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유통업계 이끄는 ‘강소기업’ 부상
컴퓨터 조립, 주변기기 판매업체가 즐비한 용산 선인상가에 가면 특이한 매장이 하나 있다. ‘아이코다(www.icoda.co.kr)’라는 이름의 이 매장은 화사한 오렌지색 분위기에, 은행창구처럼 번호표를 뽑고 순서를 기다릴 수 있으며, 기다리는 동안 따로 마련된 컴퓨터로 제품 정보를 검색해 볼 수도 있다. 계산할 때 현금과 카드 무엇을 내밀어도 밝은 얼굴로 받아준다. 컴퓨터와 주변기기들을 적당히 쌓아둔 밋밋한 주변 매장들과는 사뭇 다르다.
이 매장을 운영하는 ㈜아이엠펀의 이용수 사장은 “고객들이 지쳐서 다른 곳으로 가지 않도록 2년 전 은행창구 시스템을 도입했다”며 “고객들도 기다리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으니 좋지 않으냐”고 말한다.

설립 18년 만에 매출 1000억원 돌파
아이엠펀은 컴퓨존과 함께 국내 PC유통업계를 이끄는 선두권 기업이다. 설립 18년 만에 매출 1000억원을 넘어선 뚝심 있는 회사다. ‘아이코다’ 브랜드로 온겳의?매장을 함께 운영한다.
이용수 사장은 이 회사의 창업자다. 이 사장은 군 제대 후 1990년에 용산 선인상가에서 친구들과 동업으로 PC조립 사업을 시작했다. 88 서울올림픽 이후 우리 경제가 잘 나갈 때여서 용산 전자상가의 경기도 좋을 때였다. 그는 1년 반 후 독립했다. 자본금은 2000만원. 이것이 아이엠펀의 시작이었다. 현재 매장 위치도 당시 그대로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조금씩 넓어져 지금 매장은 초기보다 17배 확대됐다.
이 사장은 초창기부터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일했다.
1991년 독립하자마자 그는 제품 사양별 가격 및 간략한 용산상가 소식을 담은 정보지를 만들었다. A4용지 10장 정도에 제품 사양별 가격을 빼곡히 적어 넣었다. 그는 이 정보지를 매달 고객들에게 보냈다. 용산 상인들 중 처음 하는 시도였다.
“당시만 해도 용산에서는 제품 시세정보를 영업비밀로 봤죠. 하지만 저는 소비자들이 시세를 모르고 거래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정보지 효과였을까. 기존 고객의 이탈이 적었고 새로 오는 고객들도 꾸준히 늘었다. 매출이 옆 가게의 두 배 수준으로 불어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구입한 PC를 고객이 직접 가져가 설치하는 방식의 판매도 그가 용산에 처음 도입했다. 지금은 이런 일이 흔하지만 1990년대 초반만 해도 달랐다. PC 조립 후 직원이 제품을 직접 배송하고 설치까지 해줬던 것. 그러나 직원도 몇 명 없는데 설치까지 하면 하루에 몇 대밖에 팔 수 없었다. 설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일정 규모 이상의 성장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사장은 그래서 고객이 직접 설치하게끔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경기도의 한 대학 앞에서 PC조립 매장을 하던 친구가 이런 식으로 파는 것을 봤던 터라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었다. 도입해 보니 고객들 반응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판매 후 설치하는 시간이 줄어들자 이렇게 확보한 시간만큼 판매에 탄력이 붙었다. ‘고객 직접 설치’를 시작하기 전과 비교해 매출은 대여섯 배 이상 늘어났다.
A/S센터를 판매 매장에서 분리해 운영한 것도 용산에서 이 사장이 처음이다. A/S센터 분리는 별일 아닌 것 같아도 영업의 중요한 포인트다. 제품 문제로 화가 난 고객들이 매장에서 큰 소리를 내면 매장 영업에 지장이 생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마케팅 전략, 용산 상가 첫 시도 즐비
2001년 도입한 당일 배송 서비스도 빼놓을 수 없다. 용산을 찾는 소비자들은 전자상가에 들어가면 수십여 곳의 매장을 지나가야 한다. 언제든 다른 매장에 손님을 빼앗길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 사장은 그래서 ‘당일배송’ 카드를 꺼냈다. 온라인에서 주문해도 오프라인에서 사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면 고객들이 굳이 오프라인 매장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경쟁업체에 손님을 뺏기지 않으려고 시작했죠. 그런데 반응이 좋았어요. 번거로운데도 굳이 오프라인 매장으로 오는 고객들은 급하다는 얘기인데, 그게 해결됐던 거죠.”
용산에서 현금과 카드 판매 가격을 동일하게 적용한 것도 처음이다. 이 사장은 “사실 고민을 좀 했다”며 웃었다. 카드 수수료 때문에 이익은 약간 줄었지만 이 사장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 됐다. 요즘은 카드 고객이 대세다. 카드 결제를 선호하는 고객들이 꾸준히 찾아오면서 현금과 카드 결제 동일가격 정책이 영업에 오히려 도움이 된 것이다.
이 사장은 한발 늦게 시작한 서비스에서도 경쟁자들을 압도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아이엠펀은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후발주자다. 1990년대 후반 어느 날 해외 사정에 밝은 지인이 그에게 “이 사장도 전자상거래를 생각해 보라”고 조언했다. 그게 계기였다.
“그분을 통해 미국에 이베이(온라인 장터업체)가 뜨고 있고, 국내에서도 초고속인터넷 서비스가 시작됐다는 등, 당시 IT의 흐름을 알았죠. 그래서 조사해보니 이미 인터넷으로 컴퓨터 조립과 주변기기 판매에 나선 업체들이 꽤 많더군요.”
조급할 법도 하건만 이 사장은 서두르지 않았다. 1년 정도 차근차근 준비했다.
“인터넷 쇼핑몰을 준비하면서 다른 업체들의 쇼핑몰을 둘러봤어요. 그런데 손님 입장에서 볼 때 영 불편했어요. 제품 설명도 별로 없고 제품 모습도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었죠. 쇼핑 후 결제까지의 과정도 복잡했구요.”
그래서 이 사장은 소비자 편의성을 높인 쇼핑몰을 만드는 데 중점을 뒀다. 제품 사진도 경쟁업체들은 제품설명서 사진을 그대로 올린 수준이었지만 아이코다에는 개별 제품 포장을 다 뜯어서 여러 각도로 사진을 새로 찍어 올렸다.
온라인 쇼핑몰을 연 후 별다른 홍보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고객이 늘어났다. 기존 고객들을 중심으로 소문이 난 것이다. 현재 온라인 매출은 이 회사 전체 매출의 9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이 사장에게도 고민은 있다. 우선 G마켓 같은 인터넷 오픈마켓의 할인 공세가 강해졌다. 소비자들이 데스크톱 PC보다 노트북을 선호하는 요즘 추세도 걱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자체 브랜드 사업을 강화해 돌파구를 찾을 생각이다. 아이엠펀은 자체 브랜드인 ‘아이코다’ PC를 월 2000대 정도 판매한다.
이 사장은 “가격비교 사이트가 생기면서 외부 브랜드 제품 유통은 최저가 경쟁으로 가고 있는데, 외부 브랜드 제품 판매로는 마진을 많이 남기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체 브랜드 PC라면 우리가 출시 가격을 책정하니까 이익이 난다”고 설명했다. “제대로 커나가려면 자체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