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금융그룹이 출시한 에스모어 카드와 포인트 통장이 화제다. 스스로 찾아와 발급받는 고객이 한둘이 아니다. 이 상품은 카드 포인트 소멸시한도 없앴고 포인트에 이자까지 얹어줘 수치상 신한금융은 손해를 보게 되어 있다. 신한금융은 왜 이런 이상한 상품을 내놓은 것일까? 그룹 내 교차고객 확대를 위한 포석을 깔고 있는 이 묘한 상품의 비밀을 분석해봤다.

신한금융그룹이 2009년 10월6일에 선보인 ‘에스모어(S-MORE) 카드’와 ‘에스모어 포인트 통장’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두 상품은 신한금융이 계열사의 시너지를 높이기 위해 내놓은 전략적인 상품이다.

에스모어 카드는 12월11일까지 9만 장이 발급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짝꿍 격인 에스모어 포인트 통장은 6만 건 개설됐다. 포인트 통장은 에스모어 카드 이용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계좌로, 신한은행에서 만들어준다.

에스모어가 주목받는 이유는 발급이 많기 때문만이 아니다. 성장 속도도 빠르지만, 무엇보다 고객이 먼저 “이 카드를 만들어 달라”며 나서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신한금융은 에스모어 카드 출시 후 열흘쯤 지나 그 동안 카드를 만든 고객을 대상으로 가입 경위를 알아봤다. 은행 직원의 권유로 만든 고객이 40%, 은행에 갔다가 벽에 붙어 있는 상품 소개 포스터를 보고 만들어 달라고 했다는 고객이 22%로 나타났다는 것.

금융권에서 이 상품에 놀란 것은 ‘스스로 카드를 만든 22%의 고객’ 때문이다. 원래는 거의 없는 것이 정상이다. 일반적으로 신용카드는 텔레마케터들이 전화로 설득하거나, 거리 등에서 선물을 제공하는 등 적극적으로 영업을 해야 고객들이 움직인다. 즉, 고객이 스스로 가입하는 일이 별로 없는 매우 수동적인 상품이다. 그런데 에스모어 카드는 고객들이 제 발로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대체 무엇이 고객들의 발길을 끌어 모은 것일까?

 

포인트 소멸시한 없애고 이자 얹어줘

에스모어 카드의 가장 큰 특징은 ‘카드 사용으로 받은 포인트가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개 카드 회사들은 적립한 지 5년이 지난 신용카드 포인트를 소멸시킨다. 그러나 이 카드의 포인트는 그럴 염려가 없다. 에스모어 카드의 포인트는 신한은행에서 개설한 포인트 통장에 매월 자동 적립되는데, 포인트 소멸시한이 없어서 쓰지 않고 그냥 두면 영원히 통장에 남아 있게 된다.

두 번째 특징은 포인트 통장에 적립된 포인트가 신한금융그룹 안에서는 현금과 동일한 대우를 받는다는 점이다. 이 포인트로 신한금융 계열 은행 적금이나 펀드 이체, 보험료 납부도 할 수 있다.

세 번째 특징은 이 포인트에 이자를 얹어준다는 것이다. 특히 결제계좌가 신한은행일 경우, 연 4%의 고금리를 적용한다. 고객 입장에서는 매우 유리한 상품인 것이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판매하는 금융사로서는 손해가 아닐 수 없다. 신한카드의 2008년 카드 포인트 소멸액은 2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따라서 카드 포인트 소멸시한을 없앤다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는 그 만큼의 금액이 나간다는 의미가 된다. 일종의 ‘낙전수입’ 격이던 포인트 소멸액을 고스란히 포기한다는 것이다.

부담을 지는 것은 신한카드만이 아니다. 포인트 통장 계좌를 만들어주는 신한은행도 불리함을 감수하고 있다. 카드 결제계좌가 신한은행에 있는 고객의 경우 포인트 통장에 4%의 금리를 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신한금융이 이런 이상한(?) 상품을 왜 출시했는지 그 속내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대체 이유가 뭘까.

 

“당장은 손해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득”

신한금융이 에스모어 카드와 포인트 통장을 내놓은 이유는 ‘단기적으로는 손해를 볼 수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이익이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무엇이 중장기적인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것일까?

답은 바로 ‘신한은행의 카드 결제계좌 수 확대’ 및 ‘계열사 내 교차고객 확대’ 효과다.

