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여주의 에덴농장. 2만여 수의 닭이 유정란을 생산하는 대형 양계장이다. 농장에 들어서자 먼저 축사가 눈에 들어온다. 양계장하면 떠오르는 ‘닭장’이 아니다. 양질의 달걀을 얻기 위해 닭을 풀어놓고 키우고 있다. 대낮이었지만 건강한 닭 울음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손성운 에덴농장 대표가 축사 옆에 위치한 한 건물의 문을 열기까지 에덴농장의 풍경은 흔하디흔한 대형 양계장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문 안쪽에는 양계장과 어울려 보이지 않는 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컨베이어 시설을 갖춘 널찍한 트레이 위에 언뜻 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질들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갔다. 손 대표가 트레이 위의 물질을 뒤적였다. 꼬물꼬물 움직이는 생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애벌레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수천수만 마리는 됨직했다.

-> 양질의 계란 만드는 ‘일등 도우미’
이 애벌레의 이름은 ‘동애등에’다. 손 대표는 올 초 농촌진흥청(농진청)의 동애등에 시범사업장으로 지정된 후 농진청으로부터 유충을 전달받아 대량 사육을 하고 있다. 그는 요즘 이 낯선 생물에게서 에덴농장의 미래를 보고 있다. 이 작은 생명체가 하는 일이 그렇게 신통할 수가 없다. 양계 농장의 고민을 상당부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으로 손 대표는 기대하고 있다.
먼저 닭들을 위한 영양 사료로 쓰일 수 있다. 지방 42%, 단백질 35%의 고단백 생명체다. 달걀의 맛은 ‘산’이 좌우하는데 동애등에는 산이 많다. 보다 양질의 달걀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영양 공급이 좋아지니 ‘파란율(알이 깨지는 비율)’도 낮아진다. 손실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자체적으로 사료를 생산하는 셈이니 사료값 부담도 덜 수 있어 기대가 크다고 손 대표는 말한다.
“곡물 가격 상승으로 사료 값 부담이 엄청 커졌습니다. 2년 전에 비해 사료 값이 두 배나 뛰었거든요. 이 때문에 도산하는 양계 농가도 증가했습니다. 사료 값 줄이려고 별 짓 다해봤는데 별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동애등에는 다릅니다. 대량생산이 가능한 데다 생산 비용도 거의 들지 않아 사료 값 절감 효과가 적잖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절반 정도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육과 재활용이 손쉽다는 점도 동애등에의 강점이다. 적정 온도만 유지하면 잘 자란다. 폐기물을 정화한 후에는 스스로 폐기물 밖으로 기어 나오기 때문에 수거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없다. 동애등에는 유기성 폐기물을 먹고 자라는 기간, 다시 말해 유충 기간이 다른 곤충에 비해 두 배 이상 길기 때문에 여러 번의 정화 사이클에 활용할 수 있다. 수거가 간단하다는 것은 그만큼 활용도가 높다는 뜻이 된다.
번식력도 대단하다. 성충 1마리가 800~1000개의 알을 낳을 정도로 번식력이 왕성해 대량 사육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번식력을 온전히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린 테코’라는 회사의 기술력 덕분이다. 농진청의 동애등에 대량 증식 기술 프로젝트에 참여, 관련 시설 개발에 뛰어들어 현재의 장비를 만들어냈다. 김인덕 그린테코 연구소 부장은 “현재 1단으로 설계돼 있는 동애등에 사육 시설을 3단으로 확대한 신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 음식물 쓰레기를 ‘건강한 퇴비로’
동애등에도 생물인 이상 먹어야 산다. 먹이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닭 사료 값은 줄일지언정 동애등에 사료 값 부담이 새로 생기지 않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동애등에를 키우는 데는 초기 시설비용 외엔 거의 돈이 들지 않는다. 음식물 폐기물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농진청이 동애등에에 주목한 애초의 목적도 음식물 쓰레기를 비롯한 ‘유기성 폐기물 처리’였다. 먹이활동 자체가 곧 유기성 폐기물을 분해하는 과정이다. 폐기물을 먹고 배설하면 음식물 쓰레기가 양질의 퇴비로 변신한다. 특히 동애등에는 먹이활동이 매우 왕성해서 폐기물을 신속하게 대량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동애등에의 대량 사육 기술을 개발한 최지영 농진청 곤충산업과 농업연구사는 “음식물 쓰레기 10kg에 5000두의 동애등에를 투입하면 하루 만에 육안으로도 분해 효과를 확인할 수 있으며 3일 후면 80% 이상이 분해된다”며 “분해된 쓰레기를 체에 쳐서 1달 정도 숙성을 시키면 품질 좋은 퇴비가 된다”고 말했다. 염분이 많은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자라지만 퇴비화된 분변토에서 검출된 염분은 1% 미만으로 나타났고 유기물 함량은 기준치의 두세 배에 달한다는 설명이다.
쓰레기뿐만 아니다. 유기물이면 뭐든 분해한다. 가축의 배설물도 좋은 먹이가 된다. 특히 닭의 배설물은 다른 축분에 비해 영양이 풍부하기 때문에 양계 농장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한걸음 더 나아가 양돈 농가엔 ‘구원투수’가 될 수도 있다. 대형 양돈 농가의 경우 배설물을 처리하기 위해 한 달에 100만원 이상을 써야하기 때문이다.
