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에서 사람의 본성이 변할까요?” 정진호 현대인재개발원 디지털교육컨설팅실장이 물었다. 답을 바라고 던진 질문이 아니었다. 이미 그에겐 답이 있기 때문이다. 정 팀장이 최근 낸 <일개미의 반란>에는 해답을 ‘독자들의 몫’으로 돌리고 있지만 독자들이야 어찌 생각하든 정 실장의 답변은 ‘늑대는 늑대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솝은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나쁜 사람은 끝까지 나쁜 사람이니 믿지 말라는 거죠. 저는 이솝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직장에서 나쁜 사람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무의미합니다.”
다양한 직장 경험이 집필 밑거름
<일개미의 반란>은 직장인 처세론이다. 제목에서 ‘일개미’는 직장인의 은유다. 그렇다면 ‘반란’은 무엇을 의미할까. 직장생활에 저항하거나 직장을 떠나라는 얘기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당나귀처럼 늑대나 여우에게 당하는 바보 같은 직장생활을 집어치우라는 면에서 ‘저항’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저항의 목적이 직장에서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면에선 틀린 말이다.
“실컷 이용만 당하다가 원하지 않는 순간에 직장에서 내쳐지는 직장인이 많습니다. 이런 면에서 오래 살아남는 것은 반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선 여우나 늑대 같은 상사와 동료들에게 당하지 않고 능력이나 인간성, 노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이솝을 통해 그 노하우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이솝일까. 2600년 전 한 노예의 ‘훈수’를 현대 직장생활에 끌어들인 이유는 뭘까. 답은 간단했다. 이솝이 2600년 전 그리스 노예 사회에서 꿰뚫어 본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가 현대의 대한민국 직장사회에서도 그대로 관철되고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실제로 책에서 제시한 이솝 우화와 직장생활에서 벌어지는 풍경은 희한하리만치 잘 맞아 떨어진다.
정 실장이 이솝 우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07년 우연히 본 신문 카툰 때문이었다. 당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마찰을 <여우와 두루미> 우화에 빗댄 것을 보고 무릎을 치고 감탄했다. 서로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을 하며 대치하는 국면을 정확하게 표현해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때부터 정 실장은 이솝 연구에 돌입했다. 관련 서적을 뒤지고 각종 우화집을 펼쳐들었다. 틈이 나는 대로 이솝 우화의 교훈을 되새겼다. 신기하게도 이솝이 전하는 메시지는 단 하나도 그의 마음에 거슬리지 않았다.
“이솝 우화는 여러 형태로 각색되고 있습니다. 리더십이나 경영, 창의성 교육 등에 이솝 우화를 끌어들인 서적도 여러 권 됩니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이솝 우화는 ‘처세’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굳어졌습니다. 이솝이 우화를 누구에게 처음 얘기했겠습니까. 동료 노예들 아니겠어요. 노예들에게 살아남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우화를 만들지 않았을까요. 이건 처세입니다.”
이솝 우화에서 끌어낸 직장생활 노하우를 전파하고 싶었던 정 실장은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우화 한 편과 짤막한 시사점을 엮은 작은 글이었지만 댓글이 보통 50~60개씩 달렸다. 그의 글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직장생활에 적잖은 도움이 되고 있다는 반응이었다.

정 실장이 이솝 우화를 직장 처세술에 접목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복잡다단한 직장생활 덕분이었다. 중소기업, 영어학원, 공기업, 벤처기업, 대기업 등을 거치며 회사의 부도, 직장폐쇄 등 다양한 일을 겪었다. 그 와중에 상사·동료와 무척이나 부대꼈다. 여기에 오랫동안 직장인 교육과 컨설팅을 하며 보고 들은 간접경험도 푸짐하다.
“책에서 제시한 직장인 사례 중 상당수는 직접 겪은 일들입니다. 기억을 더듬어 이솝 우화의 교훈에 맞는 케이스를 찾아냈죠. 겪은 일이 많아서 어려운 일은 아니었어요. 인간 본성을 꿰뚫는 이솝 우화의 힘과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실제 상황의 결합, 이게 <일개미의 반란>이 가진 차별 포인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씁쓸하거나 냉정한 느낌의 조언이 적지 않습니다. 이솝이 현실주의자이기 때문입니까.
이솝은 현실주의자라기보다 휴머니스트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우화를 만든 이유도 동료 노예들을 돕기 위해서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냉정할 때가 많이 있죠. 나쁜 사람은 끝까지 나쁜 사람이니 괜한 기대 같은 것은 갖지 말라는 대목이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은 피하는 게 상책입니다. 그럼에도 이솝은 근본적으로 타인을 사랑한 휴머니스트라고 생각합니다.
직장생활을 잘 할 수 있는 핵심 포인트 3가지만 꼽아주십시오.
첫째는 복수하지 말아야 합니다.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입니다. 물론 자신을 괴롭힌 상사에게 분풀이를 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맞서봐야 득보다는 실이 큽니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 것 아닙니까. 분하더라도 참고 다음을 생각해야죠. 둘째는 커리어의 단계에 맞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대리·과장 시절엔 자기계발이 중요하고 차장 시절엔 부하와 상사에 대한 관계 능력이 요구됩니다. 차장이 돼서 자기계발에 목을 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부장이나 임원 시절엔 무엇보다 인사권자의 사람이 되어야겠죠. 마지막으로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핵심 인재는 타인에게 운명을 맡기지 않는 법입니다.
다음 책도 구상하고 있습니까.
이번엔 직장생활 잘 하는 법을 썼으니 다음엔 직장 잘 떠나는 법을 써볼까 합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까마귀를 메인 소재로 활용하면 어떨까 궁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