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남성 노리는 ‘명품피부’ 유혹
선뜻 옷, 가방, 구두 등을 구입하기 어려운 불경기일수록 여성들은 립스틱을 짙게 바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바로 ‘립스틱 효과’다. 아모레퍼시픽의 최근 보고서 '2009년 화장품 시장 및 트렌드 전망'에 따르면 여성화장품의 올해 예상 매출액은 지난해보다 6% 오른 7조원 이상이다. 경기 침체로 제조업이 위기를 겪고 있지만 립스틱 효과 덕인지 화장품업계는 별 타격 없는 한 해를 보낼 것으로 보인다.

남성화장품 시장은 어떨까. 남성화장품의 지난해 매출은 6100억원 수준이었다. 매출 규모만 놓고 보자면 여성화장품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만만하게 볼 게 아니다. 화장품업계에 따르면 남성화장품 매출은 2003년 3200억원, 2004년 3500억원, 2005년 4500억원, 2006년 4900억원, 2007년 5300억원, 2008년 6100억원 등으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연평균 17%씩 성장하고 있으며, 최근 5년 사이 시장이 두 배가량 커졌다. 여성화장품 시장에 비해 아직은 규모가 약소하지만 시장 확대 가능성은 남성화장품 시장 쪽이 훨씬 크다.
화장품업계는 포화상태인 여성화장품 시장에서 남성화장품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전문 기능성 제품을 찾는 남성들이 늘면서 남성화장품 매출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는 우선 그루밍족을 겨냥하고 있다. ‘그루밍족’이란 용어는 마부(groom)가 말을 씻기고 털을 손질하며 돌본다는 데서 유래됐다. 패션과 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자들이란 뜻으로 쓰인다. 취업면접이나 연애 등을 중요하게 여기는 청년층은 청년층대로,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중·장년층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저마다 미용을 중요하게 여긴다. 특별한 목적이 아니더라도 자기만족 차원에서 미용을 생활화하는 남성들도 늘고 있다.
지난해 한 인터넷 쇼핑몰이 남성 23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64%의 응답자가 스킨과 로션 외에 남성화장품을 구입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중 에센스나 아이크림 등 기능성 화장품을 구입한 남성은 41%, 파우더 같은 메이크업 제품을 구입한 응답자도 20%나 됐다.
남성 제품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종류나 기능면에서 여성 제품들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스킨케어는 물론 세안용품과 에센스, 자외선차단제, 마스크 팩 등 남성 전용 기능별 제품들이 즐비하다. 2007년 하반기부터는 미백과 주름개선 등 복합 기능성 제품들까지 잇따라 출시되면서 지난 한 해 동안 남성 기능성 화장품 붐이 일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남성화장품 시장에도 ‘명품’이라 불릴만한 고가의 제품이 등장했다. 프랑스에서 수입한 불라지 브랜드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선 다양한 남성화장품이 앞 다퉈 출시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라네즈, LG생활건강 오휘 등에서 남성화장품인 ‘옴므’ 제품을 다양하게 내놓고 있다. 예전엔 수입 브랜드 제품이 대세였지만 지금은 국산 기능성 제품들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불라지… 프랑스에서 온 ‘검버섯 킬러’
프랑스산 불라지는 수입유통업체인 U&K커뮤니케이션(대표 유혜전)이 지난 2006년 국내에 런칭한 프리미엄급 남성화장품 브랜드다. 고품질·고가의 남성화장품 시장은 지금껏 없었다. 주로 여성화장품 브랜드 이름 뒤에 ‘옴므(homme)’나 ‘포맨(for man)’을 붙인 채 중저가 제품으로 시장에 나왔다.
고급 남성화장품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남성화장품 시장의 판매 타깃은 주로 젊은 층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고가의 명품 시장을 조성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희소성 높은 고가의 명품에 지갑을 열만한 중?장년층에게 ‘화장품은 여성들의 전유물’이라는 관념이 아직 남아있는 점도 걸림돌이다. 이런 이유로 명품 화장품이 즐비한 유럽은 물론, 그루밍족이 급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조차 명품 남성화장품 시장은 좀처럼 형성되지 못했다.