김상민 여주군농업기술센터 지도사는 “돈분은 수분이 많고 빠르게 딱딱하게 굳어 동애등에가 먹이활동을 하는데 지장이 많기 때문에 당장 축분 분해에 활용할 수는 없다”며 “농진청과 함께 3년 과제로 동애등에를 이용한 돈분 분해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농가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경제적 효과가 적잖다. 식품개발원에 따르면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지는 자원은 연간 8조7000억원에 달하며 처리비용은 2조원에 이른다. 축산 분뇨는 2006년 기준으로 연간 4391만 톤이 쏟아져 나온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입해 유기성 폐기물을 처리하고 있지만 환경적인 위험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는 상태다. 악취와 침출수로 인한 오염도 피하기 어렵다. 2013년 음식물 쓰레기 처리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해양배출이 금지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동애등에의 장점은 여기서도 발견할 수 있다.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환경과 인체에 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음식물이 썩기도 전에 상당량을 분해할 정도로 먹이활동이 왕성해 악취가 적은 데다 성충이 된 후에도 환경과 인체에 피해를 주지 않고 조용히 숨을 거둔다. 말 그대로 ‘친환경 유기성 폐기물 처리기’인 것이다.
-> 경제 효과 연간 최대 ‘10조원’
동애등에의 또 다른 장점은 폭넓은 활용도에 있다. 먼저 각종 가축의 사료로 활용할 수 있다. 닭은 물론이고 식용개구리 등의 사료로도 활용할 수 있다. 물고기의 사료로도 이용할 수 있다. 낚시 미끼로 활용되고 있는 지렁이를 대체할 수도 있다. 느타리버섯의 배지로도 훌륭하다. 기존 배지로는 4~5회 정도 재배할 수 있지만 동애등에 분변토를 기존 배지에 혼합하면 7회까지 재배할 수 있다. 농진청은 폐기물 정화, 가축 사료 대체 등 동애등에 활용이 활성화된다면 연간 최대 10조원 이상의 경제적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농진청은 시범사업을 마무리하는 대로 동애등에 대량 증식 기술을 일선 농가에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전국 최초의 시범 농가인 에덴농장의 성과도 널리 알려나갈 예정이다. 이미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강원도 철원과 화천, 충남 부여 등의 곤충 사육 농가에서는 개구리 먹이로 동애등에를 사육하는 등 ‘실전 배치’되고 있는 중이다.
최영철 농진청 곤충산업과장은 “돈분이나 계분, 우분 등 가축분의 처리 기술을 정립하고 동애등에가 배설한 분해산물은 유기물이 풍부한 퇴비나 비료의 원료로 개발하는 등 유기성 폐자원을 이용한 자원순환농업 기술 개발과 보급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영 농촌진흥청 곤충산업과 농업연구사
“3년 고생해 세계 최초 기술 개발했죠”
“까맣죠? 음식물 쓰레기가 하루 만 지나면 이렇게 변해요. 동애등에의 분해 활동이 그만큼 왕성하다는 거죠. 보이세요? 이게 동애등에입니다.”
최지영 농촌진흥청 곤충산업과 농업연구사가 능숙한 솜씨로 ‘분해 중’인 음식물 쓰레기를 뒤적이자 새끼손가락 마디보다 짧은 동애등에가 모습을 보였다. 징그러울 만도 했지만 최 연구사의 얼굴엔 전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운 표정이었다.
“3년 동안 씨름했어요. 어렵지 않을 것 같았는데 예상보다 까다롭더라고요. 교미겭沅寵떠퓽?맞추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동애등에 대량 증식 기술의 관건은 관리할 수 있도록 알을 낳게 하는 것이었다. 곤충은 본능적으로 숨어서 알을 낳기 때문에 보이는 곳에 산란할 수 있는 조건을 찾아야 했다. 지금처럼 작은 구멍이 뚫린 나무에 알을 낳게 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발견하기 위해 2년 동안 시행착오를 되풀이해야 했다.
“처음에는 동애등에가 아니라 ‘집파리’ 연구에서 시작했습니다. 집파리 역시 유기성 폐기물을 먹고 자라기 때문에 유기성 폐기물 분해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봤거든요. 하지만 집파리는 인체에 유해하기 때문에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 대체물로 찾아낸 것이 동애등에죠. 북미 지역이 원래 서식지였는데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갔지만 환경 문제를 전혀 일으키지 않을 정도로 안전한 곤충입니다.”
동애등에가 유기성 폐기물 분해에 효과가 있다는 것은 학계에 이미 보고된 상태였다. 하지만 대량 증식 기술은 없었다. 맨 바닥에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 먼저 14종의 동애등에를 하나하나 검사해 2종의 후보군을 찾아냈다. 교미조건을 찾는 것 외에도 햇빛, 온도, 수분, 공간 등 밝혀내야 할 것 투성이였다. 그렇게 몇년이 훌쩍 지나갔다.
“동애등에 대량 증식 기술 개발은 한국이 세계 최초입니다. 이미 특허를 출원해 놓은 상태입니다. 국제 특허 출원도 계획 중입니다.”
최 연구사의 다음 작업은 동애등에의 활용도를 넓히는 것이다. 벌써 여러 개의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동애등에를 이용한 피부연고제도 그 중 하나다. 동애등에는 음식물 쓰레기 속에서도 병 없이 잘 자란다. 항균물질이 풍부하게 분비되기 때문이다. 이 천연 항균물질을 활용해 약을 만든다는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