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순간 반 토막… 미적 체험 우선해야

그림을 구입했거나 미술 시장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림이 돈이 된다’는 말에 솔깃한다. 화랑이나 아트페어를 찾은 컬렉터들이 처음부터 투자의 잣대로 그림을 고르는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다.

재테크는 투자 대비 플러스 수익을 거두는 것을 의미한다. 100원을 투자했으면 1원이라도 더 남겨야 재테크로서 의미가 있다.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몇 년 소장하고 있다 보면 박수근이나 이중섭 그림처럼 떼돈을 벌 수도 있을 것으로 은근히 기대하는 사람도 많다.

그림 가격의 절반은 거래비용

결론부터 말하면, 미술품 투자는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와는 크게 다르다. 100원을 투자해서 반드시 1원이라도 이익을 얻겠다는 욕심 하나로 미술품을 구입했다가는 100명이면 100명 모두 실망하게 마련이다.

투자 실현의 불확실성은 여느 상품이나 같다. 주식이나 부동산이 그렇듯 내가 구입한 그림이 미래에 오를 것인지 떨어질 것인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대안 화랑에서 구입한 무명의 신인 그림이 10년, 20년 뒤 로또가 될 수 있지만 언론에서 떠들썩한 화가의 그림이 10년, 20년 뒤 호당 10만원에도 거래되지 않을 수도 있다.

게다가 미술품은 다른 투자 상품과는 달리 거래 비용이 상대적으로 많다. 그림을 사거나 팔 때, 그 과정상에 드는 비용이 여느 상품과는 달리 때로는 부담스럽게(?) 작용한다. 미술품 거래의 주요 루트는 화랑과 옥션, 아트페어, 온라인 등이다. 만약 당신이 화랑에서 그림 한 점을 200만원에 구입했다면, 그 그림을 사는 순간부터 당신이 소유한 그림 값은 100만원으로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작품 거래를 위해 화랑이 장소를 대여하고, 팸플릿이며 현수막 등 홍보물을 제작하며, 여기에 언론 홍보며 뒤풀이 비용까지 감안해서 작품 판매가의 50% 정도를 제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화가에게 돌아가는 몫은 100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작품의 ‘상품’으로서의 내재가치는 100만원인 셈이다. 유통비용 부담은 시장 구조상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옥션을 통해서 구입할 때는 어떨까. 그림 한 점을 옥션을 통해 구입한다면 대략 10% 정도의 구매 수수료를 지불한다. 그렇게 구입한 작품을 다시 옥션을 통해 되판다면 그때 다시 10% 정도의 판매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예를 들어 200만원짜리 그림을 사서 다시 200만원에 되판다면 상식적으로는 ‘본전치기’다. 그러나 실제 거래 후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40만원 정도 손해를 본 셈이다. 살 때 20만원, 팔 때 20만원 해서 40만원의 거래비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10%의 부가세도 따로 부담한다. 그래서 ‘미술품은 사는 순간 중고’라는 말을 한다. 이런 셈법을 사전에 이해하지 못하면 뒤늦게 아쉬워하고, 마치 속은 것처럼 미술 시장을 원망까지 하게 된다.

그렇다면 미술품은 투자 대상으로서 부적절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실제 지난 몇 년간의 경험은 미술품이 투자 대상으로 매우 매력적이라는 점을 확인시켰다. 이우환, 이대원, 김종학, 오치균, 김창열 등 국내 미술 시장 톱10 작가들의 경우 3~4년 전만 해도 시장에서 거래된 작품의 최고가는 수천만원대 수준이었다. 그러나 최고점인 2007년에 비해 작품 가격이 반 토막이 났다는 지금에도 이들의 작품은 수억원을 호가하고 있다.

미술품 투자는 접근하는 시각부터 달리해야 한다. 미술품은 무형의 금융 상품이 아니고, 재가공이 가능한 부동산도 아니다. 미술품은 그만의 독특한 부수적 가치를 동반한다. 미술품은 우선 쇼핑의 재미부터 전해준다. 그림을 고르는 것은 백화점에서 비싼 보석을 고르는 것과 같은 쾌감이 있다. 고상하게 대우를 받으면서 작품을 고르는 것은 자존감과 함께 스트레스 해소에도 그만이다.

자녀교육에도 효과 만점 

한 작가의 땀과 영혼의 결정체인 작품세계를 공유하고 소유하는 데서 오는 느낌도 남다르다. 거실이나 서재 벽에 걸어두면 집안의 분위기는 물론, 주인의 인격까지 덩달아 올라간다. 고급가구나 가전제품이 주는 뿌듯함과는 색깔이 다르다. 친구를 만나도 남편 흉보기나 자식 자랑이나 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고품격 얘깃거리를 제공한다.

거실을 갤러리처럼 꾸미면 아이들의 정서 교육에도 큰 도움이 된다. 굳이 세계 명작을 감상하기 위해 관람객에 떼밀려 미술관을 들락거릴 필요도 없다. 계절마다 분위기에 맞는 그림을 바꿔서 걸어보라. 상품을 고르고, 구입하고, 소유하는 동안에 금전적 계산을 초월하는 만족감을 지속적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가구나 가전제품은 버릴 때도 돈이 든다. 그러나 그림은 손익을 떠나 일단 얼마라도 건질 수 있다. 사는 순간 ‘중고품’이지만, 운이 좋으면 ‘골동품’으로 뜻밖의 이익도 가져다주니 투자의 매력은 충분하다.

필자 역시 시장조사를 위해 지난 5월경 작품의 일부를 되판 적이 있다. 호황기인 2007년에 구입했던 것을 시장이 바닥이던 5월에 팔았는데도 일정액의 수익을 남겼다. 1년간 실컷 감상했던 작품들을 내놓고 손해를 보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미술 시장이 나름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얘기다. 분위기에 휩쓸리지만 않는다면 미술품 투자는 생각보다 쉽고 재미있다.

요즘은 화랑이나 옥션에서 작품을 판 뒤 일정 기간 뒤에 되팔 경우 구입가의 80~100%를 보장해주는 보장판매제도를 운영하는 곳이 생겨나고 있다. 구입 당시 가격과 같은 가격대의 다른 작품으로 교환해주기도 한다. 만약 부수적 혜택보다는 직접적인 수익을 중시한다면 이런 곳을 통해 구입하면 된다.

미술품 투자의 약점은 사실, 그림 값이 오르고 내리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환금을 필요로 하는 수요에 비해 소장자의 그림을 사주는 시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게 큰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급할 때 얼마라도 바로 환금할 수 있는 ‘되파는 시장’만 해결되면 미술품은 보편적인 투자 대상으로 발돋움할 것이다.

미술품 투자는 ‘시장 셈법’이 아닌 ‘예술적 셈법’으로 이해하는 게 순서다. 미술품 투자가 산술적 계산으로 50%를 접고 시작해도 손해 보지 않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미술품 투자는 ‘재테크(財+tech)’가 아니라 ‘아테크(Art+tech)’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