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황을 맞아 필요 없는 기능을 빼고 가격을 낮춘 실속형 IT기기들이 효자상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가격을 낮췄다고 해서 단순 싸구려 제품으로 생각하면 오산. 그동안 고가 제품으로 인식돼왔던 제품들 가운데 불필요한 기능을 빼고 새로운 디자인으로 무장했다.

불필요한 기능 빼고

‘몸 값’ 낮추니 “잘 팔리네”

최근 경기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소비자들의 소비 행태도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불경기 속에서도 백화점 매출이 할인점 매출의 두 배를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명품 매출이 큰 폭으로 올랐다. IT제품의 경우에도 고가 제품과 저가 제품의 판매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필요 없는 기능을 뺀 ‘다이어트’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저렴한 가격의 미니 노트북 선풍적 인기

한때 수백만원을 줘야 살 수 있던 노트북도 가격파괴 경쟁이 한창이다. 미니노트북이 대표적이다. 화면이 7∼10인치에 불과한 미니노트북은 일반 고가형 노트북에 비해 중앙처리장치(CPU) 성능이 떨어지는 편이다. 그러나 인터넷 서핑이나 문서작업 등 일반 용도엔 부족함이 없다. 무엇보다 작고 아담한 크기와 40만~70만원대라는 저렴한 가격에 힘입어 노트북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9월 나온 삼성전자 넷북 ‘NC10’은 출시 한 달도 안 돼 무려 1만여 대 이상이 팔렸다. 영국, 프랑스 등에서는 미니노트북 시장 1위에 오르는 등 전 세계 판매량 100만 대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기존 노트북 제품 라인업 중 베스트셀러 모델에 비해 30%가량 더 판매될 정도”라며 “단순함을 강조한 콘셉트로, 미니노트북을 친근하면서도 간결하고 고급스럽게 디자인한 것이 먹힌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대만의 노트북 제조업체 아수스가 국내 시장에서 40만원대에 출시한 미니노트북 ‘Eee-PC’. 해외 시장에서 출시 두 달 만에 35만 대 이상 팔렸으며, 2008년 상반기에만 250만 대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지난 6월부터 국내에 판매되기 시작한 이 제품은 예약 구매 20분 만에 전 물량 매진이라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한국레노버의 씽크패드 SL시리즈는 씽크패드 제품 중 가장 낮은 가격의 제품이다. 꼭 필요한 성능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노트북이다. 넷북의 낮은 사양에 만족하지 못하는 소비자나 첫 PC 사용자들에게 적합하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PC는 최근 들어 50만원대까지 떨어졌다. 삼보컴퓨터는 인텔이 새롭게 선보인 실속형 최신 아톰 프로세서를 탑재, 가격 거품을 뺀 넷톱 ‘드림시스 LFTU’를 선보였다. 드림시스 LFTU는 일반 데스크톱 PC에 비해 소비전력이 낮아 장시간 사용할 때 유리하다. 특히 조립형 PC에 버금가는 50만원대 가격으로 보편적인 기능 대부분을 지원해 성능 대비 경제성에 초점을 맞췄다.

삼보컴퓨터의 대표 히트작인 ‘루온 A1’은 지난해 11월 출시된 이래 월평균 2000대가량이 팔려나가며 단번에 회사의 ‘효자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그동안 일체형 PC의 제품 평균 판매량은 대략 500여 대 정도. 이를 감안하면 4배가량 많이 팔린 셈이다. 이는 인텔 아톰프로세서를 탑재해 그동안 고가 일변도의 일체형 PC의 틀을 깼기 때문. 보통 올인원 PC들의 가격대가 150만~200만원인 반면, 이 제품 가격은 98만9000원에 불과하다. 지난 2월에는 미국 시장에도 진출, 현지 최대 가전 유통업체인 베스트바이와 월마트에서 일체형 PC 부문 온라인 판매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동안 휴대전화는 컨버전스화하면서 다양한 기능을 탑재한 멀티기능 휴대전화가 인기를 끌었다. 휴대전화는 카메라, TV, 인터넷, MP3P, 동영상 등 다양한 기능이 집약된 멀티미디어기기로 진화했다.

