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플러스>는 KAIST 경영대학원 Executive MBA를 6회로 요약, 지난 4월호에 이어 두 번째 강좌를 실시한다. 이번 강좌는 김보원(오른쪽 사진) 교수가 맡고 있는 ‘생산 경영 및 공급사슬 관리(Operations Management & SCM)’ 과목으로, 디자인 기업으로 유명한 미국 IDEO(아이데오)의 사례연구를 통해 창의성과 신제품 혁신의 원리에 대해 소개한다. 이 과목의 목적은 경영자들에게 글로벌 시각과 전략적 사고, 학문간 경계를 넘어선 역량을 배양시켜 역량(capability), 프로세스(process), 자원(resource)을 최적으로 활용케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끊임없는 IDEO 혁신 비밀

“‘신발상자’에 있습니다”

기업은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해야 발전할 수 있다. 이 같은 신제품 및 서비스에 대한 혁신은 부단한 창의성을 요구한다. 기업에게 요구되는 ‘비즈니스 창의성(business creativity)’과 피카소나 베토벤 같은 위대한 예술가에게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천부적 창의성(gifted creativity)’은 다르다. 천부적 창의성은 타고난 천재에 의해 발휘되지만, 비즈니스 창의성은 만들어져야 한다. 애플이 혁신적인 신제품을 지속적으로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위대한 천재’가 아니라, 창의성을 일상의 경영과정(management process)으로 승화시킨 팀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장이 갈망하는 최상의 신제품을 지속적으로 쏟아낼 수 있게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노베이션 성공의 3요소

첫째, 철저한 분석(Calculus)이다. 천부적인 창의성과 달리 비즈니스 창의성은 ‘시장에 대한 분석’이 출발점이다. 아프리카 원주민의 생활상을 연구하는 인류학자들은 원주민의 부락에 텐트를 치고 살면서, 하루 종일 원주민의 모든 활동을 제3자적 관점에서 지켜보고 기록한다. 비즈니스 창의성은 소비자의 소비 행태를 관찰하고 그것을 기록, 분석함으로써 신제품 혁신의 첫발을 내딛는 것이다. 쇼핑카트를 디자인하려면 시장에 가서 소비자의 구매 동선을 관찰하고, 냉장고를 새로 개발하려면 소비자의 부엌에 있는 냉장고 문을 직접 열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

둘째, 창의성(Creativity)이다. 창조적인 디자인은 분석을 통해 도출한 유용성에 생명을 불어 넣어 준다. 창의성은 다양성으로부터 나온다. 다양성은 다양한 의견의 대립(controversy)을 수반한다. IDEO와 같이 창조적인 디자인에 능한 기업은 MBA, 엔지니어, 심리학자, 인류학자, 생물학자 등 다양한 능력과 백그라운드를 지닌 사람들로 신제품 개발팀을 구성한다. 창의성은 한꺼번에 여러 가지 작업과 사고를 수행할 수 있는 ‘동시성(concurrency)’과 다양성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도 필요로 한다. 고정된 사고를 깨고 ‘상자 밖의 생각(out of box thinking)’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혼돈(chaos)’의 과정도 거쳐야만 한다. 하지만 여기서 의미하는 혼돈은 무질서(disorder)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셋째, 경영자의 전념(Commitment)이다. 예술가는 창조적 활동의 과정 그 자체에 의미를 둔다. 그러나 비즈니스 창의성은 만들어진 신제품을 시장에서 보다 많은 소비자가 원하고 사도록 해야만 그 본래의 의미를 달성하게 된다. 분석과 창의성에만 머무르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시장에서의 성공은 ‘시간(time)’이라는 새로운 변수의 등장을 뜻한다. 예술가에게는 주어진 마감시간이 없지만, 신제품 개발에는 제품 수명 주기에 따른 시장 출시 타이밍이 있다. 따라서 창의성의 조건이 되는 혼돈은 무한히 방치될 수 없다. 비즈니스 창의성에서 말하는 혼돈은 ‘방향성 있는 혼돈(focused chaos)’을 말한다. 주어진 시간과 규모의 제약을 만족시키는 창의성이다. 그렇다면 누가 ‘방향 설정,’ 즉 ‘절제(discipline)’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 창의적 혼돈이 무질서가 되는 것을 막고, 시장에서 소비자의 잠재된 욕구를 불러일으켜서 회사가 개발한 신제품에 대한 구매욕에 불을 붙이는 모든 역할이 최고경영자의 몫이다. 경영자의 최선의 역량과 자원의 무게를 실은 전념은 비즈니스 창의성의 화룡점정인 셈이다.

