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담배·커피. 인류가 만들어낸 3대 기호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오랜 세월 이 기호품들을 즐기면서 문화로까지 발전시켰다. 하지만 유독 담배만큼은 오늘날 만만찮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건강에 해롭다는 이유로 금연 바람이라는 거센 역풍을 맞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담배를 만드는 기업들도 경영 환경이 예전 같지 않다. 법률과 제도에 의한 규제가 심해진 데다, 금연 진영의 공격 표적이 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시대적 변화 속에 담배 기업들은 어떻게 스스로를 ‘포지셔닝’하고 있을까? 또한 그 종사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아가 담배 기업은 과연 지속 가능할 것인가? 한국 대표 담배 기업 KT&G의 지속경영실 사회공헌부 사람들을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사회적 책임 ‘진정성’을 피워 올립니다”

예산 비중, 프로그램 특성 등 차별화된 활동으로 성과

‘공공의 적’ 딜레마 딛고 함께하는 ‘기업시민’ 지향해

 “담배는 어쨌거나 합법적 제품이자 비즈니스가 아닙니까? 저희 생각은 어차피 담배 사업을 한다면 보다 안전하고 덜 유해한 제품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담배 같은 제품일수록 책임(감) 있는 기업이 하는 게 낫습니다. 저희들이 담배 사업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 다른 업자들이 할 것 아니겠습니까? KT&G는 소유와 경영이 완전 분리된 회사입니다. 주주는 경영에 전혀 간섭을 하지 않아요. 때문에 경영진은 나름의 원칙을 갖고 회사를 경영해 나갈 수 있습니다. 게다가 담배는 담배사업법과 국민건강증진법의 포괄적이고 엄격한 규제를 받습니다. KT&G는 그 틀 안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것이지요. 더욱이 KT&G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정한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을 벌써부터 지켜오고 있습니다.”

서정일 사회공헌부장은 평소 마음속에 담아뒀던 생각들을 열변으로 풀어냈다. 사실 담배 기업 종사자로서 갑갑한 게 많았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담배는 ‘공공의 적’이 돼버렸다. 그러니 담배 기업 임직원들이 얼마나 많이 딜레마에 빠질 것인가? 직장인·직업인으로서 자부심과 성취감보다는 주변 눈치를 봐야 할 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금연 다짐을 하는 매년 정초에는 스트레스가 더 심해진다. 여기저기서 담배가 도마에 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지사지’라고 했다. KT&G도 다른 여느 기업처럼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일 따름이며, 그 임직원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사회 구성원의 일부다. 그렇다면 서로 합리적인 공존을 모색하는 게 바람직한 사회의 조건일 것이다.

KT&G는 자신들의 업(業)의 특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문제를 알면 답도 알 수 있다. KT&G가 찾은 해법은 무엇일까?

‘바른 기업, 깨어 있는 기업, 함께하는 기업’

 지난 2003년 1월 KT&G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3대 경영이념을 확립했다. ‘바른 기업, 깨어 있는 기업, 함께 하는 기업’이 그것이다. 서정일 부장은 3대 경영이념의 뜻을 이렇게 풀이했다. “‘바른 기업’은 선진 지배구조 확립을 통해 투명하고 윤리적이며 책임 있는 경영을 하겠다는 다짐입니다.  ‘깨어 있는 기업’은 기업으로서 경제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함께하는 기업’은 사회 속의 기업시민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입니다. 특히 세 번째 이념은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을 통해 우리 사회 전체의 가치를 높이는 데 일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KT&G는 3대 경영이념 선포 이후 본격적인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 경영’에 돌입했다. 아울러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 프로그램을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 채택했다.

그 중에서도 담배라는 업의 특성과 관련된 사회적 책임 사업이 흥미롭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아이러니하게도 ‘담배를 피우지 말자’는 캠페인을 후원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서울대 의대와 함께 벌이고 있는 청소년 흡연예방 프로그램 및 교육 사업이다. 아예 금연 운동가들을 지원하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KT&G는 한 유력 금연단체에 대한 재정 지원을 통해 청소년 금연을 위한 보건교육 사업을 벌이고 있다. 더군다나 먼저 제안한 쪽은 다름 아닌 KT&G다.

