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보르도 소테른 마을에는 유난히 물안개가 많이 내려앉는다. 그 옛날 소테른 지역에서 평범한 와인을 생산하고자 했던 농부들은 그러한 자연현상들에 한숨을 내쉬었다. 습도가 높아 포도에 하얀 균이 피어나곤 했던 것. 한 농부가 우연히 균이 핀 포도를 맛보았던 그 때,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와인이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그 후 소테른 지역의 포도에 일어나는 현상을 ‘노블랏’(귀부현상; 고귀한 썩음)이라 불렀다.

최고의 명성은 샤토 디켐…

푸아그라와 최상의 음식궁합

9월 하순, 소테른의 기후는 아주 특이하다. 안개가 많고 습도가 높은 날씨와 그와 반대인 온후하고 건조한 날씨가 교차한다. 그 중에서도 강이 와인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발견할 수 있다. 소테른 가까이에는 가론과 씨롱 강이 있다. 차가운 물이 흐르는 넓은 가론 강을 향해 그보다 따뜻한 씨롱 강물이 흘러 들어간다. 수온 차이로 인해 저녁부터 발생한 안개는 다음날 늦은 아침까지 포도밭을 자욱하게 뒤덮는다. 오후가 되면서 쨍쨍한 가을 햇살은 안개를 날려버려 습하던 오전은 건조한 오후로 바뀐다. 포도는 극단적인 날씨 변화로 인해 눅눅했다 건조되는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이러한 자연의 신비가 빚어낸 디저트 와인인 ‘소테른’은 우리에게 최고의 달콤함을 선사한다.

화려하면서 품위 있는 만찬의 마무리는 멋진 디저트다. 만찬의 정점은 메인요리인 스테이크가 아니라 메인요리에서 얻은 깊은 맛을 달콤함으로 감싸 만족감을 극에 달하게 하며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는 디저트에 있다. 그러한 디저트에 ‘디저트 와인’은 바로 ‘화룡점정’이다.

디저트 와인은 말 그대로 식후에 디저트와 함께 마시는 와인이다. 포도 알의 새콤달콤한 맛과 매혹적인 향이 농축돼 감미롭기가 그지없다. 때로 코스별로 나오는 디너에서는 식전주(aperitif)로 마시기도 하지만 보통은 식후에 마셔 입안을 달콤하고 개운하게 정리하여 식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마신다.

맛 자체가 달기 때문에 케이크·푸딩·쿠키·치즈 등 후식과 함께 먹는데, 디저트는 와인보다 덜 단 것으로 택해야 한다는 것만 주의하면 최고의 디저트를 즐길 수 있다. 치즈는 대개 로크포르, 블루치즈, 고곤졸라 등 크리미한 종류가 잘 어울린다. 하지만 디저트 와인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디저트가 되기 때문에 와인만 마셔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단 아주 차게 해서 마셔야 좋다.

디저트 와인의 종류

디저트 와인은 만드는 방법에 따라 그 종류가 다양하다. 수확기를 지나 나무에 달린 채로 수분은 날아가고 당도가 높아진 포도 알을 따서 만드는 이탈리아 출신의 가벼운 ‘모스카토’, 귀부병으로 쪼그라든 포도 알에서 과즙을 추출하는 프랑스 출신의 ‘소테른’, 포도가 나무에서 얼어버릴 때까지 두었다가 압착해 만든 독일과 캐나다의 ‘아이스 와인’, 주정강화 와인들인 포르투갈의 ‘포트’와 스페인의 ‘셰리’ 등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누구나 쉽게 마실 수 있는 가벼운 디저트 와인은 머스캣(Muscat)-이탈리아에서는 모스카토(Moscato), 스페인에서는 모스카텔(Moscatel)이라 부른다-품종으로 만든 것을 들 수 있다. 머스캣으로 만든 와인은 단맛이 강해 서양에서 가장 흔하게 디저트에 곁들이고 있는데, 국내에서 구입도 쉽고 가격도 다른 디저트 와인에 비해 저렴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디저트 와인의 ‘황제’로 불리는 최고의 와인은 ‘소테른(sauternes)’이다. 프랑스 보르도의 소테른 지역에서 나오는 황금빛 와인으로 세미용(semillon)을 주로 하고 약간의 소비뇽 블랑을 섞어서 빚어진다.