분석(Calculus)-창의성(Creativity)-전념(Commitment)의 역동적 관계가 비즈니스 창의성의 결실인 신제품 혁신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그림에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역동성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기업문화-경영철학-조직구조-개발 프로세스를 일관성 있게 구축하는 기업만이 글로벌 시장의 혁신을 주도하며 가치 창출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IDEO는 ‘아메바 조직’?

이의 대표적 사례가 IDEO의 이노베이션이다. IDEO는 1991년 데이비드 켈리 디자인이 다른 두 개의 디자인 회사를 합병해 설립됐다. IDEO는 제품의 디자인, 개발, 제조에 필요한 모든 서비스 예컨대 기계공학, 전기공학, 인간공학, 인지심리학 등을 제공하는 ‘동시공학’의 선구자다. IDEO의 주요 고객으로 애플컴퓨터, 삼성전자, LG전자, 필립스 외에 할리우드의 영화 프로젝트에도 참여해, ‘프리윌리’의 25피트짜리 고래로봇을 만들기도 했다.

IDEO의 성공적인 이노베이션(디자인)은 문화(Culture), 관리(Management), 조직(Organiza

tion), 과정(Process) 등 4대 기둥의 최적의 조합에서 비롯되고 있다.

IDEO의 대표적인 ‘기업 문화’는 실패가 용인된다는 점이다. 실패를 가벼운 시행착오 정도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회사에서의 신분은 오랜 근무 경력이 아니라 굉장한 아이디어를 많이 제공했는지의 여부에서 좌우된다. IDEO는 또 놀이터 같은 분위기이며 심각하게 쾌활하고 산만하다.

관리(Management) 측면에서 IDEO는 공식직함을 쓰지 않고, 드레스 코드 또한 지정하지 않았다. 경영진은 직원들이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 경우 책상을 떠나 돌아다니게 한다.

이와 함께 경영진은 직원을 거의 해고하지 않는다. “우리는 실적이 좋지 않은 직원을 해고하는 일보다 좋은 직원을 관리하는 일을 더 잘 한다.” 데이비드 켈리의 말이다.

경영진은 많은 지식으로 직원들을 이끌고, 모범을 보여주며 지휘한다. 또한 진귀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특히 ‘데드라인’을 관리해 프로젝트에 시간제한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각인시킨다. 시간이 많다고 좋은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것이 아닌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를 무대 위에 올려놓고 난상토론을 거치지만 데드라인이 다가오면 최적의 아이디어로 프로젝트를 완성시켜야 한다. 그렇다고 선택받지 못한 아이디어를 버리는 것이 아니다. 소위 ‘신발상자(Tech Box)’로 옮긴다. 여기엔 과거에 실패한 프로토타입, 성공하지 못한 프로젝트 등 모든 것들이 다 들어가 있다.

신발상자는 IDEO의 큰 자랑으로 신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막히면 이곳에서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다. 과거에 실패했던 것들을 보전해 성공의 밑거름이 될 수 있게 만든 시스템이다. 그 때문에 실패에 페널티를 주고 없애버리는 회사는 이러한 장점을 갖기가 어렵다. 당장 순간의 성적표만을 보고 처벌하거나 도외시한다면 미래에 얻을 수 있는 영감이나 가능성을 싹둑 잘라버리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신발상자에는 섹션별로 실패한 원인 분석 등이 다양한 카테고리로 나뉘어져 있다. 이는 원하는 분야를 찾아보기 쉽게 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 기업에선 아마도 새 최고경영자가 온다면 실패했던 프로젝트를 사전에 없애버릴 가능성이 높다. 증거인멸 차원에서 말이다.

조직(Organization)은 평평하고 계급이 거의 없다. 모든 일은 프로젝트 팀을 기반으로 이뤄진다. 따라서 고정적인 보직도 없으며 직위도 없다. 업무의 품질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조직도도 직위도 만들지 않는다. 프로젝트 리더는 종종 프로젝트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도에 기초해 결정된다. 상호간의 경쟁은 주당 50~60시간을 직원들이 창의적인 작업에 매진하게 만든다. 조직 위계가 없기 때문에 디자이너와 엔지니어가 그들이 좋아하는 제품 생산이라는 일을 그만두고 관리직으로 이동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다양한 의견을 나누다 보면 분명히 예측하지 못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만일 부장이 얘기하는데 과장이 조용히 있어야 한다는 식의 경직된 조직에선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조직은 직원들의 개성이 드러나도록 사무실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줘야 한다. 일터의 디자인은 그들이 직접 한다. IDEO는 직원들이 비행기 날개를 요청하자 DC-3 한 쪽 날개를 빨간 불이 깜빡이는 채 천장에 매달아 두기도 했다. 또 자전거를 놔둘 공간이 없는 곳에는 끈을 이용해 천장에 매달아 놓게도 했다.

