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5일 액정표시장치(LCD) 세계 선두 기업 LG디스플레이 구미 사업장은 시끌벅적한 잔칫집 분위기였다. 9개월 동안 1조3610억원을 투자해 만든 6세대 증설 LCD생산라인(P6E) 준공식이 열렸던 것이다. 우여곡절이 있었던 터라 기쁨은 더했다. 이번 투자는 수요 증가를 예상해 지난해 5월 결정됐지만 글로벌 경기 침체와 과잉 공급으로 지난해 하반기에 LCD 가격이 속절없이 급락하면서 회사에선 투자 지속 여부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하지만 예정대로 투자를 집행하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결과적으로 이 같은 결정은 적중했다. P6E 공장은 LCD패널의 수요 증가와 맞물려 양산 시점 직전부터 주문이 폭주, LG디스플레이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구미 사업장의 가동률은 풀가동 수준이다.

정작 잔치를 벌인 P6E 공장이 아닌 P6 공장 건물로 안내를 받았다. P6E는 외부에 공개할 단계가 ‘아직’이라고 했다. 마침 건강검진 때문에 로비는 어수선했다. 지원부서로 보이는 사무실은 활짝 열린 문과 유리 창문을 통해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구미까지 내려온 보람이 기대됐다. 삼성전자와 세계 시장을 양분하는 LG디스플레이의 LCD 제조과정을 가까이서 볼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는 순진한 생각에 불과하다는 점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LCD 생산 클린룸(제조라인)에는 관계자를 제외하곤 출입이 엄격히 통제됐기 때문이다. 클린룸 최대의 적인 먼지 유입을 막기 위해 직원들도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들어갈 수 있었다. LCD는 2장의 유리기판을 붙여 생산하는데, 합착되는 유리 사이에 미세먼지가 들어가면 화면의 선명도가 떨어지거나 제대로 발광하지 못하는 등 제품 생산에 큰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기상청에서 황사주의보가 내려지면 구미사업장은 바짝 긴장하며 매뉴얼에 따라 황사 긴급 대응조치에 들어간다. 여성은 화장을 금지해 맨 얼굴로 출근할 수밖에 없다.

클린룸 직원들은 방진복을 비롯해 방진모자, 방진신발, 두 겹의 방진마스크와 방진장갑 등을 착용, 눈만 남겨둔 채 모든 부위를 완벽하게 막아야 입장이 가능하다. 그리곤 에어샤워(센 청정바람으로 먼지를 털어내는 과정)를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안경도 세정절차를 거쳐야 반입할 수 있다. 일반 장소의 먼지를 10만으로 수치화한다면 클린룸은 100~1000 수준일 만큼 청결하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래도 남아있는 미세먼지는 천장과 바닥에 각각 설치된 방충망 같은 공간을 통해 외부로 배출된다.

LCD패널을 생산하는 클린룸 축구장 4.3배 면적

관계자를 제외한 출입금지는 기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신 홍보차원에서 마련된 19.8㎡ 정도의 공간에서 TFT 공정 단계를, 통유리 너머로 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사진촬영도 막았다. 관련 전문가들이 사진만 봐도 각종 분석을 통해 기밀유출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반경 50m도 채 돼 보이지 않는 제한된 장소만 보이는 클린룸에선 직원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고 자동운반장치(AGV)와 자동로봇이 LCD 유리기판을 싣고 분주하게 다니고 있었다. 마치 SF영화에서나 봄직한 인공지능 로봇 시대가 눈앞에 펼쳐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LCD 구성은 쉽게 말해 잼 바른 샌드위치와 같은 형태로 구성돼 있다. 두 개의 빵 사이에 잼이 발려있듯, LCD는 두 개의 얇은 유리 사이에 액정이라는 물질이 들어가 있는 형태다. 밑에 들어가는 유리가 TFT이고, 위에 덮이는 유리가 컬러 필터 유리다. 유리를 TFT와 컬러 필터 공정에 투입해 각각의 클래스를 가공하게 된다. 완성된 두 개의 클래스는 셀(Cell) 이라는 공정으로 인계돼 이곳에서 샌드위치가 만들어진다. 먼저 밑에 깔리는 TFT 글래스 위에 액정을 도포한 후, 컬러 필터 유리로 덮어 두 유리 기판을 합착한 후에, 커다란 유리 원판을 원하는 크기 별로 자른다. 원하는 크기로 잘려진 글래스를 패널(Panel)이라고 부르게 되며, 이 단계까지 패널 공장에서 생산하게 된다. 완성된 패널은 마지막 단계인 모듈공장으로 이동해 백라이트 및 각종 회로기판이 부착된 후에 완성품인 모듈로 생산돼 세트 업체들에 전달된다.

