이다. 결혼 패물 등 가재도구를 내다 팔아야 하는 아픈 역사가 묻어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시계와 만년필, 카메라와 전자제품으로 품목이 바뀌었고, 이제는 귀금속과 명품만이 주인공으로 남았다. 돈 없는 서민들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탈출구인 전당포의 문턱마저 너무 높아져 버렸다.

전당포 업태도 크게 달라졌다. 과거의 구멍가게식 전당포 대신 돈 많은 사채업자들이 나서 기업인, 접대부 등 특정 계층을 겨냥해 전당포를 차리는가 하면 차량이나 보석류만을 전문으로 다루는 새로운 전당포도 하나둘 생겨났다. 상품 유통용 인터넷 쇼핑몰까지 갖춘 폰 뱅크(Pawn Bank) 스타일의 전당포가 문을 열었는가 하면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 다양한 저당 정보를 제공하고 온라인 상담도 실시하고 있다. 감옥 같은 창살 안에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는 전당포 주인은 사라지고 인터넷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의 ‘소비자 금융업’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전당포 주인의 가장 큰 적은 ‘짝퉁’

이런 전당포에는 희한한 문의도 많이 들어온다. “250년 된 첼로가 있는데 얼마나 받을 수 있느냐”는 문의부터 “납골당 분양받은 게 있는데 맡아줄 수 있느냐”는 전화까지 걸려온다. 물론 대답은 “노(NO)!”다. 검증하는 방법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당포에는 별별 물건이 다 있다. 요즘은 가장 흔한 게 풀세트 골프백이다. 월요일 골프백을 통째로 맡겨 놓고 금요일 밤 원금과 이자를 다 갚은 뒤 찾아가는 고객도 있다. 그리고 다시 월요일에 맡기고 금요일에 되찾아 간다. 이 고객의 주말이 궁금하지만 사생활이라 묻지 못했다는 게 해당 전당포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밖에도 방송용 카메라, 노트북 컴퓨터, 내비게이션, 1000만원이 넘는 촬영용 조명기구 등 맡기는 물품의 종류는 그 수를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다.

전당포에서 장물은 주요 골칫거리다. 모르고 받았다간 곤욕을 치르기 십상이다. 그래서 물건을 받으면 확인에 확인을 거듭한다. 시계를 가져오면 손목에 한번 차보라고 하고, 카메라는 직접 한번 찍어 보라고 한다. 얼마나 작동법에 익숙한지, 정말 자기 물건인지 보기 위해서다. 그래도 허점은 생긴다. 그래서 휴대전화나 카메라 등의 전자제품은 아예 고객센터에 전화해 분실 신고가 접수됐는지 확인한다.

초고가 제품 의뢰가 늘다 보니 짝퉁(모조품)도 급증해 ‘가짜와의 전쟁’도 치열하다. 모르고 속아 산 물건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도 있고, 어떤 모조품은 전당포 주인들도 감탄할 만큼 수준급으로 만든다. 가짜 명품이 판치는 상황에서 제품 안쪽 주머니나 꼬리표에 부착된 로고와 제품 고유 일련번호로 정품을 식별해내는 안목이 없으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시계 전문가 장성원씨는 “금과 진짜 다이아몬드를 사용해 만드는 가짜들이 있다”며 “부품도 똑같이 복제해서 쓰기 때문에 제대로 감정을 하지 못하면 꼼짝없이 당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가짜에도 등급이 있다. 중국산은 B급, 홍콩산은 A급, 대만산은 특A급이다. 그러나 진짜와 가짜의 구별법을 가르치는 학원은 없다. 경기도 광주에서 전당포를 운영하는 강모씨는 시계방에서 200만원의 수업료를 내고 롤렉스 시계 감정법을 배웠다고 했다. 전당포끼리도 짝퉁 구별법은 알려주지 않는다. 영업 비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한 경험’은 오히려 커다란 재산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