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 부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잘 살펴보면 있다. 다만 이것은 다분히 주관적일 수 있다. 하지만 누가 봐도 “맞아. 그럴 수 있네”하고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그런 점에서 골프가 아내를 닮았다고 하면 어떤 의미를 가질까.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깊은 것? 딱히 꼬집어 말하기는 뭐하지만 비슷한 점이 적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다.
1 인연을 맺으면 끊기가 힘들다.
골프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던 사람이 골프에 빠져 들면 금방 예찬론자가 된다. 독신을 고집하다가도 결혼을 하면 이렇게 좋은 것을 왜 안하려고 했지 한다.
2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살다보면 아내 혹은 남편이 맘에 들지 않을 때도 있다. 골프도 똑같다. 어느 날은 잘 되다가 갑자기 망가진다. 이럴 때 후회를 한다. 클럽을 잡지 말 것을.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3 변화무쌍하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월급날 기분이 좋았던 아내도 카드 청구서가 날아와 보라. 금방 붉으락푸르락한다. 골프도 묘하다. 같은 골프장, 같은 홀에서 어쩌면 그리도 다른지. 전날 버디를 했다고 좋아하다가 다음 날 트리플보기로 실망한다. 그게 골프다.
4 가끔 이별을 생각한다.
부부간에도 트러블이 생기고 말 못할 무엇 때문에 한번쯤 이혼을 생각하게 된다. 아이가 생기는 이유는 결혼하고 권태기에 접어들면 헤어지지 말고 잘 살라는 것. 그럼에도 요즘엔 이혼도 쉽게 한다. 골프도 그렇다. 해도 해도 늘지 않을 때가 있다. 열심히 해도 100타를 벗어나지 못할 때 당장 때려치울까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디 그게 쉬운가. 배우고 투자한 게 아까워서 버리지 못한다.
5 처음에는 힘으로, 이후에는 테크닉이 가미된다.
초짜부부는 힘만 좋다. 기술이 필요 없다. 사랑과 애정으로 보고만 있어도, 안고 있기만 해도 좋다. 하지만 매일 같은 밥에 똑같은 콩나물국만 끊여 내오면 질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테크닉이 필요할 터. 골프도 한 3년 지나고 80대로 내려오면 기술 샷을 구사하기 시작한다. 골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는 때다.
6 홀 근처만 가면 겁난다.
나이대별로 다르다. 20대는 외박하고 들어갈 때, 30대는 연체한 카드빚 독촉장이 날아올 때, 40대는 샤워하는 소리가 들릴 때라고 한다. 골프도 괜히 그린에만 올라가면 부담스럽고 가슴이 떨린다. 구멍은 작지, 라인은 잘 보이지 않지 등등 걱정이 태산이다. ‘여자와 골프는 구멍 맛보기’라고 하지만 무서울 때가 있는 것이다.
7 돈들인 만큼 달라진다.
어느 날 보너스를 왕창 안겨줘 보라. 아내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서비스도 달라진다. 골프는 사실 연습을 많이 해야 기량이 는다. 그런데 골프클럽만 사들이는 골퍼가 있다. 물론 비싼 클럽은 그만큼 제 값어치를 한다. 비싼 이유가 있으니까. 그리고 골프웨어도 돈 들인 만큼 멋지게 입을 수 있다.
8 잔소리를 하면 할수록 안 된다.
부부가 플레이하는 것을 보면 재미있다. 잘 치는 사람이 잔소리를 한다. 특히 라운드하면서 하루 종일 레슨을 하느라 입이 쉴 사이가 없다. 좁쌀영감처럼 집에서도 잔소리를 심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은 골프는 플레이 중에 레슨을 받으면 더 못 치는 사람이 있다. 주부들도 잔소리를 들으면 하던 집안일도 하기 싫어진다.
9 물을 싫어한다.
주부들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설거지다. 주부습진도 생기고 많이 하면 허리도 아프다. 워터해저드를 만나면 영락없이 꼭 볼을 빠뜨리는 사람이 있다. 해저드는 항상 페어웨이보다 아래에 있다. 그럼에도 워터해저드를 만나면 이상하게 퐁당 빠뜨리는 것이다.
