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성격은 자로 똑바로 잰 듯 직선적이다. 한번 ‘필(feel)’이 꽂히면 그 즉시 해야 직성이 풀린다. 또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허준영 한국철도공사 사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허 사장의 단아한 외모를 보거나, 그의 조용한 말투를 얼핏 들어선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설명이다. 하지만 허 사장의 변화무쌍한 이력을 보면 수긍이 간다. 허 사장은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외무고시에 합격, 외교관 생활을 하다가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에서 제복 입은 경찰관에 반해 장인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경찰로 변신해 최고의 직위까지 올랐다.
허 사장은 내심 인천공항공사 사장을 바랬었다. 외교관 생활도 지냈고, 치안의 수장이었으니까 국가 안보차원에서 인천공항공사가 적격이라고 허 사장은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인천공항공사를 민영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적자 폭이 눈덩이처럼 늘어나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한 한국철도공사에 허 사장을 보낸 것이다. 허 사장 또한 철도공사를 2지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정부는 올 들어 공기업 선진화 2기 작업에 착수하면서 ‘3대 거품 빼기’, ‘노사관계 선진화’, ‘일류 서비스로 진화’라는 3대 방침을 세워놓고 상반기 중 ‘3대 거품 빼기’의 밑그림을 그려놓을 것을 독려했다. 즉, ‘저위험-고보상’ 체제는 ‘저위험-저보상’ 체제로 개편하고, 과도한 조직은 최소화하며 웬만한 사업은 민간위탁을 확대해 나가도록 한 것이다.

‘3대 거품 빼기’ 일사천리로 진행
허 사장은 올 3월 한국철도공사 사장으로 취임하자마자 그의 성격을 유감없이 발휘, 3대 거품 빼기 작업을 일사천리로 진행해 나갔다. 허 사장의 치밀하고 전략적인 속전속결의 일정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허 사장은 취임한 지 1주일 만인 3월26일 이사회를 열어 K종합서비스 지분(11%) 및 부천역사 지분(25%), 롯데역사 지분(25%)을 매각하기로 의결한 데 이어, 같은 달 31일엔 코레일 애드컴(광고회사)을 청산했다. 4월1일엔 사장과 상임이사, 2급 이상 간부직원의 올해 기본연봉을 3~10% 반납하고, 2급 이상 간부직원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정년 3년 전부터 연차별로 5~10%씩 임금을 감액하도록 했다.
취임 한 달째인 4월19일엔 대대적인 인사개편을 단행했다. 지사장급 15명(전보율 45.4%)과 팀장급 191명(전보율 52.7%)이 교체되거나 보직을 이동했다. 이는 공사 출범(2005년 1월) 이후 최대 규모이다. 이와 함께, 직무와 역량 중심의 ‘책임 경영’체제와 ‘헤드헌팅 및 드래프트(Headhunting and Draft)’제도를 도입했다.
“학연, 지연, 혈연 등 연고인사를 철저히 차단했습니다. 차원 높은 일 중심으로 인사를 한다는 것은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생각해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직원들의 생일이나 근무경력은 알고 있지만 고향이 어디인지는 모릅니다. 비서실에 있는 직원들조차도 고향이 헷갈릴 정도로 그런 것에는 무관심합니다. 그리고 업무는 대폭 위임하고 일할 사람이 자기가 봐서 일을 잘할 사람 선택해서 일을 하도록 드래프트 시스템으로 했어요. 거기에서 누락된 사람들은 일선 한직에 배치됐는데, 일은 잘하고 실력은 있는데 인간관계가 모가 났든지 하는 경우에는 다음 기회를 봐서 구제해줄 생각입니다.”
허 사장은 대대적인 인사개편과 함께 공사 설립 이래 처음으로 간부회의에 참석하는 1급 대우의 고객만족센터장에 여성을 임명했다.
“보통 외국의 웬만한 나라 철도 관련 여직원의 비율은 40% 정도 되는데 우리 철도공사는 7.7%에 불과합니다. 공교롭게도 경찰의 여직원 비율(7.7%)과 같아요. 앞으로 여직원의 비율을 정책적으로 키워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허 사장은 이 같은 대대적인 인사개편에 따른 후폭풍을 줄이고 조직 안정을 위해 4월21일 특별기동감찰을 실시했다. 그리고 23일 이사회를 열어 속전속결로 정원의 15.9%인 5115명을 감축하기로 결의했다. 이는 공기업들 중 가장 큰 폭의 정원 감축이었다. 28일에는 개편된 운송사업본부 및 전국 17개 지사장들과 영업이익률을 20% 이상 향상시킨다는 책임 경영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성과에 따라 철저하게 보상하거나 문책하는 민간 경영 시스템으로 전환됐음을 의미한다. 과연 노조가 이런 급작스런 환경 변화에 대해 동의할까.