하지만 최근 경기 불황과 더불어 필요 없는 기능을 뺀 실속형 다이어트 제품을 찾는 경향이 늘고 있다. 다양한 기능보다는 필요한 기능이 탑재된 제품들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LG전자의 ‘와인폰’은 ‘효도폰’의 대명사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2007년 5월 출시된 와인폰은 지난 2년 동안 160만 대가 넘게 판매됐다. 와인폰의 가장 큰 특징은 보고, 듣고, 누르기 쉽다는 것이다. 눈에 잘 보이게 커다란 키패드를 탑재하고, 복잡한 기능을 뺐다. 기능 측면에서 거품을 싹 빼고, 디자인 측면에서는 고급스러움을 반영해 나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보급형 제품이라는 편견을 없앴다.

LG전자가 지난 3월 출시한 실속형 풀터치 스크린폰인 쿠키폰은 한 달반 만에 누적 20만 대가 공급됐다. LG전자가 ‘풀터치 스크린폰의 대중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기획한 것으로 기존 풀터치 스크린폰들보다 최소 7만원에서 최대 20만원까지 저렴하다. 쿠키폰은 50만원대의 가격임에도 얇고 화려한 디자인은 물론 기존 풀터치 스크린폰들을 넘어서는 편리하고 재미있는 기능까지 적용했다. 회사 관계자는 “쿠키폰의 인기는 불황일수록 신중한 구매 패턴을 보이는 고객층을 위해 세련된 디자인과 혁신적인 가격을 제시한 것이 적중한 데 기인한다”고 말했다.

싸구려 아닌 저렴하면서도 고품질 제품 원해

실속파들이 원하는 것은 ‘싸구려’가 아닌 ‘저렴하면서도 고품질 제품’이다. 캐논카메라의 ‘파워샷 A480’은 1000만화소의 콤팩트 디지털 카메라로, 기존 모델보다 크기가 25% 더 작아져 뛰어난 휴대성을 자랑한다. 가격도 19만9000원에 불과해 저렴하면서도 실속 있는 소비자들에게 안성맞춤인 제품이다.

70만원대의 고가 IT기기로 꼽히던 PMP 시장에도 20만~30만원대 실속형 PMP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디지털큐브가 올해 초 내놓은 ‘아이스테이션 T3’는 불필요한 전자사전, DMB(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 기능을 빼면서 30만원대 초반까지 가격을 낮췄다. T3는 시판 이후 현재까지 6만5000대가량 팔려나갈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 MP3P 시장에서도 실속형 제품이 돌풍이다. 삼성전자, 레인콤, 코원시스템 등의 실속형 제품은 핵심 기능은 갖췄지만 4만~6만원대로 부담 없는 가격대다. 삼성전자의 ‘YP-U5’는 USB포트를 내장해 데이터 전송이 편리하며 1인치의 OLED 디스플레이를 탑재하고 있어 곡 선택이 간편하다. 가격은 6만5000원에서 7만5000원.

운전자들의 필수품이 된 내비게이션 시장도 마찬가지다. 기본기능을 강화하면서도 가격을 낮춘 제품들이 이용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와 비교하면 내비게이션 몸값이 많이 낮아졌다.

내비게이션 시장의 주력제품이 40만~50만원대를 넘나들던 고급형에서 20만~30만원대의 제품으로 탈바꿈했다. 팅크웨어, 코원, 파인디지털 등 주요 내비게이션 제조업체들은 최근 30만원대 보급형 내비게이션을 출시하며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내비게이션 전문 업체 팅크웨어는 올 3월 3차원 입체(3D) 지도를 탑재한 7인치형 내비게이션 ‘아이나비 K3’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실제 건물, 다리, 고가 등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상세한 그래픽이 강점. 가격은 30만원대 후반. 코원 ‘L3’와 파인디지털 ‘파인드라이브 IQ500’은 30만원대 초반의 실속형 내비게이션이다.

박상덕 팅크웨어 팀장은 “요즘처럼 경기가 나쁠 때는 소비자가 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에 30만원대의 제품이 쏟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