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환경·열린 경영 깃발들고 현장 누비며 개혁 진두 지휘
대부분의 기업 CEO들은 올해 독한 마음을 갖고 지내고 있다. 특히 1분기를 보내고 몇몇 CEO들은 더욱 독해졌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도 그중 한 명이다. 포스코의 1분기 매출은 6조4713억원으로 작년 동기 6조원에 비해 늘었지만 영업이익(3730억원)은 70%나 떨어졌다. 철강 수요처인 자동차 및 조선 업계의 불황과 제품가격 인하 때문이다. 유럽, 일본 등 세계 유수 철강사들이 1분기에 영업적자를 본 것에 비하면 포스코가 선방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포스코는 1분기 고가의 펠릿과 강점탄 사용비를 낮춰 연료와 원료비용을 줄이고, 용광로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등 저원가 조업기술 개발을 통한 원가절감(4153억원)과 마른수건 짜내기식의 비용절감으로 영업이익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바람에 포스코 직원들의 평균연봉은 올 1분기 1382만원으로 작년 동기 1740만원보다 무려 30%가 줄었다. 포스코 관계자는 “급여를 제외한 복지비용들을 대거 줄였다고 보면 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2분기 사정도 그리 녹록치 않다. 정 회장은 취임 100일 직후인 6월9일 10회 철의 날 행사에서 “2분기가 포스코에게 가장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라며 “2분기를 잘 넘기면 하반기부터는 나아질 것”이라고 말해 마지막 ‘독기’를 내뿜을 것임을 내비쳤다. 실제 정 회장은 “어떠한 위기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체질을 만들어야 한다”며 연초 수립한 9584억원의 원가절감 계획을 1조2955억원으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취임식 후 고객사 방문해 ‘경청’… 직원들과의 소통도 강화
정 회장은 이 같은 상황을 취임 전부터 예견했다. 그래서 정 회장은 취임 후 첫 출근일 아침 서울 강남 포스코센터 29층의 넓은 회장실 대신 용접봉의 뜨거운 불꽃이 튀는 울산의 현대중공업 LNG선 건조 현장과 거제의 삼성중공업 현장을 찾아 최길선 현대중공업 사장과 배석용 삼성중공업 사장을 각각 면담했다. 이날 정 회장은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포스코 설비 가동 후 첫 제품인 후판의 중요 고객사인 만큼 지금까지의 돈독한 신뢰와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세계 조선 산업과 철강 산업의 글로벌 리더로 함께 성장 발전해 나가자”고 호소했다. 6월11일엔 대구 태창철강과 포항 동양에스텍 등 일선 판매점을 직접 방문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정 회장은 취임 후 현대중공업 등 대형 고객사 방문을 시작으로 압연유 공급업체인 범우, 자재 납품회사 우진일렉트로나이트를 방문하는 등 현장 경영에 집중하고 있다”면서 “특별한 일정이 없다면 지속적으로 고객 및 공급업체를 직접 방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역대 회장들 중 가장 많은 고객사 방문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정 회장이 고객사를 찾는 것은 ‘경청’을 통한 ‘열린 경영’을 펼치기 위해서다. 정 회장은 취임식 때 ‘열린 경영’, ‘창조 경영’, ‘환경 경영’의 3가지를 포스코의 새로운 경영이념으로 제시했다. 정 회장은 특히 “‘열린 경영’은 이해 관계자와의 상생, 가치사슬(Value Chain)과의 협력, 개방적 조직문화를 통해 소통(Communication)과 신뢰를 확대해 나아가는 것이다”며 “열린 경영의 성공을 위해서는 상대방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경청’의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고객사에게 자세를 최대한 낮추라는 얘기다.
정 회장은 임직원들과의 소통도 강화시켰다. 정 회장의 의지가 자칫 직원들에게 잘못 전달될 것을 우려해서다. 정 회장은 매일 부문별 직원 7~8명씩을 불러 임원식당에서 조찬간담회를 가졌다. 5월말까지 30여 회에 걸쳐 300여 명의 직원들이 정 회장과 아침밥을 먹었다. 정 회장은 2004년 광양제철소장 때부터 직원들과 소통의 일환으로 조찬간담회를 자주 가져왔다고 한다.
정 회장은 조찬간담회에서 건의된 내용들은 가능한 신속하게 시행했다. 최근 시행된 자기계발 지원을 위한 3년 이상 장기 보직자들에 대한 순환보직, 창의적 근무환경을 위한 복장 자율화 등은 조찬간담회에서 제기된 아이디어다.
