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10년•정도 10년
혁신 이끈 ‘열정의 승부사’
고객중심 경영 더디지만 빛나는 성과 내
직원과 적극적 소통으로 ‘함께 가는 리더’

취임 초기 신 회장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의사 출신이 보험업을 알면 얼마나 알겠느냐는 시각이었다. 2000년 이후 정도경영·윤리경영·고객중심경영을 내세운 변화와 혁신을 추진하자 세상의 인심은 더욱 강퍅해졌다. 보험업의 특성을 모르고 ‘도덕 교과서’를 쓰고 있다는 식이었다. 이런 유의 비판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하지만 9년 후인 2009년 업계는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세계 금융업계가 ‘100년 만의 위기’로 휘청였지만 교보생명은 견조한 성장을 이뤄냈다. 업계 순이익 순위가 단박에 1위로 올라섰다. 사람들은 궁금했다. 비결이 대체 뭐였을까. 교보생명은 또박또박 대답한다. 정도경영, 내실경영, 고객중심경영 덕이라고. 10년 전 업계의 조롱을 받던 비전이 10년이 지나 성장의 발판이 된 것이다.
지금이야 자랑스럽게 변화와 혁신이 성장의 일등공신이라고 말하지만 이를 추진할 2000년대 초만 해도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회사의 체력은 이미 바닥을 드러낸 상태였다. 당장 생존이 중요한 상황에 장기적인 비전을 내세운 변화와 혁신은 이상으로만 들렸다. 더군다나 회사의 경영 실적이 악화되고 있던 참이었다. 여북하면 ‘의사가 회사를 말아먹겠다’는 소리마저 나왔을까.
하지만 신 회장은 결단을 내렸고 물러서지 않았다. 변화하지 않고는 안정적 수익성은 고사하고 생존마저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교보생명의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은 신 회장의 결단력을 ‘수술 집도의’의 그것에 비유한다.
“당시 이사회 이사들도 신 회장의 변화경영에 우려를 표했습니다. 매출이 꺾이니 겁이 나고 피가 말랐습니다. 하지만 신 회장은 과단성이 있더군요. 아마도 의사 출신이어서 더 그럴 수 있었을 겁니다. 수술실에서 의사의 결단력은 환자의 생사를 가릅니다. 수술처럼 경영도 결국 판단의 결과입니다. 일단 판단했으면 과단성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변화를 시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지속하는 것, 한걸음 더 나아가 성과를 내는 것은 어렵다. 변화관리의 대가인 존 코터 하버드대학 교수의 말마따나 변화관리의 성패는 얼마나 일관되게 추진하느냐에 달렸다. 이런 면에서 신 회장의 ‘뚝심’은 놀라울 정도라고 평가된다. 당시 변화관리팀장으로 근무했던 송기정 보험서비스실장은 신 회장이 ‘대단한 평정심’으로 일관되게 변화와 혁신을 추진했다고 말한다.
“안팎의 우려가 제기될 때마다 ‘망하는 게 아니라 원래 모습을 찾는 것이다. 고름은 살이 되지 않는다. 고삐를 늦추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돌이켜보면 심리적으로 무척 힘드셨을 텐데 그걸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변화에는 고통의 터널이 있기 마련이고 이 고비를 넘기면 좋아질 것’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 아니었나 싶습니다.”
결단의 CEO는 곧잘 함정에 빠진다. 독선과 아집의 길이 그것이다. 하지만 신 회장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나를 따르라’ 스타일의 CEO와는 거리가 멀었다. ‘권위주의’라는 유전자가 애초에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그는 ‘함께 가는 길’을 추구했다. 누가 됐든, 어디가 됐든 회사의 비전과 방침을 전파했다. 이의가 제기되면 ‘끝장토론’을 마다하지 않고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취임 초기 1년에 전략회의를 370회나 가졌을 정도였다. 강연도 숱하게 다녔다. 그 결과 성대를 상해 고생하기도 했다. 송 상무가 “회장님의 리더십 특징은 첫째도 커뮤니케이션, 둘째도 커뮤니케이션”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자기 할 말만 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할 수도 있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그는 ‘경청’하는 리더라고 회사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공 소장은 “이사회 분위기가 워낙 자유스럽다 보니 누구를 막론하고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견해를 말할 수 있다”며 “나중에는 누가 오너고 누가 이사인지조차 구분이 안 될 때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신 회장의 커뮤니케이션 경영의 하이라이트는 2001년 비전 수립 과정이다. 전 직원이 비전 수립에 참여한 것이다. 신 회장은 직원들의 계층별 비전 간담회를 직접 주재할 정도로 공감대 형성을 중시했다.

