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헥타르에 달하는 충청북도 천안의 국립축산과학원의 한쪽에 ‘동물 행동학 및 복지연구축사’라는 알쏭달쏭한 시설이 있다. 오렌지색의 천막 시설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 봐도 의문은 쉬 풀리지 않는다. 그저 30여 마리의 어린 송아지가 한가로이 쉬고 있을 뿐이다. ‘복지’라는 이름에 제법 어울리지만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 연구실을 총괄하는 이현준 연구사(박사)가 설명에 나섰다.

“이곳 시설은 세계 최초의 로봇 포유 시스템입니다. 말 그대로 로봇이 송아지에게 젖을 먹이는 장치입니다. 저기 젖소가 들어가는 기계 보이십니까. 저 기계가 바로 로봇 포유기인 ‘송아지 유모’입니다.”
이 연구사의 설명을 따라 젖소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았다. 먼저 기계의 문이 열린다. 송아지가 들어가면 문이 자동으로 닫힌다. 다른 송아지가 식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송아지의 입을 향해 젖꼭지가 나온다. 송아지가 젖을 빤다. 일정량을 먹으면 젖꼭지가 도로 들어간다. 문이 열린다. 송아지가 나오고 다른 송아지가 들어가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대부분의 축산농가에서 수동으로 우유를 먹이는 것에 비해 편리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첨단 로봇’이라는 수식어에 비해 별스러워 보이지 않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거기다 로봇 포유기는 보급률이 미미해서 그렇지 이미 시중에 나와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겉만 보고 ‘송아지 유모’를 평가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에 불과하다. 송아지 유모의 진면목은 그야말로 획기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종전의 로봇 포유기가 갖추지 못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곳곳에 구현된 것은 물론 포유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놓았다는 평가다.

저영양•저성장 문제 ‘안녕’
‘송아지 유모’의 혁신성을 이해하기 위해선 기존의 포유 관행을 짚어봐야 한다. 현재 축산농가에선 송아지가 태어나면 하루 두 번, 몸무게의 10%에 해당하는 우유를 먹인다. 하지만 이는 송아지의 생태학적 특징을 완전히 무시한 포유법이다. 사람의 신생아가 그렇듯이 갓 태어난 송아지 역시 소화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여러 번 나누어 우유를 섭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영양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성장률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설사와 복통겴恙?등 소화기 장애가 잦아지고 폐사율도 높아진다. 현재 일선 축산농가의 송아지 폐사율은 20%에 이른다.
이에 비해 ‘송아지 유모’는 송아지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한 포유 시스템이다. 두 시간 간격으로 소화할 수 있는 만큼의 적정량만을 공급한다. 당연히 설사를 비롯한 장애가 감소한다. 공급하는 젖의 양도 송아지의 발육 시기에 따라 다르게 정했다. 체중의 10%만을 주는 관행에 비해 ‘송아지 유모’는 인심이 후하다. 첫 25일은 체중의 20%를 공급한다. 그러다가 25일이 지나면 조금씩 양을 줄인다. 사람의 신생아가 그렇듯이 젖을 떼는 연습을 시작하는 것이다. 사람의 이유식에 해당하는 고형사료를 먹기 위한 준비다. 이 연구사의 설명이다.
“송아지가 젖을 떼면 건초나 고형사료를 먹습니다. 그런데 관행적인 사료법은 젖을 갑작스레 끊고 고형사료를 줍니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고형사료를 먹으니 섭취량도 적고 소화력도 떨어져 상당기간 저영양 상태로 방치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송아지 유모’는 젖을 조금씩 줄여 공복감을 높여 고형사료에 대한 식욕과 섭취 능력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유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겁니다.”
바로 이 대목이 ‘송아지 유모’가 획기적이라는 이유다. 송아지의 이유 스트레스를 최소화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그만큼 대단하다. 먼저 고형사료 섭취량이 월등하게 많아진다. 관행 사육법으로 자란 송아지보다 무려 31.3%나 많이 먹는다. 저영양으로 인한 갖가지 문제가 모두 감소하는 것은 당연하다. 소화기관도 튼실해진다. 반추위의 중량과 융모 수, 융모 길이 등이 현저히 발달한다. 잘 먹으니 성장률도 좋다. 4개월령 송아지의 경우 종전 방식으로는 100kg 정도에 머물지만 ‘송아지 유모’가 키운 송아지는 130kg에 달한다. 30% 이상 발육이 좋아지는 것이다. 이유 스트레스 최소화 시스템은 ‘송아지 유모’가 세계 최초다.
