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30대나 40대쯤 되는 부모님들이면 대부분 아이들에게 들고 다니는 게임기를 사주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그 대부분은 ‘닌텐도DS’라는 게임기죠. 닌텐도DS 게임기는 그렇다고 아이들만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용 범위가 기존 게임기에 비해 훨씬 넓습니다. 기존 게임기 소비자 집단이 아닌 여대생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사용하지요. 게임기가 게임 마니아들만이 아니라 가족용, 시쳇말로 국민 게임기로 확대된 최초의 케이스가 바로 닌텐도DS인 것 같습니다.

닌텐도. 1889년 일본 교토에 자리를 튼 기업이죠. 한자이름인 맡길 임(任)에 하늘 천(天), 집 당(堂)을 일본식으로 읽으면 닌텐도가 됩니다. 하늘에 모든 것을 맡기는 회사라는 뜻이라고 보면 될까요. 원래 회사가 우리나라 전 국민의 놀이인 화투(일본말로 하나후다)를 만드는 회사에서 출발했으니까, 운, 즉 하늘에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이름은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것 같습니다. 정해진 거창한 사시도 없는 회사인데 “앞날은 칠흑과 같으니 운은 하늘에 맡기고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 회사의 문화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전문가가 만족하는 제품, 간혹 시장과 동떨어져

미국에 애플(Apple)이 있다면 일본에는 닌텐도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 잇단 실패 속에서 2000년대 중반 들어 새로운 개념의 제품과 서비스로 멋지게 컴백했다는 사실이 흡사합니다. 애플이 미국을 무대로 했기 때문에 글로벌 차원에서 크게 조명 받았지만 닌텐도의 성공 스토리도 애플에 못지않습니다. 특히 기존 사업을 재정의(再定意)함으로써 시장을 크게 넓히고, 그 시장을 독식했다는 점에서 무너져 가는 조직이 재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닌텐도의 성공을 보면 놀랍습니다. 2004년 12월 발매된 닌텐도DS(이동식 게임기)와 닌텐도Wii(위) 등 히트작이 계속 나오면서 2005년 5153억엔 수준이었던 매출은 2008년 3월 결산기(2007년 4월~2008년 3월)에는 1조5000억엔을 돌파했습니다. 닌텐도DS는 전 세계에 5000만 대, 일본에서는 2000만 대가 팔린 대히트 상품이 되었습니다. 또 영업이익률은 27.2%로 동종업계 다른 기업들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일본의 무수한 기업 가운데 시가총액 3위입니다. 대표적인 기업인 소니, 혼다보다도 훨씬 많습니다. 

닌텐도의 재기는 이와타 사토루라는 외부 엔지니어 출신의 사장이 2002년 5월 취임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그전에는 일본에서 가장 카리스마가 강한 야마우치 히로시라는 3세 오너가 약 50년 넘게 집권을 하고 있었죠. 그러나 1990년대 후반 닌텐도는 전문가의 덫에 걸리면서 추락을 거듭합니다. 전문가의 덫이란 전문가들이 보기에 만족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계속 하다 보면 시장과 동떨어진 제품을 만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제품 성능은 우수하나 시장에서는 패하는 결과가 발생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와타 사토루 현 사장은 아주 독특한 인물입니다. 그는 닌텐도 관련 각종 프로그램을 개발해 주는 외주업체 출신인데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에게 43세의 젊은 나이에 사장으로 발탁이 됩니다. 외주업체 엔지니어에게 본사 사람들이 자리를 내준 것이죠. 이와타 사장은 알아주는 프로그래머로 스스로 경영 관련 서적은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다고 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더 성능이 좋은 게임기를 만들어 보고 싶은 엔지니어적 욕심이 없을 리야 없겠지만, 내가 CEO가 됐을 때 해결해야 할 화두는 ‘왜 게임을 소수의 젊은 남자들만 해야 하는가’라는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기술에 몰두하는 전문가적 속성을 버리고 모든 사람들이 즐기는 게임기 개발에 전력투구해서 내놓은 작품이 바로 닌텐도DS죠. 복잡한 게임 콘트롤러를 없애고 단순히 터치펜으로 즐길 수 있도록 했고, 화면도 두 개로 만든 게임기가 그런 고민 끝에 생겨난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손자가 할아버지 생신선물로 드릴 수 있는 게임기가 나왔다고 평가했죠. 고성능인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X-박스 게임기가 게임기에서 손해를 보고, 그 손해를 게임기 소프트웨어를 파는 것으로 벌충하는 것과는 달리, 닌텐도는 게임기 자체로도 돈을 법니다. 게임을 즐기는데 너무 사양이 높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애플이 전문가의 덫에 걸린 적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창업주인 스티브 잡스가 1980년대부터 내놓은 각종 컴퓨터 제품은 성능이 좋아 전문가들은 환호했지만, 결국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죠.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나고 1990년대 말에야 복귀를 했습니다. 그 기간 중에 스티브 잡스가 깨달은 중요한 것은 전문가들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발견하고 그것을 먼저 채워줄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죠. 두 사람의 경영인이 뛰어난 점은 이와타 사토루가 게임 프로그램 전문가이면서도 그 전문성을 뛰어넘은 것처럼 스티브 잡스도 컴퓨터 전문가이면서 그 전문성의 한계를 극복한 것입니다.

고객의 숨은 욕구 파악해 충족시켜 성공

경영학의 아인슈타인이라고 불리는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 대학 교수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고객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말라. 고객을 위해 좋은 서비스를 개발하는 게 헛수고 일 수도 있다.” 사실 고객이라고 적극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의 여러 가지 의견을 청취하다보면 결국 전문가적 견해를 가진 사람이 내놓은 아이디어를 따를 위험이 있습니다. 또 기업 내에서 아무도 얘기하지 않지만, 사내외 전문가들은 자신들이 관심을 가진 것, 하고 싶은 것들을 고객의 입을 빌어 밀어붙이지요. 보이지 않는 고객 전문가와 사내 전문가의 카르텔이라고 할까요.

이런 카르텔을 간파하지 못하고 무조건 제품 성능의 업그레이드에만 관심을 갖다 보면 시장은 점점 좁아지게 됩니다. 그 좁아진 시장의 공백은 통상 다른 기업이 차지합니다. 닌텐도의 직접적인 경쟁자인 소니도 제품 조사하고 성능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죠. 플레이스테이션에 비하면 닌텐도 기기가 뛰어나다고 할 수 없지만 시장의 승자는 닌텐도였습니다.

전문가들이 기업 내에서 자신들의 관심사를 성취하는 것과 기업으로서 성공을 거두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기업은 더 많은 고객들의 숨은 욕구를 파악하고, 그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성공합니다. 사실 기업 내 전문가, 특히 ‘쟁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는 기업들의 경우 이런 전문가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시장을 볼 수 있는 눈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