전 직원이 참여해 모두가 공감하는 비전을 만들려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됐지만 그렇다고 서둘러 결론내리지 않았다. 그렇게 7개월이 흘러서야 교보생명의 비전은 완성됐다.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신 회장이 돋보이는 것은 ‘진정성’이다. 정도니 윤리니 고객지향이니 하는 말들이 그냥 구호가 아니라 정말 원하고 가야 한다는 ‘마음’이 전해진다는 것이다. FP 중에서 그의 팬층이 두텁게 형성돼 있는 것도 ‘FP가 소중하고, FP에게 감사한다’는 그의 마음을 진심으로 느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편정범 중부FP지역본부장은 이렇게 말한다.
“사실 처음엔 거리감이 느껴졌죠. 서울대 의대 교수라는 학벌, 엄청난 재력, 회장이라는 직위 등 우리하고는 격이 다르지 않습니까. 하지만 조금 지나면 그런 벽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너무 편하게 대해 주시니까요. 지금은 오히려 편하게 모시고 있습니다.”
신 회장의 진정성은 솔선수범하는 그의 행동에서 한층 강화된다. 교보생명의 비전이 순탄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것도 신 회장의 솔선수범 덕이 컸다. 비전이 수립되자 “우리 회사는 회장 위에 비전이 있습니다. 이제 모든 결정은 비전에 따라 해야 합니다. 내가 만일 비전을 어기면 쫓아내십시오”라고 선언한 마당이었다. CEO가 철두철미하게, 일관되게 지켜나가자 비전에 동참하는 직원들이 빠르게 늘어났다. 이런 그를 공 소장은 ‘순정한 승부사’라고 부른다.
“미친 시장에서 같이 미치지 말라”
신 회장의 리더십을 표현하는 또 다른 키워드 중 하나는 ‘정도’다. 그는 바른 길, 가야할 길을 따른다. 편법은 용납하지 않는다. 당장의 이익을 위해 정도를 벗어나는 것은 그의 스타일이 아니다. 취임 초기 그가 가장 고민했던 것은 어떻게 돈을 벌까가 아니라 보험업의 본질은 무엇인가였다. 당시 업계의 관행처럼 당장의 이익을 좇아 무작정 매출 경쟁에 나설 것이 아니라 교보생명이 이 세상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찾아 그에 맞는 경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고민은 정도경영겾矗恣嚥탛윤리경영으로 발전해나갔다. 공 소장의 평가다.
“신 회장이 대단하다고 여겨지는 첫 번째 이유는 업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입니다. 보험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로 들어와서 그가 먼저 한 일은 비즈니스가 아니라 업의 본질을 연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은 핸디캡이 아니라 장점이 됐습니다. 업계의 혼탁한 관행에서 벗어나 업의 본질과 마주할 수 있었던 거죠. 그렇게 업의 본질을 연구하다 보니 소신도 생기고 업무를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는 능력도 생겼을 겁니다.”
돈이 아니라 고객을 향해야 한다는 그의 경영철학은 금융업계의 차세대 황금시장으로 불리는 퇴직연금 시장에서도 관철된다. 현재 퇴직연금 시장은 보험·은행·증권 등 업종 간의 경쟁, 업체 간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과당경쟁·출혈경쟁 상황이다. 교보생명도 퇴직연금을 성장 동력으로 삼고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정도를 지키는 신 회장, 이번에도 돈을 좇지 말라고 당부한다. 박진호 퇴직연금사업본부장의 말이다.
