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어수선한 것 같은데도 모두 제자리를 잡고 있다. 바닥에서부터 벽을 타고 곳곳에 흩어진 듯한, 또 천장에서 줄을 타고 어지럽게 매달린 듯한 갖가지 물건들은 처음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와는 달리 일정한 규칙에 따라 정렬된 느낌으로 바뀌었다. 고찰(古刹)에 들어섰을 때와는 또 다른 친숙함과 편안함이라면 과장일까. 삶은 고구마부터 내놓은 남산도깨비 김재연씨(61)는 올해 많은 사람들이 “차분해질 것”이라며 “과거의 잘못을 깨닫고 마음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분수에 맞지 않은 과욕이 큰 화를 부른다”

예로부터 섣달(12월)과 정월(1월)엔 새해 신수(身數)를 보려는 이들로 점집이 붐빈다. 새해를 맞아 1년 동안 신상에 일어날 길흉을 예견함으로써 흉한 것은 피하고 길한 것은 받아들이려는 일종의 풍습이다. 언제부터라고 꼬집을 순 없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샤머니즘이 빼놓을 수 없는 종교이자 풍속이었던 것만큼 그 역사도 원시시대쯤으로 꽤 오래 전이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이 시기에 토정비결을 보는 것도 같은 이치다.  

“저희 집은 매일 꾸준합니다. 다른 집들은 예년에는 음력설을 앞둔 즈음에 많이 찾는다고 하는데 요즘은 11월부터 찾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급해진 것이죠.”

급하다는 것은 결국 욕심이 많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욕심이 없다면 급할 이유도 없다. 돈도 빨리 벌어야 하고, 출세도 빨리 해야 한다는 식이다. 그래서 새해 신수도 일찍 보고 빨리 알고 싶어지는 것이다.

“예전에는 출세하겠느냐는 질문이 많았는데 지금은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는지를 묻는 사람들이 가장 많아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방법을 묻는 거지요. 더러 돈은 못 벌어도 가족이 화목하고 건강하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는데, 30~40% 정도는 돼요.”

그러나 ‘돈 돈 돈’ 한다고 돈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또 돈을 번다한들 자신이 쓰고 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자식이 풍족하게 쓴다며, 재벌도 창업주가 ‘쌔빠지게’ 번 돈을 자식이 잘못해 망가뜨리는 경우 많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남산도깨비는 “명은 타고나는 것”이라며 그것은 곧 자기 분수라고 해석했다. 자기 분수에 맞지도 않는 과욕은 결국 남의 밥그릇을 빼앗는 것이고, 그 화는 자신 혹은 후대에 이르러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너무 욕심이 많아 지금 다 나자빠지고 완전 쑥대밭이 됐어요. 욕심 부리지 말고, 때를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거든요. 자기가 복이 있으면 다 자기가 받지 내 복을 남이 가져가지 않습니다.”

지난해 세계 경제를 암흑 속으로 몰아넣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본질도 결국은 인간의 과욕이 부른 재앙이라고 한다. 세계 경제에 대한 분석능력을 갖고 있지 않은 남산도깨비 자신의 주변 사례를 통해 현재의 위기를 설명했다.

“5년 전쯤부터 무속인들이 너무 많이 생겼어요. 일하기 싫은 사람들, 좀 아프면 신기(神氣)가 있으니까 무속인 해라 하면서 양성한 거죠. 그거 다 죄짓는 거예요. 신이 내리지 않았는데도 엉터리로 제자를 만든 겁니다. 사기고 사기꾼들이잖아요. 지금 세상에 사기꾼들이 너무 많아요. 경제위기도 결국은 사기꾼들이 경제를 주도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현재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 월가의 소위 엘리트들에 의한 사기가 아닌가. 그들은 이익을 위해 영혼까지 팔았다고 스스로 고백까지 했다.

남산도깨비는 “지금 시대에는 예수님도 부처님도 없다”며 “사람들이 너무 괴롭히고 팔아먹어 모두 떠났다”고 단언했다. 신을 앞세워 잇속을 챙기는 사기꾼들이 너무 활개를 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는 사람들이 좀 차분해질 거라는 게 그의 예언이다. “자신이 잘못 살았다며 되돌아보는 해”라는 것이다. 다만 과거와 달리 자기 자신은 물론 가족과 조상을 바로 세우고 섬겨야 한다고 한마디를 보탰다. 그래도 “앞으로 3~4년은 국민 모두가 등골이 휘도록 뼈 빠지게 고생을 해야 할 운”이라고 했다.

그는 정부와 기업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기업 정책은 적대적이지 않아요. 옛날처럼 기업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랬다간 오히려 화를 입거든요. 다만 입조심을 해야 합니다. 착한 심성을 가진 분인데 입을 잘못 놀려 화를 부릅니다. 대기업도 욕심보다 내실을 다져야 합니다. 지금 대기업 가운데에는 세계 시장에서 대승할 기업이 있습니다. 전 세계를 지배하는 거죠.”

남산도깨비는 당사자가 아닌 이에게 어떤 사람 혹은 어떤 기업의 운명이 어떠니 하는 것은 역시 사기꾼의 행동이라며 말을 아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남을 믿고 일하기보다는 자신을 믿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국가·기업·개인 모두가 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21년 전 남산순환도로변에 남산도깨비 예언궁을 차린 그는 2~3개월 전 이를 처분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이제 예언궁이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다. 서른 살 전후부터 그의 꿈은 도깨비박물관 건립이었다. 하나씩 둘씩 사들여 경기도 팔당에 마치 도깨비 창고처럼 차곡차곡 쌓아두기만 한 유물만도 5만 점이 넘는다.

“예언궁을 하면서 박물관을 짓는다 했는데 그냥 죽으면 사기잖아요. 건립 기금으로 1만원을 내놓은 사람들도 있는데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기도 하고요.”

내년 말 완공과 함께 2011년 개관을 계획하고 있는 도깨비박물관은 그에게는 자신을 알고 있던 모든 사람과의 약속이자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의미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