화장의 목적 중 하나인 ‘미백’의 기준은 백인(Caucasian)의 피부에서 비롯됐다. 여성의 경우 피부색에 있어서만큼은 백인여성의 피부색을 아름다움의 가치기준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미백 기능성 화장품에 대한 수요가 많았다.
하지만 남성에게 미백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창백한 흰색 피부보다 건강미 넘쳐 보이는 그을린 피부가 매력으로 통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유럽의 주요 메이저급 화장품 회사는 남성 전용 프리미엄급 스킨케어군을 만들어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유럽 브랜드 이름으로 남성 전용 고품질·고가 제품이 출시된다 하더라도 이는 백인이 아닌 타인종을 위한 수출용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런 불모지를 불라지가 개척하고 있다. 남성화장품 시장이 해마다 커지고 있는 한국 시장에서 먼저 뿌리내리는 중이다. 불라지는 ‘남성들이 직접 구매하는 화장품’이라는 콘셉트로 30대 이상 구매력이 있는 남성 고객을 타깃으로 정했다. 거친 비즈니스 세계에서 풍파를 이겨내고 있는 중?장년 남성들의 주름지고 그을린 피부를 예전의 깨끗한 상태로 되돌려주겠다는 감성적인 전략을 내세웠다. 이런 차원에서 U&K는 골프장을 찾는 남성들이 피부에 민감하다는 점에 착안, 주요 판매처를 화장품 전문점이나 백화점이 아닌 골프 컨트리클럽과 골프 로드샵으로 정했다.
불라지(Boulasy)는 지역명인 파리의 ‘불로뉴(Boulogne)’와 절정을 의미하는 ‘엑스타시(Ecstasy)’의 합성어다. 제품을 이용하는 현대 남성들의 여유, 부유함, 뜨거운 사랑 등을 의미한다. 불라지는 일반적 제조공정을 통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대량생산하는 여느 남성화장품과는 다르다는 자부심이 있다.
불라지 제품은 비싸다. 스팟 14만9000원, 로션 9만8000원 등 시판되는 남성화장품으로는 최고가다. 2만~3만원대인 대중적인 남성 로션의 3~4배 가격이다. 비싼 이유가 있다. 불라지 제품의 주원료는 프랑스 남부 니스 해안지방의 해조류 추출물이다. 제품의 품질을 결정짓는 이 추출물은 동이 틀 무렵에만 직접 손으로 채취할 수 있어 희소성이 높다. 주원료를 제한적으로만 쓸 수 있고, 제조공정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기 때문에 소량생산일 수밖에 없다.
U&K에 따르면, 불라지 제품은 알코올과 화학 성분, 인공 향을 전혀 섞지 않은 천연제품이다. 특히 피부 색소를 분해하기 위해 피부에서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성분인 간균발효를 통해 어두워진 얼굴을 원 상태로 재생시켜준다. 간균발효는 일정시간이 지나도 피부에 밀착돼 검버섯 퇴치에 뛰어난 효능이 있어 장년층 남성들에게 특히 인기다.
U&K 유 대표는 불라지의 효능에 대해 “피부를 생동감 있고 탄력 있게 유지시켜 주며 천연 해조류 추출물을 바이오 처리해 반점 및 주근깨, 기미 제거, 화상흉터 제거, 색소 침착 개선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며 “일주일만 사용해도 피부색의 변화가 육안으로 감지될 정도로 효능이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U&K는 오피니언 리더급에 준하는 특정 계층 위주로 제품을 공급한다는 명품 판매 전략을 세우고 있다.
헤라옴므… 그루밍족 겨냥한 ‘라인의 재구성’
최근 국내 화장품 시장은 ‘옴므·포맨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헤라옴므, 랑콤옴므, 디올옴므, 크리니크포맨 등 옴므·포맨 출시 때문에 전체 기초화장품 부문 판매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을 정도다. 최근에는 한방화장품에서도 남성라인이 출시되기 시작했다.
그루밍족의 증가에 따라 국내외 옴므 브랜드들은 제품 재구성을 거친 다음 시장에 새롭게 출시되는 경우가 많다. 업체들이 여성 제품의 다양한 종류와 기능을 토대로 남성 제품의 종류를 확대·재편하고 있는 것이다. ‘프레스티지(prestige: 고품격, 명성) 남성화장품 브랜드’를 모토로 내세운 헤라옴므가 대표적이다.
