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종 1등·그린 기업·내수 업종
위기 속에서 ‘승승장구’
지난 1분기 주요 대기업들은 깜짝 놀랄 실적을 발표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흑자를 기록한 것이다.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낸 기업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뜯어보면 실망스러웠다. 환율 효과 덕에 이익만 커졌지 매출이 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고공행진한 환율 덕이 아니었다면 이익은커녕 막대한 손실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뒤이어 나온 얘기는 ‘앞으로’였다. 환율 효과가 사라진 다음이 걱정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환율 효과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이 불황을, 100년 만의 위기라는 이 난국을 제대로 헤쳐가고 있는 기업은 없을까. 이에 <이코노미플러스>는 진정으로 ‘불황에 강한 기업’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기준은 두 가지였다. 지난 1년간 이익은 물론 매출도 줄지 않았거나 늘어났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우증권의 도움을 받아 상장기업 가운데 성장률이 줄었을지언정 성장세를 멈추지 않은, 설혹 뒷걸음질을 쳤더라도 그 폭이 전년 동기 대비 5% 이내이거나 일시적이었던 시가총액 상위 30개 기업을 가려냈다.
LGT, 경쟁 완화로 ‘따뜻한 불황’
30개 기업의 대부분은 업종 내 대장주들이다. 1등만이 살아남는다는 불황의 생존법칙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모든 업종의 1등이 불황에 강했던 것은 아니다. 반도체, 조선, 철강, 자동차 등 한국을 먹여 살리는 기간산업의 대장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경기에 민감했다는 얘기다. 그보다는 업종 시가총액이 적은, 규모가 작은 내수 업종이 선전했다. 유통, 음식료, 제약 등이 그렇다. 성장산업의 대표 기업들도 이름을 다수 올렸다. 신소재 기업과 에너지, 환경 등 녹색기업들이 그들이다.
30개 기업 가운데 시가총액 최대 기업은 인터넷 업계의 절대강자로 자리를 굳히고 있는 NHN이었다. NHN의 안정성은 이미 구조화된 것으로 평가된다. 시장 지배력이 갈수록 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게임 사업이 호조를 보이면서 불황의 파고를 비교적 손쉽게 넘고 있다. 특히 NHN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온라인 광고 시장에서도 강세여서 중장기적으로도 안정적이면서 높은 성장을 이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인터넷 교육 업체인 메가스터디도 NHN과 유사한 경로를 밟고 있다. 수능 시장에서 적수가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압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이후 영업이익률이 3분기 연속 상승하며 위력적인 불황 돌파력을 보여주고 있다. 고교 다양화 등 정부 정책에 따라 중등 사교육 시장이 크게 성장할 전망이어서 2차 전성기도 기대된다.
흔히 불황을 덜 탄다고 알려진 통신 업종에서는 LG데이콤과 LG텔레콤 등 LG그룹의 통신 기업들이 강한 ‘내성’을 과시했다. LG데이콤은 전용회선의 수요가 증가한 데다 인터넷전화(VoIP) 시장이 빠르게 성장한 데 따른 수혜를 톡톡히 보았다. 특히 VoIP 사업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전망이어서 LG데이콤의 성장 스토리는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LG텔레콤은 다소 특이한 케이스다. 매출 성장은 거의 없지만 이익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상승했다. 비용 부담을 덜면서 실속을 차린 덕이다. 이동통신 시장에서 과열 경쟁 분위기가 가라앉으면서 마케팅 비용을 줄일 수 있었고 이것이 고스란히 수익으로 연결됐다. 의무약정제가 시행되면서 과열 경쟁은 더욱 잦아들 전망이어서 LG텔레콤 역시 안정적인 실적 개선을 이어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풍력·태양광 발전 기업 ‘반짝반짝’
대표적인 내수 업종인 유통업에선 신세계가 꿋꿋한 모습을 보여줬다. 신세계는 불황에 강할 수밖에 없는 기업이다. 주력인 할인점 시장의 1위 기업이어서 경기 방어력 면에서는 국내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신규점포 출점과 이마트 에브리데이의 강화, 해외 시장 실적 개선 등으로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제약 업종에서도 불황을 이겨낸 기업들이 적지 않았다. 동아제약, 녹십자, 유한양행 등 대형 제약사들이 고르게 이름을 올렸다. 약은 불황이라고 쉽게 지출을 줄일 수 없는 품목인 데다 대형 신제품들을 잇달아 내놓으며 외국계 기업이 주도하던 전문의약품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면서 매출과 이익 모두 커지고 있다. 특히 동아제약은 ‘제약 = 내수’라는 공식을 깨고 수출을 꾸준히 늘려나가고 있어 추가 성장성도 높다. 제약 기업 가운데 성장성 면에서는 따라올 자가 없다는 셀트리온은 경기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면서 본격적인 초고속 성장 궤도로 들어갔음을 확인시켜 줬다.
