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읽어도 ‘바다’저리 읽어도 ‘바다’
바다의 신비로움 담았다

브랜드 네이밍을 할 때는 한 프로젝트 당 1000개에서 많게는 2000개 정도의 네임을 만들고 이중에서 하나의 이름을 선택하는데, 평균 경쟁률이 1200대 1 정도 되는 셈이다. 하나의 브랜드 탄생이란 가히 바늘구멍을 뚫는 일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질긴 명운을 지니고 탄생한 이름들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을까? 필자는 그것을 ‘발품’이라는 한 단어로 이야기하고 싶다. “브랜드 네이밍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브랜드 네이밍을 하기 위해서는 타고난 창의적인 자질과 호기심 많은 성격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것과 함께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은 ‘발품’으로 표현되는 부지런함이 아닌가 싶다.
‘발품’을 팔게 되는 현장조사는 좋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와 이름은 책상머리에서 나오기가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는 현장에서, 세공은 책상 앞에서’다. 그럼 지금부터 가장 즐겁게 발품을 팔았던 사례인 2003년 늦가을 제주도의 한 호텔 프로젝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까 한다.
여행하기 좋은 어느 늦가을. 아이디어 여행지는 제주도였다. 필자가 네이밍 작업을 해오면서 가장 아름다운 현장답사와 가장 비싼 시장조사를 했던 프로젝트로, 제주도의 한 프리미엄 호텔 브랜딩 작업이었다.
늦가을에 찾은 제주도 바닷가 호텔
당시 제주도 중문단지 ‘국제자유도시 개발 계획’의 영향으로 제주 씨빌리지 호텔이라는 곳이 새 주인을 만나 재단장을 하게 됐고, 이에 연이어 시작된 브랜딩 프로젝트였다.
호텔에 도착해 보니 그곳은 베릿내마을이라는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자생 어촌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은하수가 내리는 천’이라는 의미처럼 소박하고 아름다운 제주 전통 가옥들로 이루어진 객실들과, ‘꽃낭’이라는 곳을 중심으로 바다가 포근하게 감싸 안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인 곳이었다. 호텔과 바다를 이어주는 이국적인 요트 선착장과 주변의 유명한 관광단지로의 편리한 접근성은 리조트로서 충분한 조건들을 지닌 것으로 보였다.

새롭게 탄생할 호텔의 이모저모에 대한 브리핑을 받으면서 호텔 곳곳을 둘러보고 꼼꼼히 사진에 담았다.
(브랜드 네임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몇 달간의 체계적인 과정들을 밟으며 많은 자료조사를 해야 한다. 소비자와 고객사 임직원·전문가 그룹 등 다양한 그룹의 인터뷰, 콘셉트 도출과 소비자들의 선호를 알아보기 위한 리서치, 개발하려는 제품 혹은 서비스의 브랜드 현황을 알기 위해 다양한 루트의 시장조사 등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조사 과정에서 ‘발품’을 많이 팔수록 더 좋은 양질의 아이디어 소스들을 얻을 수 있다.)
제주 현장답사에서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새롭게 들어서게 될 호텔의 청사진을 눈으로 확인하고 느끼면서 호텔 브랜드의 콘셉트와 핵심 이미지를 무엇으로 잡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오후 내내 촬영했던 호텔의 전경들을 슬라이드쇼로 계속 돌려보고, 사진들을 회의실 한쪽 벽에 가득 붙여 놓고 팀원들과 아이디어 회의를 했다. 제주도의 전통적인 모습을 그대로 브랜드에 담는 것, 단독 풀빌라의 비밀스러움(private)과 고급스러움을 브랜드로 표현하는 것, 주변 환경의 장점을 브랜드에서 보여주는 것 등 세 가지의 큰 틀이 만들어졌고 그것들의 장점과 단점을 비교해 나가면서 방향을 압축했다.
탐라, 파라다이스, 제주, 은하수, 바다, 여행, 휴식, 요트, 항해 등의 다양한 콘셉트 키워드들을 벽에 빼곡히 붙이면서 사진과 이미지를 맞추어 나갔다.
탐라에서의 최상의 휴가 ‘탐레스’, 파라다이스 같은 이곳 제주를 그대로 담은 ‘파라제’, 별이 내리는 마을이라는 이 지역 옛 지명 의미를 담은 ‘별리안’, 특별한 바다와 특별한 여행의 경험을 이야기 하는 ‘씨에스(SEAES)’ 등 몇 안을 추려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각 안들이 저마다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국내외 모두에 통하는 이미지와 호텔의 장점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씨에스’를 최종 추천 안으로 제시했다.
‘씨에스(SEAES)’는 데칼코마니 기법으로, 순방향으로 읽어도 바다(sea), 역방향으로 읽어도 바다다. 바다가 포근하게 품고 있는 이 호텔의 지형적 특색과, 호텔에서 잠시 걸어가면 바로 바다로 이어지는 방파제와 요트 선착장 등을 통해 신비로운 경험을 주는 곳이라는 콘셉트 스토리를 담은 네임이다.
해외 고객 겨냥한 브랜드로 개발
별리안과 씨에스라는 두 개의 이름이 끝까지 각축전을 벌였는데, 결국 호텔 이름은 씨에스로, 별리안은 부대시설 명으로 결정되면서 제주도에 새로운 특급 풀빌라 호텔 앤 리조트의 브랜드가 탄생했다.
브랜드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불러주고 기억해줘야만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특히 제주도의 호텔은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많이 찾기 때문에 브랜딩 작업을 하면서 참 설레었던 프로젝트가 아니었나 싶다.
올해로 개관한 지 6년이 된 씨에스 호텔 앤 리조트는 595만 평방미터의 대지에 30여 채의 단독 풀빌라로 이뤄졌는데, 전통적인 가옥 형태의 외관과 현대적인 내부 인테리어를 접목한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매스컴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배경이 되었으며, 드라마 <꽃보다 남자>와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의 촬영지로 방송이 되었고, 최근에는 드라마 <태양을 삼켜라>의 무대가 되었다.
6년이라는 기간 동안 양적 질적 성장을 계속 해오고 있는 ‘씨에스’는 주변의 많은 특급 호텔들과는 다른 이곳만의 이국적인 이미지, 내밀한 고급스러움, 브랜드와 연결되는 다양한 레저와 풍경이라는 강점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묶어두고 있다. 더 나아가 씨에스라는 이름이 해외로도 많이 알려져 동남아의 어느 리조트 부럽지 않은 여행자들의 러브마크가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