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는 브랜드마다 그 맛이 다르다. ‘술 맛이 다 거기서 거기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브랜드마다, 연산마다, 제조국마다 그 맛이 다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어떤 위스키는 단 몇 만원에, 또 어떤 프리미엄 위스키는 몇 십만원 또는 몇 백만원에 판매되기도 한다. 위스키 맛의 미묘한 차이를 아는 사람이 바로 위스키를 제대로 즐기는 사람이다.

위스키는 같은 원료, 같은 증류소에서 제조하더라도 블렌딩에 따라, 증류 방법에 따라 그 맛이 확연히 달라진다. 그것이 바로 위스키 제조사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간직하고 있는 제조법의 비밀이다.

위스키 제조의 비밀은 우리나라로 치면 ‘며느리도 모르는 고추장의 비밀’이라고나 할까. 물론 제조법이야 쉽게 알아낼 수 있지만 전문가의 손길에 따라 달라지는 미묘한 차이가 명품 위스키와 그렇지 않은 위스키를 만드는 것이다. 즉, 같은 재료로 만드는 고추장이라도 종갓집 시어머니의 고추장과 갓 시집온 새댁의 고추장 맛이 다르듯 위스키 제조에도 ‘손맛’이라는 것이 있다. 이런 ‘손맛’을 지닌 장인을 ‘블렌드 마스터’ 또는 ‘마스터 블렌더’라고 한다. 각 위스키 제조사마다 톱 블렌드 마스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30명 정도의 톱 블렌드 마스터가 활동 중에 있다. 이처럼 전문가의 손맛에 따라 달라지는 위스키 제조법에 대해 대표적인 위스키인 블렌디드 스카치위스키의 제조법을 가지고 소개해 보겠다.

1 맥아 제조  우선 질 좋은 대맥을 잘 골라내 물과 공기를 흡수, 발아시켜 건조와 함께 훈연시킨다. 훈연시킬 때는 피트(Peat, 이탄 : 퇴적층에 9000년 이상 화석화돼 보관된 토탄)를 사용하는데 이때 발생되는 연기가 맥아에 독특한 향기를 준다. 피트는 스코틀랜드에만 있는 것으로 연료가 부족했던 그 옛날 유일한 연료였다. 밀주업자들이 세금징수관의 눈을 피하려 밤에 몰래 피트를 사용해 이런 제조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단어가 하나 생겼다. 밀주업자들을 스코틀랜드에서는 ‘문샤이너(Moon Shiner)’라고 부른다. 달빛 아래 작업하던 것을 너무 미화시킨 단어가 아닌가?

2 발효  맥아를 쉽게 당화하기 위해 잘게 부수고 온수를 붓는다. 여기서 물의 온도는 매우 중요하다. 물의 온도는 당화가 잘되도록 결정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충분한 당화가 이루어지면 여과하여 맥즙을 만든 후 효모를 넣어 알코올 발효를 시작한다.

3 증류  발효 후 생긴 보리술을 단식증류기(Pot Still: 포트스틸)에서 한 방울씩 떨어뜨려 재류한다. 증류기를 담당하는 직원은 쉴 새 없이 증류상태를 체크해야 한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위스키가 나오기 때문이다.

4 저장 숙성  의외일수 있겠지만 갓 만들어진 위스키는 무색투명하다. 이것을 오크통에 넣고 오랜 시간 숙성시켜야 위스키의 향과 색을 얻을 수 있다. 오크통에 넣고 건조시키게 된 데도 또 하나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세금징수관의 눈을 피해 밤에 훈연하여 발효시킨 위스키를 술이 아닌 것처럼 은폐하기 위해 오크통에 넣어 두었다. 이후 오랜 시간 후에 오크통을 열어보니 처음 증류했을 당시와는 비교도 하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향의 호박색 위스키로 변해 있었다. 이처럼 우연히 발견하게 된 오크통 숙성 방법은 이후 쉐리 와인을 먼저 스며들게 하는 방법으로 발전되었다. 쉐리 와인이 스며든 오크통에 위스키를 넣어 숙성시키면 위스키가 쉐리 와인의 향기를 흡수하여 더욱 독특한 향기를 위스키에 담게 된다. 오크통은 위스키가 숙성되기 위한 일종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다.