보르도 남쪽 소테른 지역은 안개가 잦고 습도가 높은 지역이기 때문에 껍질이 얇은 세미용 포도가 무르익을 때 곰팡이의 일종인 보트리티스 시네리아(Botrytis Cinerea) 균이 생기는데, 이 균은 포도 알에서 수분만을 증발시키는 작용을 해 결과적으로 포도 알에는 당분이 농축된다. 이러한 포도 과즙에서 얻어지는 와인이 소테른 와인으로 순수하게 자연적인 조건이 만들어낸 와인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는 맛 볼 수 없는 특별함이 살아있다.

소테른 중에서는 샤토 디켐(Chateau D’Yquem; 750ML 병당 400~500달러)이 최고의 명성을 자랑한다. 프랑스인들은 샤토 디켐과 푸아그라를 함께 먹어보는 것을 최고의 즐거움이자 행운으로 여긴다고 할 정도로 최상의 음식과 와인 궁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블루치즈 같은 음식과 마시면 더욱 맛나고 달콤한 맛에 빠져 든다. 가벼운 디저트와도 어울린다.

독일에서 처음 발견되어 생산되기 시작한 아이스바인은 포도가 어는 초겨울까지 기다렸다가 수확하여 생산하는 와인으로 세계적으로 그 양이 적어 고급 와인으로 분류된다. 극도로 무르익은 상태에서 농축된 포도는 엄청나게 달콤하면서도 조밀한 감미로운 와인의 맛을 낸다. 독일 이외에 캐나다에서도 아이스 와인을 생산하는데, 대부분이 비달(Vidal) 품종으로 과일 맛이 강한데 살구, 과일 샐러드 그리고 열대 과일향이 난다.

포트는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와인으로 스페인의 셰리 와인과 쌍벽을 이루는 주정강화 와인이다. 주정강화 와인(fortified wine)이란 발효 중인 포도주에 브랜디를 넣음으로써 발효를 중지시키고 알코올 도수를 높인 와인으로 도수가 18~20% 정도로 높다. 맛이 달고 진하며, 병을 연 후 한동안 두고 마셔도 맛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 셰리는 발효가 끝난 후에 브랜디를 넣는다는 점에서 포트와 다르다. 포트와 셰리는 디저트보다 식전주로 더 많이 마신다.

2월, 초콜릿과 디저트 와인의 매칭

최근 와인과 함께 곁들이는 음식 매칭이 중요한 코드로 부각되며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예민한 미각을 소유한 미식가라면 초콜릿과 와인의 매칭에서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초콜릿 수요가 많은 2월, 초콜릿과 어울리는 디저트 와인을 함께 구입하거나 디저트 와인과의 매칭을 고려해 초콜릿을 선택해보는 것도 좋다.

‘초콜릿을 와인처럼 즐긴다?’ 사실 흔히 시도되는 것은 아니지만 초콜릿 감정 전문가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와인을 즐기는 ‘5S’, 초콜릿을 즐기는 ‘4S’를 따라 즐길 때, 초콜릿이든 와인이든 보다 완벽하고 섬세한 맛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와인을 시음하는 가장 기본적인 과정을 보통 ‘5S’라고 일컫는데 ‘보기(See)→잔 돌려 흔들기(Swirl)→향 맡기(Sniff)→한 모금 마셔보기(Sip)→음미하기(Savor)’다.

초콜릿도 이와 유사한 ‘4S’를 거친다. ‘보기(See)→향 맡기(Smell)→조각내기(Snap)→음미하기(Savor)’다. 우선 초콜릿 표면을 관찰한다. 깨끗하고 광택이 있는 초콜릿을 우수한 품질로 여긴다. 다크 초콜릿이라면, 인위적이지 않은 광택이 더욱 돋보이는지 살핀다. 약 600여 가지 이상의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아로마를 가진 초콜릿을 코로도 즐겨본다. 과일향, 꽃향, 카라멜향, 견과류의 향, 또는 허브향도 느낄 수 있다. 한 조각을 부러뜨려 조각나는 소리로도 초콜릿 맛을 짐작해본다. 카카오 함유량이 높은 초콜릿은 일반적으로 그 소리가 더욱 경쾌하다. 마지막으로 혀 위에 초콜릿을 두고 자연스럽게 녹이며 향이 변화하는 과정, 당도의 밸런스, 질감, 그리고 여운의 깊이 및 지속성 등을 느낀다.