“철도공사의 경우 영업수익 대비 인건비가 57%에 달합니다. 사기업의 경우엔 40% 이상이면 망한다고 하는 것을 보면 우리 스스로 감량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조위원장을 만나서 (인원 감축에 대해) 설명을 했습니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기차 이용객 유인
허 사장의 3대 거품 빼기 작업은 5월28일 신입사원에 대한 연봉제 도입 및 초임 7.7% 인하를 마지막으로 마무리됐다. 그야말로 질풍노도(疾風怒濤)처럼 밀어붙인 셈이다. 이 때문에 공기업 선진화를 주도하고 있는 박재완 청와대 국정수석비서관은 허 사장의 혁신활동을 높이 평가했다.(본지 5월호 박 수석인터뷰 참조)
허 사장은 철도공사의 미래 청사진 및 발전 방향을 만들고자 경영기획단을 운영 중이다. 5월1일부터 7월말까지 3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경영기획단은 내부직원과 외부자문위원으로 구성, 7월21일 철도 경영 대토론회를 개최한 데 이어 8월 초 ‘한국철도공사 중장기 청사진’을 선포할 계획이다.
거품 빼기만으로 철도공사의 영업 적자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운송 수익을 높이는 한편 새로운 수익 사업을 찾아야 한다.
“내가 (철도공사에) 오면서 장기적인 비전으로 ‘세계 1등, 국민철도’를 선언했지만 어떤 거창한 것보다 당장 철도가 안전하고 정확하고 환경 친화적인 수단이라는 것을 국민에게 각인을 시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야 선진국처럼 국민들이 국내 여행을 할 때 기차를 먼저 고려하지 않겠습니까?”
허 사장은 부산발 KTX 막차를 저녁 9시25분에서 10시5분으로 40분 늦춘 것을 철도공사 온 이래 가장 보람 있는 일로 생각한다. 일본인 바이어를 상대하는 한 고객이 부산에서 손님과 식사 후 서울로 오려면 시간이 빠듯해 안절부절 했던 때가 많았다며 저녁 10시 이후로 늦춰줬으면 좋겠다고 허 사장에게 제안해 이뤄진 것이다.
“당시 알아보니까 야간정비 등 시간이 많이 걸려 어렵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맥시멈으로 할 수 있는 시간이 밤 10시5분에 막차를 띄울 수 있고, 그것도 7월1일부터 할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더 (시간을) 당겨서 5월1일부터 부산발 KTX 막차를 10시5분으로 늦춘 겁니다.”
이는 아직 시행된 지 얼마 안 돼 막차 이용객이 500여 명에 지나지 않지만 지속하면 연간 35억원 정도 수익이 늘어날 것으로 허 사장은 전망하고 있다.

철도공사는 기차 이용객을 높이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허 사장이 제안한 기차·배를 이용한 제주여행, 지자체 연계 여행 외에도 ‘자전거 테마 전용열차 운행’, ‘와인·인삼 트레인 4050 싱글열차’, ‘팔도장터 농심체험 열차’, ‘9988웰빙기차여행’, ‘고 김수환 추기경 참배열차’ 등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각 사업장에서 쏟아지고 있다. 허 사장은 지자체와 공동으로 테마여행 개발을 위해 전국 경찰서장 인맥까지 동원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특히 허 사장은 열차 이용객을 높이기 위한 일환으로 축구선수 안정환씨와 탤런트 김민종씨를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그 배경에 대한 허 사장의 설명이 재밌다. 안정환씨는 ‘안전’하고, ‘정확’하고, ‘환경’ 친화라는 철도공사의 지향점을 내포하고 있고, 김민종씨는 ‘국민오빠’, ‘국민배우’ 이미지로 ‘국민철도’를 지향하는 철도공사와 이미지가 맞다는 얘기다.