위스키의 숙성과정에서 매년 2%의 위스키 증발 손실이 발생한다. 이는 오크통의 목질부에 원액이 흡수되고 통의 표면에서 증발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에드링턴 그룹 마케팅 디렉터와의 미팅을 위해 스코틀랜드 현지를 방문했다. 에드링턴 그룹 최고의 블렌드 마스터인 존 람지의 안내를 받아 증류소를 둘러보았는데 갑자기 존 람지가 “저기 천사가 날아가는 것이 보이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숙성과정에서 위스키의 2%가 날아가는 것을 스코틀랜드인들이 ‘천사의 몫(Angel’s Share)’이라 부르는 것을 빗대서 한 유머였다.

5 블렌딩  위스키 제조과정 중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블렌드 마스터의 역량이 최대로 발휘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오크통마다 각각의 개성을 가진 위스키(오크통 안의 위스키는 앞서 말한 대로 맥아만을 원료로 해서 만든 몰트위스키다)를 조합하여 블렌딩한다. 여기에 그레인위스키(발아 과정을 거치지 않은 라이(rye), 콘(corn) 등의 곡물을 당화시켜 발효하여 증류한 위스키로, 블렌딩용 위스키)와 블렌딩하여 몰트위스키의 짙은 맛을 부드럽게 한다. 대부분의 스카치위스키, 즉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킹덤, 발렌타인, 로얄살루트, 커티삭, J&B 등은 모두 수십 가지의 원액을 블렌딩한 위스키다. 각 원액의 블렌딩 비율은 전적으로 블렌더의 판단에 의해 결정된다. 이 블렌딩 과정에 따라 같은 원액을 사용하더라도 그 맛이 천차만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맛에 따라 톱 블렌드 마스터인지 아닌지로 평가된다.

여기서 또 하나의 사실! 위스키 제조에 사용되는 원액은 반드시 3년 이상 된 것이어야 한다. 블렌더들은 보유하고 있는 3년 원액 재고 내에서 블렌딩 공식을 작성할 의무가 있다고 한다. 공식에 표기된 숙성 연도는 품질을 보증하는 증표가 된다. 위스키가 위스키답기 위해서는 최소한 3년은 숙성해야 제대로 된 위스키가 탄생한다고 한다.

6 메링(marrying, 후숙성) 과정  블렌딩 후에 다시 ‘요람’으로 돌아가 오크통에서 짧은 숙성기간을 거친다. 이것은 숙성 연수에 포함되지 않는다. 즉, 12년 위스키를 예로 들면 블렌딩 시에 사용된 12년 위스키 원액들이 블렌딩 후 1년간 후숙성 과정을 거쳤다고 해서 13년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

얼마 전, 지인들과 술자리가 있어 세계 최고의 블렌드 마스터 존 람지가 블렌딩한 위스키의 맛을 자랑하고 싶은 나는 ‘킹덤’을 추천했다. 킹덤 12년과 17년을 놓고 고민하던 중 우스갯소리를 잘하는 한 친구가 말하길 “이 12년을 5년 후에 마시면, 17년이 되는 거 아니냐? 12년을 몇 병 사서 집에 두었다가 5년 후에 마셔야겠다”고 해서 주위를 웃음바다로 만든 적이 있다. 물론 100% 농담으로 들어야 할 이야기다.

와인을 ‘신의 물방울’이라 부른다는 것은 이제 너무나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그럼 위스키는 뭐라고 표현할까? 바로 ‘생명의 물’이라고 한다. 그 만큼 위스키가 앞서 소개한 대로 신성한 인고의 과정을 거쳐 완성되기 때문이다.

애주가라고 알려진 일본의 대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책 <위스키 성지 여행>에서 싱글몰트 대신 블렌디드 위스키를 마시는 사람을 이렇게 비꼬아 말하기도 했다(싱글몰트란 한 증류소에서만 증류한 것으로 만든 위스키로, 일종의 ‘순수 혈통 위스키’라고 볼 수 있다).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려는 순간에 TV 재방송 프로그램을 트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그러나 주류회사에서 25년간 근무하고 나름대로 애주가라고 자부하는 나에게 있어 블렌디드 위스키이든, 싱글몰트 위스키이든 위스키는 다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스코틀랜드 저 깊은 곳에서 수년 많게는 십 수년간의 세월을 거쳐, 또 최고의 블렌드 마스터의 심오한 ‘손맛’을 거쳐 탄생된 인고의 과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