이 연구사는 “어린 시절을 건강하게 보낸 송아지가 튼튼한 어미 소로 성장할 가능성이 훨씬 높고 건강한 어미 소의 산유량(우유 생산량)이 그렇지 않은 소보다 많을 확률도 높다”며 “‘송아지 유모’로 키운 소의 산유량이 그렇지 않은 소에 비해 30% 정도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송아지 유모’엔 또 다른 비밀이 있다. 개체별 관리 시스템이 그것이다. 비록 집단사육이긴 하지만 송아지 한 마리 한 마리를 보살핀다는 얘기다. 기존의 사육은 송아지를 개별적으로 관리하지 못했다. 어느 소가 얼마나 젖을 먹었는지를 일일이 확인하지도 않고 무게나 발육 상태가 달라도 똑같이 키웠다.
이에 비해 ‘송아지 유모’는 송아지 한 마리 한 마리의 영양 상태와 생태적 특징에 따라 관리한다. A송아지가 얼마나 먹었는지 얼마를 더 먹어야 하는지를 체크한다. IT 기술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송아지의 목에 매달린 RFID칩 속의 정보를 ‘송아지 유모’가 판독해 개별 송아지의 정보를 전송하면 컴퓨터는 이를 읽고 개체별로 데이터를 정리한다. 사육자는 모니터를 통해 송아지마다의 영양 섭취량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IT 기술 접목으로 ‘맞춤형 사육’
건초나 고형사료를 먹는 이유 단계의 송아지도 영양 섭취량을 개체별로 관리할 수 있다. 이 연구사가 개발한 ‘피드 스테이션(Feed Station)’ 덕분이다. 이 장치는 개체마다 적정량의 건초나 사료량을 공급한다.
이 개체별 관리 시스템은 이 연구사가 몇 년 전에 개발해 농가에 보급한 목장종합기록관리시스템인 ‘딤스(DIMS: Dairy Individual Management Service)’를 활용한 것이다. 딤스는 개체별 기록과 관리를 통해 농가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고안된 시스템이다. 개체별 관리를 하면 젖소의 경우 우유 생산량을 극대화할 수 있다. RFID 덕에 개체 확인이 가능해지면서 나온 기술이다.
이 연구사는 “현재의 집단 관리체제에서 개체 관리로 전환하면 우유 생산량이 급증해 초기 시설 투자비용을 단기간에 회수할 수 있다”며 “딤스에 모바일 기술이 접목되면 관리실이 아닌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송아지와 소를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아지 유모’의 차별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먹는 양뿐만 아니라 먹이의 ‘질’까지 업그레이드했다. 최적의 영양 구성을 갖춘 ‘모유 수준 대용유’가 그 주인공이다. 이름하여 ‘송아지 유모 맘마’다.
현재 대부분의 축산농가가 젖먹이 송아지에게 분유의 일종인 ‘대용유(milk replacer)’를 먹인다. 농가에서 대용유를 사용하는 것은 젖먹이용 우유에 비해 가격이 3분의 1 정도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영양의 조성비다. 기존 대용유는 어미젖에 비해 지방이 현저하게 부족하다. 이로 인해 많은 송아지가 저영양·저성장 상태에 있다. 지방을 더 첨가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되면 설사를 자주 일으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송아지 유모 맘마’는 기존 대용유의 문제를 해결한 제품이다. 식물성 지방과 단백질의 함유량을 높이고 소화율을 높이는 천연 소화효소를 첨가해 영양 조성비를 맞추는 동시에 소화율을 향상시켰다. 비타민 A와 C, 철분, 콜린, 베타글루칸 등 모유에 부족한 성분도 첨가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실제 축산농가에서 실험을 한 결과 기존 대용유는 물론 모유보다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대용유로는 60kg에 이르기까지 66일 정도를 먹여야 하는데 ‘송아지 유모 맘마’를 먹이면 52일 만에 이 무게에 도달한다. 포유 기간이 2주 정도 단축된 것이다. 설사 발생이 2.5배 정도 감소하는 효과도 나타났다.
국내외 특허 12건 출원…수출 청신호
로봇 포유기, 개체별 사양관리 프로그램, 모유 수준 대용유, 피드 스테이션 등으로 구성된 ‘송아지 유모 시스템’은 학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낙농회지에 4편, 미국 축산학회지에 1편, 기타 국내외 학회지에 2편의 논문이 게재됐다.
