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리의 가장 기본은 맛입니다. 보기 좋고 향이 좋더라도 맛이 없으면 요리라고 할 수 없어요. 식재료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맛과 식감을 살려 조화롭게 어우러지게 한 것이 바로 맛있는 요리이지요.”
인터컨티넨탈호텔 서울의 자랑거리인 마르코폴로 레스토랑을 맡고 있는 라병준 주방장은 요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본을 잊지 말 것을 강조한다. 아름다운 요리가 부각되면서 요리란 맛있게 먹기 위한 음식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소홀히 하는 젊은 요리사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재료의 맛이 살아있고, 이들이 조화를 이뤄 즐겁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요리. 이 기본에 충실한 라 주방장의 요리 철학은 마르코폴로를 인터컨티넨탈호텔의 대표적인 레스토랑으로 키워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라 주방장의 단골손님은 참으로 그 범위가 넓고도 다양하다. 겉치장보다는 요리 본연의 맛내기에 충실했던 만큼 미식가들에게 라 주방장의 이름은 친숙하기까지 하다. 수많은 손님들을 맞은 그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고객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은 매달 가족과 함께 마르코폴로를 찾을 만큼 라 주방장의 팬이기도 하다.
최고급 한우의 특별한 변신
“마르코폴로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우리 한우로 만든 요리입니다. 마블링이 아름답게 그려진 최고급 한우를 써서 만든 요리의 맛을 잊지 않고 찾아주시는 분들 가운데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도 계세요. 마르코폴로에서 한우 요리를 드신 이후부터는 단골고객이 되셨죠.”
최고의 요리들을 숱하게 접해왔을 유명인사들과 미식가들을 단골로 만들 수 있었던 라 주방장의 비결은 ‘깐깐함’이다. 기본적인 식재료부터 완성된 요리까지, 단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매달 동료 주방장들과 함께 도매시장을 돌며 식재료들을 체크하는 것은 물론, 고객들에게 매일 새로운 메뉴를 선보이고 평가하는 ‘웰컴디쉬’ 요리미션을 통해 메뉴를 엄선하고 있다.
“거창한 것 같지만 요리는 오케스트라와 같습니다. 각각의 식재료가 고유의 맛과 특징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전체적으로 잘 어우러질 때 훌륭한 오케스트라의 각각의 악기가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요리도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중요하지 않은 식재료가 없고, 더 중요한 식재료 또한 없습니다.”
이번 크리스마스 요리로 선정된 국내산 한우 안심 역시 재료의 맛과 풍미가 조화를 이룬 작품 중 하나다. 최우수 등급인 1++A 등급의 한우를 고기의 향과 질감이 고스란히 살아나도록 조리해 전복과 망고칠리살사와 함께 곁들인 이 요리는 풍부한 한우의 육즙과 새콤하고 알싸한 살사소스가 한데 어우러져 고기요리를 즐기는 미식가들에게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국인 정서를 담은 서양요리
라 주방장은 그랜드 인터컨티넨탈호텔 이탈리아 레스토랑인 피렌체를 거쳐 마르코폴로 레스토랑으로 조리실을 옮겼다. 각 재료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각각의 조합으로 맛을 내는 특성이 있어 자연스럽고 꾸미지 않은 맛을 담아내는 이탈리아 요리에 반해 10년이 넘도록 요리사의 외길을 걸어오고 있다.
“사실 양식을 전공한 한국인 요리사가 세계에서 인정받기란 쉽지 않아요. 요리란 단순히 먹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나라의 정서와 문화를 담고 있는데, 한국인인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탈리아 현지인의 정서를 뛰어넘기란 어려운 일이죠. 외국인 요리사가 한국인의 된장찌개 정서를 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한식요리가 중요해요. 세계에 어필할 수 있는 새로운 요리문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것을 제대로 알고 익혀야 해요. 그래야만 한국인의 정서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이탈리아 요리문화의 창출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라 주방장은 한국인이기에 넘을 수 없는 문화와 정서의 벽을 뛰어넘기 위해 가장 한국적인 정서와 문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의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두바이 7성급 호텔 주방장이 돼 유명세를 탄 권영민 주방장 이후 세계로 진출하기를 원하는 젊은 요리사들에게 “요리에 자신만의 색과 문화를 담으라”고 조언한다.
“지금은 세계 곳곳으로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그만큼 문화와 정서도 뒤섞여간다는 얘기죠. 그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세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고유문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수 있는 실력이 필요합니다.”
한국의 정서를 담아낸 새로운 이탈리아 요리로 세계에 인정받고, 언젠가는 전 세계의 독창적인 요리문화를 필름에 담아 소개할 수 있는 푸드 자키로 활동하고 싶다는 라 주방장. 요리에 대한 열정과 애정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과 창조를 거듭하고 있는 그의 요리인생에서 은퇴란 단어는 영원히 찾을 수 없을 듯하다.
tip 인터컨티넨탈호텔 서울 마르코폴로
동서양이 교차되는 신개념 레스토랑
마르코폴로는 무역센터 트레이드타워 52층에 위치해 한강은 물론 강남의 변화를 한 자리에서 느낄 수 있으며, 아시아 요리와 지중해 요리를 즐길 수 있는 신개념 레스토랑이다. 52층 전체가 레스토랑인 이곳은 총면적 1190㎡에 230좌석 규모로 3개의 별실과 2개의 쉐프 테이블, 생동감 넘치는 주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3개의 별실 중 한강의 야경이 가장 아름답게 펼쳐지는 별실은 내부 인테리어를 서재 스타일로 꾸몄는데 마르코 폴로가 동방의 견문을 이야기할 때 백만을 자주 언급해 생겼다는 그의 별명 밀리오네에서 이름을 따왔다.
아시아적인 주제로 꾸며진 페킹 별실은 16명 규모이며 지중해 풍의 로맨틱한 분위기의 베네치아 별실은 12명을 수용할 수 있다. 마르코폴로의 아시아 요리와 지중해 요리는 건강을 생각하는 현대인의 취향에 맞도록 싱싱한 해산물과 야채를 이용하여 재료 고유의 풍미를 살리면서 올리브, 허브 등으로 맛을 낸 건강 메뉴로 이루어졌다. 또한 다양한 와인이 구비되어 있어 식사의 단계에 따라 와인을 곁들여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