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 또는 그러한 작품을 가리켜 ‘명품’이라고 부른다. 명품이기에 항상 희소성의 가치가 뒤따르고, 희소성의 가치는 높은 값으로 매겨진다. 명품이 소수를 위한 ‘퍼스트 브랜드’라 치면, 그에 비해 희소성은 떨어지지만 명품의 정신과 나름의 개성을 지닌 ‘세컨드 브랜드’도 존재한다. 세컨드 브랜드는 명품 패션계에서 가장 먼저 화두가 된 것으로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스타일을 확고히 지켜온 영향력 있는 최고급 명품보다는 저렴하되, 품질과 가격 면에서 일반 제품을 능가하는 것을 말한다.

싼 가격에 오리지널 못지 않는

향·맛 음미하기에 ‘제격’

와인의 명품이라면 오랜 역사, 포도 재배에 이상적인 자연환경, 일찍이 마련된 엄격한 품질 관리 기준이 조화된 프랑스 보르도의 그랑크뤼 등급 와인이다.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꼭 맛보고 싶은 와인이자 로망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이들 샤토(자기 소유의 포도밭에서 딴 포도로 와인을 양조할 때 붙는 명칭)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최고 품질과 명성을 위해 엄격한 기준에 따른 품질 관리가 뒤따른다. 

혼신의 힘을 쏟는 생산과정이 같은 샤토 내 수확물임에도 불구하고, 포도의 수확량이나 포도의 품질 등이 해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그러한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이에 샤토에서 생각하는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거나 성격이 다른 와인이 나왔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품질의 차이를 인정해 별개의 브랜드, 즉 ‘세컨드 와인’의 라벨을 달게 되는 것이다.

동일한 디자이너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패션계의 세컨드 브랜드처럼 같은 포도밭, 같은 포도 품종, 같은 양조업자가 생산하는 세컨드 와인도 다수이기 때문에 최고급 와인에게 부여하는 그랑크뤼 등급보다는 훨씬 저렴하면서도, 샤토의 개성은 충분히 살린 와인이다.

세컨드 와인이 등장한 것은 불과 100년 전이다. 포도원들이 본격적으로 생산한 것도 1980년대다. 그 해의 작황이 좋지 않아 그랑크뤼 와인을 만들기 어렵거나 해당 샤토의 밭 근처의 별개의 밭에서 만드는 경우, 똑같은 방식에 블렌딩 과정 중 조금 모자라다고 생각되는 원액 통을 한데 모아서 만드는 경우에도 세컨드 와인으로 생산된다.

또한 그랑크뤼 와인을 만들기에는 아직 어린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들기도 하는데 이는 와인의 품질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포도나무 수령을 제한한 결과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와인 생산지인 보르도 지방에서는 수령이 30∼40년 된 포도나무에서만 고급 와인을 생산한다. 이보다 더 오래된 50년 이상 된 나무들은 품질 관리를 위해서 뽑아내 버리고 그만큼 새 포도나무를 심어서 관리한다. 새 포도나무들은 3년 정도가 지나면 포도를 수확할 수 있는데, 세컨드 와인은 이렇게 3년에서 최고 10년 정도 된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든다.

세컨드 와인에 대해 범할 수 있는 오류 중 하나는 이를 2등급 와인으로 낮게 보는 것이다. 보르도 지방에는 AOC(Appellation D’Origine Controlee; 원산지 통제 명칭)와는 별도의 등급 기준이 또 하나 있는데 각 샤토에서 생산하는 레드 와인에 1~5등급까지 등급을 부여하고 이를 그랑크뤼 클라쎄(Grand Cru classe)로 분류한다.

보르도 지방에서 생산되는 수천 가지 와인 중에서 그랑크뤼 클라쎄에 들어가는 와인은 61개 밖에 없으며, 그 중에서도 1등급에 속하는 것은 샤토 라피트 로칠드(Chateau Lafite Rothschild), 샤토 마고(Chateau Margaux), 샤토 무통 로칠드(Chateau Mouton Rothschild), 샤토 오브리옹(Chateau Haut-Brion), 샤토 라투르(Chateau Latour) 등 5개뿐이다.