수출에도 청신호가 켜진 상태다. 해외의 유수한 축산시설업체들이 이 시스템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다. 특히 스웨덴과 네덜란드 등 낙농 선진국들의 세계적인 기업들이 이 기술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스웨덴의 드라발(Delaval)의 경우 한국 지사장이 정기적으로 축산과학원을 방문해 ‘송아지 유모’의 성능과 효과를 조사, 본사에 보고하고 있다. 본사의 실무진도 이미 두 번이나 과학원을 찾아와 경과를 확인한 바 있다. 자사가 가지고 있는 특허와 ‘송아지 유모’의 특허 차이를 비교 분석하는 등 시스템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이 박사는 전한다.
현재 ‘송아지 유모’는 국내는 물론 미국겴瞿퍊EU겵薩?등 해외 특허도 출원한 상태다. 국내 특허 5건과 해외 특허 7건 등 모두 12건의 특허가 심사 대상이다. 이 연구사는 ‘송아지 유모’가 상용화하고 기술이 전 세계에 수출된다면 경제적 효과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젖소가 1억2500만 두가량 되는데 이 중 10%만 이 시스템에 따라 사육된다면 향후 5년간 약 10만 대가 전 세계에 보급될 것이란 계산이다.
이 연구사는 “상용화 첫해에 10만 대의 10%인 1만 대만 판매된다 해도 관련 시장은 수천억원대에 이를 것”이라며 “송아지를 전문적으로 키워 판매하는 업체들의 수요가 많은 만큼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interview 이현준 국립축산과학원 연구사(박사)

“열악한 환경에서 굶주리는 송아지가 불쌍해서 연구 시작했죠”
“개발 계기요? 송아지들이 불쌍해서죠. 열악한 환경에서 굶주리는데 불쌍해서 안 되겠더라고요. 제대로 된 포유기를 만들어 송아지들을 굶주림에서 해방시켜 줄 작정이었죠.”
이현준 국립축산과학원 연구사는 뜻밖의 얘기를 털어놓았다. 축산농가의 발전이라든가 한국 낙농 산업의 발전 같은 거창한 계기를 기대했지만 돌아온 답은 ‘젖소의 복지’였다. 그동안 인간들은 무자비하게 젖을 짜내기에 골몰했을 뿐 동물의 복지는 너무 등한시했다는 것이다. 동물의 복지를 강조하는 이 박사의 설명을 자칫 ‘공상가의 그것’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연구사의 생각은 매우 현대적인 것이다. 유럽 등 서구권에서 ‘동물 복지’는 매우 첨예한 사회 이슈이며 낙농학계 초미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복지도 복지려니와 동물을 잘 대해줘야 생산량도 늘릴 수 있다는 실용적인 면에서도 동물 복지는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제가 원래 동물에 대해 이질감이 없습니다. 송아지가 거꾸로 나올 때면 송아지가 삼킨 양수를 입으로 빨아내고도 거부감이 없죠. 그런데 하루는 농가에서 송아지 젖먹이는 걸 보니 기가 막히더라고요. 잘못된 포유 방법으로 충분히 먹지 못해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 데다 병도 많이 걸리더군요. 동물 복지를 위해 할 일이 많지만 최소한 영양에 대한 복지만큼은 개선해보자고 결심했죠.”
이 연구사의 결심이 있었던 것은 2003년이었다. 시스템 개발의 완료는 그로부터 6년이 흘러서야 이뤄졌다. 2009년 말의 일이었다. ‘송아지 유모’ 시스템에 포함된 개체별 평생 관리 시스템의 역사를 더하면 개발 기간은 20년을 넘어선다. 축산 연구자로서 인생의 태반을 이 시스템 개발에 바친 셈이다.
“세계적인 낙농국가라도 사육 시스템은 거기서 거깁니다. 이 시스템이 상용화되면 한국은 단번에 축산 선진국의 반열에 오를 것입니다. 후발주자인 우리가 선발주자로 발돋움하기를 기대합니다.”
이 연구사의 다음 연구과제는 ‘송아지 유모’를 한우에 적용하는 것이다. 한우와 젖소는 입모양과 크기 등이 달라 기존의 시스템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우에게 맞는 젖꼭지 모양을 찾아낸다면 한우에게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이 연구사는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