고객들이 에스모어 카드의 혜택을 확실하게 누리려면 결제계좌를 신한은행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포인트 통장의 4% 금리 혜택도 결제계좌가 신한은행인 경우로 제한한 것은 바로 이 같은 효과를 노린 것이다.

문제는 과연 고객들이 이 혜택을 보자고 카드 결제계좌를 신한은행으로 옮기거나 새로 만들 사람들이 얼마나 늘어나겠느냐가 될 것이다. 신한금융은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신한금융에 따르면 현재 신한카드 고객 중 신한은행으로 결제계좌를 연결한 고객은 약 30%에 불과하다. 현재의 신한카드는 카드 업계 1위였던 LG카드와 기존 신한카드가 2007년 10월에 합병해 탄생한 회사다. LG카드 시절 고객들이 많기 때문에 신한은행에 결제계좌가 없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이다. 따라서 에스모어를 통해서 나머지 70%의 고객들을 신한은행 고객으로 만들 수 있다면 해볼 만한 시도인 셈이다. 

신한은행이 카드 결제계좌 확보에 이 같이 적극성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카드 결제계좌는 흔히 월급통장과 비슷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상품으로 인식된다. 매월 들어오는 적지 않은 카드 결제대금이나 월급은 저원가성 예금으로 확보된다. 또한 두 계좌는 편의성을 고려하는 고객들을 잡아둘 수 있어 고객 충성도가 높다. 이런 고객들에게는 다양한 추가 상품을 판매할 여지도 커진다. 즉, 카드 결제계좌란 단순히 카드대금이 빠져나간다는 의미의 통장이 아닌 것이다.

에스모어 카드 결제계좌 개설로 고객을 신한은행으로 끌어들이고 나면 이제는 포인트 통장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이 포인트를 신한지주 계열 내에서는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포인트 통장은 고객들에게 증권·보험 등 다른 신한금융 계열사를 이용할 동기를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상품 출시 효과는 벌써 일부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한금융에 따르면 출시 한 달 후인 11월 초 5000명의 에스모어 카드 발급 고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000명 중 다른 은행에 결제계좌를 두고 있던 고객이 총 35%(1750명)였고, 이 가운데 65%(1138명)가 신한은행으로 결제계좌를 옮긴 것으로 파악됐다.

발급받은 후 실제로 사용하는 유효 카드의 비중은 발급 후 6개월은 지나야 검증된다. 에스모어 상품의 위력은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 정도면 그 위력이 무시 못 할 수준임은 증명된 셈이다.

다른 금융그룹·카드사는 흉내 어려워

흥미로운 것은 신한금융 외의 다른 금융그룹들은 에스모어와 비슷한 상품을 출시한다 해도 비슷한 효과를 거의 누리기 어렵다는 점이다.

먼저 은행계 카드를 보자. KB국민카드와 우리카드는 이미 고객의 80% 이상이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에 결제계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다수의 계좌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에스모어 카드와 비슷한 카드를 내놓는다 해도 계열 은행에 추가로 늘어날 계좌 수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또 삼성카드·현대카드·롯데카드 등 전업 카드사들은 아예 계열 은행이 없기 때문에 따라할 여지가 없다.

유일하게 적수가 될 만한 존재라면 하나금융지주 산하의 하나카드뿐이다. 그나마 이미 신한금융에서 선수를 쳤고, 하나카드는 독립법인으로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어수선한 상황이다. 신한금융으로서는 아직 여유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신한금융은 이번 에스모어 카드·포인트 통장에 적용한 계열사 연계 비즈니스 모델을 특허 출원까지 해뒀다. 나름의 방어 준비를 해 둔 것이다.

최종적으로 특허가 나올지 거부될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겠지만, 어쨌든 다른 금융그룹들로서는 에스모어 출시를 위해 각 사별 손해를 감수한 신한금융의 팀플레이에 뒤통수를 맞은 격이 아닐 수 없다.

 

에스모어는 ‘그룹 교차고객 확대 위한 첨병’

신한금융이 계열사 간 시너지가 무엇인지 보여준 에스모어 카드와 포인트 통장은 어쩌다 나온 아이디어 상품이 아니다. 그룹 전체의 틀 속에서 전략적으로 준비한 상품이다.

신한금융은 지주사 체제로 들어서면서 ‘통합 시너지 3단계 전략’을 세웠다. 2003~2005년은 도입기, 2005~2008년까지는 시장 표준 확립에 집중했다. 이 기간 동안 그룹은 은행·증권간 복합 점포 모델 정립, 키즈앤틴즈 등 금융복합상품 출시, 통합 고객관리(CRM) 마트 구축 등에 주력했다.