1등급 와인은 1855년만 해도 4개뿐이었으나 1973년 새로 추가된 샤토 무통 로칠드(Chateau Mouton Rothschild) 단 한 건을 제외하고는 전혀 변동이 없다. 로칠드 가문은 프랑스의 유명한 와인 가문이며, 이 포도원의 주인이자 승격에 일조한 주인공인 필립 로칠드 남작은 시인이며, 극작가이자 경주용 자동차 레이서인데 무려 118년 동안의 원칙을 깨려는 노력을 들여서 자신의 포도원을 1등급으로 올려놓았다.

이렇게 보르도 지방 와인에 등급이 매겨진 1855년 파리 세계박람회 이후 지금까지도 이 등급 체계는 유효하고 따라서 세컨드 와인은 2등급 와인이 아닌 이 그랑크뤼 클라쎄에 속하는 퍼스트 라벨 와인들의 세컨드 라벨이라는 의미다.

널리 알려진 그랑크뤼 1등급 세컨드 와인 중 ‘와인의 여왕’샤토 마고의 ‘빠삐용 루쥐 듀 샤또 마고’는 우아한 자태와 고결함이 퍼스트 와인의 완벽한 기품을 닮았고, ‘레 포르 드 라투르’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만찬 때 마신 샤토 라투르의 세컨드 와인으로 유명하다. 샤토 라피드 로쉴드의 ‘카뤼아드 드 라피트’, 샤토 무통 로쉴드의 ‘프티 무통’, 샤토 오브리옹의 ‘르 바안 듀 샤또 오브리옹’은 모두 특급 와인의 세컨드 와인이기에 더욱 눈길을 모은다.

세컨드 와인의 가장 큰 특징이자 인기요소는 가격에 있다. 그랑크뤼 와인들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비싼 반면 세컨드 와인은 대부분 그랑크뤼 와인의 절반 이하 가격일 정도로 저렴하다. 여기에 그랑크뤼의 맥을 잇는 만큼 묵직하고 농염한 맛도 가지고 있다. 좋은 빈티지를 만나면 그랑크뤼 와인 못지않은 최상의 세컨드 와인을 발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음용 최적기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어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오리지널 와인의 맛과 향에 못지않은 와인을 즐기기에는 문제가 없다.

따라서 와인 애호가들에게 세컨드 와인은 합리적인 가격에 고급 와인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기회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아 세컨드 와인을 마시는 것을 특별한 취미로 생각하여 오히려 퍼스트 라벨보다도 더욱 흥미를 가지고 있는 애호가들도 상당수 있다. 다만 세컨드 와인은 젊기 때문에 덜 다듬어져 있어 균형감이나 독특한 미네랄은 부족하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애호가들이 즐기는 세컨드 와인은 다양하다. 1등급 외에도 그랑크뤼 클라쎄 세컨드 와인 중 ‘와인들의 왕, 왕들의 와인’이라는 별칭을 가진 샤또 그뤼오 라로즈의 ‘라로즈 드 그뤼오’와 보르도의 가장 유서 깊은 샤토 중 하나로 꼽히는 샤토 뒤포르 비방의 ‘비방’ 등이 알려져 있다. 특히 샤토 그뤼오 라로즈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여왕이 함께 마신 와인으로 유명세를 얻은 바 있는데, 세컨드 와인 ‘라로즈 드 그뤼오’의 맛과 향을 즐기며 그 순간을 대신 느껴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다.

보르도 그랑크뤼 등급 세컨드 와인에 못지않은 크뤼 부르주아 등급의 세컨드 와인도 주목 받는다. 이미 언급했듯이, 보르도 그랑크뤼 등급 체계가 100년이 넘도록 변하지 않는 전통을 고수해오고 있는 탓에 최상급 그랑크뤼 와인들에 필적할 만한 와인이 만들어져도 여전히 그 등급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재편성된 등급이 크뤼 부르주아로 의미상 그랑크뤼 바로 아래 등급을 가리키지만 실제로는 그랑크뤼보다 더 뛰어난 품질을 갖고 있는 것들도 많다.