서정일 부장의 말이다. “처음엔 그 단체에서도 당연히 의아해했지요. 담배 파는 회사가 금연 사업을 돕겠다고 나섰으니까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서로 간에 진정성을 확인하고는 저희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쪽 입장을 고려해 단체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사실 저희가 금연 사업을 펼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참 묘한 일이죠? 어쨌든 KT&G는 청소년들의 흡연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게 대원칙입니다.”

담배 기업이 금연 운동을 돕는다? 모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바탕에는 역시 담배 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KT&G의 의지가 담겨 있다. 그런 차원에서 올바른 흡연예절 및 문화, 청결한 흡연 환경을 만들기 위한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흡연자의 권리 못지않게 비흡연자의 권리도 존중하는 상호배려의 정신이다.

“저는 식당 같은 공공장소에 갔을 때 아이들이 있으면 담배를 피우지 말자고 주변에 권고해요. 담배는 성인의 기호품입니다. 본인의 의사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흡연문화가 필요합니다. 그게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이고, 서로 배려하는 문화가 아니겠습니까? 흡연자가 에티켓을 지키지 않으면 결국 담배를 피울 수 없는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순매출액 2% 사회공헌 예산으로 써

KT&G의 연간 매출액은 6조원대에 달한다. 하지만 이른바 순매출액은 2조원대로 뚝 떨어진다. 물론 그만한 매출 규모도 결코 작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4조원 가까운 천문학적인 돈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답은 바로 세금이다. KT&G는 연간 총 매출액 중에서 60% 정도를 담배소비세, 교육세, 기타 세금 등으로 국가에 납부하고 있다. 각종 기금 등 준조세 성격의 부담도 지고 있다. 2500원짜리 담배 한 갑을 팔면 1700원이 세금과 준조세로 징수된다. 담배 한 갑을 팔면 800원만 KT&G의 매출로 잡히는 것이다.

KT&G는 연간 순매출액의 2%를 사회공헌 예산으로 집행하고 있다. 그건 하나의 확고한 경영원칙이다. 2%라는 수치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 국내 재계에서도 사회공헌 활동이 트렌드가 됐지만 매출액의 2%까지 사회공헌 비용으로 지출하는 기업은 드물다. 대개는 1% 미만에 그치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KT&G는 왜 이렇게 ‘화끈하게’ 사회공헌 활동에 나서고 있을까? 서정일 부장의 견해를 들어보자. “모든 기업은 사회 인프라를 이용해 이익을 창출합니다. 그 의미는 사회의 덕을 봤기에 돈을 벌 수 있다는 거죠. 이는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하는 근본적 이유입니다. 바로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KT&G는 기업시민으로서 우리 사회의 공동선을 향상하고 제고하는 활동에 힘쓰고 있습니다. 특히 일시적인 시혜적 차원의 사회공헌을 지양하고, 장기적으로 사회 인프라 혹은 시스템을 갖추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삼고 있지요. 그런데 장기 프로젝트이다 보니 돈도 많이 들고 당장 표시도 잘 안 납니다.”

KT&G복지재단은 연간 140억원가량의 예산을 사회복지 인프라 구축 사업에 쓰고 있다. 역시 장기적인 관점의 사회공헌 방침이 적용된다. 지난해 6월 재단법인 중앙자활센터에 150억원이라는 거액을 지원한 것도 KT&G 사회공헌 활동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사례다. 중앙자활센터는 저소득층을 위한 직업훈련과 일자리 마련 등을 수행하는 공익단체다. 즉 ‘배고픈 자에게 물고기를 주기보다는 물고기 낚는 법을 가르쳐주는’ 곳이다. KT&G의 철학과 딱 부합하는 셈이다.

KT&G의 사회공헌 활동은 일반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담배 사업자에 대한 사회적 저항감이나 법률적 규제 때문에 홍보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유독 입소문을 타고 호평을 받은 사례가 있다. 2007년 9월 서울 홍대 지역에 개관한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을 거점으로 펼치는 문화예술 후원 활동이 바로 그것이다. 상상마당은 음악·영화·사진·공연·미술·문학·학술 등 다양한 문화예술 장르가 공존하고 소통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케이스라는 평이다.