문리 통섭형 인재 중시… “임원은 VIP가 돼라”
정 회장의 열린 경영 중 눈에 띄는 것은 굴뚝기업 포스코에 인문학 바람을 일으킨 대목이다. 정 회장은 지난 4월 서울대 특별강연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문과(文科)와 이과(理科) 통섭(지식의 통합)형 인재를 양성할 계획”이라고 선언했다. 이와 함께 정 회장은 문리(文理) 통섭형 인재관을 회사 임직원으로 확대했다. 인문학을 포함한 평생학습 프로그램인 토요학습 참석 대상을 경영층에서 그룹사 부장급까지로 확대하고 매월 둘째 주 수요일 오전에 ‘수요 인문학 강좌’를 새롭게 열었다. 포스코 전 임원과 그룹리더를 대상으로 열리는 이 강좌는 <논어>, <맹자> 등 고전에서부터 철학, 문학, 세계사, 고고학 등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또 지난 3월 입사한 신입사원 전원을 현장에 배치해 현장 경험을 중심으로 한 문리 통섭형 인재 육성에 본격 나서기도 했다. 새로운 신입사원 역량개발 프로그램 시행에 따라, 기존 6주 간의 인재개발원 교육 후 현업부서에 배치되던 것과 달리 입사 1년차에는 4주 간의 기초교육과 48주 간의 현장교육을 먼저 받은 후 개인 역량과 적성 등을 고려해 현업부서에 배치되도록 했다.
정 회장은 4월 초 신임 임원 대상 특강에서 “임원은 VIP가 돼야 한다”며 “그것은 매우 중요한 사람(Very Important Person)이 아닌 비전(Vision), 통찰력(Insight), 철학(philosophy)을 가진 사람”이라고 다시 한 번 문리 통섭형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 회장은 좀 더 많은 직원들과 공감하기 위해 최근 포스코그룹 정보공유 포털 사이트에 ‘CEO 블로그’를 개설했다. 여기엔 정 회장의 경영 철학서부터 공식 연설문, 주요 어록 및 추천도서 외에 직원과의 조찬 간담회에서 나온 이슈를 알리는 ‘CEO와 함께하는 아침’, CEO의 주요 활동 모습을 사진으로 볼 수 있는 ‘포토스토리’, 바쁜 일상에서 시 한 편을 통한 여유를 느낄 수 있는 ‘CEO와 함께 읽는 시’ 등 다양한 콘텐츠를 담았다.
정 회장은 이처럼 부드러운 ‘열린 경영’을 통해 임직원들을 다독인 반면, 애연가들에겐 폭탄선언이나 다름없는 금연운동을 ‘독하게’ 펼치고 있다.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 주변에 있던 세 곳의 옥외 흡연 장소들 중 외주 입주사 직원용으로 마련했던 한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없앴다. 포항 인재개발원 건물 내, 두 곳의 흡연실도 모두 폐쇄했다. 대신 건물 밖에 네 곳의 흡연구역을 만들었는데 이도 7월까지만 한시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또 포항·광양제철소는 올해부터 건강진단 시 임직원의 니코틴 검사를 의무화했고, 팀장 이상은 필수적으로 담배를 끊도록 금연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정 회장은 광양제철소 제강부장이던 1995년 담배를 완전히 끊었다고 한다. 정 회장은 당시의 상황을 ‘3전4기의 성공’이라고 말해 자신도 금연이 쉽지 않았음을 내비쳤다. 이런 정 회장이 그야말로 독한 마음을 먹고 전사적인 금연운동을 펼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정 회장이 1991~1998년에 걸쳐 광양제철소 제강부장으로 있을 때다. 당시 1000여 명이 넘는 제강부 직원들의 애경사가 끊이지 않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질병으로 직원이 사망하면 유가족들을 지속적으로 도와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중에 담배로 인해 사망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1994년 정 회장은 강우회를 만들고 제강부 직원으로 재직 중 사망 시 유자녀에게 대학까지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만들었지만 이도 지원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에 정 회장은 사전에 임직원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쪽으로 마음을 바꾼 것이다. 정 회장의 이번 금연운동은 처음이 아니다. 정 회장은 2003년 광양제철 부소장으로 취임 후 금연 제철소 캠페인을 주도했다.
정 회장은 직원들에게 우스갯소리로 “환경 경영을 앞세우는 회사에서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것은 ‘환경오염’”이라며 “이를 위해서라도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 한다”고 금연을 강조하고 있다.
이 같은 ‘열린 경영’ 못지않게 정 회장은 혁신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위기’를 ‘기회’로 전이시키기 위한 혁신 활동 ‘VP(Visual Planning)’가 그것이다. ‘VP’는 ‘버리고’, ‘채우는’ 방식의 혁신을 말한다. 정 회장은 “우리의 잘못된 업무 관행과 비효율적 업무 처리 방식, 불필요한 지시, 보고, 회의 등 낭비 요인을 버리고, 가치 있는 업무로 채워야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동안 포스코가 유상부 전 회장에서 이구택 전 회장에 이르기까지 ‘하드웨어’ 혁신에 치중해왔다면 정 회장은 ‘소프트웨어’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버리고’, ‘채우는’ VP 혁신 활동
VP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조직 구성원 개개인이 가치 창출과 문제 해결을 위해 자신의 업무와 문제점들을 남김없이 드러내는 것을 의미하는 ‘가시화’다. 일본의 닛산자동차를 회생시킨 카를로스 곤 회장도 “모든 문제점을 도마 위에 올려놓지 않고선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진정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정보를 공유하자는 것이다”며 VP의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VP의 기원은 일본 도요타자동차에서 탄생한 ‘미에루카’다. 이는 ‘문제점을 보이게 하라’는 현장관리 신조어다.