크뤼 부르주아의 세컨드 와인으로는 <신의 물방울>에 그랑크뤼 와인에 필적되는 와인으로 묘사되었던 샤토 샤스 스플린의 ‘오라또리에 드 샤스 스플린’,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크뤼 부르주아급 와인으로 꼽히는 샤토 시트랑의 ‘물랭 드 시트랑’, 샤토 브리에의 세컨드 와인 ‘레 오 드 브리에’ 그리고 ‘레 오 드 뽕떼’ 등이 훌륭한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프랑스와 함께 주요 와인 생산국으로 손꼽히는 이탈리아나 뉴월드 와인 지역으로 각광받고 있는 미국, 호주, 칠레 등에는 세컨드 와인이 없다는 것도 특징이다.

이|달|의| 와|인

레 오 드 브리에

LES HAUTS DE BRILLETTE

레 오 드 브리에는 샤또 브리에의 세컨드 와인으로 국내에서는 금양인터내셔날에서 독점 수입하고 있다. Ch. Brillette의 이름은 ‘밝게 빛나다’라는 의미의 Brillant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 이는 샤또 브리에가 물리 지역에서 고도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햇빛을 듬뿍 받은 자갈들이 햇살아래 빛나는 광경에서 유래된 것이다. Moulis en Medoc 지역의 Cru Bourgeois Superieur로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이 평가되는 오랜 역사의 포도원 중 하나이며 100년 가까이 Comte du Perier 가문의 소유였다가 1976년에 Berthault Flageul 가문으로 이전되어 프랑스 내에서도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와인이다. 현 소유주는 Mr. Flageul(부인이 한국인)이다.

Wine Tip

프랑스 와인 명성, AOC로 지킨다

최상의 와인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는 역시 프랑스다. 프랑스 와인의 명성을 지켜주는 요인으로 AOC와 그랑크뤼 등급체계를 우선으로 꼽는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있지만 엄격한 체계를 뒀기 때문에 프랑스가 와인의 종주국이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프랑스 와인은 품질 등급의 카테고리는 AOC(Appellation d’Origine Controlle: 아펠라시옹 도리진 콩트롤레), VDQS(Vin Delimite de Qualite Superieure: 뱅 델리미테 드 칼리떼 슈페리에), VDP(Vin de Pays: 뱅 드 페이), VDT(Vin de Table: 뱅 드 따블)로 나눠진다. 이중 가장 높은 단계에 있는 AOC는 정부의 규제 정도도 가장 높다. 생산품의 수준과 규정에 맞게 와인이 만들어졌는지 혹독한 심사를 거치며, 심지어는 작황이 좋지 않은 해는 포도를 대부분 버리면서까지 와인의 질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러한 품질 등급은 병에 부착된 레이블에 적혀져 와인 선택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AOC급 와인의 레이블에는 ‘Appellation 원산지 명 Controlle’라고 적혀 있는데, 아뺄라시옹은 명칭을 뜻하고 콩트롤레는 컨트롤, 즉 통제를 뜻한다. 예를 들어 아뺄라시옹 메독 콩트롤레라고 쓰여 있다면 이것은 메독 지방의 제조 규정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의미다. 이 원산지 명에 들어간 명칭이 소지역일수록 와인은 보다 질이 높은 것이 대부분인데, 예를 들어 보르도, 메독, 마고, 이렇게 명칭이 들어간 세 개의 와인이 있다면, 보르도<메독<마고 순으로 더 많은 규정 속에서 생산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좀 더 품질 수준이 높다고 보면 된다. 이후 이웃나라에서도 앞 다퉈 이 제도를 벤치마킹했는데 독일의 QMP나 이탈리아의 DOCG 그리고 스페인의 DOC 같은 제도를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