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플러스>는 KAIST 경영대학원 Executive MBA 과정을 6회로 요약, 지난 4월호에 이어 다섯 번째 강좌를 실시한다. 이번 강좌는 김철호 교수가 맡고 있는 ‘협상 및 갈등 관리(Negotiation & Conflict Management)’과목으로, 미국의 벤처기업 퓨전 시스템즈(Fusion Systems)가 일본의 글로벌 기업 미쓰비시(Mitsubishi)를 상대로 한 특허 분쟁에서 펼친 입체적 협상 전략을 소개한다. 이번 과목의 목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성공 협상이다. 설득과 영향의 조화로 정의할 수 있는 협상의 본질적인 의미를 파악하고 사람을 다루는 기술을 소개한다. 시뮬레이션과 역할게임 등을 통해 실제 적용할 수 있는 감각으로 연결시킴으로써 법적, 경영학적 마인드에 바탕을 둔 균형 잡힌 전략 수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제3의 당사자, 조력자 만들어

협상력 배가 시켜야 ‘성공’

협상력은 개인은 물론 글로벌 시대를 사는 기업의 필수 요건이다. 따라서 협상 능력이 경쟁력인 시대다. 치밀한 기술·전략을 요함은 당연지사. 지킬 것은 지키고 얻을 것은 얻는 것이 협상의 기본이다.

하지만 상대 역시 마찬가지다. 방어와 공격을 병행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협상이 밀고 당기는 고도의 심리전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협상의 목적은 ‘지켜지는 합의’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합의 내용이 지켜지지 않는 협상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곧 협상의 내용을 지키지 못할 것 같으면 재협상을 요청해도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법의 심판에 따른 판결이 아니기 때문에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 내가 죽거나 상대방이 죽는 위기 상황이라면 재협상은 불가피하다. 즉, 들어주거나 요청하라는 얘기다.

협상이 미래 지향적인 이유에서다. 갈등이나 대립관계를 해결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뿐만 아니라 오늘의 적을 내일의 아군으로 만드는 기능까지 갖고 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에서 상대방과 투쟁 끝에 승리하는 것이 단기적 이익을 가져다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상당한 부작용을 낳는다.

물론 협상보다 더 나은 해결책이 있다면 당연히 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협상 이외의 해결책에는 소송, 힘의 대결(국가 간의 전쟁), 자구책(self-help), 무대응(무시 또는 용인) 등이 있다. 하지만 협상 이외의 해결책을 사용할 때에도 마무리는 협상으로 마침표를 찍는 것이 좋다. 단적으로 전쟁을 통해 무자비한 무력진압으로 전쟁에서 이겼음에도 협상 테이블을 마련하는 것은 적국을 동화시키기 위해서다. 이는 로마제국이 2000년 동안 세계를 지배한 힘이다. 로마제국은 무력을 동원해 적국을 무찔렀음에도 마지막에는 반드시 협상 과정을 거쳤다.

현대 협상학도 예외는 아니다. 강자는 약자를 배려하고 겸손해야 한다. 그게 진정한 강자다. 우월한 지위를 악용한 협상은 협상이 아닌 강요나 협박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협상의 결과물은 무용지물이 될 뿐 아니라 오만한 대가를 지불할 수도 있다. 가장 까다로운 협상 중 하나가 바로 약자가 파트너가 될 때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는 예스맨도 마찬가지다.

상반된 제도 근간에서 비롯된 특허 분쟁

경영활동 전 범위에 있어서 경영자는 필수불가결하게 협상을 하게 되는데 이때 합리적 판단 및 선택을 통한 최선의 협상결과를 도출해 내기 위한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방법론을 숙지해야 한다.

협상 테이블에 나가는 사람들에게는 Pareto Efficiency(최대효용), BATNA(최상대안), Reservation Price(유보가격), ZOPA(합의범위) 등 협상 상대방의 한계, 양보범위의 전략적 판단과 각 상황에 따른 대응 전략 준비가 철저히 요구된다.

협상 전략을 설정함에 있어, 협상 당사자, 즉 나와 상대방의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협상 테이블에서는 비록 눈에 보이지 않으나 실질적으로 밀접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제3의 당사자를 찾아 나의 조력자로 끌어들여 협상력을 배가시키는 능력은 필수적이다.

퓨전(Fusion System Corporation)과 미쓰비시(Mitsubishi Electric Corporation) 간의 특허 분쟁 사례는 협상이라는 키워드에서 보면 배울 점이 많다.