중공업에선 두산중공업이 1년 내내 뛰어난 실적 개선을 시현했다. 매출액과 이익 모두 매분기 큰 폭으로 증가했다. 주력사업인 발전과 담수화 시장에서 강한 수요 증가세가 유지된 결과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에너지로 꼽히는 원자력 시장에서 확보하고 있는 경쟁력을 바탕으로 해외 원전 수출 계약이 늘고 있으며 중동의 대형 담수화 프로젝트 재개도 두산중공업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마진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들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녹색기업들도 불황 속의 호황을 맞고 있었다. 특히 풍력이나 태양광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업들의 활약이 눈부셨다. 소디프신소재는 태양광발전에서, 현진소재와 태웅은 풍력발전 부문에서 눈에 띄는 성장세를 과시하고 있다.
소디프신소재는 전 세계 태양광 시장이 확대되면서 최고의 시절을 보내고 있다.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은 박막형 태양광 사업의 재료인 삼불화질소(NF3)와 모노실란(SiHi) 등인데 마땅한 경쟁자도 없어 독주하다시피 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히 가격 협상력이 좋아 매출액 증가율에 비해 이익 증가율이 높다.
현진소재는 풍력발전설비에 들어가는 메인샤프트 기술이 우수해 세계적인 풍력발전 업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현진소재는 선박엔진 등 대형 엔진의 핵심 부품 중 하나인 크랭크샤프트 기술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다. 워낙 높은 기술력을 요구하는 부품이기도 한 데다 이렇다 할 경쟁자도 없는 상황이다. 최소 향후 수년 동안은 안정적이면서 높은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을 전망이다. 태웅도 풍력발전 붐의 수혜를 입고 있다. 현진소재와 마찬가지로 메인샤프트 기술력이 뛰어나 해외 수주가 밀려들고 있다.
도박 산업과 담배 산업은 전통적으로 불경기에 강한 면모를 보여줬다. 이번에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강원랜드와 KT&G가 매우 좋은 실적을 낸 것이다. KT&G는 매출도 매출이지만 이익 증가율이 컸다. 환율이 급등하면서 수출 물량에 대한 환차익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국내 시장도 커지면서 매출과 이익 모두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강원랜드도 양호한 성적표를 작성했다. 슬롯머신과 VIP룸의 매출이 신장하고 카지노 손실금이 감소하면서 매출과 이익 모두 좋은 성과를 만들어냈다.
삼성화재는 오히려 불황의 도움을 받았다. 불황으로 자동차 운행이 줄어들자 사고가 줄었고 이에 따라 손해율이 감소했으며 당연히 이익률이 높아졌다. 하지만 경쟁사들의 실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삼성화재를 제외한 곳들은 공격적인 투자를 했는데 금융위기와 함께 엄청난 손실을 입고 만 것이다. 삼성화재는 보수적인 운용을 해 손실 없이 불황이 준 선물을 고스란히 차지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