비주류, 신진 예술인 양성으로 큰 주목

이제 갓 2년 반을 넘겼지만 벌써부터 상상마당은 문화의 다양성 제고를 위한 실험공간이자 발전소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그 동안 다양한 신진 예술인 양성 프로그램을 가동해 다수의 차세대 스타들을 길러내는 성과도 거뒀다. 특히 여느 기업들의 메세나(문화예술 후원) 활동이 주로 엘리트 예술가나 주류 문화를 지원하는 데 비해 KT&G 상상마당은 비주류나 소외받은 유망주들을 발굴하고 후원한다는 점에서 큰 차별성을 지닌다는 평가다.

하지만 초창기에는 여러 가지 난관도 겪었다. 무엇보다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권영근 사회공헌부 과장이 털어놓는 에피소드다. “처음에는 홍대 주변 문화인들이 뭔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쳐다봤어요. 예전부터 많은 기업들이 문화를 ‘프로모션’ 수단으로 이용해 왔던 터라 ‘너희들도 한통속 아니냐’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는 관할구청에 건축 인허가를 받으러 갔더니 담당 공무원이 ‘담배 박물관이나 홍보관을 짓는 것이냐’고 묻더군요. 한마디로 황당하고 곤혹스러웠지요. 하지만 개관 후 1년쯤 지나면서부터는 주변 반응이 달라졌습니다. KT&G의 진정성을 신뢰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거죠.”

유명한 대중음악 평론가이자 문화게릴라로 통하는 임진모씨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KT&G가 상상마당을 세운 게 2000년대 들어 가장 잘한 일이에요. 상상마당은 국내 기업들의 문화적 사회공헌 사업에 뚜렷한 벤치마킹 모델이 될 겁니다.” 임씨는 KT&G의 문화예술 후원 방향에 공감해 상상마당 홍보·마케팅 디렉터를 자원해서 맡기도 했다.

상상마당의 문화예술 네트워크는 이제 상당히 튼튼한 뿌리를 내렸다. 새롭고 독특하며 창의적인 문화예술 후원 활동의 모델로서도 손색이 없다. 내부 구성원들의 순수한 열정과 외부 전문가들의 조력이 합쳐져 만들어낸 아름다운 결실이다.

KT&G의 문화 마케터 역할을 맡고 있는 김태성 과장의 말이다. “KT&G는 주류가 아닌 비주류, 신진작가, 인디문화를 지원하는 동시에 단발성이 아닌 지속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 다른 기업들의 문화예술 후원 활동과 차별화되는 대목이죠. 문화 마케팅이라는 말은 어떤 기업이나 쓰는 말이지만 KT&G는 다릅니다. 말하자면 마케팅을 위해 문화 지원을 하는 게 아니라 문화 지원을 위해 마케팅을 하는 것이죠.”

담배 기업이지만 ‘위대한 기업’ 지향

돌이켜보면 담배는 오랜 세월 동안 꽤 ‘문화적인’ 기호품으로 자리 잡아 왔던 게 사실이다. 문인이나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에서 담배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은 매우 정형화된 장면 중 하나였을 뿐 아니라 일반인들 역시 사색과 대화의 장에서는 어김없이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곤 했다. 담배는 때로 영감을 줬고, 때로는 위안과 유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담배라는 기호품이 가졌던 ‘문화적 맥락’은 더 이상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세상이 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도리어 담배를 피우면 문화는커녕 ‘비문화인’으로 규정되기 일쑤다.

그런 점에서 담배 기업 KT&G의 문화예술 후원 활동은 참 묘한 감회를 불러일으킨다. 담배에서 문화적 코드는 퇴색됐지만 담배 기업이 문화 진흥을 위해 힘쓰고 있으니 말이다.

서정일 부장은 이렇게 말한다. “밖에서는 KT&G를 ‘사악한 기업’으로 볼지 모르겠지만, 우리도 ‘위대한 기업’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모든 기업은 이익을 창출하는 집단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이익으로 무엇을 하느냐 하는 것 아닐까요? 저희 경영진은 수시로 이런 말을 합니다. ‘KT&G는 사회에 빚진 부분이 있고, 앞으로도 빚질 부분이 있을 테니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자.’ KT&G의 사회공헌 활동을 그런 차원에서 봐주면 좋겠습니다. 저는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란 안 하면 (기업의 역할을) 못 하는 것이고, 하면 (기업시민으로서)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