1971년 설립된 퓨전은 고성능 마이크로파램프를 발명한 회사다. 최초로 기술을 개발한 만큼 미국, 일본, 유럽에서 특허를 획득했다. 일본에는 1975년에 진출했다. 당시 퓨전과 경쟁관계 있던 일본의 미쓰비시는 퓨전의 특허 기술을 모방해 일본 특허와 실용신안을 출원했다. 그러다 보니 퓨전도 미쓰비시도 각각 일본에서 특허를 받게 된 것이다. 문제는 당시 미국이나 유럽에선 모방발명은 특허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반면 일본에선 모방발명도 엄연히 특허로 인정했다. 또한 실용신안제도가 법적으로 보장해주는 역할을 했다.

결국 퓨전과 미쓰비시는 일본에서 특허 분쟁으로 붙었다. 양자 간의 협상에서 가장 높은 벽은 각 기업이 인식하기 어려웠던 양국의 특허제도의 차이였다. 일본은 대륙 특허법 계열에 뿌리를 두고 있어 중심한정주의(Central Definition System) 및 단항제에 밑바탕을 뒀다.

반면 미국은 영미 특허법 계열에 뿌리를 두어 주변한정주의(Peripheral Definition System) 및 다항제에 근거했다. 전혀 상반된 제도의 근간을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서로간의 ZOPA를 제도권(특허권의 보호 및 합리적 라이선스 계약) 내에서 형성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쉽게 말해 미국은 포괄주의에 입각해 범위와 동일성을 판단하지만 일본은 세부적으로 명기해야 하는 이른바 ‘사시미제도(sashimi systems)’에 기초를 두고 있다.

사실 일본의 특허법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퓨전이 불리한 상황이었다. 이를 반전시키기 위해 퓨전은 일본 특허제도의 부당함을 호소하고 미국 정부와 언론 및 여론을 개입시켰다. 당사자가 아닌 외부의 힘을 빌러 협상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미쓰비시는 무역 분쟁 확산 방지 차원에서의 대응 등으로 협상의 기본 전략을 세우고 맞섰다. 퓨전과 미국 정부는 미국의 기술력 및 특허제도의 우위를 확신하고 일본 특허제도를 비관세 무역장벽으로 간주하고 강하게 개선을 요구하는 힘에 기반한 접근법(Power Base Approach)으로 밀고 나갔다. 특히 미국 정부는 이때부터 일본 특허제도를 양국 간 무역관계에 있어서 커다란 장벽으로 인식, 정조준했다.

갈수록 악화되는 미국 내 반일 여론 및 일본 때리기

일본 정부는 속으로는 미국 정부의 태도가 매우 못마땅했다. 국제 조약상 자국의 특허제도에 대해 독립의 원칙이 지켜져야 함에도 사실상 부당하게 간섭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수록 악화되는 미국 내 반일 여론, 이른바 일본 때리기(Japan Bashing)로 인해 무역상 불이익을 최소화하고자 이해에 기반한 접근법(Interest Base Approach)을 택하게 된다.

이 사례는 법률적 옳음(Legally Correct)의 관점에서 기준 관점의 형성이 불가능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양자 간 기준이 첨예하게 대립해, 결국 윤리적(Ethical), 정치적(Political), 경영자의(Managerial) 관점에서 다면적으로 복잡하게 협상이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소규모 기술벤처회사인 퓨전으로서는 상대적으로 크게 잃을 것이 없었던 반면 미쓰비시로서는 자사 존중의 가치와 원칙을 지키기 위해 감수해야 할 위험이 너무 컸다. 힘(Power), 영향(Influence), 이익(Benefit) 등 모든 협상의 레버리지(Leverage: 지렛대)가 매우 불균형한 입장이었다. 때문에 퓨전은 협상 테이블 안팎의 다각적인 전략을 통해 이러한 상황을 자신의 최적점(Optimal Point)으로 끌어올 수 있었다.