클린룸은 축구장 4.3배 면적이다. 기자의 눈에 들어온 클린룸은 아주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내부 곳곳을 직원들이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워 600여 대의 카메라가 사각지대까지 모니터링 한다. 클린룸 온도는 유리기판의 최적상태인 23도가 계속 유지된다. 방진복 등을 입고 일하는 사람들은 더울 수밖에 없다. 공장의 한 층은 일반 건물 한 층 높이의 3배 정도다.

구미 사업장의 총 직원 1만2200명 중 60%가 생산직이다. 대졸 학력자는 입사가 불가능하다. 4조3교대(7~15시, 15~23시, 23~7시) 근무 시스템으로 7일 일하고 이틀을 쉰다. 밤을 꼬박 새운 조는 다른 조들에 비해 하루를 더해 사흘 동안 휴식을 취한다. 월 휴무일수는 9일이다. 조별로 근무하기 때문에 24시간 365일 공장이 멈추는 법이 없다. 이는 구미 사업장이 활기가 넘치는 실질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 경기불황 속에 공장 가동 중단과 구조조정이 익숙하지만 이곳에선 어두운 터널을 벗어난 분위기다. 한때 공장 가동 중단, 감산 등 마음고생을 했기 때문에 얼굴 표정은 더욱 밝다. 최근에는 오히려 신규 인력을 충원하며 거의 풀가동 상태다.

회사의 이익과 비례하는 성과급도 달콤한 보상이다. 지난해 하반기 LCD 가격이 폭락하면서 회사 사정이 나빠져 2008년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매출·영업이익 모두 사상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덕분에 2007년에 이어 성과급으로 월 기본급의 300%가 지급됐다.

“자신이 맡은 책임을 다하고 회사가 잘 되면 성과급이 두둑하게 나오니 모두가 열심히 일하죠.” 입사 12년차 직원의 설명이다. 기자가 만난 구미 사업장 직원들의 애사심과 소속감,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럴 수밖에 없죠. 구미에서 LG디스플레이는 최고의 직장에다, 세계 1등 기업이잖아요. 월급도 꼬박꼬박 잘 나오고, 고맙죠.” LG디스플레이는 현재 전 세계 LCD패널 생산업체 중 삼성전자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40만 구미시 인구의 최소 10% LG그룹 가족

구미에서 LG는 간판기업으로 꼽히며 비중이 절대적이다. 1975년 옛 금성사에서 비롯된 LG 계열사 중 LG전자, LG마이크론, LG이노텍, 실트론, 루셈 등 7개가 구미에 포진하고 있다. LG그룹 임직원만 2만2000명에 이른다. 협력사 등 간접고용까지 합치면 6만 명이고 직계가족을 포함하면 40만 구미시 인구의 최소 10%를 차지한다.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셈이다.

LG그룹에서 분리된 LS전선 등을 합치면 더 많아진다. 구미 시내에서 대형 횟집을 운영 중인 한 상인은 “LG 없는 구미는 상상할 수 없다”며 “LG가 우리 밥 먹여 준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만큼 ‘구미=LG’등식이 성립한다. 수원의 삼성, 울산의 현대와 같은 존재다. 하지만 LG디스플레이가 구미가 아닌 파주에 대규모 LCD 공장을 세운 것에 대해 크게 서운해 하기도 했다. 횟집 상인은 솔직히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며 그때의 배신감을 털어놨다. 그러나 막대한 투자비용이 들어간 이번 P6E 공장 준공으로 지난날의 서운함은 사라졌다.

남유진 구미 시장은 “구미의 영광은 LG에서 출발한다”며 활짝 웃었다. 이는 권영수 LG디스플레이 사장의 “LG는 구미를 정말 사랑한다”의 화답이기도 했다. 남 시장은 “구미시청사와 도로 곳곳에 500개의 LG디스플레이 깃발을 걸어 놨다”며 “LG에 대한 40만 구미 시민의 고마움의 표시”라고 했다. 고질적인 주차 문제 해소 방안도 밝혔다.

지역주민의 LG 사랑도 남다르다. 2006년, LG디스플레이가 8800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하며 경영 위기에 처하자 발 벗고 나선 것이다. ‘LG디스플레이 주식 1주 갖기 범시민운동’을 벌여 20만7747주(66억원 상당)를 확보해 ‘지역기업과의 상생의지’를 보여줬다.