2009년부터는 그중 마지막 단계로 ‘시너지를 통한 고객 및 그룹 가치 극대화’를 목표로 삼았다. 현재 470만 명 수준인 그룹 교차 거래 고객(그룹 내 여러 계열사를 같이 이용하는 고객) 수를 2012년까지 배 이상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마지막 3단계의 목표다.

한마디로 에스모어 카드와 포인트 통장은 약 2500만 명의 신한금융 고객들이 그룹 내 금융사에서 교차 거래를 늘리게끔 이끄는 첨병 역할을 하는 상품인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대전제가 그렇다 해도 문제는 남아 있었다. 신한은행·신한카드 입장에서는 단기적으로 손해가 불가피한 상품 도입에 적극 찬성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신한금융은 그러나 이를 정면으로 돌파해냈다. 총대를 멘 것은 신한지주 시너지추진팀. 본래 이 팀은 계열사 전문가들을 모아 꾸린 TFT 성격의 조직이다. 그룹의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상품을 모색하던 중 에스모어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오게 됐고, 각사에 의견을 타진했다. 결과는? 은행·카드·증권·보험 등 각 계열사에서 엄청난 반대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시너지추진팀은 “단기적으로는 회사가 손해를 볼 수도 있지만 고객이 이득을 얻게 되면 장기적으로 회사도 이득을 얻을 수 있다”며 각사 실무진들을 만나 설득에 나섰다.

신상훈 신한지주 사장의 의지도 강했다. 신 사장은 “1+1이 3이 되면 장기적으로 시너지가 아니냐”며 힘을 실어줬다. 결국 각사에서 조금씩 양보하며 경영진들이 결단을 내리면서 에스모어는 빛을 보게 됐다.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고 있는 국내 금융그룹들은 대부분 각 계열사의 시너지를 높이는 문제와 그룹 내 교차 고객 확대에 대해 관심이 높다. 신한금융그룹의 에스모어 개발 사례는 그런 점에서 향후 추이에 지속적으로 주목할 만하다.

Interview 이규민 신한지주 시너지추진팀 부팀장

“어르고… 달래고… 계열사 설득에만 5개월 걸렸습니다”

“아이고, 말도 마세요. 전례가 없다면서 반대를 하는데, 설득하느라 정말 애먹었습니다.”

‘에스모어 프로젝트’를 이끈 신한지주 시너지추진팀 팀원들은 에스모어 개발에 반대하는 계열사 임직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에 나섰다. 시행만 된다면 중장기적으로 그룹 내 시너지가 분명히 날 만한 상품이었지만, 각 계열사 입장에서는 선뜻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매니저였던 이규민 신한지주 시너지추진팀 부팀장의 설명이다.

“생각해 보세요. 신한카드 입장에서는 카드 포인트를 갖고 있으면 자체적인 마케팅에도 쓸 수 있고, 또 5년마다 사라지는 포인트 소멸분의 경우 ‘낙전수입’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걸 은행의 포인트 통장에 고스란히 보내라면 좋은 말이 나오겠습니까.”은행도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고.

“은행에서는 포인트에 이자를 주자는 것에 난색을 표했지요. 적금은 만기가 있지만 포인트 통장은 만기가 없으니, 이자 비용이 계속 나갈 것을 우려한 거죠. 신한은행 결제계좌를 보유한 고객에게 더 높은 금리를 적용하자고 하니까 은행에서는 일반 시중금리 이상은 절대 안 된다며 선을 그었죠.”

이 부팀장과 팀원들은 그러나 끈질기게 다가갔다. 카드 쪽에는 “포인트를 포기하면 낙전수입이 없어져 아쉽겠지만 이제 여기에 기댈 시대는 지나지 않았느냐, 고객 가치를 창조하면서 1등 사업자답게 마케팅하자”고 이야기했다.

은행 쪽에는 “신한은행 계좌 보유 고객의 포인트에 줄 4% 이자는 부담되겠지만, 이를 계기로 새로운 유동성이 더 들어올 테니 손해가 아니다”고 달랬다. 은행의 경우 상품개발부·개인금융부·영업추진부·재무지원부 등 여러 관련 부서를 팀원들이 서너 번씩 찾아가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

계열사 설득에 5개월 이상 매달렸다. 결국 신한카드의 이재우 사장이 결단을 내렸고, 이를 시작으로 다른 계열사들도 마음을 돌렸다.  “고객이 이득을 보면 결국 금융회사에도 이득으로 돌아오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