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바람 그리고 우주

이우환은 한국과 일본의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예술가다. 특히 한국의 1970년대 모노크롬(monochrome: 單色畵) 회화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또한 일본의 1970년대 현대미술계의 주류를 이루었던 ‘모노파(物派)’ 운동의 중요 이론가이자 작가로 크게 영향을 주었다. 그의 작품은 100호짜리가 3억원을 오르내릴 정도로 현존하는 작가 중 가장 비싸다. 

이우환의 회화는 사물의 구체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추상적이다. 그리고 정신성을 강조한 세계이다. 그의 회화는 일종의 우주공간이며, 무한에 이르는 장(場)이다. 점 시리즈는 붓에 한 번 묻힌 물감이 다 없어질 때까지 찍거나 긋고 또 다시 시작하는 방법으로 화면을 메우는 작업이다. 그의 작품, <점으로부터>(그림 위)는 점을 왼쪽에서 찍기 시작하여 오른쪽으로 나아가며, 처음의 짙고 큰 점은 점차 작고 흐려진다.

이처럼 <점으로부터>에서 점(點)이란 우주의 삼라만상을 표현하는 출발이자 종착이다. 점은 새로운 점을 부르고 선(線)으로 연장된다. 점을 찍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은 이를 통해 유(有)와 무(無)가 반복되는 우주 생멸(生滅)의 원리를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점과 선의 집합과 산란의 광경이다. 존재하는 것은 점이며 유지하는 것은 선이기 때문에 나 역시 점이며 선이다. 따라서 내가 표현하는 점은 항상 새로운 생명체가 된다. 그래서 하나의 점을 찍으면 점의 주변이 움직이기 시작하며 캔버스의 화면에 갑자기 생기에 찬 공기가 감돈다.

1983년부터 그는 <바람으로부터>(그림 오른쪽)라는 새로운 연작을 제작했다. 이것은 이전의 점과 선에서 보여주었던 정연한 질서는 무너지고 일종의 회화의 시각적 해체 현상으로 나타난다. 다양한 필세가 난무하며 화면을 가득 메운 필획들은 뒤틀리고 뒤섞이기도 하며 혼란스러워 보이는데 여기에서 그의 신체가 움직이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이우환 회화 작업의 기본은 점과 선, 서체적 용필(用筆) 그리고 여백 등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화선지가 아닌 캔버스를 사용함으로써 동양화의 번지는 효과를 피한다. 따라서 돌가루와 아교 또는 기름을 결합한 물감을 사용하여 수묵화와는 전혀 다른 화면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구성상으로 여백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캔버스가 크기 때문에 이를 바닥에 놓고 사방을 돌아가면서 작업해야 한다.

이제 그에게 캔버스는 결코 그림을 그리는 재료가 아니라 그 자체가 그림의 일부가 된다. 바닥칠은 그 자체가 하나의 마티에르이며 순수한 세계다. 이우환은 캔버스를 인간과 세계가 교섭하는 무한으로의 통로이자 문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무한이란, 닫힌 이미지가 아니라 외계와의 관계에 있어서 감지되는 무한한 세계를 말한다. 즉, 공백의 캔버스에 몇 개의 점을 찍음으로써 생겨나는 무한한 회화인 것이다. 그것은 어느 것도 스스로의 이데아의 증식이나 확대가 아니라 미지의 것을 불러들이기 위한 외계와의 관계의 장(場)이다.

따라서 진정한 타자론에 있어서 인간의 세계를 넘어서 외계와의 관계를 문제 삼을 때, 예술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신체와의 만남의 관계로서 일회성과 반복성에 의해 이루어지는 대상이다. 그의 회화에 있어서 신체의 행위에 의한 선과 점의 반복적인 형태와 캔버스를 하나의 우주공간으로 보는 정신성은 이후 우리나라의 모노크롬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용|어|설|명

모노크롬(單色畵)  모노크롬(monochrome)이란 1970년대 등장한 단색화 경향을 의미하며, 화면을 보다 ‘단일한 표면과 단일한 색채’로써 표현한다. 한편 근대화라는 전환기적 시대 상황과 유신으로 인한 억압적인 정치·사회적 상황에 대하여, 정치·사회 발언적 태도를 은폐하고 묵시하는 작품 경향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모노파(物派)  모노파란 1970년대 일본에 나타난 미술 경향이다. 모노는 일본어로 ‘물(物)’이라는 뜻으로 물체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다는 의미다. 즉, 나무·돌·점토·철판·종이 등의 소재에 손을 거의 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직접 등장시키면서 그것을 직접적으로 예술언어로 끌어들이려 했던 경향이다. 모노파는 일본의 정체성을 드러낸 경향으로 주목받았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것이 일본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재일 한국인인 이우환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