협상에서 문제된 일본 특허제도의 비관세 무역장벽 여부는 결과론적으로 볼 때 부당한 지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10여 년간의 역사적 사실을 돌아보아도 양국 간 무역 불균형 문제는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 상실 등보다 근본적인 여러 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적절성 여부를 떠나서 퓨전의 협상전략의 성공 포인트는 이해관계의 범위(Scope)를 단계별로 고려해 다면적으로 활용함으로써 협상력을 배가시켰다는 데 주목할 만하다. 사실 양자 간 협상에서 진정한 최대 수익자는 당사자인 퓨전이라기보다 오히려 미국 정부라는 지적이다. 일본 특허제도를 자국 제도에 맞추도록 개정을 이끌어 냈을 뿐만 아니라, 향후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 등을 통한 국가 간 지적재산권(WTO/Trips) 협상 등에서 광범위한 영향력을 확보하게 됐기 때문이다.

민감한 이슈였던 무역 분쟁과 연계 전방위 압박

퓨전은 협상 테이블에서는 보이지 않던 최대 이해 관계자인 미국 정부라는 강력한 이해 관계자를 끌어들여 별다른 큰 노력 없이도 상대방으로부터 최대한의 양보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매우 효율적인 협상 전략을 구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즉, ZOPA와 BATNA를 판단함에 있어 자신과 상대방의 평면적 이해득실만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이해관계의 범위를 달리하면서 각 단계별 제3의 이해 관계인이 과연 누구이며, 어떠한 이해득실에 따라 나의 협상력을 높여줄 수 있을 것인가 또한 고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미쓰비시가 퓨전에 휘둘린 듯 보이나 소탐대실의 우를 피하고 실리를 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퓨전과 협상한 사업 분야의 규모가 미쓰비시 입장에서 볼 때 매출액 규모로 수백만달러에 불과하고, 반대로 미국 시장 영업에서 얻는 미쓰비시그룹 전체의 영업이익은 수십억달러대임을 감안할 때, 그리고 미국 내 반일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사업 기반을 확충시킨 것을 볼 때, 미쓰비시는 지혜로운 타협의 길, 가치 창출의 길을 택했다고 볼 수 있다.

퓨전에게 가장 중요한 해외 시장이었던 일본을 무대로 펼친 퓨전과 경쟁사인 미쓰비시 간의 분쟁 사례는 사업을 영위하고자 하는 대상 국가의 특허제도, 그리고 그 특허제도의 근간이 되는 산업구조와 산업정책에 대한 충실한 이해가 경영자에게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교훈을 시사해준다. 특히 미국 정부와 언론을 동원해 미·일 간의 민감한 이슈였던 무역 분쟁과 연계하는 전방위 압박을 가함으로써 마침내 미쓰비시로부터 유리한 타협안을 이끌어 내고, 일본에서 수익성이 높은 영업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은 입체적인 협상 전략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퓨전과 미쓰비시는 퓨전이 일본 내 판매금액의 일부를 로열티로 지급하는 조건으로 최종합의를 봤다. 당초 미쓰비시가 퓨전에 대해 핵심 램프에 대한 글로벌라이센스를 무상으로 요구하는 한편, 동시에 거액의 현금과 로열티 지급을 주장한 것에 비하면 상당한 차이가 나는 합의안이다. 물론 양자 간의 합의안은 비공개다. 협상의 마지막은 비밀이다.

현대 협상학이 강조하는 주요 협상 능력

1 나의 BATNA를 개선하고 상대방의 BATNA를 약화시킬 수 있는 능력.

2 나와 상대방의 이해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

3 파레토 프론티어에서 합의를 이룰 수 있는 능력.

4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파이 나누기 기준’을 도출해 낼 수 있는 능력.

5 협상 결과를 잘 기획하고 현실적으로 실천 가능한 합의문을 작성해 낼 수 있는 능력.

6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 능력.

7 협상 주체간의 관계를 긍정적이며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

tip  KAIST EMBA

KAIST Executive MBA는 KAIST 경영대학원이 2004년 개설한 주말 학위 과정이다. 이 과정은 실무 경력 10년 이상의 핵심 중견관리자와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다. 현업에 몸담고 있으면서 학업을 병행하고 학습한 내용을 바로 실무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수업은 실무경험과 사례 및 토론 중심으로 진행된다. 미국 Columbia Business School과 유럽의 IE Business School이 Executive MBA의 파트너 학교다. KAIST Executive MBA 2010학년도 Open School이 8월22일(토) KAIST 경영대학원에서, 입학설명회가 9월4일(금) 조선호텔에서 진행된다. Executive MBA의 차별화된 특징, 구체적인 커리큘럼 등 실질적인 학교생활을 소개하고 참석자와 함께 Q&A 시간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