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그림은 감상하는 것만으로 가치가 크다. 유명 작가는 아니더라도 마음에 드는 작품 한 점을 거실이나 사무실에 걸어두면 그것은 숫자로 계산되지 않는 만족감을 전해준다. 예술적 작품이 갖는 무한의 가치다. 그래서인지 미술 관계자들은 미술품을 ‘작품’으로만 봐주기를 원한다. 큰돈을 들여 구입하는 것을 당연시 하고, 또 그렇게 구입한 작품은 되팔지 말고 그냥 집에 모셔두고 감상만 하기를 원한다.
‘미술품을 되판다’는 말 자체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소장자가 구입한 가격보다 싸게 작품을 되팔려고 하면 기분 나빠하는 화가들도 종종 만난다. 많은 콜렉터들도 그런 미술계 분위기에 주눅 들어 쉽사리 되팔 시장을 요구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거래되는 작가는 극소수
하지만 그림을 사기만 하고 되파는 것에 대해서는 물어보지도 못하고 그냥 집에만 쌓아둔다는 것은 ‘투자자’로서 자격미달이다. 미술품 구입 시 미래 투자 가치를 염두에 둔다면 첫 번째 투자 조건은 ‘되팔 수 있는지 여부’다. 흔히 미술품에 대해 그림 값이 오르고 내리는 것에 대해서는 예민하면서도 정작 재판매 시장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다. 그림 값만 오르면 그것이 곧 남는 장사인줄 착각하는 것이다.
2007년, 2008년 미술 시장 역사상 최대의 호황기를 누릴 때에 과연 모든 그림들이 재미를 봤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명목상 가격은 높게 책정될 수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작품은 강 건너 불구경 신세였다. 시장에서 실제 재거래된 작품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옥션이며, 아트페어에서 하루가 다르게 뛰어오른 가격에 작품들이 거래되지만 그것은 매우 한정된 작가의 환호성일 뿐이었다. 시장에서 재판매되는 작가군도 한정되어 있지만, 화랑이나 옥션 소유가 아닌, 소장자의 작품을 팔 수 있는 시장은 극히 제한적이다.
만약 그림을 가지고 있다면 그 그림을 팔려고 한번 나서보라. 과연 어디서 얼마에 팔 수 있는지. 소장한 그림을 되팔아 환금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물며 구입할 때의 가격을 그대로 보장받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모 방송국에서 매주 진행하는 <진품명품>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병풍이며 도자기가 몇 천만원짜리로 판정될 때 시청자들은 출품자를 억세게 재수 좋은 사람마냥 부러워한다. 그러나 그것은 감정 가격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것이 시장에서 직접 거래될 때는 그만한 가격을 받을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심지어 감정 가격의 절반에라도 직접 팔 수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다.
재판매 시장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옥션이다. 화가들의 작품을 직접 판매하는 곳이 화랑이라면, 옥션은 화랑 등에서 1차 판매된 작품을 다시 파는 시장이다. 국내에는 서울옥션을 비롯해, K옥션, M옥션, 꼬모옥션, A옥션, 매일옥션 등이 있다. 투자를 염두에 둔 초보 콜렉터라면 먼저 이들 옥션에서 배포하는 도록을 구입해서 어떤 작가들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지 그 리스트를 확인해봐야 한다. 몇 권만 비교해보면 시장의 주류 작가인지 아닌지 알게 된다.
옥션에서 구입한 작품은 일정한 기간이 지난 뒤 재경매에 올려주기 때문에 되파는 것에 대해서는 일단 보장을 받는 셈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유명 옥션에서 다뤄지는 작가는 몇 백 명으로 매우 제한적이다. 매번 옥션 때마다 출품되는 작가는 늘 그 얼굴이라는 점은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환불·재판매 화랑 등장
인터넷 경매 사이트 중에 재판매 시스템이 가장 잘된 곳은 ‘포털아트(porart.com)’다. 이곳은 작품 가격이 싼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이곳에서 구입한 작품에 한해 1년 뒤에 자체 사이트를 통해 재판매를 해준다. 지금은 일부 작품에 한정되어 있지만 한때는 구입 가격의 80~100%까지 보장해주기도 해 재판매에 대한 보장 시스템을 처음 제대로 실시한 곳이다.
화랑 중에도 판매 작품에 대해 일부 재구매를 해주기는 하지만 아직은 단골 관리 차원에서 일부 비공식적으로 이뤄지고 있을 뿐이다. 공개적으로 판매 가격을 보장해주는 곳은 ‘갤러리 미교’가 유일하다시피 하다. 서울 종묘주차장 1층에 위치한 ‘갤러리 미교’는 2008년 12월 국내 화랑으로서는 처음으로 공개적 환불 시스템을 선언했다. 작품에 손상이 없는 한 판매가의 85%에 언제든지 환불해준다.
재판매 시장의 불모지에 ‘포털아트’나 ‘갤러리 미교’의 출현은 매우 신선한 바람이다. 자신이 구입한 작품에 대해 재판매를 해주거나 판매 가격의 일정액을 보장해주는 것보다 더 확실한 안전장치는 없다. 그럼에도 아직 대부분의 소장 작품들은 투자적 시각에서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대물림한 작품이나 출처가 분명치 않은 작품이라면 이사할 때 폐기물 처리비용까지 지불하며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감정비용도 만만찮아 귀한 작품이 그 가치를 몰라 방치됐다가 결국에는 훼손되어 버리는 것도 재판매 시장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 개설된 ‘오픈아트(openart.kr)’는 이러한 소장자들의 갈증해소를 위해 만들어진 ‘소장자 미술품 전문 직거래 장터’다. 누구든지 집에 소장하고 있던 그림을 손쉽게 내놓고 공개적으로 팔 수 있는 온라인 사이트다. 소장자의 미술품만 재판매하는 전문 시장으로서는 국내 처음이다. 마치 부동산이나 중고물품을 사고팔듯 소장자가 직접 작품을 내놓으면, 구매자가 정보를 보고 흥정을 해가며 작품을 사고 팔 수 있다.
직접 작품 이미지를 올리기가 불편하거나 신분노출 등이 걱정되는 사람들을 위해 위탁판매도 병행한다. 아직 오픈 초기여서 등록된 작품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시장 가격보다 싼 가격에 나온 급매물(특가작품)이 많아 구매자 입장에서도 눈만 밝으면 뜻밖의 행운을 잡을 수 있다.
아무리 미술 시장이 활기를 되찾고, 작품 가격이 올라도, 내가 소장한 그림을 팔 수 있는 곳이 없다면 그것은 무용지물이다. 감상가치로는 얼마나 대단할는지 몰라도 투자가치로는 제로다. 화랑에서 작품을 구입할 때 감상용이 아니고 투자용이라면 되팔 것에 대해 반드시 대답을 들어둬야 후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