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위기 극복 방식은 하향식보다는 상향식

“골프에 위닝샷이라는 게 있습니다. 외환위기로 시름에 젖었을 때 박세리 선수가 양말을 벗고 쳐낸 그런 샷입니다. 승부를 결정짓는 샷이죠. 이번 위기에도 그런 위닝샷이 분명 나올 겁니다.”
이원준 총괄대표는 “외환위기 등을 거치면서 한국인이 위기에 강한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면서 “이번 위기도 한국인 특유의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경제위기는 실제보다는 허상, 즉 거품에 대한 추종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1920년대 대공황이 과잉 공급에서 비롯됐다면 현재의 경제위기는 실제 가치와 위험에 대한 평가 없이 이뤄진 가치창출 측면에서 기인했다는 것이다.
“글로벌 경제 위기의 파고가 우리나라에 밀려오고 있습니다. 위기에 따른 경기 침체는 이제 본격화될 겁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침체가 오래 갈 것이라고 보진 않습니다. 1년 반 정도면 풀리지 않겠습니까. 뭐, 경험상 직관에 따른 것이지 이론에 바탕을 둔 것은 아닙니다.” (웃음)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그는 서구 기업의 일방통보형 구조조정 방식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인의 위기 극복 방식은 하향식(Top-Down)이 아닌 상향식(Bottom-Up)이기 때문이다. 그는 위기 때 민초들이 봉기해 의병을 조직하고 단합해 위기를 극복한 근성을 사례로 들었다.
“위기를 극복하는 근성이 촉발되는 시점은 임금과 민초가 같은 자리에 설 때였습니다. 임금이 고난을 당하고, 임금이 민초와 같은 백의종군의 자세로 저항하고 노력할 때 비로소 민심이 봉기한 것입니다.”
그는 리더들은 백의종군과 희생의 리더십을 몸소 실천해 자세를 낮추고, 종업원들은 리더에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적극적으로 제안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든, 기업이든, 대통령과 국민이든, 사장과 직원이든 이해를 같이 할 수 있는 시작점에 정렬하는 것이 위닝샷의 기반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구체적인 위기 극복 방안으로 과감한 아웃소싱을 통한 구조조정을 적극 제안했다. 정형화된 업무의 아웃소싱으로 비용도 절감하고 경영능력도 이식받을 수 있으며, 기업의 남는 자원을 재투자해 고객의 니즈를 추가로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웃소싱을 통한 기업의 구조조정은 단기 처방이 아닌 중장기적인 경쟁력 창출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래서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은 위기 해소를 위한 명쾌한 해법이 아니라고 봤다. 오히려 유연한 인력 운용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조직 운영의 효율화, 유연한 인력 운용을 통한 생산성 향상, 재정 다각화를 통한 유동성 확보는 아웃소싱을 통해 가능합니다. 또 경영능력을 강화해 위기를 극복하거나 경쟁자를 추격할 수 있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총괄대표는 이번 위기를 국내 기업들이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잘못된 관행으로 한국 기업의 투자 결정 프로세스를 꼽았다. 투자를 결정하면서 타사가 투자 방향을 어떻게 잡았다는 것을 보험들 듯이 말하는 것은 아무 생각 없이 투자를 결정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투자 방식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합니다. 과거 국내 기업들의 투자 방식은 군중심리에 의해 따라가는 성향을 보였습니다. 삼성이 올해 어떻게 한다더라, LG가 무엇을 한다더라에 따라 투자 방향이 결정되지 않습니까.”
그는 수조원 매출의 대기업도 세계 경제 및 산업 동향, 거시 지표의 흐름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투자 방향을 결정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잘못된 투자관행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자산 집약적인 산업인 건설, 조선 등에는 더 큰 타격을 줍니다. 국내 기업들도 시장이나 산업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보다 정교한 투자기법을 개발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투자 의사결정 프로세스의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국내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은 다분히 중앙집권적인 구조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위원회의 검증을 거쳐 결국 CEO의 직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허울뿐인 형식적인 위원회보다는 개별 사업부의 의견을 조율하고 최적화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가 작동해야 합니다. 물론 CEO도 컨트롤 타워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는 체계를 갖춰야 하겠죠.”
한국을 운송·물류·여행의 허브로 만들 것
액센츄어코리아 프로덕트 오퍼레이팅그룹(POG) 대표를 겸임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 10월 아시아 태평양 지역 운송ㆍ물류ㆍ여행서비스 산업 신임 총괄대표로 임명됐다. 이 부문에서 한국인이 총괄대표를 맡은 것은 이씨가 처음이다. 운송?물류?여행 서비스 산업 부문에서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시장을 개척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그는 “한국이 아ㆍ태 지역에서 운송, 물류, 여행 및 서비스 산업에서 더욱 두각을 나타내고 이 지역의 허브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총괄대표는 미국 링컨(Lincoln) 대학교 경영학사 및 카이스트(KAIST) 경영공학석사를 마치고 IBM을 거쳐 1995년 액센츄어에 입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