헤라옴므는 지난 2005년 4월 출시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성화장품 시장은 지금처럼 활성화돼 있지 않았다. 제품군도 상대적으로 단순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상품 라인이 새롭게 짜여졌다. 아모레퍼시픽은 피부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남성들의 화장품 구매 관여도가 높아진 것을 고려해 제품 효능을 끌어올리면서 동시에 제품을 세분화시켰다. 새롭게 재구성된 헤라옴므의 라인은 여성화장품 못지않게 다양하고 섬세하며 고급스럽다. ‘옴므’라는 단어만 빼면 제품의 종류와 기능이 여성화장품과 별 차이 없어 보인다.
톱모델 장동건을 내세운 헤라옴므의 새 라인은 베이직 케어, 스페셜 케어, 옵셔널 케어 등 3가지 제품군으로 나뉜다.
베이직 케어는 기초 피부관리 라인으로 클렌징 폼과 중건성용, 지복합성용 등의 피부 타입별 스킨과 로션으로 구성된다. ‘듀얼 클렌징 폼(Facial Cleansing Foam)’은 풍부한 거품이 부드러운 사용감을 부여하고 미세한 기포가 모공 깊숙한 곳의 오염물까지 제거해 피지 제거 및 모공 청정기능이 탁월하다. ‘모이스처라이징 스킨 및 로션(Moisturizing Skin·Lotion)’은 은은한 향취와 촉촉한 피부보습으로 피부 밸런스를 맞춰주는 중건성용이다. 또 ‘리프레시 스킨 및 로션(Refesh Skin·Lotion)’은 상쾌한 향취와 가볍고 산뜻한 사용감으로 피부 밸런스를 맞춰주는 지복합성용이다.
스페셜 케어는 보습이 필요한 남성 혹은 칙칙해진 피부를 밝고 깨끗하게 가꾸고 싶은 남성을 위한 에센스와 쉐이빙 존 관리를 위한 마스크 팩으로 구성돼 있다. 끈적임 없이 피부 깊숙이 수분을 공급하여 촉촉하고 매끄러운 피부로 가꾸어주는 남성 전용 수분 에센스인 ‘매직 스킨 에센스(Magic Skin Essence)’, 깨끗하고 밝은 인상으로 가꾸어 주는 사용감이 산뜻한 미백 기능의 ‘매직 라이트닝 에센스(Magic Lightening Essence)’, 면도로 상처 받기 쉬운 쉐이빙 존의 진정작용은 물론 피부 보습과 탄력을 제공하는 시트타입 마스크 팩인 ‘디톡스 쉐이빙 존 마스크(White-fit Mask)’ 등의 제품이 있다
에센스 제품은 헤라옴므 제품군 중 가장 인기가 높다. 대부분 남성은 여성에 비해 피지 분비량이 5배 정도 많으면서도 수분이 부족하기 때문에 피부 노화가 빨리 올 수 있다. 이런 남성들을 위한 수분 에센스와 미백 기능의 에센스 제품들은 지난해 전년 대비 14%의 성장률을 보이며 남성화장품의 효자 종목으로 자리 잡았다.
옵셔널 케어는 자외선 차단 라인과 립밤, 샤워젤 등으로 구성돼 있다. 생활 자외선 차단과 촉촉한 피부 유지가 한 번에 가능한 낮 전용 선 커버 로션인 ‘선 커버 데일리(Sun Cover Daily)’와 가벼운 사용감으로 피부 자극이 없는 강력한 선크림인 ‘선 커버 레포츠(Sun Cover Leports)’가 있다. 또 피부 노폐물과 피로를 없애주는 남성전용 바디 샤워 젤인 '바디 밸런스 샤워 젤(Body Balance Shower Gel)'과 피부를 번들거림 없이 해주는 부드럽고 촉촉한 남성 전용 립밤인 '프로텍션 립밤' 등이 고급스러운 패키지로 각광받고 있다. 립밤은 무겁고 끈적임 없이 자외선, 차가운 바람, 건조한 외부 자극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입술 보호 제품이다.
국내에서 생산·판매되고 있는 남성화장품 브랜드들은 헤라옴므와 유사한 제품군을 형성하면서 각종 남성 전용 기능성 화장품들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