허 사장은 외교관으로 지냈던 것을 십분 활용 해외 진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공무원 생활을 외무부 기획관리실에서 처음 시작했어요. 기획관리실이라는 곳은 다른 부서와 달리 해외 근무자들을 다 알 수 있습니다. 그때 알았던 외교관들이 모두 대사로 나가 있어 주재국 철도건설 등의 협조 요청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허 사장은 최근 카자흐스탄과 러시아를 다녀왔다. 카자흐스탄 철도공사와는 철도 관련 전반적인 사업에 대한 MOU를 체결을 했고, 러시아에서는 정치적으로도 영향력 있는 야쿠닌 철도공사 사장과 사업 논의를 했다고 한다.
해외 사업 ‘편지 로비’가 한몫
한편 허 사장은 5월15일 러시아에서 열린 국제철도연맹회의에서 아시아 의장으로 만장일치로 당선됐다. 허 사장은 이에 앞서 각국 대표들에게 지지를 부탁하는 편지를 ‘정중히’ 보냈다고 한다. ‘편지 로비’는 경찰청장 시절 해외 주재관을 늘리는 데 한몫해 종종 활용하곤 한다. 허 사장은 경찰청장 시절 한국대사들에게 ‘외무부 있던 누구인데, 주재국의 교민들 사건 사고 해결을 위해 필요하면 경찰 주재원을 보내주겠다’고 편지를 보내 대사들의 호응을 이끌어내 주재원을 늘릴 수 있었다고 한다. 허 사장은 4월6일 해외주재 대사와 총영사 151명에게 신성장 동력 발굴을 위한 사업 제휴를 요청하는 편지를 발송했다.
요즘 허 사장의 골머리를 앓게 하는 것은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이다. 2007년 삼성 컨소시엄이 낙찰돼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경기가 나빠지면서 지지부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말까지 8800억원을 내기로 되어 있었으니까 우선 그 금액의 반이라도 내고 외국에서 돈이라도 융통해 달라고 하면 도와줄 수 있는 문제입니다. 아울러 서울시에 협조를 부탁해 용적률을 늘려줄 수도 있는데 상도의에 어긋나게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협상의 여지가 없느냐”는 질문에 허 사장은 “(앞서 말한) 그 정도하면 협상의 여지가 있는 것 아니냐”며 말문을 닫았다.
허 사장은 요즘 직원들과 의사소통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그래서 취임 이후 일명 ‘식사 미팅’을 지속하고 있다.
“우선 팀장급들까지는 (철도공사에) 오자마자 한 달 가까이는 외부 약속을 거의 하지 않고 식사 미팅을 했습니다. 식사한 팀장들이 간부들 빼고 150명쯤 됩니다. 그 밑 팀원들까지 (식사 미팅을) 하려고 마음먹고 있는데 외부의 일이 많이 생겨서 나중에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시골 역 역장님들 애로사항도 들어보고 격려도 해야 하는데 아직 지방은 몇 군데 못 갔어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불시에 직원 개개인과 뭔가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해볼 생각입니다.”
절대 끼니 굶는 법 없는 식도락가
허 사장은 식도락(食道樂)가다. 우선 절대로 끼니를 굶는 법이 없다. 건강 검진하는 날 아침을 먹고 오지 말라고 하면 밤참을 먹어서라도 꼭 세 끼를 채웠다. 대학 시절에는 하루에 다섯 끼(1회 아침 7시에, 2회 아침 11시, 3회 오후 3시, 4회 저녁 7시, 5회 밤 11시)를 먹었다. 고시 공부할 때도 먹는 즐거움을 잃을까봐 절에 들어가지 않았다. 단골도 두지 않는다. 허 사장의 설명이 걸작이다. ‘짧은 인생 폭넓게 살려고 될 수 있으면 안 가본 데(식당)를 간다’는 것이다.
약력
1952년 대구 출생. 1972년 경북고등학교 졸업. 1977년 고려대 행정학과 졸업. 1979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졸업.
1980년 외무고시 합격. 1993년 경북지방경찰청 영양경찰서장. 1999년 경북지방경찰청 차장(경무관). 2002년 강원도지방경찰청장.
2003년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실 치안비서관. 2004년 1월 서울지방경찰청 청장. 2004년 12월 제12대 경찰청 청장. 2009년 3월 한국철도공사 사장(현재).
2009년 5월 국제철도연맹 아시아 의장. 배우자와 슬하에 2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