이외에도 생각지 못한 초콜릿과 와인의 공통분모가 많이 있다. 와인이 다양한 포도 품종으로 만들어지듯이 초콜릿도 크리올로, 포라스테로, 트리니타리오와 같이 다양한 카카오 콩으로 만들어지고, 자라나는 토양의 상태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또한 와인의 떫은맛을 내는 탄닌이 초콜릿에도 들어있어 씁쓸한 맛을 내고, 흰 색의 카카오 열매가 검은 초콜릿이 되기까지는 와인처럼 발효의 과정도 거친다. 

초콜릿과 와인의 궁합

카카오 100%의 검은 초콜릿, 우유를 첨가한 밀크초콜릿, 또 견과류인 아몬드나 오렌지 향을 넣은 것까지 다양한 종류의 초콜릿에는 과연 어떤 와인을 곁들이면 좋을까? 초콜릿의 단맛에 더욱 강한 단맛의 와인을, 떫고 쓴 검은 초콜릿에는 과일 향이 풍부한 달콤한 와인을, 그리고 아몬드가 씹히는 초콜릿과는 견과류 향이 은은한 와인을 매칭 하는 등 와인과 초콜릿을 비슷하게 또는 상반되게 매칭 해보며 짝을 찾을 수 있다.

대체로 단맛이 입 안 가득 퍼지는 초콜릿에 익숙하다. 이 때 와인은 초콜릿보다 달콤해야 한다. 초콜릿보다 당도가 낮은 와인의 매칭은 거의 90% 이상 실패할 확률이 있다. 최근 카카오 함유율에 따라 여러 종류의 초콜릿이 선보이면서 씁쓸한 카카오 본연의 맛과 당도의 정도를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다. 대중적으로 많이 즐기는 카카오가 56% 정도 함유된 초콜릿은 ‘샤티넬라’처럼 포도가 완전히 영글 때까지 기다렸다가 수확되어 집중도 있는 농익은 아로마를 가진 와인과 매칭 한다.

일반적인 화이트 와인은 초콜릿의 강한 풍미와 자연스럽게 매칭 되지 못하고 압도된다. 따라서 화이트 와인 중에는 아이스 와인과 같이 당도가 농축된 스위트 화이트 와인을 택해야 한다. 아이스 와인은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 포도가 얼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를 수확해 만들기 때문에 당분이 농축된다. 아이스 와인의 원산지 독일의 ‘블루넌 아이스바인’에는 부드러운 맛이 일품인 밀크초콜릿이 적합하다.

일반적으로 식사와 곁들이는 드라이 레드 와인과는 다양한 초콜릿 매칭이 시도되고 있지만, 아주 훌륭한 매칭을 찾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초콜릿과 함께 하려면 평소 즐기던 레드 와인에서 벗어나 과감한 선택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오히려 초콜릿은 기포가 풍성한 스파클링 와인, 알코올 도수나 당도를 높이기 위해 브랜디 혹은 과즙을 첨가한 쉐리, 또는 향과 색이 아름다운 브라퀘토 품종의 와인 같은 것들이 더욱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특히 밸런타인데이에는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고 달콤하면서도 섬세한 기포를 자랑해 인기 높은 모스카토 다스티 와인이 좋은데, ‘간치아 모스카토 다스티’, ‘로까세리나 모스카토 다스티’ 등이 대표적이다.

초콜릿과 와인의 매칭은 입 안에 선사하는 질감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초콜릿이 녹으며 남기는 크리미함이나 입 안을 감싸는 느낌, 씹히는 질감 등을 기억하고 부족한 맛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와인이나 비슷한 질감을 입 안에 선사하는 와인을 고르는 것이 무난하다.

초콜릿을 음미하는데 익숙하다면, 초콜릿에서 느껴지는 쟈스민, 살구, 무화과, 아몬드, 커피, 바닐라, 올리브, 버터, 캐러멜, 허니 등의 향과 맛을 기억해둔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맛을 간직한 와인을 추천 받거나, 비슷한 맛이 느껴지는 와인을 맛 본 기억이 떠오른다면 주저 말고 매칭시킨다.

이달의 추천 와인

토마시 발폴리첼라 클라시코 |이탈리아, 4만원


토마시는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캐릭터를 지녔다고 평가받는 발폴리첼라 클라시코 지역의 레드 와인으로 유명하며, 아마로네의 세계적인 거장이다. 발폴리첼라는 베네토 지방의 큰 도시인 베로나 북동부의 소지역 이름이자 레드 와인 이름으로, 이탈리아 전체 DOC 와인 생산량 중 키안티의 뒤를 이어 두 번째에 랭크될 만큼 그 명성을 자랑한다. 가르다 호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온화한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아 일반적으로 가볍고 향기로운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