“양적인 성장이 아니라 질적인 성장을 주문하십니다. 퇴직연금 시장 선점이 대단히 중요하지만 미친 시장에서 함께 미칠 필요는 없다고 설명하시죠. 영업직원들의 성과 시스템도 양보다는 질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계약의 양이 많아도 질이 떨어지는 것보다 양은 절반이어도 질이 좋으면 인사고과를 더 높게 부여합니다. 혼탁한 시장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조만간 정도의 경쟁이 시작될 겁니다. 그 시장에서 교보는 승리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일선 영업본부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양적 성장보다는 질적 성장을 강조하고 요구한다. 편 본부장의 기억을 더듬어보자. 지난해 9월 중부FP지역본부를 방문한 신 회장 앞에서 편 본부장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매출이 다른 본부에 비해 적었기 때문이다. 편 본부장은 실적 개선을 다짐했다. 하지만 신 회장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편 본부장님, 그러지 마세요. 무리하게 매출을 키우면 리스크가 생깁니다. 차근차근 하세요. 미래 성장이 확실한 영업을 하세요. 무리하지 마시고요.”
정도는 경영뿐만 아니라 개인사에서도 관철된다. 미국의 언론들이 상속세를 곧이곧대로 낸 신 회장을 크게 보도한 적이 있다. 그만큼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박 상무는 신 회장과 취업 인터뷰에서 이 일을 물었다. 왜 상속세를 다 냈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이었다.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왜라뇨? 질문이 이상한 것 같습니다. 내야 할 세금이니까 냈지요.”
공 소장은 신 회장을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일 것이라고 자신한다. 자신이 8년 동안 사외이사로 있지만 골프 한 번 같이 친 일이 없을 정도로 투명하다는 것이다.
취임 초기 주변에서는 신 회장이 ‘보험과 금융·경제를 잘 모를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실제로 몰랐다. 하지만 지금도 그럴 것이라 여긴다면 신 회장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공부를 참 잘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하나 더. 그는 못 말리는 노력파다. 공 소장이 신 회장에게 곧잘 건네는 농담이 있다. “도대체 머리 좋은 사람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면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신 회장은 보험 업계에 투신하면서 그야말로 열심히 공부했다. 신문·책·경제보고서 등 경제와 금융에 대한 문헌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실무부서의 과장급 직원들을 선생으로 앉혀놓고 현장을 배웠다. 그 결과 지금은 미국 금융업계에서 경력을 쌓은 박 상무조차 놀랄 정도의 해박한 금융·경제 지식을 갖추고 있다. 공 소장은 “일과 업의 본질에 집중하는 몰입도가 대단하다”며 “CEO로서 성장곡선의 기울기가 가팔라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박 상무는 신 회장을 ‘선진국형 금융 CEO’라고 부른다. 대체로 한국에서 CEO는 큰 그림을 그리고 세부적인 일은 직원들이 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이에 비해 미국의 CEO들은 큰 그림은 물론 회사의 세세한 내용까지 챙기는데, 신 회장이 그런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이번 금융위기에서 교보생명이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던 것도 큰 그림과 작은 그림을 꿰뚫고 있는 신 회장의 통찰력 덕이라고 박 상무는 전했다.
“제가 퇴직연금부문에서 한다면 하는 사람인데 회장님과 얘기하다 보면 식은땀이 흐를 때가 있습니다. 핵심을 짚는 능력이 대단하시거든요. 미국에서 일할 때 고객 중 금융계 CEO가 여러 명 있었는데 그 분들보다 오히려 내공이 강하십니다. 고수가 고수를 알아본다고 해외에서 상도 여러 번 받으셨잖습니까.”
신 회장을 아는 사람들은 소탈함을 신 회장의 또 다른 매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재벌가 2세답지 않은 검소함이 몸에 배어 있다는 얘기다. 1996년 교보생명 부회장으로 취임할 때까지 그의 차는 낡은 르망이었다. 얼마 전까지는 오래된 체어맨이 그의 차였다. 집무실도 작다. 흔히 말하는 럭셔리한 삶은 그와 거리가 멀다. 신기한 것은 그런 모습이 어색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그냥 그렇게 교육받으며 자랐고, 그렇게 살아왔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고 지인들은 입을 모은다.
신 회장은 지금까지 여러 번 사업을 축소시킨 바 있다. 자산운용을 분리하고 변액보험을 줄이고 손해보험은 매각했다. 이유는 한 가지였다. 리스크를 줄이고 잘 할 수 있는 것에서 경쟁력을 키우자는 것이었다. 금융위기 후 신 회장은 자산시장 연구에 빠져있다고 한다. 그가 자산시장을 잘 알게 될 때, 그래서 교보가 잘 할 수 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앞으로의 10년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