IDEO는 큰 회사로 성장했으나 각각의 지점을 두어 조직을 작게 유지하고 있다. 하나의 지점이 성장하면 이를 독립시켜 작은 스튜디오로 나누어 회사를 키워나가고 있다. 켈리는 “IDEO는 절대 40명 이상의 직원을 갖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때문에 그들의 일터는 자신들의 의견이 완벽하게 반영돼 꾸며진다. 이게 곧 기발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게 한다.

과정(Process) 속에서 처음에는 다양한 의견을 깊이 있게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가 튀어 나오고 난상토론이 돼야 한다. 백그라운드가 다른 사람들은 자기의 관점에서 얘기할 수밖에 없다. 똑같은 것을 보더라도 다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브레인스토밍 세션으로의 초대

아이디어는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구현된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리더는 ‘브레인스토밍 세션(session)’(일명 브레인스토머라고 불린다)을 열 수 있다. 이 세션에는 8명 이하를 초대한다. IDEO 사람들은 이 세션에 초대받는 것을 인정받는 것으로 여기며 열심히 일하려고 한다. 회사의 로비에는 M&M 초콜릿이 가득 차 있는 접시가 있다. 켈리는 “브레인스토머는 사탕과 같다. 직원들은 프로젝트의 중심에 서서 끊임없이 상세사항을 다루고 브레인스토밍 세션에 초대되고, 그 세션 속에서 모은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떠날 수 있다. 아무런 책임도 따르지 않는다. 마치 카타르시스와 같다”고 말한다.

토론을 거친 뒤에는 프로토타입(prototype; 양산에 앞서 제작한 모델)까지 이어져야 한다.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사진이 천 마디의 말보다 낫다고 한다면 프로토타입이 만 마디의 말보다 낫다’는 것이 IDEO의 혁신 원칙이다. IDEO는 아이디어가 나오고 의견을 교환하면 프로토타입을 실행한다. 그래야 다음 토론에서 프로토타입까지는 의견이 모아지고 공유가 됐다고 전제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매번 토론만 요란하게 하고 끝나버리기 일쑤다. 만일 프로토타입을 해놓지 않으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셈이 된다. 

프로토타입 만들기는 ‘3R’ 원칙에 따라 이뤄진다. ‘대략적(Rough)’으로, ‘빠르게(Rapid)’,  ‘콕 찍어서(Right)’이다. ‘콕 찍어서’는 제품의 특정 부분만 포커스한 모델을 여러 개로 정확히 만든다는 뜻이다. 예컨대 전화 수화기를 만들 때 IDEO팀은 수많은 발포제를 조각한 후 미리 머리와 어깨사이에 끼워봐서 수화기로 가장 적합한 모양을 찾아낸다.

시도하고 실패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패 과정을 통해 배워야 한다. 좌절을 자주 맛봐야 곧 성공을 할 수 있다. 아울러 제자리걸음의 아이디어가 아닌 더 나아지는 발전을 준비해야 한다.

IDEO의 핵심은 앞서 언급한 ‘문화→관리→조직→과정’을 거쳐 ‘성과(Performance)’를 얻어내는 것이다. 이 단계를 통해 ‘최적의 완성체(Alignment Fit Constitution)’가 탄생하는 것이다.

삼성이나 LG가 IDEO의 과정만을 그대로 갖고 온다고 더 잘되지는 않을 것이다. 삼성이나 LG도 그들만의 조직문화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IDEO보다 문화가 더 낫다고 장담하기가 어렵다.

 IDEO의 각 단계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서로가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성공을 향해 전진한다. 디자인 기업이면서도 혁신 기업으로 유명한 IDEO의 켈리는 이렇게 말했다.

“이노베이션은 하나의 이벤트가 돼서는 안 된다. 개인 삶의 일부라고 생각할 때 혁신이 이뤄진다. 늘 있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tip  KAIST Executive MBA는?

KAIST Executive MBA는 KAIST 경영대학원이 2004년 개설한 주말 학위과정이다. 이 과정은 실무 경력 10년 이상의 핵심 중견관리자와 임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과정의 특징은 현업에 몸담고 있으면서 학업을 병행하고 학습한 내용을 바로 실무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수업은 실무경험과 사례 및 토론 중심으로 진행된다. 미국 Columbia Business School과 유럽의 IE Business School이 Executive MBA의 파트너 학교다. KAIST Executive MBA 2010학년도 입학설명회가 5월14일(목) 11시 조선호텔에서 진행된다. Executive MBA 전공의 차별화된 특징, 구체적인 커리큘럼 등 실질적인 학교생활을 소개하고 참석자와 함께 Q&A 시간을 갖는다.

(문의 02-958-3228/3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