10 소홀해지면 금방 티 난다.
우스개 소리로 물을 잘 줘야 시들지 않는다고 한다. 남의 집에 가서 물주는 사람의 아내는 늘 시들하다. 골프연습도 마찬가지. 하루 연습을 안 하면 내가 알고, 이틀 안하면 주변 사람들이 알고. 사흘을 안 하면 온 세상 사람들이 안다고 한다.
11 힘이 들어가면 후회한다.
모든 것을 힘으로 하려는 골퍼가 있다. 사랑도 힘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힘차게 피스톤 운동만 해보라. 무식한 게 힘만 세다는 소리를 듣기 딱 알맞다. 스윙할 때 물론 적당한 힘도 필요하다. 그러나 스윙을 무시하고 힘만으로 볼을 때리면 슬라이스나 훅이 나서 볼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간다. 볼을 때릴 때 애인 다루듯 하라고 했다. 옷을 벗게 하는 것은 강풍이나 돌풍이 아니라 따뜻한 햇살이다.
12 조강지처가 낫다.
클럽을 자주 바꾸는 사람이 있다. 내일 내기 골프를 하는데 전날 클럽을 신제품으로 사서 골프장에서 비닐을 뜯는 용감한(?) 골퍼도 있다. 프로골퍼들도 용품사를 바꿀 때 6개월간의 기간을 준다. 새로운 클럽이 손에 충분히 익을 때까지 시간을 주는 것이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가 있다. SBS주말드라마 <조강지처클럽>. 남편이나 아내가 외도로 인해 가정이 파괴되는 내용이다. 주인공들의 외침은 조강지처의 힘을 보여주자는 것. 조강지처가 애첩보다 나은지는 늙고 병들어 보라. 애첩은 떠나지만 본처는 수발한다. 곁에 있을 때는 잘 모른다. 아내가 집을 며칠간만 비워보라. 남자들은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13 대들어봐야 소용없다. 달래고 구슬려야 이긴다.
아내에게 대들어봐야 본전도 못 찾는다. 큰소리내고 싸워야 좋을 것이 없다. 지는 게 이기는 것이다. 골프가 아내 같다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샷이 망가지거나 거리가 덜 나면 몸을 더욱 많이 쓰고 마치 성난 소처럼 씩씩대며 달려드는 골퍼가 있다. 그래봐야 본인만 손해다. 볼이 잘 맞지 않을수록 몸의 움직임을 줄여야 골프가 잘 된다. 볼을 달래서 치라고 한다. 마치 볼을 산산조각 낼 듯 덤벼들면 그날 골프는 망치고 만다.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듯 클럽을 잘 다스리고 볼을 잘 달래서 쳐야 거리도 나고 정확성도 높아진다.
14 남의 것을 건드리면 반드시 처벌을 받는다.
모르고 남의 볼을 쳤다고 해서 면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구플레이로 2벌타를 받는다. 그리고 자신의 볼도 건드리면 안 된다. 디봇에 빠지거나 러프에 들어가면 좋은 곳으로 옮기는 골퍼가 있다. 손으로 하거나 발로 툭 차서 옮겨 놓는다. 이는 남의 볼을 치는 것보다 더 나쁜 짓이다. 성경말씀에 ‘네 이웃을 탐하지 말라’고 했다. 건드리면 사고 난다.
15 유지관리에 돈이 든다.
아내는 관심을 안보이면 삐친다. 부부관계도 이상해진다. 종종 명품가방이나 목걸이, 반지를 사줘야 하고 외식도 해야 한다. 골프도 시간과 돈을 까먹는 공룡이다. 투자한 만큼 효과를 보는 점에서 똑 같다. 돈뿐 아니라 정력, 정성, 인내심을 요구한다.
16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해도 모르는 구석이 많다.
100년을 살아봐라, 아내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 수 있나. 천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의 마음은 모른다. 골프도 양파처럼 벗기고 벗겨도 새롭다. ‘아, 이게 골프구나’ 하는 순간 골프는 또다시 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