P6E 공장은 미래 수요를 예측한 선택이었다. 노트북 및 모니터의 제품 표준이 16:9 화면 비율로 바뀌고 있는 시장 상황에서 LG디스플레이는 이들 제품에 최적화된 LCD를 생산할 수 있는 6세대(한 번의 공정에서 만들어내는 LCD 유리기판의 크기 단위로, 세대 수가 커질수록 한 번에 많은 패널을 만들 수 있다) 생산라인을 추가로 가동해 신 시장을 선도해 나갈 최적의 여건을 마련했다.

올 연말까지 월 6만 장(유리기판 투입 기준)에 달하는 생산 규모를 갖춘 P6E 공장을 앞세워 모니터용 LCD 시장 세계 1위의 꿈에 도전한다. 월 6만 장 추가는 기존 6세대 공장의 월 18만 장 생산 규모와 합해져 6세대 LCD 생산 능력을 24만 장으로 끌어올린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노트북용은 이미 글로벌 넘버원이다.

P6E 공장은 포트폴리오의 다양화를 위해 모니터와 노트북용 제품 외에도 40인치 이하 중소형 LCD TV까지 생산할 수 있는 전천후 생산라인으로 설계됐다. 시장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조절하기 위해서다.

‘IT 중심’ 구미, ‘대형 TV용’파주 생산기지 이원화

LG디스플레이는 구미와 파주에 각각 이원화된 생산기지를 운영 중이다. IT 중심의 구미 사업장은 모니터, 노트북, 휴대전화용 등의 LCD를 생산하고, 가전 중심 생산 및 개발 체제인 파주 사업장은 대형 TV용 LCD 생산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구미 사업장은 LCD 업계에서 유일하게 2세대부터 6세대까지 모든 세대의 생산 설비를 갖추고 있어 다양한 사이즈와 용도의 LCD를 가장 효과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더욱이 생산 설비가 안정화돼 있어 높은 생산성을 자랑한다. LG디스플레이는 1995년 구미에 P1 공장을 건설한 이후 현재까지 총 13조원을 투자해 7개 공장을 세우며 이 지역을 세계적인 디스플레이 집적단지의 메카로 성장시켜왔다. 

파주 사업장도 지난 3월 8세대 LCD 생산라인을 새롭게 가동함에 따라 올 연말까지 8만3000장의 생산 능력을 확보, 대형 TV용 LCD 시장에서의 시장 지배력을 확대해 나갈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2조5000억원이 투자된 8세대 LCD 생산라인은 55인치, 47인치, 32인치 대형 TV용 LCD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LG디스플레이 성적표는 지난해 하반기에 맞은 폭탄의 후유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2009년 1분기 매출 3조6664억원, 영업 손실 4115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액 기준 제품별 판매 비중은 TV용 LCD패널이 56%, 모니터용 패널이 23%, 노트북용 패널이 16%, 모바일용 및 기타 패널이 5% 순이다.

LG디스플레이는 전통적인 비수기인 1분기에 전 분기 수준의 출하량을 달성했으나, 작년 4분기에 형성된 낮은 LCD 가격으로 인해 수익성 제고로 연결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일부 제품의 수요가 살아나고 가격이 반등함에 따라 2분기에는 불황의 터널에서 벗어나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가동률은 사실상 2월 이후 풀가동 수준을 회복했다.

권 사장은 지난 1분기를 저점으로 디스플레이 시장이 바닥을 치고 회복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그는 “LCD패널 가격이 오를 것이 확실시되는 데다 P8(8세대 공장), P6E 라인들이 가동에 들어가 물량도 늘어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런 자신감은 지난 분기 경쟁 업체들이 부진한 사이 시장 점유율을 끌어 올리며 상대적으로 가장 높은 가동률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LG디스플레이는 1분기에 탄탄한 고객 기반과 적극적인 고객 맞춤형 마케팅의 전개를 통해 분기 평균 가동률을 약 93%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며, 시장 점유율도 크게 높이는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래 대비 차세대 기술 개발 역점 

LG디스플레이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영역에 대한 기술 개발도 역점을 두고 속도를 내고 있다. 스마트폰 산업의 급성장에 대비해 저온폴리실리콘(LTPS) 생산라인에 5771억원을 투자해 2010년 상반기 중에 라인을 가동할 예정이다. LCD 분야뿐만 아니라 2007년 LG전자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사업을 인수해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AMOLED(능동형유기발광다이오드) 사업 기반을 구축하고 본격적인 사업화를 준비 중이다. 특히 차차세대 디스플레이인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도 LG디스플레이의 행보는 경쟁사들보다 한층 빠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 최초로 14.1인치 풀컬러 플렉시블 이페이퍼(e-paper)를 개발한 데 이어 플렉시블 AMOLED 등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기술을 속속 선보이며 상용화를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체질 강화를 통해 ‘2011년 수익성 No.1 Display Company’ 비전 달성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