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나도 목소리 높일 필요없다?
차량용 블랙박스 달면 걱정 ‘뚝’

한국자동차공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우리나라 차량 등록대수가 1700만 대(세계 14위)를 넘어섰다. 차가 늘어남에 따라 자연히 사고도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사고 입증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가 부족해 사고 관련자들 간에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사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러한 시비를 가릴 수 있는 IT기기가 바로 ‘차량용 블랙박스’다. 항공기의 비행기록장치를 말하는 블랙박스처럼 차량운행과 관련된 영상과 데이터를 기록한다. 이 기기는 차량 주행 상황을 영상으로 기록해 교통사고 목격자 역할을 한다. 주행 상황을 영상 형태로 저장함과 동시에 위성위치확인(GPS) 기능을 내장해 위치와 속도 등을 기록한다.
이 때문에 교통사고 시 원인을 정확하게 밝힐 수 있어 피해자와 가해자간 분쟁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또 운전자로 하여금 안전운전을 유도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교통사고 처리에 능숙하지 않은 여성 운전자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일부 보험회사에서 블랙박스 장착 차량에 대해 보험료 할인 혜택(약 3%)을 제공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에는 택시 등에 블랙박스를 설치하는 지방자치단체도 늘고 있다. 경기도는 지난 7월부터 도내에서 운행 중인 택시 3만4451대에 총사업비 47억원을 투입하여 블랙박스를 설치하고 있다. 서울, 부천, 전주 등도 택시 등에 블랙박스 설치를 준비 중이다.
10여 개 업체 선점 경쟁 치열
이에 따라 차량용 블랙박스 시장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상용차(택시, 버스, 트럭 등) ‘의무장착’ 추진과 블랙박스 장착 시 보험료 할인 확산 등 안팎의 호재가 맞물리면서 단말기 제조업체뿐 아니라 내비게이션업체도 앞 다퉈 신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이미 올 상반기에 나온 제품만도 20여 종. 이는 지난 한 해 동안 출시된 제품 수보다 두 배 이상 많을 정도로 ‘선점 경쟁’이 치열하다.
관련 업계는 올해 시장 규모를 10만 대(약 200억원)로 추정하고 있다. 2010년에는 약 30만~40만 대에 600억원에서 800억원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해외 시장도 급성장할 전망이다. 유럽은 2010년부터 모든 차량에, 미국은 2011년부터 4.5톤 이하의 모든 차량에 블랙박스 장착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해외 경쟁 업체가 거의 없기 때문에 차량용 블랙박스가 수출 효자상품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차량용 블랙박스 제품을 선보이고 있는 기업은 내비게이션으로 유명한 엑스로드를 비롯한 10여 개 업체. 엑스로드는 최장 72시간 녹화되는 ‘네로’를 앞세워 시장에 뛰어들었다. 초기 모델의 경우 사고 전후 약 15초가량만 녹화돼 정확한 사고 입증이 힘들다는 단점을 보완해 장시간의 운전정보를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상시녹화가 돼 사고 시뿐만 아니라 주행 중인 모든 영상이 저장돼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130만 화소짜리 고해상도 카메라가 장착돼 신호등, 차량번호판 등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엑스로드는 올해 매출의 10%가량(50억원)을 블랙박스 사업에서 올린다는 목표를 세우는 등 기대가 크다.
김정훈 엑스로드 부장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택시 등의 ‘의무장착’이 강력히 추진되고 있어, 시장은 내년에 3배 이상 급성장할 전망”이라며 “영상을 저장하고,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블랙박스와 내비게이션이 연동된 모델이 대세를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국내 내비게이션 1위 업체인 팅크웨어도 시장 진출을 검토 중이다. 내비게이션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팅크웨어가 가세할 경우, 확산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벤츄리씨엔씨에서 내놓은 ‘벤츄리 모토모’는 CCTV 기능을 갖추고 있다. 주행할 때뿐만 아니라 주차 시에도 전방과 측·후면을 녹화할 수 있다. 이 제품에는 앞뒤 양쪽에 카메라가 있다. 특히 실내 방향의 카메라에는 측면광학렌즈가 부착돼 차량 좌우 측면에서 발생하는 사고도 기록에 남길 수 있다.
하이패스단말기 대표업체인 아이트로닉스의 ‘아이패스 블랙(ITB-70)’은 카메라가 180도 회전이 가능해, 전면뿐 아니라 필요에 따라 차량 내부까지 녹화할 수 있다. 또 3중 충격감지 센서를 내장해 상시 녹화 중 사고로 인한 충격 순간은 이벤트 파일로 자동 구분해 기록한다.
운전 패턴·습관 고려해 제품 선택해야
KT로지스의 ‘세이프박스’는 적외선 감지 기능이 있어 야간촬영에 강점이 있다. GPS도 내장돼 있어 사고 시의 날짜, 위치 등이 기록된다. 또 음성녹음기능도 있어 사고 상황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
아몬의 ‘아몬(Amon)-1’ 는 저렴한 가격의 실속형 제품. 다른 제품들이 20만~30만원대 후반의 가격이라면 10만원대 초반에 구입할 수 있다. 사고 전후로 약 30초간의 영상을 초당 30프레임으로 저장할 수 있다.
김정훈 부장은 “차량용 블랙박스가 많이 출시되고 있는데, 고가의 제품을 고집하기보다는 자신의 운전 패턴과 습관을 고려해 적절한 제품을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