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초부터 영국 청년작가(yBa: young British artists)로 주목받기 시작한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44)는 영국 미술계에 변화를 가져온 주역이다. 그 변화는 허스트가 기획한 동창전인 ‘프리즈(Freeze·1988년)’전에서 드러났다. 젊은 영국 미술가들의 집단적 전시인 ‘프리즈 제너레이션(Freeze Generation)’ 작가들은 유럽과 미국으로 이어져 국제 미술계의 본격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으며 이후 1997년의 ‘센세이션(Sensation)’전을 통해 그 모습은 더 깊게 각인됐다.
그는 매스 미디어의 대중문화와 자율적인 순수예술의 경계를 거침없이 드나들었다. 그는 성, 폭력, 마약 등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들을 섭렵해 왔기에, 그에게 저급과 고급의 문제는 더 이상 넘어야 할 장벽이 아니었다. 허스트의 일관된 작업 주제는 ‘죽음’이며, 이를 대변하는 인간 심리의 모순된 욕망과 허위의식이다. 그는 특히 존재와 죽음에 대한 인식의 모순에 접근했으며, 깨끗한 소재들뿐 아니라, 더럽고 악취 나는 쓰레기 같은 소재들에 이르기까지 소재의 폭을 넓혔다. 그리고 무관심과 냉소 이면에 비장함과 숭고함을 감춘 미묘한 감각으로 작품을 제작함으로써 자신만의 기호들로 고도로 개념화된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는 이러한 주제를 매우 직접적이고 충격적인 표현 방법으로 관객에게 제시함으로써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켜 왔다.

이러한 허스트의 죽음에 대한 강박증은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육체적 죽음의 불가능성>이라는 긴 제목의 작품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는 죽은 상어를 주문하여 포름알데히드로 가득 찬 유리 케이스 속에 매달고 모터를 연결하여 움직이게 하여 전시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죽음의 주제를 표현한 방법에 대해 “나는 포름알데히드 속의 상어가 살아있는 동물이기를 원했고,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았을 때 상어가 자신을 잡아먹을지도 모른다는 충격을 받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영원한 삶을 말하는 낭만적인 제목과는 달리 이 작품에는 매우 차갑고 먼, 심지어 미묘한 웃음까지 띤 허스트의 시선이 도사리고 있다. 그는 죽음과 그것에 이르는 고통에 대한 ‘관음증’에, 두려우면서도 떨쳐버릴 수 없는 그 강한 충동에 매우 능숙하게 대처함으로써 관람자와 시선을 함께 공유하고자 의도한 것이다.
허스트의 회화 작품은 형식적으로 그의 설치 작품과 다르지만 내용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으며 심지어 유사하기까지 하다. 특히 점 회화, <아르지니노수치닉 산>은 캔버스나 자동차 위에 임의로 구성된 점들이다. 이는 색채의 특정한 양식 없이 광택이 있는 에나멜로 그려졌으며, 이러한 표현 방식은 미니멀리즘적인 회화 양식을 보여준다. 허스트는 분리된 사물을 늘어놓는 식의 것을 좋아하여 평면적인 회화에서도 자유로우나 고도로 규격화된 계획안에서 우연과 필연이 공존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밝지만 중성적인 색깔의 점들은 각각의 요소가 서로 영향을 미치며 상호작용한다.
허스트는 영국 브리스톨(Bristol)에서 태어나, 리즈(Leeds)에서 성장했고, 골드스미드 대학(Goldsmith’s College)에서 수학했다. 1991년 런던에서 열린 최초의 개인전 이후 1991년의 파리 개인전, 1992년의 뉴욕 개인전, 1993년의 베니스 비엔날레 등 각종 국제전과 1995년의 터너상 수상 등을 통해 프란시스 베이컨(F. Bacon)과 데이비드 호크니(D. Hockney)를 잇는 영국 미술의 대가 반열에 오르게 됐으며, 1996년과 2000년 두 번에 걸친 가고시안전을 통해 뉴욕에서의 입지도 굳혔다. 허스트에게 죽음은 삶을 연장하는 계기다. 사실 그는 냉소적인 성격을 갖고 있지만 그의 작품은 냉기 스미는 순간일지라도 본질적으로 삶에 긍정적이다. 최근 그는 ‘팩트(fact: 사실)’에 기초한 ‘사진-사실주의’ 회화에 몰입 중이다.
용|어|설|명
yBa(young British artists) 영국의 yBa는 nBa(new British artists)나 cBa(contemporary British artists) 등의 칭호와 더불어 쓰이는데, 함축하고 있는 의미와 해석되는 내용이 다소 다르다. 현재 통용되는 yBa는 작가가 영국 태생이어야 하기보다 작품의 형식과 내용이 영국적이어야 하며, 개념, 소재, 주제 등 모든 면에서 파격적이고 실험적이며 그 표현 방법도 강한 흡인력을 지녀야 한다. 사랑과 성, 유행과 풍습, 지루함과 흥분, 폭력과 학대, 병과 죽음, 순수함과 복잡함 등의 테마 아래 긍정과 부정에 의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yBa는 현재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발전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