이에 따라 달라진 게 포스코의 회의문화. 오전 회의는 시간 절약을 위해 서서 회의한다. 이때는 자신의 당일 업무를 얘기함으로써 조직원들이 부서 내 당일 이뤄지는 업무를 공유하고, 정보도 교환한다.
이 같은 VP 혁신 활동은 ‘창조 경영’으로 이어진다. 정 회장이 말하는 창조 경영은 기존의 ‘세계 최고(World First 혹은 World Best)’ 기술 개발과 더불어 창의적 사고를 통해 고객에게 ‘가장 많이 판매(World Most)’할 수 있는 제품 확보에 있다.
정 회장은 “궁즉통, 즉 기술 개발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며 “기술 개발 중에서도 원가, 품질, 생산성 부문 등에서 30% 이상 획기적인 개선을 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 회장의 창조 경영은 작년 파이넥스(FINEX) 공장의 획기적인 공정 개선 아이디어로 이미 시작됐다. 정 회장은 작년 7월 파이넥스 공장을 방문, 요소공정 중 하나인 직접환원철(철광석에서 철 성분을 분리해낸 철 덩어리) 제조공정에 대해 엔지니어들과 토론회를 가졌다. 정 회장은 토론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전화로 파이넥스를 활용하여 이산화탄소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미래 철강 제조공정에 대한 구상과 개발을 지시했다. 현재 이 공정은 파이넥스의 비용 절감뿐만 아니라 미래 대체에너지를 철강 공정에 활용할 수 있는 기술로 개발돼 국제특허를 출원 중에 있다. 지난 2007년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포스코의 파이넥스 기술 역시 정 회장이 열정을 가지고 완성시킨 기술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창조 경영의 활성화를 위해 ‘창의 놀이방’과 동호인 활동을 확대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 회장은 ‘환경 경영’에도 주력해 왔다. 정 회장은 “포스코가 전력을 다해 개발하고 있는 새로운 철강 제조 프로세스를 통해 저탄소 녹색성장의 새로운 성장 모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철강 산업이 택해야 할 윤리”라며 환경 경영을 독려하고 있다. 정 회장은 이어 “앞으로 친환경 철강 기술은 파이넥스 기술의 본격적 적용, 탄소 포집 및 저장 기술 개발, 나아가 원자력 제철 등 수소 환원을 이용한 신제철법을 통해 포스코가 새로 쓸 것”을 강하게 주문하고 있다.
포스코는 향후 복합소재 기업을 목표로 철강소재를 대체할 수 있는 알루미늄, 티타늄, 마그네슘, 페로망간 같은 가능성 있는 아이템을 개발할 계획이다. 또한 철강-에너지-건설의 3개 축을 중심으로 연료전지, 태양광 발전, 소수력 발전, 심해 풍력 발전 등의 그린 에너지 사업도 역점 사업으로 추진, ‘큰 그림(Big Picture)’을 그려나가고 있다.
TIP 정준양 포스코 회장 프라이버시 엿보기
- 스트레스 해소법이나 건강 관리법은?
스트레스는 당연히 받지만 비교적 빨리 푸는 편이고, 성격적으로 스트레스 등을 오래 갖고 있지 못한다. 평소에는 회사 인근 헬스장에서 아침마다 운동을 하고 있다. 집이 수지인데 보통 아침 5시20분에 출발하면 6시부터는 운동을 시작할 수 있다. 복근을 단련하려면 허벅지 근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해서 주로 자전거를 타고 있다.
- 가장 좋아하는 책은?
책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읽는 편이고, 역사책을 가장 좋아한다. 역사책 가운데에서도 특히 우리의 상고사를 다룬 책들을 감명 깊게 읽었다. <한단고기>, <삼성기>, <천부경> 등 상고사와 복희역 등에 대한 책들을 매우 재미있게 읽었고, 유물과 더불어 문헌 고증도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에 많은 흥미를 갖고 있다.
- 좋아하는 스포츠는?
나보다 나이 많은 스노보더를 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유럽사무소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직원, 가족들과 함께 스키를 배웠고 광양제철소로 돌아와서부터 스노보드를 타기 시작했다. 스노보드는 매우 창의적이고 도전적으로 즐길 수 있는 스포츠다.
- 행복한 가정을 위한 조언은?
나는 직원들에게 멋진 남편이 되기 위해 ‘쇠 전략’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라고 이야기 해왔다.
바로 마당쇠(아내가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지 한다), 모르쇠(아내의 일에는 절대 간섭하지 않는다), 자물쇠(아내가 하는 말에 절대 토를 달지 않는다), 구두쇠(아내를 위해 돈은 많이, 지출은 적게 한다)가 되는 것이다.
약력
1948년 경기 수원 출생
1975년 서울대 공업교육학 졸업 및 포스코 입사
2002년 포스코 EU사무소장
2004년 포스코 광양제철소장(전무)
2007년 포스코 생산기술부문 대표이사 사장
2008년 포스코건설 대표이사 사장
2009년 2월 포스코 회장(현)
제7대 한국철강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